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다시 한번 만나기를 바라며』
@HQlane_0125
삶이 행복하면 자신의 눈에 비춘 세상이 아름답고 컬러풀하게 보인다고 하던데, 왜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둡고 탁하게 비추는지…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아카아시는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염없이 서 있었다.
아카아시 케이지 22살. 대학교에서 조교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바쁜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희한하게도 세상에 태어난 순간 불행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불행한 체질 때문에 그는 평평한 인도에서 넘어지거나 차에 치일 뻔하는 등 그의 삶은 언제나 위험천만했다. 아카아시의 몸에는 언제나 멍과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지만, 자신의 체질을 보듬어주는 가족들 덕분에 그는 힘겹고 버거운 인생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은 무심하게도 아카아시를 제외한 그의 가족을 불우한 사고로 잃게 만들었고, 그는 소중한 가족이 한순간에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것 같은 상실감과 함께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불안한 생활을 살아가며 점점 삶의 의지를 잊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 가족을 잃은 아카아시는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밝게 빛나는 핸드폰 액정 너머로 빠른 비행기 표를 끊고 약간의 돈을 제외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해외로 떠났다. 무작정 즉흥적으로 선택해서 도착한 곳은 로망과 사랑이 가득한 이탈리아. 수중에 가진 돈은 얼마 없지만 아카아시는 그저 하염없이 발길이 닿는 데로 걷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의 체질 때문에 평평한 바닥에 발이 걸려 넘어지거나 눈앞에서 차가 지나가는 등 위험한 일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느끼는 묘한 안정감과 불안감을 함께 느끼며 아카아시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걷고 계속 걷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은 채 무작정 계속 발길이 가는 대로 걸었다.
갑자기 맑았던 하늘은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아카아시는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추적추적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광장에 서 있던 아카아시는 이대로 아무도 모르게 비와 함께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비참한 삶이 너무 서글프고 억울해서 고개를 숙이며 숨죽여 울고 있었다.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 지나가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멈춰 선 것을 봤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지 자신의 옷을 적시던 빗방울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아카아시는 그저 저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고 빨리 싫증이 나서 지나가길 바라면서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비가 오는데 여기서 뭐해?”
“······.”
“이 상태면 감기에 걸릴 텐데…”
“······.”
“흐음~ 말하기 싫으면 우산이라도 가지고 있어!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올 테니깐!!”
“… ㄱ… 괜찮습니다…”
“어라!? 말할 줄 알았구나?? 하하하,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했는데!!”
“크흠… 굳이 저한테 말 걸 필요 없이 그쪽 갈 길 가시면 됩니다.”
“음… 그건 안될 것 같은데!? 이러고 있으면 진짜 큰일 날 거야! 우리 집에 가자!!!”
“…?”
자신의 행동에 상대방이 지쳐 나가떨어지거나 기분 상해서 제 갈길을 갈 줄 알았지만, 상대방은 그런 아카아시의 말투나 행동 따위 신경을 안 쓴다는 듯이 자신의 할 말만 하고 곧 쓰러질 것 같이 마른 아카아시의 몸을 천천히 이끌며 자신의 거처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아… 아카아시는 지금의 상황이 점점 짜증이 나서 거절하기 위해서 휘청거리는 제 다리를 멈춘 채, 찌푸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본 아카아시는 순간 생각했다.
‘아름다운 황안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회흑색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올려 정리하였고, 또렷하고 맑은 황안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세상에 저렇게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을 가지고 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의 아카아시는 몰랐다. 가족을 잃고 회색 빛의 세상에 살아가던 자신이 그때 처음으로 그 사람의 얼굴만큼은 회색빛이 아닌 밝고 희망찬 컬러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비 오는 날,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 다니는 길거리에서 두 사람의 끈질긴 공방 끝에 아카아시는 그 사람의 지치지 않는 행동에 패배를 선언하고 그 사람과 함께 그의 거처로 가기로 했다. 이미 두 사람은 서로가 비 맞은 생쥐꼴이라서 우산을 쓸 필요도 없었지만,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지 집에 도착할 동안 자신에게 우산을 씌어주었고, 집에 와서는 갈아입을 옷과 욕실 그리고 따뜻한 음식과 방을 내주며 있고 싶을 때까지 있으면 된다는 말을 했다.
아카아시는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한 온기에 순간적으로 마음이 울컥했지만 꾸욱-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몇 개월 동안 그가 마련해준 거처에서 생활을 하며 천천히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아카아시는 이른 아침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내려가 따뜻하게 데워진 커피를 마시며 계속 지켜 본 그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보쿠토 코타로. 나이는 27살이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진작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누가 봐도 밝고 경쾌하고 시끌벅적한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걸며 자신의 존재감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정도로 태양 같은 사람… 아카아시는 며칠 동안 보쿠토 코타로와 지내며 그에 대해 그렇게 판단하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보쿠토와 지내는 생활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자신의 불행 체질 때문에 크게 힘들 줄 알았던 것과 다르게 보쿠토와 있으면 불행한 일이 많이 생기지 않았고, 반대로 마음의 안정을 느끼며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보쿠토의 집에 얹혀살고 있던 아카아시는 전반적으로 집안일을 하며 가끔 허둥거리는 보쿠토의 서포터 역할까지 같이 하면서 천천히 아프고 닳고 닳아서 죽을 것 같던 마음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 몇 개월 동안 지내던 아카아시는 닳고 닳았던 마음의 회복과 안정을 느끼던 아카아시는 용기를 내어 꺼놨던 핸드폰을 켰다. 밝은 화면이 비추는 핸드폰 액정에는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하는 친구들과 친척들의 수많은 연락들…
하염없이 액정을 바라보던 아카아시는 갑작스럽게 흘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핸드폰을 손에 꼬옥- 쥔 채 그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멈추고 싶어도 계속 흘러나오는 눈물에 그저 간간이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며 누가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울고 있던 아카아시는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글썽거리는 눈으로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니 자신의 방문 앞에서 보쿠토가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카아시는 괜스레 웃음이 나와서 살포시 웃었다.
“후후, 왜 그렇게 서 있으세요?”
“응? 아니… 아카아시, 네가 울길래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
“괜찮아요. 힘들었지만 이제는 좀 괜찮아졌어요. 이게 다 보쿠토씨 덕분이에요”
항상 딱딱한 표정을 짓던 아카아시가 포근하고 따스하게 웃는 모습을 본 보쿠토는 순간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카아시의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고 생각했다. 보쿠토의 멍한 표정을 보던 아카아시는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쉽사리 결정 내리지 못한 마음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면서 보쿠토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보쿠토 씨, 죄송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저는 이제 고향으로 귀국해야겠어요.”
“어!? 왜…!? 힘들면 더 있다 가도 돼!!”
“아니요, 이곳에 오랫동안 있으면 너무 행복해서 떠나기 싫을 것 같아요. 그러니깐… 제가 있어야 할 곳에서 모든 공부를 끝내고 당당하게 마주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
“당신을… 보쿠토 씨, 당신을 당당하게 마주하고 싶어요.”
갑작스럽게 훅-치고 들어온 아카아시의 고백을 들은 보쿠토는 점점 빨개지면서 빨간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천천히 아카아시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으며 올곧게 아카아시의 눈을 바라봤다. 자신의 눈동자에 담긴 아카아시는 예전과 다르게 삶의 희망과 따스한 온기가 들어 있었고, 이젠 자신이 그를 놔줄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를 웃으면서 보내주기로 마음 먹었다. 아카아시의 손을 천천히 내려 놓으면서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난 아카아시의 선택을 존중할게!!”
“네, 정말 감사드려요.”
항상 태양같이 뜨겁게 그리고 환하게 웃는 보쿠토를 보던 아카아시는 자신의 마음이 점점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고, 아카아시는 빠른 시일 안에 짐을 정리하고 귀국하기로 정했다.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몇 개월 동안 보쿠토와 함께 생활하던 곳을 떠난다는 생각에 울적해지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젠간 다시 마주할 날을 상상하던 아카아시는 자신이 사용하던 방에 있던 짐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빠듯하게 2주 동안 짐 정리를 다 마친 아카아시는 떠나기 전 날, 보쿠토와 함께 가볍게 술 한잔 기울이며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함께 생활하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행복하게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으며 저녁을 보냈다.
*
아침 귀국 비행기를 예매한 아카아시는 수속하러 들어가기 전에 천천히 그리고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그저 조용히 보쿠토를 바라봤다. 그런 아카아시의 마음을 알고 있는 보쿠토도 천천히 아카아시를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를 마주한 채 서 있었다.
후우… 이제 괜찮은 듯, 눈을 감고 천천히 뜬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 편지를 적었다면서 보쿠토에게 전해줬다. 그리고 꼭 자신이 들어가고 나서 봐달라는 당부를 하며,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다정한 인사와 포옹을 받으며 아카아시는 자신이 죽으러 왔던 곳에서 따스한 희망을 가지며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났다.
아카아시가 떠난 후, 공항에 홀로 남은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전해준 편지를 조심히 꺼내 읽기 시작했다.
To. 보쿠토 씨
보쿠토 씨, 안녕하세요. 저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
이렇게 딱딱하게 편지로 제 마음을 다시 한번 전해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신을 보며 말하기에는 제가 아직은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편지로 전합니다.
제가 이탈리아에 왔을 때, 제 삶은 어둠 속에서 홀로 방황하던 상황이었어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연히 보쿠토 씨를 만나면서 당신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제 삶은 다시 빛과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고, 저에게 희망을 준 당신에게 많은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강렬하지만 따스한 태양 같은 당신의 존재가 제 어둠을 걷어내고 빛과 따뜻한 온기만을 주더군요. 저는 그런 당신을 존경함과 동시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보쿠토 씨의 대답은 괜찮습니다. 그저 제 마음을 보쿠토씨께 올곧게 전하고 싶은 욕심에 적은 거니깐요.
아, 그리고 몇 개월 동안 보쿠토 씨의 옆에서 서포터 역할을 하면서 생각한 거지만 보쿠토 씨가 찍은 사진은 정말 따스하고 행복한 사진뿐이라서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보쿠토 씨, 당신의 인생에 많은 행복과 빛이 따르길 바라며…
그럼, 건강하세요.
From 아카아시 케이지
아카아시의 편지를 읽은 보쿠토는 편지에서 느껴지는 그의 따스하고 올곧은 마음을 느끼며 그는 소중히 편지를 품에 넣은 채 공항을 벗어났다. 따뜻하고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적은 아카아시의 편지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허전한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서로가 서로의 운명이라면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채, 각자의 인생 속에서 운명과 희망이라는 불꽃을 마음속에 피어두며 둘은 앞으로 나아갔다.
사진작가 × 대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