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닮은 듯 다른.』
@_xkrr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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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위에 있는 자와, 가장 밑에 있는 자.
“형님…, 그, 키쿠라 녀석들도 잡혔답니다.”
“…또?”
“네.”
“이번에도 그 새끼?”
“…예.”
…와-, 돌겠네 진짜, 보쿠토 그 새끼 곧 돌아온다고 했는데.
코노하의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우직하게 서 있던 거구의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분이 누구길래 형님이 눈치를 봅니까?”
“음? 내가 보쿠토 코타로가 누군지 말 안 해줬던가.”
“와시오 형님처럼 연합하는 곳의 두목입니까?”
아아, 맞다. 너 내가 얼마 전에 없앤 곳에서 데리고 온 놈이었지. 으음…, 넌 계속 내 옆에서 일할 테니 알긴 알아야지. 말끝을 얼버무리며 설명을 위해 곰곰이 ‘그’에 대해 떠올려본 코노하가 금세 질색하며 입을 열었다. 짧게 요약하면 미친놈, 좀 제대로 설명하자면.
“이곳의 실질적 머리.”
“‘머리’라는 건….”
“말 그대로야.”
코노하가 턱을 괴고 있던 한 손을 들어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두어 번 톡톡 건드렸다.
“후쿠로의 실질적 보스이면서 동시에 브레인.”
그 작던 후쿠로가 그놈 하나 때문에 이렇게 커진 거야. 이 바닥에서 어느 정도 구르고 온 사람이라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겠지.
곰 같은 덩치를 가지고 있던 남자가 코노하의 말에 작게 흠칫거렸다. 남자는 자신의 윗사람, 코노하의 옆자리까지 올라오기 전, 다른 조직에서 움직였던 과거를 떠올렸다. 후쿠로는 그가 약점이 잡혀 말단으로 생활하던 그 시절에도 우습게 보던 조직이었다. 하지만 정신차려보니, 코노하가 이끈 조직원 손에 그가 몸담고 있던 조직은 와해됐고, 후쿠로 연합은 이 지역에서 제일 큰 조직으로 이름을 떨쳤다.
“후쿠로 연합은 형님 네 분이 이끄는 곳 아니었습니까?”
“체계는 그게 맞아. 그놈이 이곳을 한 번 정리하고 새로 시작한 방식이, 나, 사루쿠이, 코미, 와시오, 이렇게 넷을 필두로 각자 조직을 키운 뒤 서로 연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형태니까.”
“‘것처럼 보인다’는 건 실제로는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응, 아까 내가 그놈이 ‘후쿠로 연합’의 보스라고 했나?”
“…후쿠로의 보스라고 하셨습니다.”
“맞아, ‘연합의 총책임자’ 따위가 아니야. 우리 넷은 하나의 조직이고, 모두 보쿠토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지. 각자 맡은 일이 달라 따로 움직일 뿐.”
예로, 내가 너의 과거 조직을 정리한 것처럼 말이야. 어쨌거나, 어느 정도의 독립성과 자유는 존재하고 연합처럼 움직이지만, 넷 모두 최종적으로는 보쿠토의 지시대로 움직이게 되어있어. 연합의 형태 자체도 보쿠토의 지시고.
코노하의 말 끝자락 부근에서, 남성의 침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네 조직의 ‘연합’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던 것은 각자 이끄는 조직 규모만 해도 주변 조직보다 크기 때문이었다. 코노하의 눈에 들어 옆자리를 차지하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남성은 이따금 그 큰 곳을 한 사람이 이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데 그만한 네 개의 조직이 사실은 한 사람의 아래에 있는 하나의 조직이었다니, 그가 어느새 메마른 입술을 축였다.
“어떤 놈인지 알았으면 생각해 봐. 그런 놈이 돌아와서, 애써 키워놓은 조직이 하루가 멀다고 그 신입 경찰놈한테 하나 둘 싹싹 털리고 있다는 걸 듣게 된다면….”
“….”
“……어떻게 될 거 같냐.”
“…형님. 와시오 형님 밑에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네가 생각해도 글렀구나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하. 허탈하게 웃은 코노하가 다시금 표정을 굳히며 휴대폰을 들었다. 신입 경찰한테 잡혀갔다던 키쿠라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저는 다른 버러지와 다르다며 믿어달라고 당당하게 외쳤던 키쿠라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분명 다른 버러지와 다르다던 놈인데, 내가 구해줘야 할까?”
“버러지가 아니라면 쪽팔려서라도 전화를 못 하죠. 그냥 두십시오, 나중에 잊혀질 때쯤 찾으러 가겠습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인 코노하가 망설임 없이 차단 버튼을 눌렀다. 기다리기라도 한 건지, 그와 동시에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 보쿠토
_ 바로 거기로 갈게
_ 재밌는 소식을 들었거든
_ 마중은 필요 없어
* * *
“왜, 왜…! 어째서!!”
“그거 진심으로 묻는 거 아니죠?”
“…형님이 우릴 이렇게 쉽게 버릴 리 없다!! 뭔가 착오가 있는 거겠지, 그래!”
“네, 뭐 그렇겠죠.”
유치장 안에서 손을 벌벌 떨며 절규하는 남자의 모습을, 경찰관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도, 작게 소리내어 웃으며 남자의 상황을 비웃는 듯했다.
“아무래도, 그쪽 형님한테 차단당한 것 같은데. 이제 휴대폰 돌려주시겠어요?”
“웃기지 마!! 내가 버려졌을 리 없다, 분명, 분명히 지금 일이 있어서,”
“착각도 적당히 해야죠 아저씨, 일이 있긴요.”
가만히 우는 소리를 듣다 못한 경찰관이 남자의 말을 끊어냈다. 헛웃음을 내뱉은 그가 다리를 우그려 앉아 유치장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와 눈을 마주했다. 깊은 청록의 눈이 남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섭게 물어뜯어 댔다. 경찰관이 눈이 접힐 듯 휘어지게 웃었다.
“겨우 신입한테 잡힌 머저리 새끼를 쪽팔려서 어떻게 데리러 와요.”
…아, …….
“따로 챙겨야 할 가치도 없게 생겼고…, 뭐. 아저씨 같은 말단이 받는 취급이야 뻔하죠.”
경찰관의 단호함에 할 말을 잃은 듯 벙찐 남자의 얼굴 위로 체념이 묻기 시작했다. 그에 만족한다는 듯 웃은 경찰관이 쭈그렸던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말끔해진 경찰관의 근무복 위에는 ‘아카아시 케이지’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신입!”
멀리서 저를 부르며 걸어오는 소리에, 아카아시의 표정이 한순간 구겨졌으나 금세 갈무리하더니 작게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았다.
“신입, 너 요즘 일 되게 많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꼴을 못 봤어.”
아카아시를 찾아온 남자는 그의 선배였다. 선배는 활짝 웃으며 아카아시의 어깨에 팔을 둘러 끌어당겼다. 자연스럽게 아카아시를 보는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요즘 자꾸 저런 조폭들이 눈에 띄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서 더 신기하다니까? 분명 내가 순찰 돌 때는 아무 일도 없는데, 아카아시 눈에는 왜 이렇게 잘 들어오나 모르겠어.”
명백한 비꼼이 한가득 묻어, 멍청이가 아니라면 모를 수 없는 적나라한 견제였다.
“…선배님은, 여기서 오래 일하셨으니까. 다들 얼굴을 알잖아요.”
“응? 나 오래 됐다고 지금 꼽 주는 거야 아카아시?”
“그럴 리가요. 선배님이 무서워서 다들 피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 지역에서 선배님 얼굴도 모르면 조폭 관둬야죠.”
아카아시의 능청거림은 단순한 선배에게 잘 먹혀들어 갔다. 선배는 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목을 낚아챈 팔을 풀어 아카아시의 등을 두들겼다. 이미 듣고 싶은 말을 다 들었다는 건지, 아카아시한테서 금방 흥미가 식은 선배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하여튼 적당히 하라고! 윗분들 보는 게 심상치 않아. 난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하는데, 신입이 이렇게 자꾸 일을 만들면 내가 뭐가 되겠어? 어쨌든 난 간다!”
마지막 말을 내뱉고 옮겨진 시선 쪽으로 쏠랑 가버린 선배에, 아카아시는 그 자리에 혼자 남겨졌다. 그제야 억지로 짓고 있던 미소를 없앤 아카아시가 왼팔을 들어 가볍게 목을 주물럭거렸다.
“……멍청하기도 하지, 그 인간들이 그런 의미로 보는 게 아닐 텐데.”
얼마 안 있어 그곳에는 아카아시의 혼잣말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 부잣집 도련님 같은 조폭과 조폭 같은 성깔의 경찰
“…비단 우리 쪽만의 문제가 아니야. 까놓고 보면 코미 쪽도 똑같을걸?”
“코노하. 사람 파는 건 내 일인데 네가 왜 날 팔고 있어. 죽을래?”
코미가 살벌한 기세로 코노하를 째려봤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둘의 입장에서 지금은 억지로라도 그렇게 해서 말을 돌려야 할 판이었다. 반대편 소파에 앉아있던 와시오와 사루쿠이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는 듯 키득거리고 있었다.
코노하가 시선을 피하며 대꾸를 안 하자, 사무실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삐질거리던 코노하도, 무섭게 코노하를 째려보던 코미도, 키득거리던 두 사람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상석으로 향했다.
“아카아시 케이지라….”
침묵을 비집고서 끼어들어 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네 사람의 시선이 향해있는 사람이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을 끝으로, 그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아카아시 케이지’라는 이름을 곱씹는 그의 눈빛이 섬뜩할 만큼 노랗게 반짝거렸다. 어두울 때 더 빛나는 맹금류의 눈빛이었다.
“어떤 놈인지 내 눈으로 봐야겠어, 그전까지는 신입 경찰관 그놈, 건들지 말고 대처하도록 해. 한동안 몸을 사리든, 각자 알아서.”
일방적인 명령에도 의문 하나 가지지 않은 넷이 고개를 끄덕였다. 웃고 있지만, 살기가 한가득 흘러나오는 그에게 반박을 한다는 게 더 말이 안 됐다. 보쿠토 코타로는 그런 사람이었다.
맹금류 중에서도 제일 위에 위치하여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하나하나가 살벌한 사람들 위에서 전부를 통제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좀 재밌어지네.”
보쿠토는 진심으로 아카아시 케이지라는 신입 경찰관이 흥미로웠다. 보쿠토가 네 사람에게 조직을 맡기고 다른 곳으로 갔을 수 있던 것은, 각자 가진 능력을 믿는 선택을 한 스스로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어떤 조직이 건들더라도 이겨 먹었으면 이겨 먹었지, 질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아예 틀을 벗어나서 고작 신입 경찰 하나한테 말리다니.
후쿠로를 이만큼 불리는 데까지, 그는 스스로 생각한 것에서 벗어나는 예상외의 일 따위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다양한 경우의 수를 파악하고 있었으며, 그 모든 게 그의 뜻대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아카아시 케이지라는 존재는 보쿠토에게 꽤 큰 흥미를 유발시키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코노하, 지금 그 경찰한테 잡힌 놈들은 법에 저촉되는 증거도 있어서 빼돌리긴 어렵다는 거지?”
“응, 다른 곳처럼 돈 먹이고 다시 데리고 오려고 하긴 했는데….”
“안 됐으니까 이 지경인 거겠지.”
“…증거도 너무 확실히 잡고 있고, 그 방법이 그쪽 서에 안 먹혀.”
“이유는?”
“아직 파악이 안 됐어, 금액을 늘려서 협상 테이블 잡아보려고.”
보쿠토가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큰 지시만 던져주면 어련히 알아서들 잘 해내니까.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음을, 그는 스스로 알았다. 아카아시가 변수였을 뿐.
과연 그 변수가 본인이 만들어낸 것일지, 남이 만들어낸 것일지. 어디 한 번 잡혀가 볼까.
보쿠토는 스스로도 왜인지 모르겠으나 조금씩 기대감이 차올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木葉 ‘저 새끼 또 뭔 짓을 하려고….’
鷲尾 ‘코노하, 수습은 너한테 맡긴다.’
木葉 ‘와시오 이 개새끼야.’
猿杙 ‘난 모르겠다.’
小見 ‘하이씨, 큰일 났네.’
그리고, 웃고 있는 얼굴에서 살기가 한가득 흘러나온다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 * *
“신입. 매번 어디서 그렇게 조폭 놈들을 물고 오더니. 오늘은 또 왜 조용해?”
“…저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선배님 얼굴을 아는데 대놓고 돌아다니겠어요?”
“아 물론! 당연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근데 저번에도 이랬잖아. 혹시라도 네가 나랑 있다고 열심히 안 하는 거면 어떡해?
아카아시의 얼굴이 굳었다. …하아, 귀찮은 새끼. 자꾸만 실적을 쌓는 아카아시를 눈여겨 본 이 선배는, 오늘로 벌써 3번째 그의 파트너를 고집했다. 2인 1조가 원칙인 곳에서 신입인 아카아시가 선배를 거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이랑 있는데 어떻게 열심히 안 하겠어요.”
“알지, 아는데-,”
“그리고, 원래 기본 업무는 순찰인 걸요. 아무 일도 없으면 좋은 일인 거죠.”
매번 같이 나올 때마다 의심하고 눈치 주는 선배의 행동에 아카아시는 질릴 대로 질렸다. 다시 웃으면서 친절한 말투로 답하고 있지만, 깔끔하게 뒷짐을 진 그의 손은 주먹을 쥔 채 중지만 곧게 펴있었다.
푸흡.
바로 그때, 아카아시의 옆에 나 있던 좁은 골목길에서 작게 사람 웃음소리가 들렸다. 타이밍이, 딱 둘을 지켜보다가 웃음이 터진 게 분명했다. 순간적으로 얼굴을 찌푸린 그가 골목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선배님, 저희 이쪽 길로 가볼까요?”
“오! 그래볼까, 확실히 뭔 일이 있을 법한데?”
골목은 사람 두 명이서도 어깨를 맞대야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CCTV가 달려있어도 소용없을 것같이 어두운 골목이었다.
분명 누군가 있다. 귀가 장식으로 달린 게 아니라면 모를 리가 없다.
“근데 갑자기 왜? 매번 같은 길만 고집하더니. 내가 뭐라고 하니까 이제야 같이 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 인간은 장식으로 달렸네.
상대할 기운도 없어진 아카아시는 그저 싱긋 웃은 채 골목길로 들어갔다. 골목 사이사이 간간하게 들어오는 햇빛이 아니었더라면 완전히 암흑이었을 공간임을 그는 확신했다. 대낮 오후인데도 이렇게 어두우면 말 다 했지.
하지만 얼마 안 가 사람이 보일 거라는 그의 생각과 다르게, 꽤 깊숙하게 들어가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뭐였지.
“야 신입, 여기 괜히 안 보여서 힘들기만 하고 공친 거 아냐?”
“글쎄요, 그래도 이미 들어온 거 좀 더 가보죠.”
“에이씨, 어두워서 짜증나 죽겠네.”
한 마디 붙였다가 더 시끄러워지기만 할 것 같아 아카아시는 대꾸를 포기했다.
…피곤해서 잘못 들은 건가, 정말 조금만 더 가보고 빠져나가야겠다.
그럼에도 아카아시는 혹시 몰라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러놓은 휴대폰은 계속 들고 나아갔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투덜거리던 선배도 어느새인가 입을 다물고 얌전히 아카아시의 뒤를 따라가던 찰나였다.
“……사람?”
“뭐? 이런 곳에서?”
다섯 명 정도로 보이는 인원이 모여있었다. 세 사람은 돈을, 한 사람은 작은 봉투를 서로 교환하는 것 같았다. 남은 한 사람은 조금 멀리 떨어져 그 상황을 지켜보는 듯했다.
“뭘 주고받는 것 같은,”
“비켜! 마약이야, 분명해!!”
아카아시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끼어들으려 했으나, 붙잡을 틈도 없이 목소리를 크게 높인 선배가 앞으로 튀어나가 두 사람의 손목을 낚아챘다. 덕분에, 제대로 된 상황을 담지도 못하고 아카아시는 휴대폰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마약 거래 중인 것으로 보이는 조직원 다섯 대 경찰 하나가 가망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작게 혀를 차며 앞으로 나아간 아카아시는 다섯 사람 모두 무력이 거지만도 못하길 바랐다. ……하아, 선배만 아니었으면 진짜.
“너희 다섯 모두 마약 혐의로 체포한다! 반항하면 바로 강경 대응하겠다!”
정확한 증거도 없이 민간인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을 리가 없지만, 무력 자체는 현재 불리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긴 한 건지 선배는 단호하게 말했다. 불리한 걸 알면서 왜 튀어 나가, 미쳤나 진짜. 아카아시의 속에선 황당함에 천불이 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장 황당한 것은,
“아! 기다리고 있었어요! 신고받고 와주신 거죠!”
마약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거래하는 걸 지켜보는 듯했던 남자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두 사람을 반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고요?”
“네! 제가 이 사람들 몰래 따라오면서 경찰서에 전화했는데…, 비록 받지는 않으셨지만 위치 추적해서 오신 거죠!”
…전화를 안 받았는데 위치를 어떻게 추적해. 무식해 보일 정도로 황당한 말을 내뱉는 남자의 눈에서는 한 치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연기라는 걸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선배의 눈에는 그저 순진한 민간인이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왔으니 안심하십시오!”
“진짜 감사합니다, 큰일이 나는 거 아닐까 걱정 많이 했는데….”
“하하! 이놈들 싹 다 데려갈 테니 걱정 마세요!”
……저 멍청한 새끼. 보다못한 아카아시가 고개를 돌려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굳은 얼굴로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일단 공범일지도 모르니 서로 같이 가시죠.”
“야 신입! 너 민간인한테 말을 왜 그따위로 해!”
“…어차피 진술서 때문에라도 같이 가야 해요, 전후 관계랑 상황 파악하기 전까지는 민간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말이야 이 새끼야, 말이라도!”
아카아시는 자신의 말에 억울해하지도 않는 남자도, 위험한 시민을 구했다는 착각에 빠져 왁왁거리기 바쁜 선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은 네 사람이 얌전히 붙잡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으면서 어깨를 양껏 올려 네 사람을 끌고 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아카아시가 다시 한번 작게 혀를 찼다.
“…단순 무식한 새끼.”
큽.
아카아시가 고개를 휙 돌렸다. 선배를 따라간 줄 알았던 남자가, 입을 한 손으로 가린 채 아카아시를 보며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
“이만 갈까요? 저도 가야 한다면서요.”
“…따라오시죠.”
눈웃음 사이로 보이는 노란빛의 눈동자와 정확히 눈이 마주친 아카아시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버린 목덜미를 애써 무시했다.
* * *
“아카아시, 뻘짓하지 말라고. 신입이면 선배가 시키는 일은 어? 알겠습니다, 하고 고분고분 들어야지.”
“…정식 절차 때문에 하는 거예요, 물론 저도 선배님 말 듣고 싶죠. 아시잖아요, 저 선배님 존경하는 거.”
“그래그래. 어? 딱 형식! 형식만 차리고 말아. 괜히 민간인 괴롭히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선배님 체면이 있으신데, 제가 어떻게 그러겠어요.”
정말 마지막까지, 선배는 ‘민간인을 보호하는 멋진 나’에 취해있었다. 사회생활 자판기라도 되는 듯, 하나하나 일일이 대꾸해주는 아카아시가 붙잡혀온 네 사람 눈에도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선배가 다른 곳으로 가고 나서야 아카아시는 조사를 받기 위해 앞에 앉은 남자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름과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신입 씨, 꽤 멍청한 선배 때문에 고생이겠어.”
“…이름과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물론 그가 조사에 성실히 임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신입 씨도 눈치챘겠지만 이번은 허탕일 거야, 그거 평범한 가루약이거든. 아까 찍던 영상도 확실히 그 단순 무식한 새끼 때문에 다 망했고. 그치?”
“질문에 대한 대답 부탁드릴게요.”
“왜 굳이 쇼를 했냐, 묻는다면,”
“이름과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이야…, 신입 씨도 어지간히 성깔 있다. 맞지?”
아까 뒷짐 지고 엿 날린 거에서부터 알아봤다니까. 아까의 상황을 떠올린 듯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이 새끼였구나. 아카아시는 뒤에서 몰래 지켜봤다는 사실을 따지고 싶었으나, 방금 전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던 감각이 잊히질 않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름과 나,”
“보쿠토 코타로, 27살.”
최근 신입 씨가 잡아간 놈들의 우두머리 정도가 되는 사람입니다.
아까 전 지었던 눈웃음을 다시 예쁘게 지어 보이며, 보쿠토가 다리를 꼬고 앉아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양손은 무릎 위에 얌전히 올려져, 방금 한 말이 아니었더라면 부잣집 도련님이 앉아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우아해 보였다.
“…어쩌죠, 그놈들 지은 죄가 있어서 풀어줄 수가 없는데.”
“내가 그딴 버러지 놈들이나 보러 왔겠어?”
“그럼 대체 왜 별 같잖은 연기를 하면서 굳이 오셨을까요?”
주제를 피하기는 글렀다는 걸 안 아카아시는 싸늘하게 웃으며 보쿠토와 맞부딪혔다.
“아카아시 케이지가 누군지 궁금해서 왔어. 우연의 우연으로 변수가 된 건지, 너 스스로 변수가 된 건지 궁금해서 말이야.”
“그래서 궁금증은 해결하셨나요?”
“응, 신입 씨 되게 재밌는 사람이다.”
“해결되셨다면 다행이네요, 그럼 이만 나가주시겠어요? 제가 좀 바빠서.”
생글생글 웃으며 아카아시의 말에 대답하는 보쿠토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더 대화해봤자 스스로 말려들어 갈 뿐이었다. 대화하는 것 자체를 중단하고자, 말로는 보쿠토에게 나가라고 했으나 아카아시는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똑똑하기도 하고, 눈치도 빠르고, 성깔도 더럽고.”
“칭찬해주셔도 이만 나가주셔야겠는데요.”
“마지막은 칭찬 아닌데?”
“조폭한테 성깔 더럽다는 칭찬이죠, 경찰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허, 이것 봐라? 보쿠토는 애초에 물러날 생각이 없긴 했으나, 아카아시도 단 한마디도 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대화는 피하려고 하면서, 지고 들어가는 성깔도 아니고. 이거 진짜 웃긴 놈이네?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에, 보쿠토가 한 손을 들어 입을 살짝 가렸다.
“여기서 그 취급받으며 일하는 게 용한데?”
“시민을 지키고 싶다는 제 꿈을 위해 뭔들 못하겠어요, 그저 오늘도 노력하는 거죠.”
“대가리 굴리는 건 딱 조폭인데.”
“조폭 새끼들 대가리 굴리는 게 뻔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안 해, 난 뻔한 생각은 안 하거든.”
“그럼 그쪽이 뻔한 새끼였나 보네요.”
결국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보쿠토가 소리내어 웃었다.
“너 진짜, 딱 내 옆에서 일하면 좋겠는데.”
경찰을 스카웃하는 조폭이라…. 보쿠토는 우스웠다. 경찰한테 조폭이 되라고 하는 상황도, 완전히 정색한 아카아시의 얼굴도. 그가 진심으로 경찰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분 나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았다. 모멸감에서 우러나오는 분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따지자면,
“근데, 신입 씨가 조폭을 너무 싫어해서 권유하기 좀 그렇네.”
조폭에 대한 혐오감에서 나온 분노였다.
“아쉽긴 하지만…, 그 눈빛으로 날 봐주는 것도 재밌네.”
“…조폭 새끼가 아니라 변태 새끼였네, 지금이라도 잡아가 드려요?”
“날? 무슨 죄로. 이래서 애기들 앞에선 찬물도 못 마신다니까? 짭새놈들 헛소리를 그새 배웠네, 우리 경찰 꿈나무 씨가.”
보쿠토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뭐, 너무 그러진 마. 아무래도 나 뻔한 새끼라 앞으로 자주 볼 텐데 우리.”
“잡히면 그곳에서 다신 못 나오실 텐데요.”
“과연 경찰 꿈나무, 포부가 남다르네.”
기대하고 있을게, 신입 씨.
ⓒ 인성이 개떡인 자와 얼굴이 개떡된 자.
“…이름과 나이.”
“와, 진짜 꾸준하게 물어보네. 이걸 근성 있다고 해야 해, 똥고집이라고 해야 해.”
“이름과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신입 씨,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자 우리 사이에. 응? 여기 서에서만 벌써 7번 이상은 본 사이인데.”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둘의 사이는 결국 보쿠토의 말대로 됐다. 다른 놈들을 잡아가면서도 봤고, 때로는 주변인으로 조사받으러, 때로는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한 당사자로서 경찰서에 직접 데리고 온 경우도 있었다.
“우리 사이라고 해봤자, 잡고 잡혀야 하는 사이밖에 더 됩니까?”
“하여튼 한 마디도 안 져, 우리 경찰 꿈나무 씨.”
역시 성깔은 조폭 새끼가 딱인데 말이야. 처음 봤을 때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로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앞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보쿠토는 일반 ‘민간인’이었다. 아무리 잡아 와도 문제가, 증거가 없어서 금세 풀려났기 때문이었다.
…진짜 짜증나지만 오늘도 그냥 내 성질 긁으러 왔겠지, 또. 단순 무식한 선배한테도 적응한 아카아시였다. 보쿠토한테도 적응 못할 이유는 없었다. 대놓고 한숨을 푹 내쉬는 아카아시에, 보쿠토가 따라 웃었다.
“…어쨌든, 보쿠토 씨는 왜 그 현장에 있었죠?”
“아주 한결같이 칼같네, 바로 본론이야?”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우리 꿈나무 씨 얼굴도 한결같았으면 좋았을 텐데.
웃고 있는 보쿠토의 눈동자가 희번덕하게 빛났다. 묘하게 부어있는 아카아시의 한쪽 볼, 그리고 부어있는 쪽으로 눌어붙은 작은 딱지들. 평소와는 다르게 상처를 달고 있는 아카아시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우리 조폭 성깔 신입 씨는 어디서 맞고 오셨대?”
“….”
“대답, 안 해줄 거야? 경찰관님, 나 그냥 집에 가요?”
흠칫, 작게 몸을 떤 아카아시를 지긋하게 바라보며, 보쿠토가 혀로 입술을 축였다. 입술이 왜 이렇게 바싹 마르는 건지, 아니, 사실 알고 있긴 하지. ……굉장히 거슬려.
“별 거 아니고. 어제 취객 좀 도와주다가 실수로 얻어맞은 거예요. 사과도 받았고요. 보쿠토 씨한테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잖아요.”
“이젠 거짓말도 잘하네.”
“…어쨌든 대답했으니 얌전히 조사에 임해 주세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흐음-, 하고 대답한 보쿠토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왜인지 그 뒤로는 아카아시의 말대로, 다른 말을 붙이지 않고 질문에만 대답하면서 얌전히 조사에 임했다.
“끝나셨어요, 이제 가보셔도 괜찮습니다.”
“그래? 알겠어, 가볼게.”
돌아가는 것도, 보통은 시비를 걸든 칭얼거리든, 아카아시를 붙잡고 10분은 더 앉아서 얘기하는 게 보쿠토였는데, 오늘은 얌전히 돌아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웬일로? 오히려 그런 보쿠토가 더 당황스러운 아카아시였다.
“근데 말이야 신입 씨.”
그럼 그렇지, 얌전히 돌아가나 했더니.
“아윽!”
“얼굴 간수는 잘하자, 응?”
보쿠토가 한 손으로 거칠게 아카아시의 얼굴을 잡더니, 교묘하게 부어오른 곳을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신음에 아카아시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콱 물었다.
“우리 경찰 꿈나무 씨 예쁜 얼굴 보러 오는 건데, 이렇게 다치고 다니면 내가 속상하지.”
보쿠토는 그러다가도, 언제 아프게 눌렀냐는 듯이 부드러운 손길로 볼을 쓰다듬었다.
“어쨌든, 속상하니까 오늘은 이만 가볼게.”
“……미친 조폭 새끼.”
“칭찬 고마워.”
싱긋 지은 미소를 마지막으로, 그는 아카아시의 볼을 조심스레 두어 번 토닥인 뒤 경찰서를 나섰다. 섬뜩한 노란빛의 눈동자를 보며, 오늘도 조금 빨갛게 달아오른 뒷덜미에 소름이 잔뜩 돋아버린 아카아시였다.
* * *
“코노하, 아카아시 얼굴이 개떡이 됐던데.”
- …알아보라고?
“어.”
- 보쿠토, 네가 요즘 그 사람 한 번 더 보겠다고 우리 애들 다 데려다 썼잖아.
“그런데?”
- 아직 못 나온 놈들이 반이야 새끼야. 알아볼 인력이 되겠냐?
“네가 직접 알아보면 되잖아.”
- ……지금까지 계속 우리 애들 희생시켰으니까 그건 와시오 시켜.
“그러든가.”
반쯤 눈물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코노하였지만, 제대로 핀트가 엇나간 보쿠토한테 들릴 리 없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운전대를 잡은 보쿠토는 꽤 화가 나 있었다.
거슬려, 나도 손 한 번 안 댔는데.
까드득, 하고 치아가 부딪히는 소리가 차 안에서 작게 울려 퍼졌다.
- 근데 보쿠토, 너 이제 모리파 놈들 보러 가야 하잖아. 그렇게 화난 상태로 가도 되겠어?
“걱정 마. 지금 굉장히 이성적이니까.”
- ……그래.
정말 믿음이 가는구나.
작게 들려온 코노하의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한 보쿠토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진정했다. 이성을 잃은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조금 격해진 감정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만나야 할 사람 앞에서는 조금의 허점도 보여선 안 됐다.
- 근데 정말 혼자 가? 아무리 화합이 목적이라고 얘기했다지만…,
“그 새끼들이 나 보고 싶다고 했다며, 뇌가 달렸다면 허튼 짓 못할 텐데 뭐.”
- 허튼짓은 네가 하고 올까 봐 그렇지. 또 사고 쳐놓고 뒷수습 시킬까 봐.
“…내가 사고 치면 와시오 보고 수습하라 해.”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형님!
이 새끼도 정상은 아니야. 그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옆자리에 놓아져 있던 담배를 하나 꺼내 들었다. 망설임없이 한 개비를 입에 물었지만, 라이터를 켤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한 번에 담배 한 갑씩 피워댈 것 같은 불량한 눈빛으로, 그저 질겅질겅 껌 마냥 치아로 씹어대기만 할 뿐이었다.
그가 지금 보러 가고 있는 상대는 ‘모리파’의 회장, 그니까, 우두머리였다. 친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후쿠로파와는 다르게, 흔한 조직 폭력배들과 같이 가족 구성이 기본인 놈들이었다.
딸린 친자가 하나, 양자가 넷이라고 했던가….
모리파의 자세한 내부 사정은 잘 모르지만, 아예 모르는 놈이 화합을 하자고 내민 손을 덥석 잡을 수는 없었다. 물론, 후쿠로파가 자리잡은 곳의 주변을 정리하고도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에 원래 유의하고 있던 조직이기도 했다. 활동 지역이 아슬아슬하게 맞닿아 있어 그간 방치해놓았으나, 그는 그곳이 거슬린다면 바로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근데 갑자기 먼저 손을 내민다고….”
확실히 이상했다. 그동안 부딪힌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분명 이상했지만, 좋은 사이도 아닌데 화합을 요청할 만큼은 아니었다.
뭐, 지금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보쿠토가 그들의 앞마당까지 들어가 회장이라는 사람과 마주하게 된 것은 금방이었다. 회장부터 말단 조직원까지 올블랙으로 도배된 공간은, 마치 ‘나 조폭이요’를 적어놓은 듯했다.
“정말 이곳에 혼자 올 줄이야…, 요즘 젊은이들은 대담하군.”
회장의 인상은 조폭과 어울리지 않게 푸근했다. 위로 살짝 올라간 눈매가 아니었다면 동네 할아버지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뭐 얼마나 대단한 곳에 온다고, 그래봤자 영감 하나 보러 온 건데 왜 우르르 몰려다녀, 쪽팔리게.”
“…그것도 그렇지.”
보쿠토의 도발에 주변 조직원들은 움찔거리며 당장이라도 그를 덮칠 듯했지만, 회장은 오히려 웃으며 그의 말에 수긍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자가 맞는 반응이었다.
들어오시게, 할 얘기가 많으니 좀 앉지.
“본론부터.”
“소문은 들었지만 성격 하나 급하군. 하기야, 그런 성격이니 후쿠로 연합을 그렇게 키울 수 있었겠지만.”
후쿠로 연합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했군.
보쿠토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대체 뭘 요구하려나?
“나는 대업을 꿈꾸는 사람이야. 그 부근에서 제일 커진 자네들과 크게 부딪히고 싶은 마음은 없다네. 다만, 우리가 키운 짭새 놈들한테 접근한다는 말을 듣고 얌전히 있을 수는 없어서 말이지.”
회장의 말이 본론으로 들어가자, 주변을 지키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방을 벗어났다. 어느새 보쿠토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녹차가 한 잔 놓여있었다.
“어쩐지. 돈에 대한 욕심이 있는데도 협상을 거부하더니. 과연, 모리파가 뒷배였던 건가?”
“그래. 그들은 우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다른 조직을 따르지 않을 걸세.”
확실히, 그놈들 눈깔이 반쯤 돌아있었지. 맹목적인 믿음을 확신하는 회장의 모습에, 보쿠토는 얼마 전 코노하가 전해준 말들을 곱씹었다.
‘얼마를 주든, 협박을 하든. 그놈들 우리랑 협상할 마음이 없어.’
‘돈이나 당장의 협박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닌 듯해 보였어. 그렇다고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아니야, 돈 단위가 달라질 때마다 눈깔에서 탐욕이 흘러나왔거든.’
…약점을 잡고 심어놓은 거군. 돈은 돈대로 주기도 하고.
“그래서?”
“자네 사람들이 그곳 경찰 때문에 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들었어. 보쿠토 자네 스스로도 그렇고. 우리랑 손을 잡는 게 어떤가? 그렇게 된다면 그 어떤 이유로 잡혀도 결국 풀려날 수 있겠지.”
“대가는?”
“불가침과 화합. 서로의 영역에 손을 대지 말고 선을 지킬 것. 꽤 나쁘지 않은 조건 아닌가? 어차피 자네 연합도 한참 몸집을 크게 불렸으니 한동안은 체제 정비가 필요할 테고.”
흐음. 정말로 보쿠토에게 있어서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모리파 정도야 조금 걸리더라도 결국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후쿠로파의 안정 따위가 아니었다.
…모리파에서 키운 짭새라. 아카아시 케이지는 뭐지?
회장의 말에 따르면 아카아시 역시, 회장한테 약점이 잡힌 사람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를 따르고 있다기엔, 아카아시에게서 느낀 조폭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이 강했다. 그가 약점 잡혔다고 가만히 따를 것 같은 성깔도 아니고.
“오래 고민할 일이 아닐세,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 아닌가? 따지자면 우리가 굽히고 있고, 자네들은 경찰로 인한 손해도 없어지고.”
“서로 이득이라, 그렇다기엔 신입 하나가 우리 애들을 너무 싸잡던데. 영감이 이 상황을 노리고 한 거 아니야?”
순간 기분이 상한 건지 회장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보쿠토는 기분 나쁘면 곧바로 얼굴부터 구기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놈도 이제 몸 좀 사릴 걸세.”
“그 말의 의미는?”
“그렇게 행동한 건 내 지시가 아니었네, 오히려 내가 시킨 건 짭새 놈들 단속이었어.”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유약했던 놈인지라, 영 조폭일과는 안 맞았거든. 그래서 그곳에 보내 얌전히 있다 필요한 정보만 빼돌리게 하려 했네. …근데 그런 놈이,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날뛸 줄은 몰랐어.
보쿠토는 잠시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어렸을 때’부터, 라는 건….
“…하나 있는 친자식이 그 모양이라 영감도 걱정 많았겠어.”
“행동거지는 영 마음에 안 차긴 해도, 그 녀석 눈빛과 성깔 하나는, 난 놈이야. 조폭으로 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나보다 더할 놈이지. 그래서 못 버려.”
뭐, 그래도 점점 선을 넘길래 이번에 손 좀 봐줬으니 이제 한동안은 잠잠할 걸세.
할 말이 끝났는지 회장이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대꾸 하나 없는 보쿠토에, 이상함을 느낀 회장이 찻잔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봤다. 그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가도, 입꼬리가 무서울 정도로 올라갔다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지 확 얼굴을 굳히고 살기를 뿜어댔다.
“영감.”
몇 초간 이어진 정적 끝에, 한 마디 무겁게 내려놓은 보쿠토에 회장이 흠칫거렸다. 희번뜩한 노란 안광이 칼로 만든 것마냥 날카롭게 빛났다. ……무슨, 어린 놈이 살기가.
“그 놈, 내가 방금 보고 왔는데 말이야. 기가 죽긴커녕 더 신나서 우리 애들 쪼아대던데.”
“…바란다면 조금 더 기를 죽여놓지.”
“아, 때리지는 마. 그딴 구닥다리 방법이 통할 놈은 아니었으니까.”
“……? 알았네.”
“그리고 불가침 및 화합과 관련해서는 그놈이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결정하겠어.”
“그게 무슨,”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내뱉은 보쿠토가 당황한 회장을 작게 비웃고는, 책상을 발로 차며 일어섰다.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찻잔이 앞으로 쓰러지며 엉망이 되었다. 우당탕, 하는 큰 소리에 놀라 밖에서 대기하던 조직원이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으나, 상황을 파악하려는 사이 보쿠토는 이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게, 이게 얼마나 무례한 행동인지 알고 있는가?!”
“그것도 구분 못하면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지. 내가 원숭이로 보이나…, 영감 노망났어?”
“이, 이……!!”
“안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 영감 하나뿐인 아들놈 잘 굴려보지 그래? 마음에 들면 그깟 화합 정도야 간단히 내어주지.”
뭐…, 알아서 잘해 봐. 보쿠토를 쫓아 나오며 화를 내던 회장의 입이 꾹 다물렸다. 샐쭉 웃어 보이는 보쿠토한테 이 이상 화를 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그저 부글거리는 속을 꾹 누른 채, 여유롭게 이곳을 빠져나가는 보쿠토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누가 마음이 유약해? 저 영감도 사람 보는 눈이 영 글러 먹었군.”
그는 방금까지 진지하게 아카아시에 대한 푸념을 털어놓은 회장을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하, 가볍게 온 거였는데, 일이 뭔가 술술 풀리네.
화합을 제안한 이유만 파악하고 돌아오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가장 거슬렸던 아카아시 얼굴의 상처 원인을 찾아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조폭에 대한 혐오의 출처나, 그가 조폭들의 생각 방식을 파악하고 있는 이유나. 겨우 대화 한 번에 고민했던 일들이 풀려버렸다.
“…그래서, 아카아시 얼굴을 개떡으로 만든 게 그 새끼들이었단 말이지.”
코노하가 옆에 있었더라면 ‘…개떡까진 아니던데.’라고 대답했겠지만, 홀로 차에 있던 보쿠토에게 태클을 걸 사람은 없었다.
ⓓ 경찰을 구하는 조폭과 조폭한테 구해진 경찰
“…아직 그 경찰관이 왜 다쳤는지 못 알아봤는데.”
“그건 됐어 와시오, 모리파 놈들 짓이야.”
“잠깐만, 나 방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
모리파가 화합하자고 한 거, 아카아시 때문에 걷어차는 그런 상황이 상상되는데. 내 상상에서 그치겠지?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으며 상석으로 자연스레 향한 보쿠토를 보면서 코노하가 입방정을 떨었다. 농담 반, 진심 반이 섞인 말이었으나, 자리에 있는 넷 중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협상 조건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유리했어, 우리 보고 경찰서는 해결해줄 테니 내부 체계 강화에 집중하라던데.”
“해결해준다고? 그 경찰서 모리파 거였어?”
“아무래도 약점이 잡힌 것 같더라고. 아, 그리고 아카아시 거기 영감님 아들이더래?”
“뭐?”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아카아시가 얌전히 굴면 화합 정도야 해주겠다고 얘기했어.”
보쿠토의 말을 끝으로 잠깐 정적이 찾아왔다. 다들 황당함에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그 정적을 가장 먼저 깨고 들어온 건 코노하였다.
“…웬일로 바로 뒤엎지 않고?”
“그니까, 솔직히 그 경찰관 상처 낸 사람이 그쪽이었다는 거 아는 순간 없애겠다고 마음먹었을 줄 알았는데.”
“화합을 하겠다고?”
“화합하면 좋지, 우리야 경계 대상이 주니까 일도 줄고….”
와시오, 사루쿠이, 코미도 말을 덧붙였다. 넷 모두 보쿠토의 선택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예상을 빗겨나간 선택이라 당황스러웠다.
“누가 화합을 해?”
그러나 돌아온 건 보쿠토의 웃음기 하나 없는 싸늘한 목소리였다.
‘…쟤 뭔데. 아까 지 주둥이로 화합하겠다고 했잖아.’
‘……나도 몰라! 아깐 내가 먼저 했으니까 이번엔 네가 해!’
어이없지만 눈치 보는 건 네 사람이었다. 서로 눈짓하며 책임 전가를 하던 끝에, 결국 입을 연 건 코미였다.
“…그, 아들이라며? 모리파에서 조금 굴리거나 아버지가 말하면 듣지 않겠어? 제 아무리 경찰이라도, 이미 그 장소가 모리파 수중에 있는데. 그럼 당연히 화합하게 되는 거 아니야?”
“정말 그럴까?”
“이번에 맞은 것도 모리파에서 한 짓이랬고…, 아무래도 그 경찰관도 사람인데 기가 꺾이지 않겠어? 더 맞는다면……. 어? 보쿠토가 또 맞는 걸 지켜보고 있을 리는 없는데?”
문득 들은 의문은 생각을 내뱉으려던 입을 틀어막았다. 어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표를 얼굴에 띄워놓은 코미였다. 그리고 그 의문을 주워 해답을 찾은 건 와시오였다.
“…애초에 화합할 생각은 없었군.”
보쿠토가 그제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신입 경찰관이 고작 그놈들한테 기가 꺾일 리는 없거든. 그 말은, 그냥 우스갯소리였지. 발버둥이라도 쳐보라고.”
“….”
“그리고, 우리가 언제부터 다른 새끼랑 손을 잡아야 할 정도로 약했지?”
“….”
“우리가, 그 새끼들 하나 못 없앨 정도로 약해빠졌던가?”
대답이 없는 넷을 천천히 훑으며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뭐, 사실은 너희들이 말한 이유가 가장 크긴 해.”
내 것에 흠집을 낸 새끼들인데, 내가 가만히 있을 리가.
* * *
아카아시는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부당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찍소리 하나 못한다는 현실 또한 알고 있었다.
‘경찰서 앞에 아무도 없으니, 기강이 안 살아! 신입! 밖에 나가 서 있어!’
그러니까, 비가 호되게 내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우산 하나 들지 못한 채 서 있는 것이었다. 조금씩 체온이 떨어져 가는 걸 느끼고 있지만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가진 못했다. 그냥 쓰러질 때까지, 아예 기절해버릴 때까지, 서 있게 할 셈이겠지.
최근 들어 간섭과 괴롭힘이 부쩍 심해졌다. 문제가 있어 잡아 온 사람들을 다 풀어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다른 더럽고 어려운 일들이 몰려들었다. 질 나쁜 놈들한테 붙잡혀 있을 때 대놓고 구경하며 비웃은 일도 있었다.
‘아카아시 자네, 자꾸 그런 식이면 우리 입장에서는 해고할 수밖에 없어. 알지? 자네는 여기 말고는 다른 경찰서는 가지도 못한다는 거. 우리가 어? 이렇게나 아껴주려고 하는데, 자꾸 그런 식이면 우리도 곤란하지.’
…알지. 너무나도 잘 알지. 빌어먹을 조폭 새끼들, 빌어먹을 아버지란 작자. 우습다 정말, 결국 또 휘말리고 있네.
두 눈에서 초점이 사라진 그가, 자조적인 웃음을 내뱉었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온에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흐릿해지는 정신을 따라 힘을 잃은 다리가 휘청거리며, 아카아시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때였다.
“이것 참, 사연 들어주기 딱 좋은 날씨 아닌가?”
“….”
“어떻게 생각해, 버려진 우리 신입 씨?”
어느새 뒤에서 나타나 아카아시의 몸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보쿠토가 익살스럽게 웃었다.
“구해줄까?”
“…그쪽 직업이 언제부터 사람을 구하는 일이었죠?”
“사람은 모르겠는데, 조폭이라도 내 것은 소중히 해야지.”
“제가 왜,”
“반박은 나중에 들을게 신입 씨. 일단 살고 보자고.”
보쿠토는 우산을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아카아시의 어깨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기대도록 만들었다. 이미 흐릿해진 정신이나, 정처 없이 떨리는 몸이나,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는 건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쯧, 한동안 못 봤다고 피골이 상접해가지고는. 밥부터 먹여야겠어.
짜증이 한가득 섞인 말이 속에서 맴돌았다. 새파랗게 질린 아카아시의 입술에, 보쿠토가 도장이라도 찍듯 저의 입술을 꾸욱, 눌러찍었다. 놀라서 두 눈을 번쩍 뜬 아카아시가 놀라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입술을 시작으로 이마, 코, 볼을 옮겨 다니며 입 맞추는 보쿠토에 다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천천히 아카아시의 얼굴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나서야, 자신이 타고 온 차량으로 아카아시를 부축하며 걸어갔다.
새파랗게 질린 건 여전했지만, 입술을 콱 깨문 아카아시의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미친 거 아니야? 무슨, 키스를, ……이렇게 다정하게 해. 고개를 푹 숙인 채 보쿠토의 이끎에 따랐지만, 아카아시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신입 씨,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닌데, 설마 뽀뽀가 처음인 건 아니지?”
“…뭐요?”
화낼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얌전해서. 차 안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카아시를 운전하며 힐끔 쳐다본 보쿠토가 씩 웃으며 장난을 걸었다.
“왜, 좋았어?”
“……겨우 뽀뽀 하나에 그렇게까지 동요하진 않거든요?”
“그럼 키스에는 동요하나?”
“…무슨!”
화들짝 놀라며 자신을 확 째려보는 게, 굳이 보지 않아도 다 느껴져서, 보쿠토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히터로 미리 따뜻하게 해놓은 차 안에서, 아카아시가 기운을 좀 더 회복할 때까지 보쿠토는 기다렸다.
“……무슨 뜻이었어요?”
“뭐가.”
“구해준다는 거.”
우선 집으로 돌아가 죽부터 먹이고 잠을 재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쿠토는 딱히 먼저 말을 건 아카아시의 질문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말 그대로 구해준다는 거지. 신입 씨가 그렇게 싫어하는 조폭한테서.”
“…그쪽도 조폭이잖아요.”
“그게 중요한가, 신입 씨가 싫어하는 걸 없애주겠다는데.”
“당시에는 모르는데, 나중에는 중요하더라고요. 봐요, 조폭한테서 도망치겠다고 경찰이 됐는데, 결국 그 조폭한테 휘둘리고 있잖아요.”
“유감스럽게도 평생 조폭이랑 엮일 운명인가 보네.”
“….”
…하, 제정신이 아닌 조폭이랑 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냐 나는. 아카아시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한숨이 깊네. 앞으로는 나랑 평생 엮일 텐데, 그게 그렇게 싫어?”
“네?”
“나는 허락만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영감 사지를 찢어버릴 수 있어. 어차피 허락할 테니까 그 영감은 없다는 전제하에 신입 씨랑 엮일 조폭은….”
나밖에 더 있나? 아 물론 더 있어도 괜찮아, 결국엔 나만 남을 테니까.
이해해보면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보쿠토에, 아카아시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인간이 진짜 미쳤나?
아카아시가 아무런 말이 없자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본 보쿠토가, 질색하면서도 귀 끝은 새빨개진 모습에 웃어버렸다.
“아, 안 되겠다.”
작게 중얼거리며 보쿠토가 차를 갓길에 세웠다. 운전대에서 자유로워진 그의 손이 아카아시의 얼굴로 향했다.
“이 열은 아파서 나는 열이야, 부끄러워서 나는 열이야?”
“……아파서죠 당연히.”
“보통 귀도 같이 빨개지나.”
흠칫, 아카아시가 빠르게 손으로 귀를 가렸다. 정말로 홧홧하게 달아오른 귀가, 손을 통해 느껴졌다. 내가 미쳤네, 왜이래 진짜. 입술을 꽉 물어 어떻게든 진정하려고 했으나, 달아오른 귀는 쉽게 진정되질 않았다.
“다시 물어볼게 아카아시.”
내가 구해줄까?
“…….”
지금까지 본 보쿠토의 행동은 다정과 거리가 멀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상처로 부어오른 볼을 거칠게 잡아 누르기까지 했으니. 실은, 구해주느냐 묻는 말에도 다정함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다정하다고 느꼈다.
“…저는,”
아카아시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도 알았다. 보쿠토가 정상의 범주 안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정한 연인이 되기엔 직업도, 성격도, 모든 게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폭이 참 싫어요.”
그럼에도, 아카아시가 지금까지 봐온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다정했다. 자신을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봐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대대로 폭력 조직을 운영해온 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보고 배운 것도, 듣고 말하는 것도, 당시엔 부회장에 위치했던 아버지의 순리대로 자라야만 했다.
“뻔한 얘기예요, 저는 그들에게 평생을 괴롭힘 당했고, 아버지란 작자한테 죽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죠.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그래서 아카아시는 경찰서로 도망쳤다. 적어도 집안에서 벗어나 경찰이 된다면, 집안 연은 끊을 수 있을 터. 적어도, 적어도 찾아와 괴롭히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겨우 붙어 들어온 경찰서는 이미 아버지의 손 아래 있는 곳이었다. 그것을 알고 나서, 아카아시는 더욱 눈에 보이는 조폭들을 잡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잡아서, 어떻게든 감옥에 들어가도록. 건들지 말라는 일종의 시위였다.
그 뒷이야기는 이미 흘러온 그대로였다. 갑자기 찾아와 구타를 당했고, 이 이상 눈에 띄는 짓을 한다면 죽이겠다는 협박도 들었다. 직장 내에서의 괴롭히는 심해졌고, 오늘로 다다른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경찰을 그만두고 도망쳐도, 어느새 쫓아 와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갈 사람이었다.
“하, 조폭 새끼들한테서 도망치겠다고 똑같은 조폭한테 가다니. 경찰 꼴이 진짜 우습네요.”
그렇기 때문에 보쿠토는, 현재 아카아시가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길을 나아가면서 사랑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길을 놔준 사람은 사랑을 건너뛴 채 이미 저를 ‘소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똑같은 조폭인 주제에, 싫지만은 않아요. 보쿠토 씨가.”
허탈하게 웃으며 아카아시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보쿠토의 눈이, 마치 자신의 마음을 꿰뚫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 노란 안광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직까지도 솜털이 쭈뼛쭈뼛 서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그 느낌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짜릿하게 다가왔다.
“저 좀, 구해주시겠어요?”
허락의 의미를 담은 물음이었다. 보쿠토의 입꼬리가 매력적이게 올라갔다.
“구해준 은혜도 안 갚고 도망가기만 해 봐.”
아카아시 쪽으로 상체를 튼 보쿠토가 당장에라도 키스할 듯 무섭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카아시는 저절로 몸을 뒤로 내빼려 했으나, 커다란 손으로 뒷머리를 잡아 끌어당기는 보쿠토에 얌전히 힘을 풀었다.
착하네.
아카아시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걸 느낀 그가 픽 웃었다. …키스하려나? 아카아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꾹 감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보쿠토는 아까와 같이 가볍게 입만 맞추고 떨어졌다.
“아픈 놈 붙잡고 헐떡이게 만드는 건 취향이 아니라.”
“……말하는 거 진짜 저질같아요.”
“말대꾸 하는 거 보면 좀 살았네.”
조금 너무하다고 할 수도 있는 말에도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는 보쿠토에, 아카아시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우스워서, 스스로가 우스워서 내뱉는 웃음이 아닌, 편안해서 튀어나온 웃음이었다.
다른 듯 닮은, 닮은 듯 다른. 完.
짧은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epilogue ① 끼리끼리 사이언스
“아, 안녕하세요. 코노하 씨죠?”
“아 넵….”
“….”
“….”
코노하는 이 숨 막히는 상황이 싫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붙잡힌 조직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보쿠토의 애인이 되어서 나타난다고.
…물론 아카아시를 보고 온 다음부터 눈깔이 반쯤 돌아있는 걸 봤을 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사랑에 눈이 멀어 더 큰 기회를 놓친 걸 봤을 때부터는 확신했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보쿠토가 자리를 비웠고, 그는 보쿠토의 명령으로 아카아시의 말상대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
코딱지만 했던 후쿠로에서 시작해, 이제는 후쿠로 연합에서 당당히 한 조직의 우두머리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좋아, 하는 거야. 서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그런 공통 주제로…!
어떠한 역경이든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그, 보쿠토가 아카아시 씨 엄청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그 인간이 저를요?”
아니었다.
…공통된 주제가 아니었냐고.
아니, 근데 대체 왜 그 새끼가 지를 좋아하는 걸 모르지?
“…그 인간 옆에서 계속 있으셨다면, 코노하 씨 말도 일리 있는 거겠죠. 절 좋아하는 거 같아요?”
“모르는 게 더 이상하긴 한데…, 걔는 아카아시 씨 처음 보고 온 날부터 이미 좋아했는데요.”
“…네?”
“하기야, 그 놈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지. 헉, 할 얘기 생겼다. 들어보실래요? 아카아시 씨 처음 보고 온 날부터 어떻게 미친 짓을 했는지?”
“미친 짓이요?”
긴장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어느새 신나서 아카아시의 옆에 자리잡은 코노하가 그간의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하여튼 그 새끼, 또라이인 줄 알아지만 전 그날 다시 한 번 느꼈잖아요.”
아카아시 씨 한 번 더 보겠다고 조직원들 데려가서 눈에 띄게 행동하는 게 말이 돼요? 그게 조직 보스가 할 일이에요? 진짜 어이가 없어서.
‘코노하. 데리고 오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 데리고 와.’
‘근데 경찰이야.’
‘……네 정신부터 데리고 와.’
저는 아카아시 씨를 여기로 데려오고 싶다는 말 들었을 때가 제일 황당했다니까요?
코노하의 목소리에 그간 보쿠토에게 쌓인 설움과 분노가 점차 들어갔다.
“그 뒤로도 뭘 했는지 아세요? 아카아시 씨 괴롭혔던 그 선배 하나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죠?”
“아, 네. 다른 곳으로….”
“그거 그 새끼가 잡은 거예요.”
“….”
“정확히는 그 새끼가 시켜서 제가 잡긴 했는데.”
모리파 그 영감도 왜 사라졌겠어요? 하하. 화합하자고 손 내밀어준 유일한 곳이었는데 이 미친놈이, 아카아시 씨 얼굴 개떡으로 만들어놨다고 눈깔 돌아가서 처들어간 건데.
어느새인가 낯가림은 힘껏 던져버린 코노하가 그간 있던 일들을 하나하나 폭로(?)하기 시작했다. 아 근데, 진짜 말하면서도 보쿠토 이 새끼 진짜 또라이다. 이런 걸 말해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놀라서 도망가는 거 아니,
“……그랬군요.”
…응 아니네.
도대체 어디서 설렘을 느낀 건지, 얕게 미소를 지은 아카아시의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
“….”
“……그! 보쿠토가 가끔 말을 속이 뒤집어지게 하는데, 그런 건 괜찮으세요?”
어떻게든 러브러브한 상황은 피하고 싶었던 코노하였다. 최소한 조금 불편하긴 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주제로…!
“아…, 뭐. 그건 그렇긴 한데요.”
오!
“그럴 때마다 그 인간 속도 뒤집어지게 만들고 있어서 괜찮아요.”
…에라이, x발.
코노하는 아카아시와 대화하기를 포기했다.
epilogue ② 끼리끼리 로맨스
“…조폭 아저씨. 여기 아저씨네 사무소 아니거든요.”
“조폭 아저씨 애인이 일하는 곳이긴 하지.”
“그 애인 일하느라 바쁜데 와서 방해도 하고, 참 멋진 애인이세요.”
“에이, 우리 애인 일거리 늘려준 거지.”
능청스럽게 웃으며 양손으로 꽃받침을 한 보쿠토가 눈을 찡긋거렸다. 하아…, 이 인간은 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애교를 부리고 앉아있는 거야.
……귀엽고 지랄.
“…이따 만나기로 했잖아요, 대체 왜 또 여깄어요?”
“경찰서에 왜 왔겠어?”
“누구 죽였어요?”
“글쎄, 간밤에 실수로 사람 하나를 덮치긴 했는데, 죽었으려나?”
죽진 않았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죽었으면 아카아시가 멀쩡히 출근했을 리가 없었다. …멀쩡히는 아니었지만.
아카아시가 한숨을 푹 내쉬며 보쿠토의 팔목을 잡았다. 근무처에서 이런 장난질은 하는 게 아니었다.
“이제 그만 가요.”
“나 그렇게 순순히 잡혀주는 조폭 아닌데.”
“수갑 찬 채로 나가고 싶으세요?”
“한 쪽은 아카아시가 껴준다면 그것도 좋지.”
…이 인간이 진짜. 밑도 끝도 없이 장난을 이어나가는 보쿠토 때문에 아카아시는 오늘도 입술을 콱 깨물었다. 마음에 안 들어 진짜. 아카아시는 속이 터질 때마다 입술을 깨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버릇은 부끄러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카아시 이런 거 정말 싫어하는 척하면서 즐긴다니까. 되게 좋아하네.”
물론 보쿠토는 알고 있었다.
“….”
“오, 아카아시. 오늘은 이기는 거 포기한 거야?”
이기고 지고 할 것 없이, 사실상 대부분 보쿠토의 능청거림에 할 말을 잃은 아카아시가 대꾸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따금씩 아카아시가 이기는 경우는 기분이 안 좋아 단호하게 보쿠토의 말을 무시할 날이다.
그리고 정말 가끔.
“……좀, 일하는 곳에서는 봐주세요 보쿠토 씨.”
부끄러움을 꾹 누른 채 보쿠토의 이름을 부르며 부탁하는 날이 있다.
“…가자.”
보쿠토는 모르고 있는 듯하지만, 그는 아카아시가 끝도 없이 부끄러워 하면서 이름을 부르는 것에 약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카아시는 알고 있었다.
끼리끼리는 과학이었다.
Epilogue. 끼리끼리 完.
조폭 × 경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