扶余国 부여국
부여국은 부여 민족이 세운 정치세력이다.
주요민족은 푸유족이며 부여국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494년까지 한반도 북부와 현재의 중국동북지방 최초의 부여국가이다.
부여국의 수도는 길림성 장춘시 농안현에 위치하였다. 부여국의 토지 면적은 약 9만 킬로미터가 넘으며 주요 도시로는 현재의 길림시, 농안현, 송원시, 환난현, 창투현 및 북한 북부가 있다.
부여의 정치체제는 군주제이고 주요 종교는 불교이다.
📍중국의 주장대로 길림시, 농안현, 송원시, 환난현, 창투현 및
북한 북부를 표기.
>중국의 부여에 관한 주요 주장 두가지
중국 학계는 부여를 중국 역사에 포함된 지방 정권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동북지역, 특히 현재의 지린성과 그 주변 지역에 부여가 존재했으며,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통치권 아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부여가 중국의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존재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중국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부여는 나라와 교류하고, 조공을 바쳤으며, 이는 부여가 중국의 영향권 내에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부여 역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세워진 국가들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부여를 중국의 고대 변방 국가가 이후 고구려에 흡수된 것으로 본다.
📌바이두의 해당 내용 관련 화면 캡쳐
↓중국의 부여 관련 서술↓
중국 교과서에서 부여 관련 서술은 거의 없고 교통로와 관련된 학습지도에는 등장하나 강역 등의 서술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한다
근년 출간된 중국 교과서 중부여에 대한 서술이 보이는 것은 2권 밖에 없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정리하면 오른쪽 표와 같다
2001년판에서는 부여는 조선 , 고구려 , 옥저 , 예 등과 같은 민족이며 이들의 거주지는 북으로는 송화강, 남으로는 한강,
서로는 요녕, 동으로는 동해를 경계로 한다. 이들의 언어와 민속, 음식 그리고 의복 등은 동일하고 경제적인 발전의 수준도 비교적 높았다.
그 외에도 중원과의 밀접한 관계, 현토군의 관할 아래 들어갔다 등의 서술이 보인다.
부여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 중국 동북지역에서 활약한 부족으로 송화강 유역에 거주 하였으며, 농업을 위주로 하였고 경제 발전 수준이 높았다. 는 내용 역시 확인된다.
이외에도 전국 시대 이래 중원과의 밀접한 관계, 한대 이후의 조공 내용 등이 서술되어 있다.
결론
중국은 부여사를 자국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를 통해, 동북지역의 고대 국가들이 중국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부여가 중국의 다민족 사회의 일환으로, 중국 역사 속에 존재했다고 해석하는 데 기초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중국 간의 역사적 해석 차이와 논쟁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