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지평선』
@DIF_6379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a notional boundary around a black hole beyond which no light or other radiation can escape (Oxford Dictionary of English)
;빛이나 다른 방사선이 빠져나갈 수 없는 블랙홀 주변의 관념적 경계
보쿠토 선배를 쫓아 진학했던 후쿠로다니를 졸업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런 건 쓸모없는 시간 계산법이었다. 흥미 없던 부 활동에 힘을 불어넣어 준 사람을, 막연히 ‘스타’라고 생각한 사람을, ‘나의 스타’를. 보쿠토 코타로를 짝사랑한 지 10년 차다. 뜬금없이 왜 이런 걸 계산하고 있냐 하면 내가 소년만화(원래는 문예지를 원했다) 편집자 5년 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를 포기한 지 5년 차란 말이다.
내가 후쿠로다니에 진학한 이유는 전적으로 보쿠토 코타로다. 그는 내 부 활동의 이유 자체였다. 중학생 때까지 배구는, 싫지 않았지만 시키는 것 이상을 할 생각 역시 없는, 딱 그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하는 동아리였다. 나는 고등학교 진학으로 바쁜 3학년이었기 때문에 취미도 되지 못하는 운동은 지속가능성이 0에 수렴했다. 귀찮은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물론 나는 싫어하는 정도가 남들보단 높았다. 그래서 배구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작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경기를 봐버린 거다. 추천장이 온 후쿠로다니 소속으로 배구를 하고 있던 1학년 보쿠토 코타로의 경기를. 나는 분명히 그 학교에 진학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 배구는 어차피 관둘 생각이었고, 인문계열 대학을 진학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집에서 가까운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해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갈 생각이었다. 부모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려 허락까지 받았다. 분명 그랬다. 하지만 저렇게 배구를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말 그대로 빛이 났다. ‘나의 스타’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보쿠토 선배가 배구부 에이스로 유명한 건 후쿠로다니 재학생이 아니더라도 전국에서 배구를 좀 본다는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재학생만 아는 사실 같은 건 ‘아카아시의 스타 보쿠토 코타로!’ 정도. 언젠가 선배들에게 말했던 게 배구부 내 큰 화젯거리가 된 이후 재학생들에게도 퍼져나간 것이었다. 선배가 반으로 찾아올 때마다 스타가 찾아왔다며 호들갑 떠는 애들이 신경에 거슬리진 않았다. 그가 나의 스타인 건 당연했다. 오히려 전교생 앞에서 선언하고 싶은 정도로 그와 배구를 할 수 있는 게 꿈만 같았다.
별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하늘을 가리킬 것이다. 맞다. 보쿠토 코타로의 자리는 하늘이었다.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도록 가장 높은 곳에서 빛을 내는 게 그의 운명이자 숙명이었다. 성인이 된 그는 정해진 길을 따라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스파이크를 위해 날던 때와는 비교따위 할 수 없이. 배구선수 보쿠토 코타로를 모르는 일본인은 없었다. 그의 비행은 전 국민의 관심사이자 모든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열쇠였다. 스포츠 기사에는 질릴 정도로 얼굴이 크게 실렸다. 분명 선배가 완전, 엄청, 되게 따위의 단어를 붙여가면서 대문짝만하게 실어달라고 했을 것이었다. 별이 떠나고 남은 자리 같은 건 감히 안중에 들 수 없었다.
보쿠토 코타로가 떠난 후쿠로다니 배구부의 주장은 내가 되었다. 유일한 2학년 주전에, 내가 아니면 후배들을 이끌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이유였다. 주장 유니폼을 건네며 웬일로 맞는 말을 하는 보쿠토 선배를(후에 생각한 건데, 코노하 선배가 그대로 말하라며 시킨 게 확실하다) 때려주고 싶었다. 나의 스타가 없는 자리에 혼자 남고 싶지 않았다. 배구의 이유가 사라진 곳에서 배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곳에서 그를 찾고, 그와 비교하고 있을 내가 뻔해서 부원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배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
나는 언더 바를 짊어진 채 무거워진 발로 땅을 딛고 있었다. 후쿠로다니는 이름만 같았고 갓 2학년이 된 후배들로 채워진 신생팀이었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무거웠다. 이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 감독님과 코치님도 주전 경험이 있는 유일한 선배에게 큰 기대를 거는 듯했다. 나는 자율 연습을 그만뒀다. 이 모든 게 너무 무거워서 나도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정규 훈련 시간 외에 배구공을 만지거나, 그냥 배구와 관련된 모든 행위를 하지 않았다. 모든 사고 회로가 여기서 벗어날 방법들을 찾아내는 쪽으로 집중됐다. 내겐 배구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 유일한 이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여전히 내 발은 땅에 닿아 있었다.
후쿠로다니는 배구 명문답게 후배들의 실력도 역시 출중했다. 주장의 무게니 뭐니 걱정했던 게 뻘쭘했다. 호흡을 맞춰보지 않아 나오는 실수는 시간으로 메꾸면 되고, 경험 부족에서 나오는 실수는 경험으로 채우면 될 터였다. 눈에 띄는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지만 크게 무너진 부분이 보이는 사람 또한 없었다. 1년 전과는 다른 팀이었다. 아마 보쿠토 선배가 빠진 작년 후쿠로다니 배구부와 좀 비슷할 것도 같았다. 팀의 커다란 기둥으로서 모든 신뢰와 기대를 끌어당기던 에이스가 없을 뿐이었다. 2학년 에이스는 그에 비하면 나무 막대기 같았다. 조금 심한 말인가? 하지만 내 스타에게 어떤 에이스를 비교해도 이 이상의 평가는 어렵다.
보쿠토 선배의 배구를 보고 자란 후배들답게 인터하이 예선은 가볍게 통과했다. 선배가 없는 후쿠로다니를 모두가 지켜봤다.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쉬울 거라 생각했겠으나 내 승부욕 역시 어디서 지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나, 보쿠토 선배가 경기를 볼 것이라 생각하면 나답지 않게 경기에서 오버 워크를 했다. 부상은 딱히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배구를 할 이유가 없었고, 입시를 핑계로 인터하이가 끝나면 배구부를 그만둘 작정이었다. 내가 조금 일찍 관둬도 크게 흔들릴 팀이 아니었다. 그것보단 선배를 실망시키는 게 더 무서웠다. 4강을 승리로 마친 뒤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선배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10통가량 문자를 보냈고, 훈련이 마칠 시간에 전화를 걸어왔으며, 한 달에 한 번은 학교를 찾아왔다. 후쿠로다니 경기가 있는 날을 물어보곤 날짜를 기억해 경기를 챙겨보는지 항상 수고했다는 말과 이런저런 분석 따위를 문자로 보내왔다.
보쿠토 선배가 없는 후쿠로다니가 인터하이 결승에 올랐다. 허무했다. 선배가 없어도 배구부가 잘 돌아간다면 분명 기뻐해야 했다. 그래도 허무했다. 이유가 없는 배구를 하는 사람이 결승에 올라갈 수 있구나. 왠지 탈락한 팀들에게 미안해졌다. 자율 연습조차 하지 않으면서 경기만 시작되면 오버 워크하는 나를 이해할까? 후배들에게도 미안했다. 나는 어느새 시키는 것만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고, 보쿠토 선배는 문자만 보낼 뿐 시합을 보러 오진 않았다.
인터하이 결승전이 다가왔다. 익숙하게 몸을 푼 뒤 코트 위로 올라섰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배구이다. 보쿠토 선배에게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싶었다. 선배를 보고 자란 후배들이 당신을 위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며 자랑하고 싶었다.
경기가 시작된 후 나는, 너무 초조했다.
결승전은 왜 5세트나 하는 걸까. 우리는 왜 연속으로 세트 승리를 가져오지 못할까. 블로킹은 왜 뚫리지 않을까. 내 탓인가? 너네들 탓인가? 후배들 책임으로 돌리기엔 결승 진출이란 성적을 가져왔다. 그럼 내 탓이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더 잘해줄 수 있는 거 아닐까? 무책임하게 올린 공이 블로킹에 막혀 내 앞으로 떨어졌다. 반응하기도 전에 바닥에 닿은 공을 별 감흥 없이 쳐다보았다. 아쉽지 않았다. 그동안 부린 승부욕이란 이름의 객기가 무색해졌다.
오버 워크 탓일까. 너무 피곤했다. 대충 경기를 끝낸 후 집에 가고 싶었다. 어차피 보쿠토 선배는 시합을 보러 오지 않는다. 컷 전환이 빠른 카메라 속 모습들만으로 이런 저급한 생각을 전부 알아채진 못할 것이다. 선배는 눈치가 없으니까. 준우승도 자랑스럽다며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겠지. 콧날로 흐르는 땀을 닦아낸 후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 있었을까. 보쿠토 선배는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관중석에 앉아있었다. 눈을 가리지 않으면 저런 게 다 무슨 소용이지. 시선이 마주쳤지만 이런 농담조의 몸짓은 할 수 없었다. 나는 저 눈에 들켰다. 그날 후쿠로다니는 또 한 번의 준우승을 맛봤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선배를 향한 마음의 이름을 알아챘다.
시합이 끝난 뒤 보쿠토 선배에겐 수고했다는 짤막한 문자가 와 있었다. 어디서부터 들킨 걸까. 내가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이 된, 팀원들과 신뢰 관계가 없을 뿐더러 모든 탓을 돌린, 진심을 담지 않고 무책임한 공을 올린 상황. 그중에 무엇을 들켰을까. 전부를 알아챘을 게 분명하다. 심지어 나조차 몰랐던 선배를 향한 마음을 들켰을지도 모른다. 모든 상황이 무서웠다.
감사합니다. 오늘로 배구부를 떠나요. 앞으로는 바빠서 연락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망쳤다. 모든 게 들킨 사람은 도망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방법이 있다 한들 없다고 믿고 싶었다. 곧 도착한 답장엔 이제 와 왜 그러냐는 추궁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알겠다는 대답뿐이었다. 다행이었지만 한쪽으론 강한 절망이 찾아왔다. 정말로 모든 게 들켜버렸다. 그러니까 선배도 묻지 않는 거다. 내 첫사랑은 시작과 동시에 박살 났다. 도망에 포기라는 추가 선택지까지 생겼다.
다행히 정말 바빠 종일 욕을 해야 겨우 살아낼 수 있는 나날이 시작됐다. 보쿠토 선배와는 한 달에 두어 번 문자를 하는 게 전부였다. 선배도 어지간히 바쁜 스케줄인 듯했다. 도망과 포기를 고른 걸 후회할 만큼 세상의 모든 곳이 보쿠토 선배였다. 각종 매체는 물론이고, 반 아이들마저 학교의 자랑스러운 스타가 오늘은 어떤 활약을 했는가 지겹도록 칭송했다. 있을 때나 그럴 것이지. 뒤늦게 친분을 과시하고 있는 몇몇을 볼 때면 역겹기까지 했다. 덕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스트레스와 함께 사는 중이었다.
한 학기를 공부에 매진하며 살았으니 성적이 안 나올 리가 없었다(자랑처럼 들릴 것 같지만 배구부 활동 중에도 반에서 3위 안에 드는 성적이었다). 도쿄도 안에 있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정도였다.
“졸업 축하해.”
선배는 졸업식에 왔다. 그날 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직접 두 눈으로 본 보쿠토 선배는 화면을 통해 짐작한 대로 이전보다 몸이 커졌고, 키도 좀 큰 것 같았다.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건네는 손에도 굳은살이 늘었다. 나는 꽃다발을 받았다. 선배는 웃고 있었으나, 웃지 않았다. 안에 무엇인가를 숨겨두었다. 선배는 바빠서 밥 한 끼 못해 미안하다며 곧 자리를 떴다. 그 얼굴에서 더 이상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
입시 생활 내내 갈망하던 대학 생활이 시작됐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는 이유로 문학부에 진학했다. 곧장 자취방도 얻었다. 배구와 보쿠토 선배를 지운 뒤 남은 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이었다. 사실 배구가 선배였으므로 지운 건 하나 뿐이었다. 어쨌든 돌파구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과제는 하나같이 작문이었는데, 대학생인지 작가인지 헷갈릴 정도로 종일 글을 썼다. 문제는, 쓰고 보면 전부 별이 소재였다. 전부 보쿠토 코타로였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분명 도망과 포기를 선택했는데 문장 속 모든 것이 선배였다. 이걸 모르는 동기들은 날 ‘아카호시(赤あかい星ほし)’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차라리 ‘아카아이(赤あか愛あい)’라고 불러줬으면 했다.
작가는 모름지기 글감이 샘솟아야 한다. 내 글감이 무엇인가. 바로 보쿠토 코타로다. 그러나 선배와는 그날 이후 만나지 않았고, 졸업식에서도 간단한 인사만 한 후 가버렸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선배와의 단절 이후 업데이트가 불가능했다. 내 반짝이는 별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다른 건 쓸 수 없었다. 앞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포기의 뜻을 물어본다면 ‘끝까지 물고 늘어짐’으로 설명하겠다는 다짐까지 생겼다. 휴대폰을 들었다.
“선배, 저 밥 좀 사주세요.”
순수하게 글을 쓰기 위해 만날 뿐이다. 사람은 가끔 뻔뻔해야 한다. 그날 모든 게 들켰을지라도, 그게 뭐. 어쩌라고. 다 지나간 추억일 뿐이다. 그날은 우리 둘 중 누구 하나 먼저 꺼내지 않는다. 정말 내가 싫었다면 전화에 대고 욕을 했을 사람이다. 최소한 승낙은 안 했겠지. 나는 그냥, 소재를 얻기 위해. 대학 성적을 위해. 그저 그 이유로 선배를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과거의 나를 메다꽂고 싶었다. 철면피 같은 자식. 반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쨌든 만났으니 글감이나 뽑아낼 심산이었다. 사심도 좀 채우고 싶었다. 1년 만에 보는 선배였다. 외면해봤자 모든 소식이 전부 들려오는 사람이었다. 그래, 별은 빛을 멈추는 법 같은 걸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선배에게 종종 문자를 했고, 같이 밥을 먹었고, 이따금 경기도 보러 갔다. 검은색 유니폼이 잘 어울렸다. 선배는 평범한 에이스가 되겠다는 말을 지켜냈다. 항상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내 눈엔 너무나 빛나 어떻게 봐도 평범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종종 문자를 했지만 대부분 내가 보낸 문자로 시작됐고, 통화는 하지 않았으며, 밥을 사달라며 선배를 불러내기도 했고, 아무 말 없이 경기를 보러 갔다. 선배의 속내를 읽을 수 없게 된 뒤론 딱히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연락하면 받아줬으니까.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어지간한 약속 역시 응해줬으니까. 나는 그렇게 그의 빛을 갉아먹었다. 그러던 4학년 1학기 말. 모두가 어른이 될 시점이자 취업에 대한 고민이 극에 다다를 때. 나의 별을 눈에서 지우기로 했다. 내 글은 예를 들면, 배구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또 도망치기로 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어중간한 마음을 품고 바라보던 보쿠토 선배도 볼 이유가 없다. 나는 도망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별을 찾아 주기로 했다.
대학 간판과 적당히 우수한 스펙으로 대형 출판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가까워 자취방도 재계약했다. 문예지 파트는 구인하지 않아 시기상 지원할 수 있었던 소년만화 편집자에 지원했다. 면접 때 편집부에 지원한 이유로 나의 별은 세상 높이 떠올랐으니, 그들의 별은 무엇이 될 운명이든 간에 품에 안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것도 같다. 원대한 포부를 밝혀놓고 막상 대답 뒤엔 역시 어쩔 수 없는 세터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을 참았다. 그러나 직업은 돈벌이 수단일 뿐이지 누군가의 별을 찾아줄 수는 없었고, 작가의 작품은 그의 별이 아니라 회사의 전유물이었다. 독자의 감상 따위는 편집장의 호통 속에서 알 수 있으니 따로 찾아볼 이유 역시 없었다.
“나 따위가 별을 어떻게 하네 마네…”
배구부 시절과 의미가 다른 헛웃음이 나왔다. 어른이 되기엔 아직 멀었다. 도망친 곳에 별은 없었다. 애초에 자신의 별도 어쩌지 못해 도망친 사람이 누군가의 별을 찾아준다는 것부터 글러먹었다. 게다가 여긴 대형 출판사의 소년만화 편집부였다. 수익을 쫓아 작가를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보쿠토 코타로를 짝사랑한 지 10년 차, 소년만화 편집자 5년 차. 그러니까 그를 포기한 지 5년 차인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이곳으로 도망친 걸 후회하고 있다.
“우리 대리님은 이렇게 계속 살 생각인가봐?”
시작됐다. 편집장님의 부하 직원 멘탈 털어먹기. 오늘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걸 보니 아무래도 귀엽고 징그러운 자제분 중 하나가 속을 박박 긁은 것이 분명하다. 나중에 커서 훌륭한 재목이 될 싹이다. 위대하신 편집장 나리께서는 고로 재목에게 바칠 훌륭한 소년만화를 가져오란 말을 2시간 가까이 쏟아내셨다. 10주 전 갓 대리를 달았지만, 직급에 걸맞게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은 작품을 요구하는 저 인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선택지는 하나다. 직장인은 까라면 깐다.
심심하면 나를 불러대는 편집장에 여태껏 느끼지 못한 실적 압박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었다. 불과 10주 전만 해도 나보다 먼저 대리를 달았던 입사 선배와 함께 움직이며 담당 작가의 케어를 맡았었다. 실적 문제는 선배의 몫이므로 내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진급과 동시에 담당 작가를 배정받았다면? 실적 문제가 나의 몫이란 얘기다. 편집장이 준 아이템 개발 시한은 4주. 대학교 창업 아이템 대회도 이거보단 길 거다. 4주 안에 아이템을 개발해 컨펌을 통과하면 3주 안에 2화까지 초고를 그려 제출한다. 여기까지 오케이라면 다른 신작들과 사내에서 경쟁한다. 그다음이 본격적인 시작이지만 그만하자. 나는 10주 동안 아이템 컨펌에서 3번 까였다.
작가님과 내 멘탈은 박살이 났다. 약 3개월간 주구장창 욕만 먹고 있는데 멀쩡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거나 보쿠토 코타로였다. 취업과 동시에 선배를 만나지도, 경기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 완벽히 떨쳐낼 수는 없어 고3 때처럼 가끔 문자만 했다. 실은 이마저도 바빠서 내가 문자에 답을 했는지, 애초에 문자가 왔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이제는 남에 더 가까운 선배의 멘탈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회사에서 고문을 3개월씩이나 당하면 아무리 성인군자라 한들 휴식이나 행복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겠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선배와 했던 5년 동안의 문자를 되짚어본 이유였다. 손가락을 몇 번 튕기면 끝날만큼 짧은 분량이었다. 어쩜 이렇게 내용이 연결된 게 하나가 없을까. 그도 그럴 것이 답장 간격이 2주에서 6개월까지 널을 뛰었다. 선배는 그동안 몇 번의 올림픽과 많은 세계 대회를 나갔다. 분명 그를 포기하겠다며 배구 경기도 열심히 안 봤지만, 기사들 속에 섞여 있는 소식들까지 일일이 걸러낼 수는 없었다. 문자를 보니 보쿠토 선배는 잘 지내나 궁금해졌다.
요즘 인터넷은 쓸데없이 친절하다. 선배의 가장 최근 경기 하나를 틀었을 뿐인데, 어느새 5년 치 모든 경기들을 섭렵했다. 그러고도 내 유튜브엔 온통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보쿠토 선배뿐이었다. 기자회견, 인터뷰, 방송에 게스트로 나왔던 장면 모음집, 팬들의 직캠(이걸 보며 21세기에 사는 걸 감사히 여겼다), 구단 공식 유튜브… 내가 5년간 뭘 했다고? 그러나 이건 자발적인 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과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촉발된 행동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건 회사 탓이란 말이다. 보쿠토 선배를 피해 회사로 도망친 가련한 사회초년생을 회사가 다시 선배에게 내던진 거다. 그 어느 때보다 입사한 것을 후회했다.
생각해보니 나에게 포기란 ‘끝까지 물고 늘어짐’이다. 직장인에게 이 정도 힐링은 당연한 거다.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자기합리화를 하며 모든 유튜브 동영상을 본 뒤엔 구글에서 기사들을 읽었다. SNS 염탐은 물론, 사진 같은 걸 올리는 팬 계정까지 하나씩 팔로우했다. 그동안의 갈증을 채우려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더는 볼 수도 없는 사람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결국 선배로부터 도망쳐서 얻은 것이 뭘까? 대표적으로 2개를 꼽을 수 있는데, 하나는 상사의 욕이고 다른 하나는 보쿠토 코타로를 향한 집착이다. 그래도 사회인답게 회사를 내팽겨친 뒤 식음전폐하며 화면 속 선배를 본다거나 하는 짓은 안 한다. 다만 모든 정신이 선배에게 쏠려 있을 뿐이다. 편집장이 해대는 일장 연설보다 지금 이 시각에 선배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가 더 중요했다. 중증이다. 머리에서 울리는 경고음을 내 손으로 껐다. 오전 10시 28분. 로드워크를 하고 샤워를 마친 선배가 아침 식단으로 식사를 한 뒤 한창 연습 중일 것이다.
작가님과 미팅이 있어 오후 5시쯤 회사에서 차를 타고 작업실로 출발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출발해야 길이 막혀 보쿠토 선배가 출연하는 라디오를 끝까지 들을 수 있다. 마침 오늘 선배에게 문자가 왔다. 하지만 더 이상 무엇인가를 들키고 싶지 않아 답장은 하지 못했다. 어쩌면 평생 못 할 수도 있겠다. 생각을 멈추려 라디오 볼륨을 키웠다. 좌회전 화살표 신호에 맞춰 좌회전하는 순간, 맞은편 우회전 차량과 부딪혔다.
가볍게 머리를 부딪혀서 정신이 멍했다. 사거리 한 가운데에 차가 찌그러져 있다. 회전 상황이라 감속한 덕에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운전석 문은 찌그러졌고 에어백까지 터졌다. 상대방은 조수석에 사람이 없어 큰 부상을 피한 듯했다. 나도 몸을 더듬으며 외상을 찾았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다만 오른손이 너무 아팠다. 다시 보니 약지가 금세 부어 있었다. 오늘 라디오는 못 들을 것 같다.
휴직계를 냈다. 오른손 약지 미세 골절로 4주간 치료가 필요했다. 다행히 산재 적용이 가능하다는 와중에도 편집장은 꼬리에 꼭 소재를 찾아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회사로 스트레스가 가득하던 차에 잘된 일이었다. 심하게 다치지도 않아 이만하면 혼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밀린 잠을 자느라 이틀을 썼다. 다음 날은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반나절이면 될 것 같았는데 손을 못 쓰니 두 배가 걸렸다), 그다음 날은 편집장 말을 떠올리며 소재를 고민하는 시늉도 했다. 왼손은 자꾸 깁스한 오른손을 스트레칭 하려 들었다. 언젠가 보쿠토 선배와 학식을 먹으며 오른손을 주무르자 사람은 참 안 변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생각났다. 왠지 우울해져 마룻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한번 시작한 생각은 멈출 수 없었다.
소재를 찾는 시늉이라고 하긴 했으나 아침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보쿠토 선배를 떠올릴 계획은 아니었다. 오후 3시라. 부 활동이 시작할 시간이다. 후쿠로다니는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다. 20분이면 워밍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할 것이다. 4시간 동안 보쿠토 선배를 생각했더니 후쿠로다니가 궁금해졌다. 생각의 갈래가 어디까지 뻗어나가는 걸까.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20분이면 산책으로 적당한 거리였다.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후쿠로다니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틀림없이 보쿠토 선배를 생각하던 중이었다. 선배가 보고 싶었다가, 우리의 추억이 그리웠다가, 선배가 주로 입던 ‘에이스의 마음가짐’ 티셔츠를 아직도 입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했다. 체육관 바닥과 운동화의 마찰음은 여전히 시끄럽게 울릴지, 보쿠토 선배가 세레머니를 하다가 찢어 먹은 네트는 창고 구석에 그대로 박혀 있을지, 우리가 함께하던 곳은 아직 우리를 기억할지.
학교 정문을 통과해 곧장 체육관으로 향했다. 막상 문 앞에서는 열어젖힐 용기가 없어 한참을 서 있다가 슬며시 손을 뻗었다. 철문은 끼긱거리며 옆으로 밀려났다. 안에서 열기가 훅 끼쳤다. 운동화의 마찰음이 끼긱- 울렸다. 내가 알던 그 체육관에 아는 얼굴은 감독님과 코치님 뿐이었다. 감독님은 예기치 못한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카아시, 오랜만이구나. 어쩐 일이니?”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우린 항상 같지. 손은 어쩌다 다쳤어?”
감독님과 사는 얘기를 한 뒤 소년만화로 연재할 소재가 필요한데 2층 관중석에서 훈련을 지켜봐도 괜찮은지 허락을 구했다. 흔쾌히 허락한 감독님께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올랐다. 1학년 때 주전 경쟁에서 밀려 관중석을 지키던 이후, 보쿠토 선배의 경기를 보러 갔던 걸 제외하면 2층은 처음이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체육관을 내려다봤다. 후배라고 칭하기엔 너무나 까마득한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첫 주전으로 보쿠토 선배와 호흡을 맞춘 날, 너무 벅차 일기를 꼬박 5장이나 썼었다. 나의 별, 나의 스타와 하나로 움직이는 게 얼마나 좋던지. 선배가 내 토스로 강력한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었을 땐 눈물이 났다. 땀과 섞여 눈치 챈 사람이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풀죽음모드를 처음 본 날엔… 넘어가자. 그래도 선배는 언제나 ‘에이스의 마음가짐’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지.”
그는 ‘나의 스타’나 ‘나의 별’이 아니었다. 그저 당신이 가진 이름대로, 태양인 것이었다. 감히 나를 비롯한 누군가가 움켜쥘 수 없는. 그런 걸 가지려고 했다니 불나방처럼 꼼짝없이 타죽을 뻔했다. 이제야 머리가 맑아진다. 미련이나 집착 같은 불필요한 감정들을 털어낸다. 드디어 현실이 보인다. 이제야 나도, 출발할 시간이다.
“아카아시! 아직 안 갔지? 밑으로 내려와봐!”
감독님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근데 왜 나를?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이건 아마… 보쿠토 선배가 사고 쳤을 때였나.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간과했다. 나는 교통사고 환자였다. 집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요양을 해야 했다. 그러니까 감독님의 말은 환청이었다. 전성기 배구 선수 보쿠토 코타로가 은퇴를 한다니. 세상 모든 일 중에 그 사람이 얼마나 배구를 좋아하는지 보증을 서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 그런데,
“온통 보쿠토 기사로 인터넷이 도배야. 너희는 아직 연락하지? 이놈 말하는 것 좀 봐라.”
‘배구 선수 보쿠토 코타로, 평범해지고 싶어서 은퇴를 결심…’
감독님이 내민 휴대폰 속 기사 제목은 아주 가관이었다. 이딴 악질 기사를 쓰는 게 누구야? 내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을 켰다. 아찔했다. 비슷한 단어에 어순만 다른 제목들이 눈에 마구잡이로 들어왔다. 교통사고 환자에게 이런 정신적 충격을 가해도 되는 건가? 감독님과 코치님들께 급히 인사를 드리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코노하 선배에게 졸업 후 처음으로 전화가 왔다.
보쿠토 선배는 소속팀 ‘블랙자칼’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머물고 있었다. 구단 공식 유튜브로도 몇 번 소개가 됐다. 그러니까, 선배는 지금 오사카에 있을 것이다. 일단 제일 빠른 오사카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비행기는 50분 뒤 출발이었다. 학교에서 공항까지 택시로 가면 20분, 늦어봤자 30분. 서두르면 이 비행기를 탈 수 있다. 티켓을 예매하며 대로변에 있는 택시를 타 최대한 빨리 가달라는 요청과 함께 행선지를 말했다. 순식간에 티켓을 마저 예매하고 보쿠토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이다. 누구랑 전화하는 거지? 다른 사람과 전화가 겹쳐 통화 중으로 뜨는 것일 수도 있다. 선배의 성격상 이럴 때 누군가를 붙잡고 전화하진… 확신은 없었지만, 과거의 선배라면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곧장 두 번째 연결을 했다.
“ — 아카아시?”
“오랜만이에요, 보쿠토 선배. 제정신입니까?”
“어? 아카아시야? 오랜만이네.”
“지금 공항으로 가고 있으니까 숙소 주소 보내세요. 3시간 안에 도착하니까 어디 가지 마시고요. 도망가면 죽을 때까지 쫓아갑니다.”
“온다고? 지금?”
일단 화를 참았다. 문자로 온 주소는 간사이 공항과 가까웠다. 택시로 약 10분. 3시간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뒤 비행기보다 빨리 뛰어다니며 탑승 수속을 마치고 간신히 올랐다. 계속 말하지만 난 교통사고 환자다. 보쿠토 코타로 진짜 가만두지 않겠다. 1시간 반은 보쿠토 선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평범해지고 싶다니, 도대체 무슨 개소리냔 말이다. 배구밖에 모르는 바보 주제에 그딴 이유로 배구를 내팽개치다니. 정말로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보쿠토 선배를 포기한지 5년 차. 이제서야 나도 비행을 해볼까 했다. 불안감이 치솟았다. 지금 당장 얼굴을 마주한다고 해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있는 게 더 이상했다. 한숨밖에 안 나왔다.
저 10분 내로 앞에 도착해요. 내려오세요.
간사이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가까워질수록 너무나 불안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는 걸까. 멀리서도 보쿠토 선배가 서 있는 걸 알아봤다. 5년 만에 얼굴을 보는 이유가 갑작스러운 은퇴라니. 충분히 숨이 막혔다. 제발 내가 할 수 있는 게 남아있길 기도했다. 택시비 결제를 하고 내리자 곧장 금안과 마주쳤다. 모자와 마스크는 썼지만, 그 눈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눈을 안 가리면 모자 같은 게 무슨 소용이에요.”
“잘 지냈어?”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차피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저 눈에 들켰을테니.
“평범해지고 싶어서 은퇴를 한다니, 무슨 소립니까? 선배가 지금 그 자리에 오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손은 왜 다쳤어.”
“그게 중요합니까?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요. 선배는 배구가 장난이에요? 그렇게 쉽습니까? 그러면서 여태까지 온갖 걸 다 바쳤냐고요.”
“날 보고 있었어?”
“내 말 좀 들어요! 그딴 이유로 은퇴할 거면 왜 시작했어요!”
“…”
“평범해지고 싶다고? 이미 이뤘잖아요. 평범한 에이스가 됐잖아. 근데 왜…!”
“…”
눈물이 났다. 저 사람이 우리의 추억을 다 짓밟은 것 같았다. 차라리 배구를 하지 말지. 그랬다면 내가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를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 건 당신이면서. 누구보다 아름답게 빛을 내고, 모두를 끌어당긴 건 당신이잖아. 부정확한 발음으로 내용 없는 분노와 원망 같은 걸 쏟아냈다. 무어라 말하는지 자각이 없었다.
“아카아시—!”
선배가 내 어깨를 잡으며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말하는 걸 멈추고 선배를 바라봤다.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선배가 울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그런 말을, 남한테 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거야?”
선배가 무너졌다. 너무나 무서웠다. 자신이 빛난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태양은 블랙홀일 뿐이었다. 아이러니했다. 분명 빛이었던 것이, 이렇게 한순간에 블랙홀이 된다는 게. 5년을 도망치고 포기해 마주한 결과는 무엇일까. 나는 아무래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세계 최초의 인간임이 분명했다. 길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엉엉 우는 보쿠토 선배를 안았다. 그 상태로 한참을 당신이 얼마나 빛나는 태양인지에 관해 말했다. 선배는 그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보쿠토 선배는 배구계 역사상 가장 황당한 은퇴와 번복을 거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태양이 다시 떠올랐고, 그 햇살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나는 누구나 비행을 한다는 간단한 것조차 몰라서 이제야 비행 준비를 마쳤다. 그래도 빛처럼 스스로 하늘 높이 떠오를 수는 없다. 거긴 내 자리가 아니다. 대신 그 안을 유영할 만한 끝내주는 비행기를 준비했다.
선배를 쫓아 진학했던 후쿠로다니를 졸업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런 건 나에겐 쓸모없는 시간 계산법이었다. 흥미 없던 부 활동에 힘을 불어넣어 준 사람을, 막연히 ‘스타’라고 생각한 사람을, ‘나의 스타’를. 보쿠토 코타로를 짝사랑한 지 10년 차다. 뜬금없이 왜 이런 걸 계산하고 있냐 하면 내가 소년만화(원래는 문예지를 원했다) 편집자 5년 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를 포기한 지 5년 차였고, 연애를 시작한 지 1년 차란 말이다.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은 휴직일 동안 착실히 글감을 주워 모았다. 다른 말로 보쿠토 선배와 내내 붙어있었단 얘기다. 복직과 동시에 편집장에게 새로운 아이템을 제출했다. 편집장은 곁눈질을 몇 번 하더니 자신이 밀어줄 테니 곧장 원고를 시작하라는 엄청난 선언을 했다. 인사를 하고 편집장실을 나와 갈무리하던 입꼬리를 시원하게 올렸다. 그럼 그렇지. 이것마저 까면, 넌 편집장을 하면 안 돼.
원고는 나와 선배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갔다. 고등학교 1학년인 주인공은 자신의 우상을 쫓아 학교에 진학한다. 2년간은 행복하게 배구를 하는 듯했으나, 우상이었던 선배가 졸업한 후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붕괴한다. 결말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각자를 다시 쌓아 올리는 것이겠지. 그게 이 비행기로 보여줄 나의 빛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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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R입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요.
하이큐를 애니메이션으로 입덕해 아직 완결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만약 설정 오류가 있다면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소설판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합작을 준비하며 알게 됐습니다. 볼 수 있는 게 많아 좋네요.)
이 글은 제 첫 연성이자 소설입니다. 많이 미흡하지만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편(보쿠토 시점)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만 1편이 여러분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가능한 얘기겠습니다. 많이 떨리네요. 매 맞으러 교무실 가는 기분이랄까요.
부족한 글을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R
배구선수 보쿠토 코타로 x 대형출판사 주간 소년만화지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