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스(연가)』
@__you_deal
한참 전부터 히터를 틀어 두었음에도 시트의 재질이 가죽으로 된 탓인지 차 안에는 여전히 찬 공기가 돌았다. 그런 추운 날이었음에도 보쿠토 코타로는 갑갑하게 손을 감싸고 있는 장갑을 대충 벗어 옆자리 시트 위로 툭 던져두었다. 시린 공기와 닿은 손끝은 빠른 속도로 발갛게 달아올랐고, 금세 뻣뻣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그는 작게 미간을 구겼다. 그러한 보쿠토의 기분을 빠르게 파악을 하는 것은 그의 부하이자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뿐이었고, 그는 말없이 핸들을 돌려 그가 자주 가는 카페로 향했다.
보쿠토가 원래부터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어느 날부터 작은 카페 하나를 알아오더니 늘 그곳 커피만큼은 꽤 맛있게 마시는 것을 보고 그의 조직원들은 묘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늘 탄 맛이 난다, 이렇게 쓴 것을 무엇하러 먹냐며 핀잔을 주기 바빴던 그가 제 손으로, 제 돈을 내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건지 카페는 늘 한산했다. 늘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남자 하나만이 익숙한 풍경이었고, 그 남자를 오늘도 힐끔 바라보며 차 안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운전을 하던 남자에게 손짓했다. 늘 자신이 마시던 커피를 사 오라는 의미였다.
“오늘도 시럽 넣으십니까.”
“… 늘 같은 걸로.”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 부하가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보쿠토가 다시금 자신의 시선을 빼앗는, 카페 안 창가 자리에 늘 자리하고 앉아 있는 남자에게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남자가 꽤 곱상하게 생겼다. 그 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적당히 희고 얇은 손을 올려 두드리고 있는 노트북과 화면을 향해 있는 시선, 그 탓에 더욱 잘 보이는 수려하진 않으나 단정한 속눈썹과 이목구비까지.
이상하리 만치 자꾸만 자신의 시선을 빼앗는 그 남자가 점점 궁금해질 찰나, 보쿠토는 안에 들어간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오늘따라 나오질 않는 제 부하를 기다리다 못해 결국 차에서 몸을 내려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는 원두의 알싸한 내음이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질거리는 듯했다. 순간,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던 남자와 시선이 맞았다. 남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보쿠토 또한 그랬다. 하지만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러다 시선을 먼저 피한 것은 보쿠토 쪽이었다. 계산대 쪽으로 다가간 그는 눈만 굴리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여기, 웬 남자 하나 오지 않았습니까. 머리 빡빡 민.”
“… 아, 그, 그분은 저쪽…. 화장실, 가셨는, 데요.”
누가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화장실 쪽을 가리키던 아르바이트생의 손이 다시금 허공에서 방황하다 이내 떨어졌다. 보쿠토는 제 부하가 주문한 음료를 가만히 기다리다 뚜껑을 닫지 않은 채 받아 들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이었을까. 오늘 아침부터 꿈자리가 영 좋지 않더라니, 결국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삐끗하여 겨우 중심은 잡았으나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바라보니 이미 반 정도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보쿠토는 빠르게 시선을 굴렸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는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던 남자가 여전히 키보드에 두 손을 올려 둔 채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천천히 보쿠토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 미안, 합니다. 고의는 아니었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 집이 이 근처라서요.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을 어떻게 안 씁니까. 세탁비라도….”
보쿠토의 말에도 극구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던 남자는 결국 가방을 뒤적여 작은 수첩을 꺼내 빈 곳을 열고는 수첩의 스프링 부분에 함께 끼워져 있던 만년필을 꺼내 들고는 빠르게 몇 자를 적은 뒤 찢어 보쿠토에게 건넸다.
‘아카아시 케이지, 080-…….’
단정한 모습처럼 단정한 이름과 단정한 글씨체. 보쿠토는 천천히 아카아시가 건넨 종이를 꽤 소중하게 접어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그 와중에도 아르바이트생이 가져다준 휴지로 옷을 톡톡 두드리고 있던 아카아시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조용히 제 짐을 챙긴 뒤 ‘연락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작은 눈인사하고는 먼저 카페를 나섰다.
아카아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보쿠토는 그제야 화장실에서 부랴부랴 나와 제게 다가오는 부하에게 시선을 옮기며 쯧, 하고 짧게 혀를 차고는 반쯤 담겨 있는 잔을 그대로 든 채 카페를 나섰다. 카페 안이 따뜻했던 탓인지, 밖은 조금 전보다 조금 더 쌀쌀해진 듯했다.
*
히터를 틀어 두고 나가지 않은 탓일까, 완전한 겨울이 아님에도 집 안이 꽤 쌀쌀한 느낌에 아카아시가 작게 후, 하며 숨을 뱉었다. 자신이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에 더욱 예민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조금 전 있었던 일 때문에 온몸에서 단내가 나는 듯했다. 굳이 뒷수습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사코 말렸는데도 제 전화번호와 이름까지 알아간 그의 얼굴을, 아카아시는 잘 알고 있었다. 늘 운전기사인지 부하 직원인지 모를 사람을 들여보내 자신의 커피를 주문하고, 늘 뒷좌석에 앉아 기다리거나 혹은 아주 가끔은 차에서 내려 종종 담배를 태우던 사람.
보쿠토는 어쩐지 이상하게도 자꾸만 시선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맞닿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나, 처음에는 기분 탓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오늘 일로, 시선이 자꾸만 맞았던 것은 확실시된 것이었다. 하지만 왜, 라는 물음이 현관에 가만히 서 있던 아카아시의 머릿속을 자꾸만 울려 대는 듯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흐르는 정적이 깨진 것은, 아카아시가 귀가한 후 한참 시간이 지나, 해가 완전히 져 아카아시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전화 벨 소리 때문이었다.
“…! 여, 여보세요.”
[ 연락이 늦어 죄송합니다. 아까 카페에서…. ]
“아, …. 연락 안 하실 줄 알았는데.”
세탁기에 넣어 둔 빨래를 잊고 있던 탓에 조금은 다급한 움직임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아카아시가 전화기를 왼쪽 뺨과 어깨 사이에 끼운 채 말을 이었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보다 훨씬 가까워진 듯한 음성, 전화 너머로 들리는 작게 사부작거리는 소리, 세탁기를 여는 듯한 달칵거리는 소리를 통해 아카아시가 어떤 자세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것만 같아 보쿠토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옅게 올라갔다. 사무실 테이블에 앉아 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바라보던 보쿠토가 휴대전화를 잡고 있지 않은 오른손 검지 끝으로 테이블을 톡, 톡 두드리며 규칙적인 소리를 냈다. 그런 행동은 그가 지금 이 상황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음을 완벽히 나타내고 있었다.
[ 빨래합니까? ]
“어, 어떻게……. 이미지랑은 꽤 다르게 단맛을 좋아하시나 봐요. 옷에서 달달한 냄새가, 나서….”
[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혼내는 건 아니에요. ]
“… 아, 알아요. 제가 누구에게 혼이 날 나이도 아니고, 이제….”
예상치 못한 말에 아카아시가 말을 더듬자 보쿠토의 적당히 낮은 목소리 사이로 옅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매번 볼 때마다 무서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인가보다 싶어 아카아시는 제 뒷머리를 긁적이다 어느새 세탁기 안에 있는 옷감을 꺼내 들어 두 손으로 남은 물기를 털고는 옷걸이에 걸며 따라 옅게 웃었다. 여태 했던 긴장과 남아 있는 어색함이 거의 다 사라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일, 일정 있습니까?”
[ 음, 없는 것 같아요. 내일은 집에서 쉴까 했거든요. ]
“좋네요. 그럼, 내일 저녁이나 같이 먹어요.”
[ 저녁이요? ]
네, 저녁. 내가 보답은 해야죠, 옷을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보쿠토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몇 명의 부하를 바라보며 소리를 죽이라는 듯 집게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아무런 변화 없는 목소리로 다정히 말을 이었다. 네, 좋아요. 라며 아카아시의 대답이 돌아오자 그는 내일 저녁에 데리러 가겠다며 말을 마치고는 전화를 완전히 끊은 후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내려두었다. 조금 전의 부드러운 미소 따위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보쿠토는 작게 한숨을 뱉고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조금 전부터 들어와 긴장한 표정으로 벽 가까이에 붙어 나란히 서 있던 남자 셋에게 시선을 던졌다.
“짧고, 간결하게 보고 해. 왜.”
“그……. 전에 저희 거래하던 돈 들고 나른 놈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돈은 나오질 않아서…. 근데 그놈이 보스를 찾습니다.”
또, 돈의 위치를 알려 준다는 명목으로 제 목숨줄을 얼마나 부여잡고 있을 수 있는지 헤아려 보기 위해서겠지. 굳이 말을 듣지 않아도 앞으로 펼쳐질 상황은 뻔했다. 보쿠토가 지하실에 발을 들이고 나면 남자는 보쿠토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살려 달라는 말 밖에는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보쿠토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잠시 꺼둔 채로 겉옷 주머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조금 전 사무실에 들어와 보고한 남자 세 명이 앞장을 섰고 보쿠토가 뒤따라 걷는 복도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몇 걸음 걸었을까, 무거운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보쿠토가 바닥에 두었던 시선을 들었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채 눈이 천으로 가려진 남자가 손이 뒤로 결박된 채 무릎을 꿇은 자세로 떨고 있었다. 하의는 벗겨져 브리프만 겨우 걸친 채였다. 평소라면 감정 없이 메마른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을 보쿠토의 입가에는 또다시 옅은 미소가 일었다.
아, 그 사람이 보면 무서워하겠지.
아카아시와 통화를 한 이후로 그의 머릿속은 온통 ‘아카아시 케이지’와 내일 그와 함께할 저녁 식사로 가득 차 있었다. 부모 몰래 사고를 친 어린아이처럼 보쿠토는 속으로 내내 아카아시에게 자신을 무어라 소개할지 핑곗거리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 덕에 앞에 있는 남자의 수명은 생각보다 길게 유지되는 중이었다.
생각을 마친 보쿠토가 다시 표정을 죽였다. 보쿠토의 턱짓 한 번에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의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이 사라졌다. 눈이 부신 듯 미간을 찌푸리던 남자는 네가 불러 친히 왔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쿠토를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올렸다.
“돈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 그리고 네가 그 대신 원하는 건?”
“… 날, 여기서 안전하게 내보내 주는 거지. 그리고 다시는 찾지 않겠다는 약속도.”
…… 건방지네.
보쿠토의 한 마디에 남자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완전히 내려가지 않고 세 계단 위에서 남자를 내려다보던 보쿠토가 천천히 걸어 내려가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철제 의자를 대충 끌어와 다리를 꼬고 앉았다. 가구가 없는 탓일까, 구둣발 소리와 철제 의자의 다리 부분이 시멘트 바닥과 부딪히며 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한참 의자에 앉아 무릎에 두 손을 얹고 가만히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던 보쿠토가 쯧, 하고 혀를 차며 눈썹을 으쓱였다. 뒤처리가 번거로울 수 있으나 이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내일 아카아시와의 저녁 약속을 취소해야만 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으므로 복잡한 쪽을 택한 보쿠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앉아 있던 철제 의자를 접어 들었다.
“… 뭐, 뭐야.”
“자, 지금부터 나만 말할 거니까 귓구멍 막아두지 말고 잘 들어. 한 번만 얘기할 거니까.”
“…….”
“첫 번째, 나는 이미 네가 그 돈을 어디에 꿍쳐 뒀는지 알아. 나는 모르는 게 없거든, 적어도 이 바닥에서는.”
“그, 그게 무슨……!”
“쉿, 나 지금 얘기하잖아. 그리고 두 번째, 첫 번째를 이유로 너는 여기서 안전히 못 나가. 내 돈 가지고 장난치고 어디에 있을까 야바위를 하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이라서.”
안타깝게 됐어. 차라리 해외로 나르기라도 했으면 내가 이런 번거로운 선택지를 택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래도 다행이지, 내일 중요한 약속을 깨지 않아도 되거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보쿠토는 한 손에 가볍게 들고 있던, 꽤 무게가 나가는 철제 의자를 들어 망설임 없이 제 앞에서 떨고 있는 남자에게 내리치듯 휘둘렀다.
그 후 지하실에는 한참 동안, 둔탁한 소리만이 울렸다.
*
어제저녁 했던 전화를 마지막으로 보쿠토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혹시나 해 약속 시각과 장소를 확인한다는 핑계로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바로 전원을 꺼 버린 것인지, 아니면 배터리가 다 된 탓인지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 음성만이 들려 올 뿐이었다. 차라리 약속 내용을 완전히 잊었더라면 필사적으로 연락을 취해보려고 했겠지만 야속하게도 이 기억력 좋은 머리는 ‘내일 저녁에 집 앞으로 데리러 가겠다’라던 그의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머리에 조각이라도 해서 남겨 둔 것처럼.
하루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보냈는지 몰랐다. 아마 저녁에 있을 약속만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오전부터 잡고 있던 칼럼 원고 파일은 오전에 쓴 마지막 단어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지 오래였다. 결국, 오늘 몫의 글쓰기는 포기한 아카아시는 오전부터 너무 담아둔 탓에 안쪽 벽면에 커피 자국이 남아버린 머그잔을 싱크대로 가져가 대충 씻어 엎어 두고는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7시, 평균적인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여보세요.”
[ 준비 다 했으면 내려와요. 1층 입구 앞에 있습니다. ]
“… 잠, 잠시만요. 금방 내려갈게요.”
미리 옷을 갈아입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문득 생각을 해보니 몇 시에 만나자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아서 미리 준비를 마친 뒤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아카아시는 전화를 끊은 후 제 가슴을 토닥이듯 쓸어내리며 작게 눈썹을 으쓱였다. 완벽한 정장은 아니지만, 단정히 입은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아카아시는 너무 과하게 입은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며 집을 나섰으나 잠시 후 그 걱정은 괜한 것이었음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창문을 열고는 자신을 부르고 있는 보쿠토의 완벽한 정장 자태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카아시는 빠르게 다가가 조수석에 조심히 올라탔고 문을 닫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어와 제 안전띠를 채워주는 보쿠토의 행동에 그저 데굴, 눈만 굴렸다. 알싸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옅게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담배의 향과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저녁은 예약해둔 곳으로 갈 생각이긴 한데, 혹시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으면….”
“아, 아뇨. 저 먹을 거 안 가려요. 괜찮, 습니다.”
아카아시가 조금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어젯밤 통화 때 들었던 낮은 웃음소리가 이번에는 제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통에 아카아시는 이상하리만치 두근대는 가슴을 손으로 아프지 않게 툭툭 쳤다. 차는 빠르게 달려 웬 조금 어두운 골목길 앞에 멈춰 섰다. 이런 곳에 가게가 있다니. 아카아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생각했다. 그 사이 보쿠토는 먼저 운전석에서 몸을 내리고는 조수석으로 다가가 안전띠를 푼 아카아시 쪽 문을 열어주었다.
“실망스럽다는 표정인데, 고급스러운 호텔이 아니라서 그런가.”
“…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런 데에 가게가 있다는 게 조금 놀라워서요.”
아카아시가 조금 날카롭게 받아치자 보쿠토는 알았다는 듯 소리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카아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의미인가 싶어 아카아시는 손 대신 보쿠토의 팔을 잡았다. 긴장한 자신이 괜히 들킬까 봐 겁이 났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런 아카아시를 데리고 보쿠토가 들어간 곳은 자신의 키보다 입구가 살짝 낮아 허리를 숙인 채 들어가야만 했고 그의 뒤를 따라 고개를 살짝 숙이고 들어서니 익숙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첫 식사로 선택한 곳이 라멘 집일 줄은 몰랐어요.”
“마음에 안 들어요?”
“아뇨,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서 웃겨요. 제가 이런 분위기 좋아하는 줄은 몰랐거든요.”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같이 온 사람이 괜찮아서 그런 건지.
아카아시가 웃으며 뒷말을 흐렸으나 보쿠토는 확실히 놓치지 않고 들었다. 전자도 후자도 마음에 들었으나, 웬만하면 후자 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벌써 계절이 두 바퀴를 돌아 날씨는 다시금 쌀쌀해지고 있었다. 어느새 여름은 지나가 버린 지도 오래, 서랍 속 옷들은 전부 가을과 겨울옷으로 바뀌어 있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아카아시가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넓은 침대가 이제는 자신의 집 침대보다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이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렇게나 두려운 일이었다. 지금 막 잠에서 깨 제 허리를 끌어안은 채 옆구리에 얼굴을 비비적거리고 있는 이 남자도, 어느 새부턴가 익숙해져 제 삶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잡고 놓치지 않으려 똬리를 틀고 앉은 한 마리의 뱀처럼.
아카아시는 옆구리가 간질거리는 느낌에 웃으며 손을 올리고는 보쿠토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마치 투정을 부리는 아이를 달래는 것과 같은 부드러운 손길에 보쿠토가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들어 아카아시와 시선을 마주했다.
“뭐가 좋아서 아침부터 그렇게 웃어요, 당신은?”
“좋은 게 당연하잖아. 애인이 눈을 떴는데도 곁에 있는 게.”
“안 그래도 지금 집 너무 오래 비운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당신이 자꾸 안 보내주잖아요, 가져올 물건이 있대도 사람 보내면 된다고 그래서.”
여느 연인들 간의 평범하고 다정한 대화였다. 2년 전부터 보쿠토와 아카아시는 연인 사이가 되어 있었다. 보쿠토는 자신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회사를 운영하는 이사라며 소개했고 그것을 증명하듯 그는 매일 오전 9시 반에 정확히 출근해 일곱, 여덟 시쯤 퇴근했다. 그리고 그는 매일 아카아시가 원할 때마다 집 앞까지 데리러 와서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카페에 아카아시를 내려준 뒤 출근을 했다. 그리고 오늘처럼, 아카아시가 보쿠토의 집에서 하루 이틀을 보내고 함께 아침을 맞을 때도 있었는데 최근 들어 그 빈도는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일어나요, 정작 출근은 당신이 하는데 내가 먼저 일어났어.”
“… 가지 말까.”
“웃기는 소리.”
아카아시가 웃음을 터뜨리며 먼저 침대에서 몸을 내렸다. 혼자 사는 통에 요리 실력은 영 꽝인 자신임에도 토스트 한 조각과 달걀부침 하나만 해줘도 맛있다는 듯 먹고 집을 나서는 그를 보고 있자면 아카아시는 자꾸만 입술 틈으로 피식피식 웃음이 샜다. 보쿠토의 넥타이까지 깔끔하게 매어주고 매무새를 정리해준 뒤 가슴께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린 아카아시는 현관 앞에서 고개를 살짝 숙인 보쿠토와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보쿠토가 집을 나서면, 카페에 가지 않는 날의 아카아시의 일상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었다.
“다녀와요.”
“전화할게.”
“응, 기다릴게요.”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을 끝으로 보쿠토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카아시는 몸을 틀고 두 팔을 올린 뒤 쭈욱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집과 카페만 왔다 갔다 했던 탓에 유연성이 떨어진 몸을 한창 늘리고 있을 즈음 자신의 것이 아닌 알림음이 들렸다. 보쿠토가 휴대전화를 두고 나간 걸까 싶어 아카아시는 소리가 들리는 근원지로 향했고 욕실 선반에 놓여 있는 제 연인의 휴대전화를 집어 든 그는 무심코 화면을 확인했다.
[ 지시하신 사항은 뒤탈 없이 처리했습니다. 댁 주변도 수시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카아시 님께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
화면에 또렷이 적혀 있는 자신의 이름에 아카아시가 미간을 구겼다. 제 연인은 평범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뿐인데, 대체 무엇이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는 의미인 걸까. 보쿠토의 휴대전화를 들고 거실로 나와 테이블에 올려둔 채 소파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아카아시가 별안간 화면에 뜬 익숙한 이름에 표정을 굳혔다.
‘실장님’.
보쿠토의 수족과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아카아시는 호흡을 가다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 ……. ]
“이 사람 오늘 휴대전화 놓고 나갔어요. 연락을, ….”
[ … 아카아시. ]
보쿠토였다. 2년 동안 연인이라는 관계를 이어 오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완전히 가라앉은 목소리. 이 짧은 십 분이라는 시간 동안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진 탓에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함인 듯 아카아시가 입을 다물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좋을까. 오늘 당신이 휴대전화를 놓고 나간 것 같았는데 누군가에게서 메시지가 왔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 집 주변을, 그러니까 당신과 내 집 주변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대요. 왜요? 무슨 위협이 있어서? 게다가 나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대요. 그 이유가 뭘까요, 대체.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예요. 당신이 위험한 일을 하고 있거나, 내게 거짓말을 했거나. 혹은, …… 그 둘 다 일 수도 있고.
“… 묻고 싶은 게 많은데, 지금은 당신 바쁠 것 같으니까 전화로는 안 돼요.”
[ 일찍, … 들어갈게. ]
“그래야 할 거예요. 내가 이런 말 한 적 없다는 건 당신이 누구보다 잘 알 테지만, 이 뒤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신은 오늘 일찍 들어와야 할 거야.”
아니면 내가 그 전에 이 집을 나가서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 당신한테 달렸어요.
통화를 먼저 끊은 것은 아카아시 쪽이었다. 실장에게 휴대전화를 빌려 걸었던 통화 너머에는 정적만이 일었다. 근 2년간 머릿속에서만 상상해오던 일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도, 그리고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벌어질 줄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손으로 이마만 연신 문질러 대는 보쿠토를 가만히 바라보던 실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무엇이 그렇게 걱정입니까.”
“그 사람이…. 내 진짜 모습을 알고, 이제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그리고 그 가능성이 생각보다 크다는 게 너무 두려워.”
“그래도 이 이상 숨기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게.”
“내가 이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게 처음으로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어. 2년 동안, 내내.”
“원래 고백도 그렇지 않습니까. 왜…. 짝사랑 같은 거 말입니다. 어차피 안 받아줄 테니까 고백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일단 차이더라도 해보는 게 낫다고 늘 그러는 것처럼요.”
실장의 말에 보쿠토가 작게 토해내듯 웃었다. 그 웃음은 헛웃음과 많이 닮아 있었다. 자신이 내내 끌고 다니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던 것이 분명한 실장이 하는 아는 척에 보쿠토가 고개를 들었다. 연애에 대해서 뭘 그렇게 잘 안다고. 나랑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이. 보쿠토의 말에 실장은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눈썹을 한 번, 작게 으쓱였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 보스께서 모르시는 사실이 있는데, 저 기혼입니다.”
“…… 어?”
“기혼이라고요. 결혼했고, 집에 돌아가면 토끼 같은 자식들과 배우자가 있습니다. 보스의 경우에는 토끼 같은 자식까지는 못해도 배우자가 될 수도 있는 분은 계시잖습니까. 물론 보스가 오늘 퇴근하시고 어떤 행동을 취하시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지겠지만요.”
그러니까, 오늘은 조기 퇴근하셔도 눈 감아 드리겠습니다.
실장의 말에 보쿠토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왜인지 모르게 괜히 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분했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여전히 자신은 철들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쿠토의 하루는 꽤 조용했다. 폭발 직전의 폭풍전야처럼. 실장이 말을 해둔 덕인지 그 누구도 보쿠토가 생각에 잠겨 있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고, 덕분에 보쿠토는 곧 오후 5시 반 정도에 제 연인의 얼굴을 마주하고 해야만 할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내내 생각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보쿠토는 오랜만에 제 엄지손톱을 입에 물었다. 제가 뱉는 말 한마디에 따라 여태 공을 들였던 이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고 당장 내일부터, 아니, 오늘 밤부터 아카아시를 볼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했다.
현관문을 열기까지 억겁의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급기야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마저 일었다. 지금이라도 구두를 벗고 들어가 바로 무릎을 꿇고 바짓가랑이를 잡은 채 잘못 했다고 빌어볼까.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아주 조금은 남아 있는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했다.
“…… 다녀, 왔어.”
“…….”
“아카아시,”
“… 오늘, 종일 생각을 해봤어요. 당신도 그렇겠죠. 제가 아침에 통화할 때 했던 마지막 한마디 때문에 온종일 머릿속이 어지러웠겠지.”
소파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던 아카아시가 보쿠토 쪽으로는 시선도 두지 않은 채 정면만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들리는 앉아요, 라는 말에 보쿠토는 정장 겉옷을 벗어 테이블 의자에 걸어 두고는 아카아시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조심히 앉았다. 그제야 아카아시의 시선이 보쿠토를 향했고 시선이 맞닿자마자 보쿠토는 자신도 모르게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나, 생각보다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당신에 대해서 말해줘요.”
“…….”
“2년 전에 나한테 말해줬던 것과는 많이 다를 게 분명하니까. 진짜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나는. 오늘 아침에 그 의미 모를 메시지를 보고, 당신과 통화를 하고 나니까 무슨 생각이 들었는 줄 알아요? … 아, 나는 여전히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 아카아시.”
“…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지금도, 이렇게 말다툼을 할 게 아니라 그저 안기고 싶을 만큼.”
아침에 났던 화는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옅어질 만큼 좋아하는데.
보쿠토가 먼저 시선을 피했음에도 아카아시의 시선은 여전히 보쿠토를 향해 있었다. 그의 눈과 코, 입과 귀, 이목구비를 천천히 눈에 담았다. 이렇게나 아름답고 수려한 사람이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내게 거짓말을 했을까. 두 사람 사이에 다시금 정적이 일었다. 아카아시는 기다려주겠다는 듯 그저 가만히 입을 다문 채 있었다. 한참 입술만 달싹이던 보쿠토는 두 손을 올려 마른세수를 했다.
“… 나는, 합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뒤로는 합법적이지 않은 일을 해. 그리고 나는 여태껏 이 일을 하면서 부끄러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 부와 명예라는 건 그만큼 사람을 엉망으로 만드니까. 마약 같은 거야. 중독되어버리면 헤어나올 수 없게 되는.”
“야쿠자, … 네요.”
“…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주변에 적이 많아. 남의 돈을 끌어다 내 돈으로 만드는 직업이니까. 그런데 아카아시, 너를 만난 후로 나는 매일 이런 내가 부끄러웠어. 미움받는 게 두렵고, 그러다 보니 점점 용기는 줄어가는 거야.”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보쿠토는 속에 담아두었던 모든 것을 털어냈다. 오전 내내 생각했던 말들과 변명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고 마음속에는 진심만이 남아 전부 토해내듯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이 야쿠자임을 알고 아카아시가 두려움을 느껴 제 곁을 떠난다면, 그것도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었다. 본인 스스로 판단해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어쩌면 보쿠토 코타로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제 속에 담아둔 모든 것을 털어놓는 죄 많은 제 연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카아시는 손을 뻗어 보쿠토의 허벅지에 얹었다. 고개를 든 보쿠토가 바라본 아카아시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내 평생, 야쿠자랑 연애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누가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 내 앞에서는 작은 말 하나도 무서워서 쉽게 하지 못하고 내가 혹시나 부서질까, 망가질까 노심초사인 사람이 밖에 나가면 그런 무서운 사람이 된다는 게 말이에요.”
“… 헤어지자고 하면 그것도 내 업보니까,”
당장 그 일을 그만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여태 그 일만 해왔을 텐데 지금 당장 그만둬버리면…. 나는 잘 알거든요, 하고 싶은 걸 타인의 의지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상황, 그리고 그때의 감정들을요.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요.
아카아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으며 보쿠토의 허벅지를 토닥였다. 마치 보쿠토의 죄를 사해 준다는 것처럼. 그리고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본 적 있냐는 물음도, 그러면 본인 이전에 사귀었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느냐는 물음도. 전부 덮어 두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제 연인을 공격하는 날카로운 창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이것 봐, 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하지만 나는, 노후 정도는 평화롭게 보내고 싶고 그런 내 옆에는 늘,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야쿠자라고 해서 모든 일을 폭력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니까.”
자, 이제 이야기 끝. 일어나서 씻고 나와요.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해요.
아카아시가 먼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작게 기지개를 켰다. 보쿠토는 제 눈앞에 있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연인을 어딘가에 가두고 자신만 보게 하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억누르고는 깊게 내쉬는 숨으로 그것을 대신했다. 아카아시는 평생 모를 것이다. 그리고, 몰라야만 한다. 이 무식한 야쿠자가 자신을 연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생각까지 하고, 또 지금도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누군가의 의지로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된다는 건, 무슨 의미야?”
“아, …… 음.”
보쿠토의 질문에 아카아시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보쿠토와 자신의 침실로 향하며 살짝 뒤를 돌아보고는 웃었다.
“나 글 쓰잖아요. 원래는 소설을 썼어요, 이런 칼럼이 아니라.”
“…… 소설, 을.”
“정말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이, 특별한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성장하는 이야기였거든요. 지금의 당신과 나처럼. 그런데 주변에서 다들 그러더라고요, 그런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어디 있냐고.”
없긴 왜 없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데.
말을 마친 아카아시가 작게 소리를 내어 웃으며 방으로 들어섰고, 이내 풀썩하며 침대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쿠토는 그제야 무릎을 짚고 일어나 다시 한번 마른세수를 하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아무래도, 저 사랑스러운 사람을 당장 어디든 가둬 두고 자신만 보아야겠다는 생각 따위를 하면서.
FIN.
야쿠자 보쿠토 X 작가 아카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