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扶餘】
만주북쪽 지역인 송화강을 중심으로 여러부족으로 구성된 한민족 고대국가
부여의 존속기간은 고조선의 후기와 삼국시대 중반에 걸친다.
부여는 고조선과 동시대에 공존했던 고대 군주국가이며 주변국이랑 별개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한국의 부여사에 대한 주요 주장 세가지
1.부여의 독창적 정체성
부여는 독자적인 정치 체계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과는 구별되는 특징이다.
부여의 서단산문화는 중국의 문화와는 구분되는 독창적 문화이다.
부여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494년까지 현재의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 북부에 걸쳐 존재했던 국가로 나중에 고구려로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특징적인 부여문화인 서단산문화:바로가기
2.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발해와의 관계
-부여는 고구려의 전신으로 여겨지며, 고구려와 문화적, 혈연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고구려와 백제는 서로 자신들이 부여의 정통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고구려는 건국시조인 주몽이 부여로부터 내려왔다고 대내외에 표방했고, 백제도 427년 북위에 보낸 외교문서에서 백제와 고구려가 모두 부여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백제 왕족의 성은 부여씨·여씨·해씨였고, 성왕 때는 국호를 부여로 고치기까지 하였다.
결론
한국의 입장에서 부여사는 독립적인 고대 국가로, 고구려와 발해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사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이 이러한 부여사를 중국의 역사로 포함시키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강한 반발이 존재합니다.
한국은 부여사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호하고, 이를 세계적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국은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