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갈의 후예 우데게인
중국의 인터넷 위키인 바이두 백과의 '발해국(渤海国)' 페이지와 여러 중국 뉴스 기사들에서는 발해가 말갈족이 주가 되어 고구려 유민과 일부와 연합하여 세워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발해의 시조인 대조영 역시 말갈족이라고 주장한다.
북송 시대 편찬된 신당서
또한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신당서(新唐書)'에 발해는 "속말말갈(말갈족의 일족)의 나라"라고 적혀 있는 것을 근거로 든다. 이를 통해 말갈족은 중국의 변방 민족이니 이들이 주가 되어 세운 나라인 발해는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발해의 경우 말고도 중국은 고대의 동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논할 때 조공-책봉 관계를 주로 논한다.
조공-책봉 관계란 여 타국이 중국에 사신과 조공을 보내고 중국이 이에 통치권을 인정해주고 해당 지역, 나라의 지도자 등을 임명하는 관계를 말한다.
중국 측은 당나라가 발해의 왕을 '홀한주도독'으로 책봉하였음을 근거로 발해가 당에 속한 지방정권이었다고 주장한다.
위의 유적지는 홍여정비(鸿胪井碑) 라고 하는 당 현종이 파견한 사신이 발해에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비석이다.
이 유물을 근거로 하여 바이두 백과에서는 "발해국(중국 동북부)이 당나라와 완전히 동등한 독립국가라는 일부 외국 학자들의 잘못된 견해를 바로잡는 비석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 측이 바라보는 발해의 문화에 대한 입장은 발해의 문화 대부분이 당나라와 말갈의 문화를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 측도 발해의 문화가 당나라와 말갈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차이점은 고구려의 영향을 더 우선시 한다는 점이다.
위의 중국의 기사들에는 발해 문화와 고구려 문화의 연결점에 대한 언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발해가 중앙의 영향을 받아...", "당나라 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아...", "동북부 중원의 문명을 흡수하고 계승...", "중국과 동류의 해동문명을 형성..." 이와 같이 당나라의 문화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발해와 한국의 왕조와의 문화적 연결 고리보다는 중원 왕조인 당나라와의 연결점을 부각하여 발해가 중국의 역사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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