데스 스트랜딩

난해하면서도 독창적인

INTRO : By Hideo Kojima

코지마 히데오.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영화 감독을 꿈꾸던 그는 일본 영화는 가망이 없다고 느끼고 게임 개발자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코나미에서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를 개발하며 잠입 액션이라는 새로운 게임 장르를 개척했고, 게임계에 나름대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그를 품고 있던 코나미는 신념있는 게임 개발사와는 거리가 멀었고, 코지마 히데오를 팽해버리고 말았죠.

그렇게 코나미에서 탈출한 코지마는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며 기대감은 커졌고, 많은 팬들이 그의 신작을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데스 스트랜딩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아 보입니다. 신뢰도가 예전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나름 대규모 웹진인 IGN에서는 6.8점을 때려버렸습니다. 리메이크작과 경합 끝에 2019 고티를 따내긴 했지만 뭔가 모두가 인정하는 올해의 게임보다는 빈집털이에 가깝다는 반응입니다. 실제로 메타크리틱 스코어도 고티 1위치고는 다소 낮은 80점 초반대입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고, 데스 스트랜딩은 6.8점을 받을 만큼 실망스러운 게임이었는지. 정말로 히데오 코지마가 자신의 명성에 취해서 이상한 게임을 만들었고, 그 명성 덕분에 고티를 먹은 것인지. 직접 플레이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에 이 정체불명의 게임을 시도해보게 된 것입니다.

액션, 배달을 만나다

게임의 주축이 되는 메카닉은 바로 배달입니다. 주인공은 '포터'라고 하는 택배원입니다. 물건을 받아 안전하게 배달해야 합니다. 스토리의 메인 미션들도 이 배달로 이루어집니다. 물건을 받아서, 목표 지점까지 가져가는 것이죠. 기존 게임들에서 배달 미션은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미션으로 꼽힙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물건을 받아 무작정 목표 지점까지 뛰어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쉬우니까 지루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데스 스트랜딩의 배달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주인공은 벽을 탈 수 없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안전하게 착지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배달길이 평탄한 것도 아닙니다. 택배를 짊어지고 있어서인지 주인공의 움직임은 굉장히 불편하면서도 불안불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달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지형을 잘 탐색하며 안전한 길을 직접 찾아 따라가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형을 파악하는 것 외에도, 여러 귀찮은 요소들이 플레이어를 괴롭힙니다.

배송물은 손에 들거나 등에 짊어질 수 있습니다. 손에 드는 것도 오른손에 드냐 왼손에 드냐를 선택해 따로 조작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조금만 험준한 곳을 지나가면 주인공이 손에 든 배송물을 놓쳐버립니다. 등에 짊어지면 배송물을 놓칠 일은 없지만, 대신 무게중심이 불안정해지면서 툭하면 휘청거리게 됩니다. 직접 조작하면서 균형을 맞춰줘야 하고, 이에 실패할 경우 와당탕 넘어지면서 등에 진 화물들을 전부 쏟아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될 경우 화물들이 손상을 입습니다. 화물들이 손상을 입으면 당연히 미션 점수도 깎입니다.

기존 게임들을 생각해봅시다. 기존 게임들 속 주인공은 적당히 험준한 지형도 무난하게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비탈길이라고 균형을 잡아줄 필요도 없었죠.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액션만 조작했고, 그 외는 게임에서 알아서 다 해줬습니다. 아이템을 줍는다고 무게가 무거워져서 주인공이 빨리 지치거나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아이템은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주머니 안에 보관되고, 오르막길도 걷는게 불가능한 난이도만 아니면 주인공은 별 문제없이 뛰어다닙니다. 사실 그게 맞는 겁니다. 액션이 주축이 되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이런 지나치게 현실적인 요소들은 쓸데없고 재미없을 뿐입니다.

하지만, 데스 스트랜딩은 기존 게임들이 당연히 지나쳤던 요소들을 플레이어의 컨트롤에 맞겨버렸습니다. 기존의 게임에서 사용하던 방식대로 가면 배달은 결코 액션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데스 스트랜딩에서 플레이어는 직접 지형을 스캔해가며 안전한 길을 찾아야 하고, 짐의 무게와 배송물의 배치에도 신경을 써야 하며, 주인공이 넘어지지 않도록 몸의 균형도 일일이 맞춰줘야 합니다. 배달이라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야 할 미션을, 온갖 요소들을 제어 가능하게 맡겨버리면서 어느 정도의 두뇌와 피지컬이 필요한 미션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단순히 배달이 재밌어진다 정도의 의미만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을 극복하라

기존의 오픈월드 게임을 생각해 봅시다.

기존 오픈월드 게임에서 이동은 매우 지루하면서도 필연적으로 게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소였습니다. 오픈월드 게임들은 이 이동의 지루함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빠른 이동입니다. 한 번 가본 길은 두 번 가면 두 배로 재미가 없기에 이미 방문한 지역은 빠른 이동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게 해줍니다. 데스 스트랜딩에도 빠른 이동이 있지만, 화물들도 같이 이동하지 않고 정말 몸뚱아리만 이동됩니다. 말이 빠른 이동이지 화물 운송하는 게임에서 화물을 빼고 빠른 이동을 시켜주다니, 대부분의 경우에서 무의미한 기능입니다.

애초에 데스 스트랜딩의 정체성과 재미 자체가 이동에서 오기에 제대로 된 빠른 이동이 있었다면 게임의 재미가 크게 반감되었을 겁니다. 에임핵을 제공하는 FPS나 경험치핵을 제공하는 JRPG와 다를 게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시도가 바로 인카운터입니다. 일반적인 것이 적과의 인카운터겠고, 레데리나 위쳐같은 게임의 경우 짤막한 스토리를 지닌 퀘스트를 마주치게 합니다. 야숨의 경우는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지형물과 마주치게 합니다. 독특한 지형을 보일락말락하게 숨겨놓고 플레이어의 호기심을 자극해 계속 여기저기로 유도하는 것이죠. 특정 장소로 유도하는 퀘스트 없이도 플레이어를 특정 장소로 유도시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 덕분에 야숨이 그렇게 고평가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야생의 숨결에는 이름 그대로 야생과의 인카운터가 존재했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야숨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데스 스트랜딩의 인카운터는 이러한 야숨의 인카운터 방식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지형물과의 인카운터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데스 스트랜딩이 만드는 자연과의 인카운터는 야숨과 달리 호기심을 유발하진 않습니다. 호기심보다는 도전 정신을 유발한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택배를 배달하는 와중에 험준한 산길을 마주하고, 눈이 수북히 쌓인 설산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저걸 어떻게 넘어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야숨이 퀘스트 없이 특별한 지형을 직접 찾아가게 만들었다면, 데스 스트랜딩은 배달이라는 요소로 특별한 지형을 맞닥뜨리게 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날씨도 단순 게임의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데스 스트랜딩의 비는 '타임폴'이라는, 맞은 대상의 시간을 빠르게 흘러가게 만드는 기묘한 비입니다. 화물이 이 비를 맞으면 급속도로 부식되기 시작하기에 플레이어는 자연물들을 극복하면서 기상 여건까지 신경써야 합니다.

다행히도, 데스 스트랜딩은 이러한 지형들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들을 제공합니다. 사다리나 로프는 기본이고, 조금 더 많은 짐을 들 수 있게 해주는 스켈레톤이나, 무언가를 실을 수 있는 플로팅 캐리어 등등... 이러한 도구들을 직접 제작하여 소지하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도구들로 끝이 아닙니다. 화물에 치명적인 비를 피할 수 있는 구조물이나, 주변 지형을 스캔해주는 구조물들을 원하는 장소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소재들을 가지고 다리나 국도와 같은 기반 시설을 건설할 수도 있습니다. 답사를 통해 지형을 파악하고 그 지형을 극복하기에 알맞은 도구들을 제작해 화물을 안전하게 운반시키는 것. 기존 오픈월드에서는 단순해보이기만 했던 배달 미션은 데스 스트랜딩의 세계 속에서 더욱 복잡해지고, 고유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분위기 밀당하기

데스 스트랜딩에 이러한 지형지물과의 인카운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뮬'이라는 적과의 인카운터도 있고, 'BT'라는 고난이도의 적과의 인카운터도 있습니다.

'뮬'은 택배를 뺏으며 쾌감을 느끼는 기묘한 병에 걸린 테러리스트 집단입니다. 틈만 나면 주인공의 화물을 뺏으러 달려듭니다. 주인공은 이 테러리스트 집단으로부터 화물을 지키기 위해 총격전 또는 육탄전을 벌입니다. 탈것을 타고 달려오는 '뮬'들에 맞서기 위해 주인공은 조금 더 신속하게 움직일 필요가 생깁니다. 화물 배달할 때처럼 자연을 보며 천천히 걸어가고 구조물 만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빠르게 피하고 무기들을 사용해 적을 제압해야 합니다.

반대로 'BT'가 등장하면, 주인공은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자세를 낮춘 채 걸어가야 합니다. 재빠르게 행동해야 했던 뮬과는 정반대의 플레이를 요구합니다. 코지마의 대표 장르인 잠입 액션과 비슷한 감이 있습니다. 'BT'는 화물을 크게 손상시키는 귀찮은 존재인 동시에 주인공이 육탄전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에 최대한 전투를 피하며 조심스럽게 이동해야 하고, 거리를 두고 멀리서 특수한 무기를 사용해 몰래 제압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수로 'BT'에게 제대로 발각되어 '캐쳐'라는 녀석이 등장하면 게임의 흐름은 정반대가 됩니다. 커다란 괴수의 형상을 한 '캐쳐'는 주인공의 위치를 자각하고 주인공을 덮쳐오기 때문에 몰래 이동하는 잠입 플레이는 통하지 않습니다. '뮬'을 상대할 때 이상으로 신속하게 움직이며 거리를 두고 대치해 쓰러뜨려야 합니다.

이러한 존재들과의 인카운터는 정적인 면이 있었던 데스 스트랜딩의 분위기를 환기시킵니다. 배달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장애물인 자연은 움직이지 않기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데, 서로 다른 방법으로 대치해야 하는 적들의 존재로 데스 스트랜딩은 긴박함을 갖추게 됩니다.

만남 없는 멀티플레이

스트랜딩은 연결이라는 뜻입니다. 제목에 걸맞게, 데스 스트랜딩은 연결이라는 개념에 충실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모티브로 삼았고, 그만큼 멀티를 게임의 필수적인 요소로 도입했기에 PS Plus 가입 없이도 멀티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멀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플레이어를 만나는게 불가능합니다. 플레이어가 만날 수 있는 것은 다른 플레이어가 아닌, 다른 플레이어가 만들어 놓은 구조물들 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지형은 매우 험준하고, 주인공의 배달을 방해하는 요소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습니다. 물론 그런 방해 요소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물들을 사용할 수 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그 구조물들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자재를 구하고 유지보수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간단한 사다리나 로프 정도는 설치할 수 있겠지만, 장거리 배달의 경우 필요한 도구들을 전부 챙겨가기엔 배낭이 너무 무거워집니다. 게다가 도로나 다리와 같은 대규모 건축물의 경우 건축물을 짓는데 필요한 소재만 해도 한가득이라 그 많은 소재들을 혼자서 구하고 지정된 장소까지 운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럴 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사람들과의 연결입니다.

앞서 말했듯 여타 멀티플레이 게임들처럼 다른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구조물들은 맵에 남아 플레이어를 도와줍니다. 딱히 이타적인 의도에서 설치한 구조물이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내가 쓰려고 사다리를 설치했는데, 마침 나와 같은 곳에서 어려움을 겪던 다른 플레이어가 제 사다리를 쓰고 좋아요를 남겨줍니다. 다리를 설치하려고 기초만 세워놨다가 소재가 부족해 포기했었는데, 다른 플레이어들이 소재를 조달해준 덕분에 다리가 완성됩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극복하지 못했을 장애물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는 연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 보스를 쓰러뜨리거나 건물을 짓는 것을 강제했다면 오히려 멀티플레이는 귀찮은 요소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발매 전에 게임을 받아 플레이해본 리뷰어들의 점수가 그렇게 낮았던 이유도, 이 연결이라는 요소가 부재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협력하며 이겨내야할 장애물을 혼자서 극복하는 건 상당한 짜증을 유발하는 일이었겠죠.

셀프 진입장벽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프롤로그의 대부분이 컷씬입니다. 컷씬에서 떡밥들을 막 던지는데, 플레이어는 이 떡밥이 뭔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컷씬이 너무 많습니다. BT가 등장할 때마다 컷씬이 나옵니다. 이건 그나마 짧으니 다행이지, 주인공은 주기적으로 소변을 배출해줘야 하는데 이렇게 소변을 배출할 때마다 4개의 컷씬을 봐야 합니다. 컷씬은 스킵이 가능하지만 화장실 갈 때마다 스킵을 일일이 눌러주는 것도 일입니다.

쓸데없는 현실성도 꽤 많습니다. 앞서 말했듯 단순히 아이템을 들고 달리는 간단한 조작도 일정 수준의 컨트롤을 필요로 하며, 주인공은 꾸준히 소변과 대변을 배출해줘야 합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밖에다 쌀 수 있도록 노상방뇨 시스템도 구현해 놨습니다. 물리 엔진도 과도하게 현실적이고 지형도 괴상해서, 도로가 아니면 탈것을 이용하기 힘듭니다. 조그만 돌멩이만 있어도 차량이 덜컹거리고 툭하면 절벽이나 자갈밭이 등장해서 원활한 이동을 꾸준하게 방해합니다. 배달 자체가 게임의 목적이고, 이동이 쉬워지면 배달도 쉬워지고 덩달아 게임의 난이도도 크게 하락할테니 이해는 갑니다만...

스토리도 썩 좋은 평가를 내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스토리 자체만 보자면 의미있고 메세지도 확실하며 그걸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지만, 이건 스토리텔링의 문제입니다.

게임에서 꾸준히 떡밥을 뿌리는데 중간중간에 회수가 되질 않습니다. 거의 클라이맥스에 가서야 모든 떡밥이 회수되는데,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긴 하지만 문제는 그 떡밥들이 굉장히 추상적이고 난해한 덕분에 클라이맥스로 가기 전까지는 이게 뭐지 싶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플레이타임이 짧아서 빠르게 엔딩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컷씬으로도 부족했는지 게임 내에 텍스트도 정말 많이 등장합니다. 배달 임무를 완료하면 샘이 일종의 감사 메일들을 받게 되는데, 이 메일들의 분량도 어마어마합니다. 전체적으로 게임의 정보량이 정말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 정보량을 압축하려는 꼼수를 전혀 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컷씬에서 영화적 연출을 맘껏 자랑하며 안 그래도 많은 양의 정보를 더 난해하고 늘어지게 만듭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읽고 기억하며 몇십 시간의 플레이타임동안 꾸준히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데스 스트랜딩의 감동을 100% 느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동이 조금 깎일 수도 있겠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OUTRO : 게임 체인저?

잠입 액션이라는 장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적들을 해치우지도 못하고 피하기만 하는 게 무슨 재미냐고 코지마를 욕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입 액션은 곧 게임계의 트렌드를 넘어서 빠지면 섭한, 일종의 문법처럼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코지마는 데스 스트랜딩이 정립한 스트랜딩이라는 장르가 게임계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모양입니다.

개인적으로 게임 플레이 자체는 어느 정도 새로운 재미를 제공한다는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배달만 하는 게임이고, 기존 게임의 형태에서 배달만 하는 게임을 만들었다면 굉장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게임이 되었을 테지만... 데스 스트랜딩은 기존 게임들에서 쉽게 지나치던 요소들을 세분화시켜 플레이어의 조작으로 제어 가능하게 맡겨버렸고, 그 결과 단순히 배달을 위해 맵을 이동하는 것이 마냥 지루한 일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BT와 타임폴은 늘어지기 쉬운 배달이라는 행동에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하며 완급조절을 해줍니다. 기존의 게임들과는 많이 동떨어진 시스템을 창조했는데, 플레이하다보면 여러모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배달에서 재미를 느끼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나도 깁니다. 프롤로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컷씬은 본격적으로 배달에 들어가기 전부터 플레이어를 지치게 만듭니다. 독창적인 세계관과 설정은 분명 흥미롭지만 너무 독창적인 나머지 이해가 쉽지 않고, 이해가 쉽지 않으니 몰입도가 떨어집니다. 탈것이나 배달 보조 도구의 사용이 제한되는 초반부에는 정말 툭하면 넘어지고 속도도 느려터진 샘을 보면서 열불이 날 수도 있습니다. 몰입만 할 수 있다면 정말 재밌는 게임인데, 코지마가 특유의 감성으로 진입장벽을 너무 높여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지마의 도전에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확실히 최근 AAA게임들의 개발 비용이 증가하고, 게임 제작이 점점 대규모 프로젝트가 되어가다 보니 게임들이 점점 비슷한 양상을 띄게 되었습니다. 게임 플레이 방식은 기존 게임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비교적 건드리기 쉬운 스토리나 세계관만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경우가 많았었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데스 스트랜딩은 분명 의미있는 시도로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높은 인지도와 수많은 팬을 가진 게임 디렉터가 제약 없이 정말 맘대로 게임을 만들어준 덕분에,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메카닉을 가진 독특한 게임이 탄생했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은 맵은 단순 배경으로만 존재하고, 게임의 핵심은 맵 곳곳의 스토리와 전투 액션이 되는 기존 오픈월드 게임의 문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픈월드 게임에서 필연적인 '이동'을 방해하는 온갖 장애물들을 펼쳐놓고 그것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비록 세계관이나 스토리가 난해하고 복잡해 몰입이 어려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을 관통하는 메카닉의 독창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지마가 앞으로도 계속 일탈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로 규모가 크면서도 진정으로 독창적인 게임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