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100 주년 기념 공동 예배


예배해설서


- 국문 -


1. 취지

1969년 3월 2일 주일 아침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창천교회에서 50주년을 기념한 것이 한국교회의 공식적인 첫 3.1운동 기념 예배였다. 이 때 애국가 제창, 3.1 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삼창 등의 식순이 삼일절 예배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었다. 45년에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을 기념하지 못했던 것은 해방과 함께 좌우 이념이 나뉘며 극한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3.1운동 54주년인 1973년 3월 1일에 창천교회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예배를 드렸는데, 이 예배는 교회 연합 차원에서 최초로 3.1운동을 기념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 때, 3.1운동 기념예배의 취지를 세 가지로 밝혔는데, 이 취지를 계승하고 확장하여 ‘3.1운동 100주년 기념 함께 드리는 예배’의 취지를 새롭게 밝힌다.

1) 매년 3.1운동 기념예배를 드림으로써 3.1 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의 얼을 지키며, 순국선열들의 높은 뜻을 기리고 받든다.

2)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던 민족종교로서의 한국 기독교가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에 대한 책임의식을 고취하고, 나아가 세계평화와 자유를 위한 자발적 실천에 앞장선다.

3) 정기적인 3.1운동 기념예배를 통해, 나라와 민족을 이어갈 다음 세대인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의 정신을 전수하고 민족통일과 평화의 사명을 전달한다.


2. 예배 개요

‘3.1운동 100주년 기념 함께 드리는 예배’는 2019년 2월 24일(주일) 오전예배에서 3.1운동 100주년을 한국교회 전체가 공동으로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또한 주일예배에서 다함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다. 이 공동예배를 위해 두 가지 형식을 마련하였는데, 첫째는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예배의 구조와 순서, 그리고 성찬성례전을 반영하는 형식이고, 둘째는 지난 1세기 동안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회에 익숙했던 간략한 형식이다.

또한 성찬성례전 역시 두 가지 형식을 준비하였는데, 첫째 20세기 예배회복운동을 통해 복원되어 현재 세계 기독교 주류 교단들이 사용하고 있는 전통적인 형식과 둘째 현대 성찬신학을 반영하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들에게 익숙했던 집례자 단독진행의 형식이다. 첫째의 경우에는 집례자와 회중이 서로 화답하는 형식이기에 성찬성례전 순서가 인쇄될 필요가 있으며 집례자용도 별도로 필요하다. 둘째의 경우에는 집례자 단독 진행이기에 집례자용만 준비하였다. ‘제2부 예배자료 제12장 성찬성례전’에 첫 번째 형식의 집례자용과 인쇄용(회중용), 그리고 두 번째 형식의 집례자용이 첨부되어 있다.

가능한 전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많은 사람들이 능동적인 예배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순서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전세대가 함께 할 수 없는 경우를 위해 동일한 본문으로 구성한 어린이 예배도 마련하였다. 재외한인교회의 다음세대들의 교육과 세계교회와의 협력을 위해 영어번역판도 마련하였다. 이 예배의 순서들은 각 교회의 사정에 따라 생략 또는 변경이 가능하지만, 설교본문과 공동기도는 가급적 동일한 것을 채택하기를 권한다. 찬송은 제시된 것을 참고로 하길 바란다. 이는 서로 뜨겁게 하나가 되었던 3.1 운동의 기독교 정신을 계승하는 가시적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설교 본문은 3.1운동이 한창일 때 기독교인들을 위해 교회를 통해 배포되었던 <독립단 통고문>에 실렸던 한주간의 성경읽기 본문을 전통적인 성서정과 방식에 따라 설교본문으로 재구성하였고, 선별된 찬송은 3.1운동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던 찬송과 삼일절과 관련된 역사적 의의를 지닌 것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33인 중 한 사람인 김병조 목사는 평북지역 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 태화관에 모이지 않았기에 체포되지 않고 상하이로 피하여 임시정부에 합류하였다. 김병조 목사는 그곳에서 독립운동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수집하여 편집하고 발행하여 배포하는 일에 헌신했는데, 바로 그 다음해인 1920년에 『한국독립운동역사략』라는 자료집을 발행했다. 이 책 속에 3.1만세운동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뿌려졌던 「독립단 통고문」이라는 전단지도 들어있는데, 여기에 일종의 기독교인 행동강령과 같은 것이 적혀있었다. 이 전단지에는 하루 세 번 기도하고, 주일은 금식을 하며,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해당되는 말씀을 읽으라는 지침이 들어있다.

예배를 준비하는 목회자는 예배해설서에 담긴 설교본문과 찬송들의 의의를 통해 3.1운동의 기독교적 영성을 확신하며 이야기적 구성을 갖고 예배와 설교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함께 드리는 예배』는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외쳤던 과거의 그 날을 상기하는 것은 물론,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는 예배로 준비되었다.


3. 예배 해설 및 진행을 위한 제안

기독교 예배는 그 초기부터 말씀의 예전과 다락방 예전(성찬성례전)이라는 2막으로 구성되었다. 현대 기독교 예배신학은 그것을 4막의 구조로 발전시켰다. 1막에서는 말씀을 듣기 전에 모여서 찬양하고 회개하고 용서의 말씀을 듣는 순서가 포함되고, 2막은 말씀의 예전, 3막은 다락방 예전(성찬성례전), 4막은 파송의 찬송과 위탁의 말씀, 그리고 축도를 포함한다. 이것은 20세기부터 시작된 예배회복운동 중에 발전한 예배구조로서 현재 대부분의 교회가 이 구조를 따르고 있다. 이 예배는 한국의 모든 교회뿐만 아니라 재외 한인교회까지도 함께 사용할 것이며, 세계교회에 우리의 예배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기에 그 구조와 순서를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최대한 반영하였다. 그리하여 “주님의 집으로 모임”, “말씀을 들음”, “성찬성례전에 참여”, “세상을 향해 나감”이라는 제목을 가진 4막 구조로 구성하였다.

예배 순서에 나오는 괄호 속에 있는 문장들은 예배 인도자만을 위한 부분이니, 회중과 함께 보는 순서지에는 인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이탤릭체로 된 문장들은 상황이나 행동지시를 알리는 지문과 같은 것인데, 괄호 속에 이탤릭체로 된 문장들이 있다면 그것들 역시 예배인도자만을 위한 부분이니, 회중과 함께 보는 순서지에 인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1) 1막: 주님의 집으로 모임


(1) 예배를 위한 알림

예배위원 중 한 사람이 예배의 취지와 의의, 그리고 예배 순서 중 회중이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과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번졌던 일제치하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을 기리며 전국의 교회와 재외한인교회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기로 한 주일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주일예배에서 기념하는 것은 3.1운동 전.후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분들의 다수가 신실한 기독교인들이었으며, 전국의 교회가 3.1운동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둡던 시대였지만 함께 말씀을 읽고 찬양하며, 한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해방된 나라와 민족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서 우리는 믿음의 선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펼치셨는지를 듣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 민족이 받은 소명이 무엇인지 듣고자 합니다. 입례송과 함께 예배위원이 들어올 때 모두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하는 세 개의 초가 켜질 때에 모두 정숙한 마음으로 예배의 시작을 기다립시다.

(2) 입례송/ <피난처 있으니(70장)>

이 입례송은 예배의 순서를 맡은 자들이 등장하는 시간이기에 아직 본격적으로 예배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 예배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되었지만, 찬양대원과 예배인도자를 비롯한 순서를 맡은이들이 함께 등장할 때에 웅장하고 역동적인 예배를 연출할 수 있다. 기독교 예배전통은 특별한 예배일수록 입장행렬의 순서를 넣었다. 찬양대원들이 찬송가 70장을 부르며 들어올 때, 회중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입례송에 맞춰 예배인도자, 설교자, 기도 맡은 자, 성경봉독자 등이 등장한다. 그 뒤로 십자가, 성경, 찬송가, 태극기, 무궁화 등의 3.1 운동 상징물을 든 사람들도 함께 등장하여 지정된 위치에 상징물을 두고 회중석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십자가, 촛불을 든 사람, 성경, 찬송, 상징물을 나르는 사람, 찬양대, 예배인도자, 설교자 순으로 입장한다. 찬양대가 먼저 입장하여 입례송을 부르기 시작하면 그때 나머지 순서 맡은 자들이 입장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무궁화와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항일운동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상징들이다. 민족 지도자인 남궁 억 장로는 한일합방 이후 관직을 떠나 여학생 교육에 온 힘을 기울였는데, 그 때 여학생들로 하여금 무궁화로 덮인 한반도를 수놓도록 하여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려 하였다. 이번 3.1운동 100주년 기념 공동예배를 드릴 때는 무궁화 꽃이 필 계절이 아니기에 실물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역교회들이 연합하여 단체로 조화를 구입한다면 조달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만일 조화도 구하지 못했다면, 종이공예 방식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며, PPT 화면을 통해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무궁화는 성경에 나오는 샤론의 꼿으로 이해되면서 기독교 신앙과 애국심을 연결하는 좋은 매개가 되기도 하였다.

태극기는 규격에 따라 만들어진 것을 구입할 수도 있겠지만, 광목천에 태극기 모양을 그린 후에 학생들이 함께 색칠한 태극기라면 특별한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태극기는 1882년 조선의 왕인 고종이 직접 제작과정에 참여하여 만든 것이다. 1882년 10월 2일자 도쿄 일간신문인 《시사신보》는 고종이 태극기의 직접적인 도안자라고 보도한다. 그리고 1883년 3월 6일, 태극기가 정식으로 조선국기가 되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었을 때에도 고종은 기존의 태극기를 그대로 국기로 사용하였다. 태극기의 깃봉은 무궁화이다.

성경과 찬송가를 3.1운동을 기념하는 기독교 상징물로 정한 것은 한국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성경과 찬송이 신앙과 애국심을 키우는 가장 강력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소개될 설교본문과 찬송에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일제강점기 기독교인들의 항일정신과 순국정신이 열심히 성경을 읽고 힘차게 찬송을 부르면서 지속될 수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입례찬송으로 선곡된 70장 ‘피난처 있으니’는 1895년 『찬셩시』에 처음으로 실렸고, 최초의 장·감 연합찬송가인 1908년 『찬숑가』 206장에 수록되었으며, 두 번째 연합찬송가인 1931년 『신정찬송가』 210장, 장로교 단독의 『신편찬송가』 206장에도 실린다. 영국 국가의 곡조를 사용했기에 처음에는 일본의 허락 하에 학교에서 서양음악 교과서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사는 원곡 가사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작자미상의 한국인이 쓴 것으로, 시편 46:13 성구에 기초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며 힘이시고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는 고백이 담긴 찬송이다. 구한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때에, 누군가 이 본문에 영감을 받아 작사한 것이다.

서양음악 교과서로도 사용된 이 찬송은 학생들에게 큰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고, 핍박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 열심히 불렀다고 한다. 세상의 창검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힘이 만유의 주시요,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주님의 목소리 한 번에 그 모든 것들이 망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은 이 곡을 금지 찬송가 목록에 넣고 먹으로 전면을 지우도록 했다. 외워서 불렀던 사람들은 잡아다 온갖 고문을 가하였다.

실제로 1942년 1월 20일 장로교 종교교육부의 「신편찬송가 정사사용 주지의 건」 공시에 따르면, 이 곡은 일본이 곡 전체를 부를 수 없다고 금한 『신편찬송가』의 총 12장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이 찬송은 1941년 6월, 『신정찬송가』에 대한 감리교 정정공고의 삭제목록 총 21장 안에도 포함되었다. 이 곡은 1983년 『통일찬송가』에도 실렸다가 2006년 『21세기 찬송가』에도 실렸다. 한국 개신교 초기부터 지금까지 민족의 근대사와 함께 전해진 생명력 있는 찬송이다. 당시 많은 찬송들이 일종의 항일가의 역할을 했는데, 이 곡 역시 선민사상이 강하다는 이유와 천황만 섬겨야하는 일제에게 그보다 더 높은 존재를 찬양하는 색채가 짙다는 이유로 금지된 것이다.

(3) 타종

타종 순서는 선택적이며, 힘차게 예배의 시작을 알릴 수 있는 다른 타악기도 좋다. 일제 강점기시대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예배를 알리는 소리를 넘어 또 다른 의미를 갖기도 했다. 『신편찬송가』 395장 “종소리 크게 울려라”(이곡은 『통일찬송가』 297장과 현재의 『21세기 찬송가』 554장에 4절까지만 전해진다)는 후에 일제로부터 금지되었다. 이 곡은 새해를 맞이하는 찬송이지만, 4,5,6절에서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맞이하기 위해 종을 치자는 주장이 강하게 드러난다. 전쟁을 반대하는 이 찬송의 사상이 당시 일제의 국가체제에 맞지 않아 금지된 것으로 여겨진다. 종소리는 평화를 상징하는 소리이다. 우리의 전통에서도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 종을 크게 치는 전통이 있다. 실물의 종을 사용할 수 있고, 녹음된 종소리도 대안이 될 수 있다.


(4) 예배로 부름 / (시편 124: 8)

예배로 부름을 시작할 때 먼저 짧은 성경구절을 읽고 시작할 수 있는데, 이는 개혁전통의 특징이기도 하다. 칼빈은 시편 124편 8절 읽기를 선호했는데,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온전히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고백이다.

예배로 부름은 인도자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회중과 함께 화답하는 형식으로 준비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고대 기독교 문헌 속에서도 발견되는데, 회중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위한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인도자와 회중의 부분을 선명하게 표시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교회는 <예배를 위한 알림> 시간에 회중이 맡은 부분을 알려주고 필요하다면 간단히 연습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배의 시작이 엇박자가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이런 화답의 형식이 익숙하지 않은 회중은 인도자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다.

(5) 시작 기도

예배로 부름이 끝나면 인도자는 바로 시작 기도를 한다. 이 기도는 “오늘의 기도”라고도 불리는데, 이 기도를 통해 회중들은 오늘 예배의 주제를 알 수 있게 된다. 시작기도는 길지 않아야 하며, 별도의 회개기도가 이어지기 때문에 이 기도 속에 회개기도 등이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의 드라마적 구성을 갖고 전개되어야 참여자들에게 감동적인 구원의 이야기로 경험될 수 있다. 따라서 불필요한 반복을 피하고 이야기적 구조를 갖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작기도의 예는 다음과 같다.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 우리 민족에게 베푸신 특별한 사랑에 큰 기쁨으로 나아옵니다. 주님을 모르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주님의 복음을 전해주시고, 민족의 가장 어두웠던 일제 강점시기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견뎌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방에 비추는 선교의 나라로 사용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빼앗긴 나라와 민족의 주권을 되찾고자 한반도 전역에서 자유와 해방을 외쳤던 100년 전 그 날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주님께 드렸던 기도와 찬송들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이 예배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예배드리는 모든 자들이 나라와 민족으로 인해 더욱 감사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더 널리 전하는 증인이 되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찬송 / 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세 (25장)

우리의 자랑과 면류관들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만 면류관을 드린다는 겸손의 찬양이 예배의 첫 찬송으로 적절하다. 이 찬송은 감리교 찬송가 1931년 『신정찬송가』 8장에 처음 수록되었다. 장로교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첫 번째 연합찬송가인 1908년 『찬숑가』의 증보판(1934) 267장에 이 곡을 실었다가, 1년 후 발행된 장로교만의 찬송가 『신편찬송가』 33장에도 수록하였다. 이 곡은 외국 찬송의 번역이었지만, 장로교인과 감리교인들은 물론 기독교 학교의 젊은 학생들에게까지 널리 불렸던 찬송이다. 이 곡은 3.1운동 당시에는 불리지 않았지만,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본격화되던 시기부터 교회와 기독교 학교에서 이 세상의 참 주권자는 하나님 한 분임을 노래하며 항일가의 역할을 해왔다.

이 곡이 ‘3.1운동 100주년 기념 함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 선정된 이유는 일제치하에서 금지된 찬송들 중 하나였다는 역사적 의의 때문이다. 이 곡은 외국 찬송을 번역한 것인데, 1931년 『신정찬송가』에서부터 “면류관 가지고”로 번역되었으나 탄압이 더 심해졌던 시기인 1942에 발행한 『신편찬송가』에는 “보배합 가지고”로 수정된 가사가 실렸는데, 이것이 일제의 종교탄압의 실상을 말해주는 한 단면이다. 그 후 1983년 『통일찬송가』에서 다시 “면류관 가지고”로 불렸고, 현재 우리가 사용 중인 2006년 『21세기 찬송가』에서부터 “면류관 벗어서”로 수정되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4:10-11을 반영하는 가사로써 스물네 장로들이 자신들의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놓으며 주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7) 참회의 기도

위에서 언급한 <독립단 통고문>에 제시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월요일은 이사야 10장, 화요일은 예레미야 12장, 수요일은 신명기 28장, 목요일은 야고보서 5장, 금요일은 이사야 59장, 토요일은 로마서 8장. 이스라엘의 멸망과 구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고난을 이해하려고 했다.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말씀을 통해 반복적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3.1운동 참여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것으로,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순서지에는 짧게 화답하는 회개기도를 실었지만, 이것은 성찬성례전 등으로 예배가 길어질 경우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된다면, 별지에 첨부된 참회기도를 이용하여 보다 충분히 기도하는 것도 삼일절 정신을 바로 세우는데 유익할 것이다.

제2부 예배자료 제11장 회개의 기도문은 회중과 함께 기도하는 연도기도(litany)의 형식으로 구성하였으나, 교회의 형편에 따라 내용을 재구성하여 몇몇 기도인도자들에 의해 진행될 수도 있다. 제공되는 기도문은 화요일과 수요일의 본문인 예레미야 12장, 신명기 28장을 반영한 회개 기도문이다. 금요일 본문인 이사야 59장은 <참회기도>에서 부르는 말과 <용서의 말씀>에 반영되었다. ‘제2부 예배자료 제11장 회개의 기도문’에 참회기도의 내용이 비교적 길게 구성된 것은 3.1 운동 당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세대들을 위해 역사적 정황들을 구체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기도인도자가 3.1 운동 당시의 역사적 정황들을 상기하며 기도하면, 회중들은 기억하지 못했음을 회개하는 형식이 반복된다. 이 참회의 기도를 시작할 때 다음과 같이 참회기도로 부르는 말을 할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민족의 고난과 역경은 정의와 공의가 부족한 삶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민족도 나라를 잃기 전,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세도정치와 당파싸움으로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일신만 돌아볼 때에,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국력은 약화되었으며 공의를 행하는 자들이 옥에 갇히는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은 것은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포학과 거짓을 마음에 품고 정직과 성실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강포한 자의 죄악은 주께서 심판하시겠으나, 우리의 죄 역시 주께서 은밀히 살피십니다. 슬피 울어도 구원은 멀지만, 외쳐 회개하고 죄를 떠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다시 임하시고 우리의 구원이 되실 것입니다(이사야 59:9-20). 다함께 우리의 죄를 고백합시다.

(8) 용서의 말씀

참회의 기도 후에는 반드시 이 순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개신교 예배신학의 유산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고해성사에서 이뤄지는 일이지만 개혁자들은 예배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려줌으로써 용서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순서를 예배에서 회복해야 한다. 용서의 말씀은 성경 여러 곳에서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독립단 통고문”의 금요일 말씀인 이사야 59장에서 발췌하였다.

여기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떠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59장 21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평화의 인사

인도자는 회중들에게 “그리스도의 평화” 혹은 “예수님의 평화”라는 말로 서로 인사하도록 권한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자들은 반드시 주변 사람들과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것을 예배 순서에 넣어서 그러한 예배신학적 이해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화해의 시간일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공동체와도 평화를 이루는 수평적인 화해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 때 반드시 ‘평화의 인사’라는 소제목 아래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이 순서를 ‘성도의 교제’라는 제목 아래 ‘반갑습니다!’ 등의 세속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인사말로는 온전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 모든 죄악과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는 평화뿐이다. 인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화해와 평화의 능력입니다. 서로서로에게 “그리스도의 평화” 또는 “예수님의 평화”라는 말을 전하며 성도의 인사를 나눕시다.

(10) 영광송 /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84장)

이 땅에서 평화의 역사가 이뤄질 때, 비로소 하늘에 계신 주님께 진정한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광송은 바로 이 자리에 오게 된다. 영광송에는 성부에게 돌리는 영광송과 삼위 하나님 모두에게 돌리는 대영광송이 있다. 여기서 선정한 찬송 84장은 전형적인 영광송의 모습은 아니다. 그것은 서방교회의 영광송이 길이가 짧고 가사도 간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방교회의 영광송은 그 길이와 가사에서 다양성을 보이기에, 여기서 영광송으로 선정된 84장은 예배신학적으로 충분히 영광송이 될 수 있으며, 특히 대영광송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대영광송은 기본적으로 밝은 분위기이다. 그것은 누가복음 2장 14절에서 성탄일에 목자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양하는 천사들을 목격한 것에서 나온 노래이다. 대영광송은 주님의 인류구원의 업적에 대한 찬양이고, 제2위격인 예수님의 영광과 나아가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의 영광에 대한 찬양이다. 이 찬송가 84장이 지칭하는 ‘영광의 주’는 주로 성자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화평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그러므로 용서의 선언과 평화의 인사 후에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마땅하다. 만일 전통적인 의미의 영광송을 원하면, 찬송가 1~7장까지의 찬송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예배학적 구성으로 선택한 이 찬송 역시 항일운동과 관련된 찬송이다. 1931년 『신정찬송가』 193장에 처음 채택되었으나 작사가와 작곡가가 미상으로 알려져 표기되지 못했고, 1983년 『통일찬송가』를 거쳐 현재의 『21세기 찬송가』에까지 실렸으나 여전히 작사가와 작곡가 표기가 없다. 최근에야 작곡가와 작사가가 밝혀졌는데, 원래 찬송가사는 아이작 왓츠의 가사 「오 주님의 법을 얼마나 사모하는지」였다. 따라서 이 찬송의 작사가는 미상의 한국인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찬송은 일제의 문화정치가 끝나가고 민족말살정책이 시작되던 암흑기에 발행된 『신정찬송가』에 실렸는데, 캄캄한 온 세상은 그 시대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미상의 작사가는 이 가사를 통해 칠흑 같이 어두운 시대를 살던 한국 기독교인들도 캄캄한 밤에 목자들이 보았던 하늘로부터 비추던 그 빛을 바라보길 원했던 것이다.

이 찬송은 금지된 찬송 목록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수정해야 할 가사 자구를 포함한 찬송이었다. 일제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왕, 만왕의 왕, 왕의 왕, 대왕, 만유의 주, 임금, 만국의 주, 영광의 주 등의 통치개념으로 칭하는 것이 천황의 현인신성에 저촉된다고 하여 금하였고, 단순히 종교적 의미의 주(主)만 허용되었다. 그러니 이 찬송에서 ‘영광의 주’라는 단어를 모두 먹물로 지웠다면 무엇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아마도 암기하지 않고서는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일본의 통치가 더 잔혹해졌어도 한국 기독교인들은 하늘로부터 비추는 참 빛 예수님을 바라보며 견딜 수 있었고 소망을 노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광의 주를 마음껏 부를 수 있게 된 지금, 더 큰 목소리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자!



2) 2막: 말씀을 들음

3.1운동 100주년 기념 예배를 위한 설교 본문은 위에서 소개한 <독립단 통고문>에 제시된 본문들 중에서 선택하여 성서정과 방식으로 재배열하였다.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우리 민족의 고난을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동일시하면서, 구약의 말씀을 통해 민족의 위기에 대한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으려하였고, 서신서의 소망의 말씀을 통해 환란을 이길 힘을 얻으려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예배를 위한 구약본문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에 대해 하나님의 징벌이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월요일의 본문 이사야 10장이고, 서신서는 <독립단 통고문>의 결론에 해당하는 토요일의 본문 로마서 8장이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이 통고문이 제시한 성경본문에는 복음서가 없기에, 공동성서정과에서 이사야 10장과 연결된 복음서를 선택하였는데 바로 요한복음 7장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성서정과를 재구성하였더니 메시지의 일관성이 있을 뿐 아니라, 3.1 운동의 기독교 정신과도 잘 연결되었다.

만일 3개의 본문 중에 2개 정도만 택하여 읽는다고 한다면, 일반적으로는 복음서를 선택한 후 남은 1개의 본문을 구약이나 서신서 중에 선택하지만, 이번의 경우 본문이 3.1운동 직후에 기독교인들이 읽었던 성경본문에 중점을 두었기에 구약과 서신서의 말씀을 우선으로 읽기를 권장한다. 그러나 시간적인 이유에서라면, 3개의 본문 모두를 읽되 본문의 길이를 적절하게 줄이는 방식이 더 좋을 것이다. 또한 가능한 여러 사람이 성경본문을 읽도록 하여 회중의 참여를 높이는 것이 좋다.

(1) 성령의 조명을 위한 기도

이것은 종교개혁자 마틴 부처와 칼빈에 의해 완성된 개혁전통의 유산이지만, 그 신학적 우수성으로 인해 개혁전통을 넘어 많은 교회들이 예배에서 이 순서를 실행하고 있다. 설교는 물론 성경말씀을 읽을 때부터 성령님께서 말씀을 읽는 자, 설교를 전하는 자, 말씀을 듣는 자들의 생각을 비춰주지 않으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는 고백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인간은 겸허히 설 수 밖에 없다는 겸손의 기도이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성경을 읽고 주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기쁨으로 들을 수 있도록 주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주옵소서.

(2) 첫 번째 말씀읽기 (구약) 이사야 10:12-21

성경 읽기는 에큐메니컬 방식을 따른다. 첫 번째 말씀읽기는 구약의 본문으로, <독립단 통고문>의 월요일 본문 이사야 10장에서 발췌한 구절이다. 성경봉독자(낭독자)는 본문을 읽기 전에 이렇게 말하고 읽을 수 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약의 말씀은 이사야 10장 12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다 읽은 후에는 성경봉독자와 회중이 다음과 같이 화답할 수 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인도자)

◎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회중)

그러나 화답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회중들을 위해 성경본문을 읽은 후 봉독자만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회중들은 자연스럽게 아멘이라고 화답할 것이다.

(3) 시편교독/ 교독문 99번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독문의 바른 명칭은 ‘성시교독’ 혹 ‘시편교독’이다. 이것은 첫 번째 성경 읽기에 대한 응답으로서 구약 본문 바로 뒤에 온다. 이것은 고대 교회부터 이어져온 오랜 전통이며, 이 전통을 잘 계승한 교파나 교단에서는 지금까지도 이 순서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 교회들은 이런 전통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있다. 이것은 부흥회 중심의 예배 형식이 도입되면서 시편교독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동성서정과에 따르면, 구약본문 이사야 10: 12-21절에 상응하는 시편의 말씀은 시편 119: 169-176이다. 이 본문을 함께 교독하거나 노래로 부를 수 있다. 노래로 부를 경우에 독창이나 중창으로 부르거나, 선창자와 회중이 함께 교창으로 불러도 좋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은 찬송가에 포함된 교독문이라는 곳에 발췌된 시편만 교독하고 있기에 폭넓은 시편교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위의 본문 역시 교독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함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 교독문 99번을 선택했는데, 이는 ‘나라사랑’이라는 소제목으로 시편에서 발췌한 것이다. 교독문 99-103번까지 모두 5개의 교독문이 ‘나라사랑’ 교독문에 포함되는데, 한국 개신교의 독특한 예배전통이다. 현재 찬송가에 첨부된 ‘교독문’은 여러 면에서 수정되고 보완될 부분이 있지만, 이 안에 ‘나라사랑’이라는 주제로 5개의 교독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랑할 만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애국의 영성 위에 발전하였다.

(4) 두 번째 말씀 읽기 (서신서) 로마서 8:1-11

이 본문은 독립단 통고문이 지시한 토요일 성경읽기 본문인 로마서 8장에서 발췌한 것이다. 두 번째 말씀읽기 방식은 첫 번째 말씀 읽기 방식을 따르면 된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서신서의 말씀은... .” 본문을 읽은 후에도 첫 번째 말씀 읽기와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한다.

(5) 찬양

이것은 주로 찬양대 찬양을 일컫는다. 이 찬양은 그날의 설교 본문을 반영하는 가사로 구성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에게는 성경본문을 모두 읽은 후 설교 전에 찬양을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복음서읽기 앞에 오며 세계교회의 대부분이 이 전통을 지키고 있다.

설교 본문을 반영하는 찬양이라는 점에서 이번 찬양대 찬양을 위해 특별 찬송이 작사되고 작곡되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를 위한 찬송’이라는 부제를 갖고 「넉넉히 이기리라」는 제목의 찬송은 교회음악의 인적·물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작은 교회들도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작곡되었다. 영남신학대학교 예배학 교수 김명실이 3개의 설교 본문들과 3.1운동의 상황을 반영하여 작사했고,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학과 작곡전공 교수 김신웅이 작곡을 하였다. 제2부 예배자료 제13장과 제15장에 ‘넉넉히 이기리라 - 회중 찬송(4성부)’과 ‘넉넉히 이기라라 – 찬양대용(합창 & 피아노반주)이 각각 담여있다. 또한 음원을 들을 수 있도록 QR코드를 담아 놓았다.

(6) 세 번째 말씀 읽기 (복음서) 요한복음 7:25-36

복음서의 말씀을 읽을 때도 위의 말씀읽기 순서와 유사하게 진행을 한다: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복음서의 말씀은... .” 복음서읽기는 세 번째 말씀 읽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구약과 서신서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복음서의 말씀이 우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 때문에, 전통을 중시하는 교파들은 복음서의 말씀을 읽기 전에 복음서를 들고 행진하는 순서가 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세계 교회의 다수가 예배 중에 복음서 행진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도 복음서를 특별한 위치에 놓는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7) 설교

위의 본문들에 기초한 설교 2편과 3.1절 기념예배(58주년, 61주년) 설교 2편을 제2부 제10장에 수록하였다.

(8) 응답의 찬송/ 어둔 밤 마음에 잠겨(582)

이 찬송은 본래 1965년 「기독교장로회 제 50회 총회 기념가」로 만들어져서 총회 기간에 불렀던 노래이다. 당시 총회장이던 한신대학장 김재준 목사가 작사하고 동대학의 나운영 교수가 작곡하였다. 그런데 1967년 개편찬송가 편집 과정에서 이 곡이 삽입되며, 이동훈 곡으로 바뀌었다. 개편찬송가에 실릴 때까지는 2절뿐이었지만, 문익환 목사에 의해 3절이 첨가된 것(1976)이 1983년 통일찬송가에 실렸다.

이 찬송은 해방 이후에 만들어진 찬송임에도 불구하고 3.1운동 기념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강대국들의 신탁통치에 들어가고 이념 갈등이 깊어지면서 3.1운동을 기념할 여력이 없었다. 전해지는 최초의 3.1운동 기념예배는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창천감리교회에서의 50주년기념 주일예배(1969)였다. 그 후 1973년 3월 1일, 창천교회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교파를 초월한 1천여 교회들에게 3월 1일 정오에 창천감리교회에서 54주년 기념예배를 드린다는 초청장을 보냈다. 최초의 삼일절 연합기념예배였던 것이다. 이 때 선정된 찬송 중의 하나가 바로 『개편찬송가』 212장에 실렸던 이 곡이었다.

이 날에 약 500여명이 모여 손에 태극기를 들고 감격 속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3.1운동의 민족정신을 계승하고 순국선열들의 뜻을 받들며,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을 대비하고 다음 세대들에게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의 길을 상속하려는 취지를 밝히며, 우리 작사가와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와 민족의 역사적 사명이 담긴 이 찬송을 불렀던 것이다.

(9) 증언과 신앙고백

① 그날 그 사람들

105인 사건 등 3.1운동 전후로 활약했던 기독교 민족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활동과 그 영향을 간단히 소개하거나, 1인 독백 드라마나 그들에 관한 짧은 동영상 등을 보여줄 수 있다. 3.1운동이 사실상 기독교의 역동적인 신앙과 교회의 조직이 없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기에 민족지도자들이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속에서 신앙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은 많은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혹 3.1운동과 관련된 역사를 지닌 교회라면 그 교회의 역사를 들려주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3.1절 노래’ 역시 최초의 연합 기념예배였던 54주년 기념예배(1973)에서 불리면서 기독교예배에서도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3·1절 노래’는 1946년에 문교부의 의뢰에 의해 정인보가 작사하고 당시 숙명여대 음악강사였던 박태현이 작곡했다. 그러나 제한적인 시간으로 인해 ‘3.1절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담스러울 경우, ‘그날 그 사람들’을 진행할 때 ‘3.1절 노래’ 음원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며, 만일 성찬성례전 등이 없을 경우에는 학생합창단들에 의해 이 노래를 부르거나 아래의 짧은 동영상을 상영할 수도 있다.


② 우리의 신앙고백

역사적으로 신앙고백의 자리는 말씀을 들은 후에 오며, 개혁전통도 이것을 따른다. 이것은 말씀의 예전과 성례전 사이에 놓여 다리 역할을 한다. 함께 말씀을 들은 신앙공동체가 한 목소리로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응답하는 시간이며, 세례를 받기 전에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성찬에 임하기 전에 동일한 고백을 하는 거룩한 신앙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모두 공식적인 예배에서 사용하는 신경은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니케아신경’이지만, 서방교회는 세례성례전이 있을 경우 ‘사도신경’을 대신 사용하는 전통을 갖게 되었다. 한 때 로마 가톨릭교회가 니케아신경보다 사도신경을 더 선호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개신교 교회들에게 하나의 유산이 되었다. 현재 서방전통에 속한 교회들도 니케아신경을 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세례성례전이 있을 경우만은 사도신경을 사용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은 예배의 앞부분, 즉 1막에 위치시켜 왔으나, 20세기 예배회복운동을 통해 한국교회에서도 ‘말씀 후 신앙고백’ 혹 ‘성례전 전의 신앙고백’의 역사적 전통을 회복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날 그 사람들’의 순서가 끝나면 인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신앙고백으로 이끌 것이다: “이제 말씀을 들었고, 믿음의 선열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살았는지 들었으니, 우리도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섭시다.”

③ 유관순 노래

유관순 노래 역시 3.1절 54주년예배에서 불림으로써 전통이 되었다.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면...”은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청소년의 애국심과 국가관 고취를 위해 문교부가 의뢰하여 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으로 만들어진 노래이다. 그러나 이 곡 이전에도 모두 3곡의 유관순 누나에 관한 노래들이 있었는데, 그 시초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펴기 시작한 1930년대에 명창에 의해 불린 창작 판소리였으니 일제 강점기부터 유관순 열사에 대한 노래를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려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두 곡은 1947년, 1948년도에 만들어졌고 1948년도에 만들어진 곡은 교과서에도 실렸으나 작곡가의 월북으로 인해 금지되었다.

이처럼 유관순 열사는 다음세대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데 훌륭한 모델이다. 그 어떤 민족지도자의 업적보다 결코 낮게 평가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나라와 민족의 역사에서 길이 기억되어야할 인물이다. 조선총독부로부터 휴교령이 떨어지자 고향 천안으로 내려온 유관순은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던 중 교도소 내에서 1920년 9월 28일 사망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열사가 있었던 방의 내부를 본다면 16,17세 소녀가 어떻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모든 회유를 거부하고 참혹한 고문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놀라게 되며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부모 모두 천안에서 만세운동을 하다가 일본군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유관순 열사는 영원히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누나로 남으면 좋겠다. 비슷한 나이의 학생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이야기보다 더 귀감이 될 이야기가 있겠는가? 유관순 열사를 누나로 부른 두 시인, 이 노래의 작사자 강소천과 “3월 1일의 하늘”을 지은 박두진으로 인해, 유관순 열사는 우리 국민들의 영원한 누나가 되었다.

한편 유관순 열사는 단지 이화학당을 다녔을 뿐 유교집안의 교육을 통해 민족정신을 계승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화박물관에 따르면 유관순 열사는 충남 집근처에 있는 감리교회에 다닐 때에 성경을 쉽게 외웠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유관순 열사가 1916년부터 이화학당으로 편입하여 보통학교와 고등부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감리교 충청도 공주교구의 선교사의 추천으로 가능했다고 한다. 따라서 유관순 열사의 강한 나라사랑과 모진 고문을 이겨냈던 힘은 그녀가 암송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유관순의 노래는 이러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더 힘차게 불러야할 것이다. 아동부와 중등부가 함께 합창으로 불러도 좋고, 음원을 틀어놓고 군무로 3.1 운동과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10) 독립선언서 낭독

제2부 예배자료 제18장 독립선언서 모음에 수록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제작한 「쉽고 바르게 읽는 독립선언서」는 그동안 고어체로 인해 이해하기 어려웠던 독립선언서를 초등학교 5학년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게 읽고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973년 3월 1일, 54주년 기념예배이자 최초의 연합예배였던 창천감리교회의 예배에서도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는데, 이것이 일반 삼일절 기념식만 아니라 기독교예배에서도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이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지만 자칫 예배시간이 길어질 수 있기에 예배시작 전, 즉 입례송 시작 전에 읽히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독립선언서 낭독에 필요한 시간만큼 조금 일찍 모인다고 공지한 후에, 입례송 시작 전에 남녀노소 다양한 구성원들에 의해 드라마처럼 낭독된다면 예배의 시작부터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의 색채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보다 집중된 상태에서 예배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11) 나라를 위한 공동기도

한국교회가 모두 동일한 기도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화해와 사랑의 역사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3) 3막: 성찬성례전에 참여

‘제2부 예배자료 제12장 성찬성례전’에 삼일절을 위한 성찬성례전 예문이 실렸다: 1)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성찬형식으로 “회중과 화답하는 형식”의 집례자용과 2) “회중과 화답하는 형식”의 회중용(인쇄용), 3) 성찬성례전의 신학적 요소를 갖추되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 익숙한 간략한 성찬형식으로 “집례자 단독 진행의 형식”의 집례자용이 첨부되었다.

예문을 보면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성찬성례전이 시간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성찬례 자체가 길기 때문이 아니라, 배찬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특별히 떡과 포도주를 따로 따로 회중석까지 전달해주는 대부분의 한국교회의 방식이 시간적인 면에서나 신학적인 면에서 지양해야할 전통 아닌 전통이다. 역동성이 없어 자칫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20세기 예배회복운동에서는 주님의 식탁이 회중을 향하도록 그 위치를 재구성하였는데, 이는 회중들이 주님의 식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초기 기독교 성찬성례전의 모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시간에 주님의 식탁으로 나아와 떡과 포도주를 받는 것은 매우 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출입이 불편한 장의자로 인해 배찬 위원들이 회중석까지 전달하게 될 때에, 떡과 포도주를 동시에 건네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번에 첨부한 두 형식 모두, 떡과 포도주에 대한 감사를 한 후에 배찬을 하기에 한꺼번에 건네줄 수 있도록 하였다.

(1) 봉헌과 기도 (봉헌 특송)

예배에 성찬성례전이 포함될 경우, 봉헌은 제3막의 시작부분에 해당한다. 봉헌시간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헌금과 함께 그 날 성찬을 위해 사용할 떡과 포도주도 함께 드린다. 모두 성찬대 위에 올려 헌금기도를 하거나, 성찬대 옆에 준비한 별도의 헌금함 탁자 위에 헌금함을 놓고 기도할 수도 있다. 헌금함이 성찬대 위에 계속 올려져있다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성찬성례전이 시작되기 전에 헌금함은 별도의 헌금함 탁자나 성찬대 밑 서랍 속에 넣어두고 떡과 포도주만 보이도록 한다.

20세기 예배회복운동에서는 이 떡과 포도주를 드리는 행위를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성찬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만나가 아니라, 우리의 수고로 얻어진 소산물임을 밝히고 이것이 성찬기도를 통해 주님의 몸과 피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성찬을 마술적으로 이해시키려고 했던 것은 중세로 충분하다. 우리의 소산물로부터 온 물질들임을 강조한다하여 그 가치나 격하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와 또한 우리의 노동의 삶의 현장에 늘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에 감사함으로 주님께 가지고 나오는 것이며, 우리의 감사를 들으시고 주님이 받으신 후 그것을 성례전을 위한 거룩한 물질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봉헌하는 동안 봉헌송을 특별찬송이나 회중찬송으로 부를 수 있다.

(2) 성찬으로 초대와 제정의 말씀

전통적인 성찬감사기도에는 제정사(제정의 말씀)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개혁전통에서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중간에 제정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 성찬감사기도의 흐름을 깨는 것이라는 생각과 성찬이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성례전임을 강조하기 위해 제정사를 성찬감사기도 밖으로 뺀 구조를 선호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성찬감사기도문 속에 포함하기도 한다.

혹 떡을 떼는 의례적 행위에서 제정사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제정사가 뒤에 오기 때문에 추천되는 형태는 아니다. 하지만 몇 몇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은 성찬감사기도 앞에서 제정의 말씀을 들려주며 미리 떡을 떼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성찬감사기도도 하지 않았는데 (즉, 아직 주님의 몸과 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했는데) 주님의 몸을 찢는 것이기에, 의례의 논리적 흐름이 맞지 않는다. 성찬초대 뒤에 (떡은 떼지 않고) 제정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 의례적으로 가장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에 첨부한 두 가지 형식의 성찬성례전 예문도 이러한 구조를 따라 준비했다.

(3) 성찬 감사기도

‘성찬 감사기도(the eucharist prayer)’란 주기도문처럼 하나의 고유명사에 해당하며, ‘성찬 대감사기도(the Great Thanksgiving)’라고도 부른다. 이 속에 반드시 갖춰야 할 구성요소들이 있는데, 기독교가 동방과 서방 교회로 분열되고 오랜 시간 교류가 없었을 때도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성찬감사기도’를 그대로 유지해왔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중세의 성찬의 실행이 심하게 왜곡되어 종교개혁자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지만, 고유한 성찬감사기도문을 동·서방교회가 2천년 동안 큰 차이 없이 지켜왔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물론 16세기 종교개혁 시기를 거치면서 개혁자들에 의해 성찬 감사기도의 많은 부분이 버려졌던 시기도 있었으나, 20세기 예배회복운동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의 왜곡된 신학과 실행은 비판하되 기독교의 고유한 유산은 예배 속에서 현대적 감각에 맞게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개혁전통들이 늘어나면서 ‘성찬 감사기도’를 다시 복원한 교단들이 많아지고 있다.

‘제2부 예배자료 제12장 성찬성례전’에 있는 회중과 화답하는 형식은 고대 히폴리투스의 성찬기도문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런 형식은 중세와 20세기를 거치면서 더 발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부분은 아직도 목회자(사제)만의 영역으로 간주되기에, 주의해야 한다.

첫 번째 형식의 회중용(인쇄용)에서 목회자의 기도부분은 시작과 끝부분만 인쇄하고, 중간은 생략부호로 표시하여 회중들로 하여금 기도를 듣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회중들은 목회자의 기도의 끝부분을 통해 자신들이 시작해야할 시점을 알 수 있게 된다. 회중과 함께 하는 방식이 아직 낯선 교회들은, 집례자 단독으로 진행하는 형식을 선택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4) 떡을 뗌

떡을 떼는 것은 주님의 몸이 찢긴다는 은유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미리 잘라놓은 떡을 쓰지 않는 것이 성찬성례전의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떡을 떼게 되면 나누어주는 떡도 같은 종류를 주어 ‘같은 떡’에 참여하는 ‘한 몸’이라는 상징을 잘 살려낼 필요가 있다. 상업용 작은 조각의 떡이나 제과점용 빵보다는 교회에서 달지 않고 담백하게 구운 빵이 더 큰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모양이 훌륭하지 않아도 교회에서 구운 빵이 전하는 감동이 더 클 것이다. 떡을 뗄 때에 집례자의 ‘한 떡에 참여하는 우리는 한 몸’이라는 말은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별첨에 있는 예문들을 잘 활용하면 보다 성경적이고 감동적인 성찬성례전이 될 것이다.

(5) 떡과 잔을 나눔 (찬양대가 231장 찬송을 반복해서 부른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은 성찬을 받을 때, 어두운 찬송을 부르거나 배경음악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현대 성찬신학은 기독교 성찬이 주님의 “죽으신 몸”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몸”을 기념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주님의 죽음이나 희생을 전혀 기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찬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궁극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찬 감사기도’라는 말은 성찬이 죽음을 기념하며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생명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찬에 참여하면서 주님의 희생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두지 말고, 주님께서 그 희생을 통해 주시려고 하시는 화해와 평화와 생명과 기쁨과 감사에 더욱 초점을 두어야 한다.

떡과 포도주가 나누어지는 동안, 경건하지만 좀 더 밝고 힘이 있는 성찬 찬송을 부르고자 한다. 만일 회중석으로 떡과 포도주가 전달되는 경우라면 회중이 찬송 231장을 함께 부르고, 회중들이 앞으로 나와 성찬에 참여하는 경우라면 찬양대가 231장을 성찬이 끝날 때까지 반복적으로 부르고 회중들도 움직이면서 따라 부를 수 있게 한다.

이 찬송은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성찬찬송들 중의 한 곡이며 2006년 『21세기 찬송가』에 실려 한국 기독교에도 소개되었지만, 아직 지역교회들 속에서 활발하게 불리지 않고 있다. 이 찬송은 미국의 흑인노예들의 영가인데, 구전으로 내려오다 19세기 초에 악보로 옮겨지고 복음성가에 채택되어 북미와 유럽의 청년들이 애창했던 성찬영가였다. 흑인영가들은 대체로 편곡이 다양한데, 『21세기 찬송가』에 실린 것은 1990년 『미국장로교 찬송가』 513장에 편곡된 것과 동일한 것이다. 유튜브에서 다양한 편곡을 볼 수 있다.

찬양대가 회중의 움직임과 배찬의 진행과정을 살피면서 다양한 속도와 느낌으로 부른다면, 보다 감동적인 성찬례가 될 것이다. 세계 기독교인들이 사랑하는 성찬찬송을 우리도 함께 부르며 그들과 영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교통이다. 삼일절 정신은 배타적 국수주의에 기초한 애국심이 아니라, 나와 내 나라를 굳건히 세우면서 이웃과 세상을 향해서는 더욱 열어가는 정신이다.

(6) 성찬 후 감사기도

이것은 주기도문, 회개기도, 축도와 같이 성찬기도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끝난 후에 행해지는 별도의 고유한 순서이다. 주님의 식탁에 참여한 후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서지에 그 이름을 반드시 넣어서 회중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


4) 4막: 세상을 향해 나감


(1) 교회소식

(2) 애국가 및 만세삼창

현재 우리가 부르는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를 부를 수도 있겠지만, 1919년 당시에도 이미 애국가가 불리고 있었기에 당시의 곡조로 부르는 것도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부르는 가사와 동일한 가사의 애국가가 윤치호가 편집한 1907년 『찬미가』 14장에 실렸다. 애국가가 불렸다는 공식적인 첫 기록은 3.1운동이 일어나던 그 해 안창호에 의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에 가사를 삽입해서 불렀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옛 애국가 가락을 아는 세대도 적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곡조이기에 젊은이들도 따라 부르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3.1운동 기념식에서 만세삼창은 하나의 상직적인 의례가 되었다. 만세를 부르는 것이 일제문화의 잔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역사의 기록들에 의하면 고려시대에서도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조선시대에서는 만세가 아닌 천세를 외쳤는데, 이 만세를 중국의 황제에게만 사용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시대부터는 천세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가 1897년,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가인 대한제국이 탄생하면서부터 천세를 버리고 다시 만세를 마음껏 외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며 만세를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 중국, 일본의 공통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반드시 세 번만 외칠 필요는 없을 것이나 의례의 특성상 이보다 짧거나 길면 효율적이지 못할 것이다. 만일 삼창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면 만세창이라고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만세삼창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세개념은 있지만 삼창의 형식은 없다는 것이다.

만세삼창은 3.1운동 당시의 대표적인 상징행위였다. 3.1운동은 우리 민족 모두가 하나로 단결하여 총궐기한 최대의 사건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제에 항거하여 시위에 참여했던 우리의 선열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런 연유로 상해임시정부에서는 같은 해 10월 3일 개천절 기념행사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힘차게 세 번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중요한 국가의례의 전통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에도 3․1절과 광복절과 같은 국경일에서 자연스럽게 “만세삼창”이 식순에 포함된 것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창천교회 54주년 기념예배(첫 교회연합기념예배)에서도 축도 전에 만세삼창 순서를 넣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독교 의례에서도 전통이 되었다.

“대한독립 만세!”는 항일독립운동 기간에도 독립정신의 상징적인 함성이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 의사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고 청산리 전투에서 이긴 김좌진 장군과 병사들도 “대한독립 만세”를 목매어 외쳤다고 하니, 만세는 우리 민족에게 항일투쟁의 외침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한독립 만세”만 외치지는 않는다. 오늘날에는 대한민국의 번영을 기리는 만세와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은 만세를 외치는 등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위한 다양한 만세들이 외쳐지는 추세이다. 따라서 3.1운동 100주년 만세삼창에서는 연장자에 의해서 ” 대한독립만세 “라는 동일한 외침이 세 번 반복되는 옛 형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다양한 선창자들로 구성된 조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외침들을 담으면 좋겠다. 이번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를 위한 만세삼창을 제안한다면, 첫 번째 선창자는 “대한독립 만세”를, 두 번째 선창자는 “대한민국 만세”를, 마지막 선창자는 “평화통일 만세”라고 각각 선창한 후 회중들이 만세로 화답하게 하는 것이다. 회중들이 보다 설득적이고 적극적으로 만세삼창을 할 수 있는 시대를 반영하는 만세구호가 필요할 것이다.

간혹 애국가, 만세삼창, 혹은 독립선언서 낭독과 같은 삼일절의 세속적 기념행위들이 기독교예배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생각을 존중하고 예배순서에 반영하고자 할 때에, 예배의 시작 전이나 끝 후로 이런 순서들을 재배열할 수 있다.

(3) 파송 찬송 /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580장)

이 찬송은 신정찬송가(1931) 219장에 처음으로 채택된 곡으로, 이 곡 역시 일제 말기에는 금지된 찬송 중 하나였다. 1967년 개편찬송가에서는 이동훈 곡으로 바뀌었으나, 1983년 통일찬송가에서는 다시 옛날 곡으로 바뀌어 채택되었다. 외국의 곡이 한국인 작곡가의 것으로 바뀌는 의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인 일인데, 그것은 이 곡이 3.1 운동 2-3년 후에 만들어져 일제 식민지 시대를 지나며 한국 기독교인들의 영성에 큰 영향을 끼친 찬송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공부했던 남궁 억 장로는 통역관을 거쳐 토목국장을 하는 등 국가의 일을 하다가 1896년에는 독립협회에 들어가 수석총무로 일하면서 애국사상 고취에 헌신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에는 양양군수직에서 물러나 배화학당 교사로 일하며 여성교육에 몸을 담았다. 이 찬송은 원래 “봄 돌아와 밭갈 때”라는 조국 광복의 찬가로 만들어 온 교회에서 불렸던 애국찬송인데, 만들어진 시기는 1921-1922년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두 번째 연합찬송가인 1931년 신정찬송가에 실린 것이다. 두 번째 연합찬송가였지만, 아쉽게도 그 이후 장로교만의 찬송가인 1942년 신편찬송가에는 실리지 않았었다.

일제치하 어두운 시기를 지나면서 한국 기독교인들은 종말론적 영성을 짙게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찬송을 통해 그분들이 열심히 일하는 건강한 신앙의 모습을 고취시켰던 찬송임을 알 수 있다. 한국역사학자 민경배는 우리나라를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이라고 칭한 사람은 아마도 남궁 억 장로가 처음일 것으로 추측하면서, 이 곡을 부르면 삼천리 곳곳에 나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애국심에 고취되었다고 한다. 민경배는 3.1운동의 원동력은 성경을 통한 각성운동과 전국적인 교회의 조직망, 그리고 시기적인 것들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민족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선포하는 것이 그 원동력이었을 것이라 진단한다. 이 찬송을 통해 우리 강토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고, 강산을 가꾸는 것이 단순히 민족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규정하여 국가나 국토에 대한 신앙적 관점을 정립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것은 국수주의에 빠지는 애국심이 아니라, 하나님 명령을 받은 청지기 사명으로서의 애국심으로 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외국곡이지만, 가사 때문인지 곡조도 우리의 것처럼 느껴지는 찬송이다. 마지막 파송 찬송으로 선정된 곡이니 북이나 장구 등의 우리 악기로 힘차게 불러도 좋을 것이다. 희망찬 미래를 건설하러 나가는 일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기독교 예배의 끝은 헌신의 결단이다. 그리고 그 결단은 자신의 내적 결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으로 말씀과 기도로 새롭게 충전된 주님의 일군들이 청지기의 사명을 가지고 나가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예배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찬송이 ‘3.1운동 100주년 기념 함께 드리는 예배’의 파송 찬송으로 선택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곡의 항일정신만이 아니라 이 찬송은 남북한 교회가 서로 뜨겁게 부를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찬송이라고 볼 수 있다. 1983년에 발행된 『북한찬송가』는 1939년도에 발행된 신편찬송가 그대로를 현대 표기법으로 재편집하였다. 신편찬송가 초판은 1935년도에 나왔지만 한글 구철자법으로 나왔기에, 1939년도에 신철자법으로 다시 발행한 것이다. 일제로부터 금지 찬송 목록이 발표된 후에 나온 1942년 신편찬송가는 수정된 가사로 된 찬송들이 있어서, 북한은 1939년 신편찬송가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찬송가에서는 원래 신정찬송가에만 채택된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을 신편찬송가에 261장에 수록하였다. 원래 261장 찬송을 빼고 그 자리에 넣은 것인데, 이에 대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 찬송의 허무성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원래 261장은 베어드 선교사가 외국 곡조에 한글 창작을 한 것인데, 이 땅의 것들이 헛되어 천당을 사모하여 떠날 것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찬송을 대신하여, 민족의 지도자요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남궁 억 선생님이 작사한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을 넣은 것이다. 북한의 교회들이 주로 사용했던 신편찬송가에 실리지도 않았고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선정된 것은 이 곡이 비록 신편찬송가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전국의 기독교인들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던 찬송이었음을 알게 한다.

이 찬송은 1991년 8월 11일 평양 봉수교회에서 세계기도주일예배가 있었을 때 폐회 찬송이었는데, 평양 중앙방송이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찬송을 부르고 폐회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 잘 알려진 곡임을 알 수 있다. 같은 날 서울 광림교회에서도 남북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 연합예배를 드렸는데 이 찬송을 설교 후에 불렀다. 1985년 9월 22일 평양에 간 남한의 이산가족 방문단이 고려호텔의 한 모퉁이에서 분단 후 처음으로 북녘 땅에서 드린 예배에서 이 찬송을 서로 목이 메도록 불렀다고 한다. 이 찬송은 동족이 함께 뜨겁게 부를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찬송이라고 볼 수 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공동예배는 단지 과거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미래를 여는 예배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락의 나라사랑 주제의 찬송을 원한다면, 1994년 엄원용 작사, 1998년 신영순 작곡의 “주 하나님 이 나라를 지켜주시고”(581장)을 부를 수 있다.

(4) 위탁의 말씀과 축도

(5) 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