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올해 문예창작공모전 소설부문에 제출된 작품은 총 22편이었다. 형식과 주제의 양면에서 다양한 색채를 지닌 작품이 투고되었고, 일부 작품은 조금 더 다듬으면 대학문예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대체로 가족, 친구, 연인 등 ‘나’와 주변 인물과의 관계와 그에 대한 기대가 만들어냈을 법한 상상들이 많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가출팸 문제, 세월호 사건 등 시대의 문제와 아픔에 주목한 작품도 여러 편이었다. 전쟁과 반란이라는 과거사를 끌어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에 대한 원론적 질문을 던지기도 했으며, 유사한 문제의식을 과학기술이 가져올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 보인 작품도 있었다.
아쉬운 점은 주제나 착상의 선명함에 비해 그것을 끌고 가는 인물과 사건의 개연성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 뤽 고다르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자와 총이 전부”라고 말했다지만, 소설은-사실 어떤 종류의 이야기도-그런 방식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사건과 그것을 통과하는 인물이 필요하고, 그 인물과 사건은 철저히 개별적인 것인 동시에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달력 있으면서 개성적인 문장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가령 거대한 타워 건설 아르바이트 경험, 부모나 형제자매와의 갈등,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의 애틋함이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절실함을 넘어 ‘세계에 대한 작자만의 인식’이 필요하며, 그것이 작자가 만들어낸 허구적 세계를 매개로 독자 앞에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골든 디스크>를 최우수작으로 정했다. 낙원상가라는 구체적 장소를 배경으로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그 그늘 속 어딘가 있을 법한 인물 군상을 주조해냈으며, 사건들의 결구력과 문장력 또한 돋보였다. 팝의 역사를 음모론과 함께 엮어내 지식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 것 또한 신선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음모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보다 분명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저자가 상당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공들인 작품이라고 보았으며 그 성실성이 앞으로 작품을 쓰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수작으로 선정한 <참치캔 속 목소리>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목소리가 사물 속에서 발견되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설정하여 눈길을 끌었다. 재력을 지닌 이들은 업체를 고용해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물건을 빠르게 찾아내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사건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방식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은 구성상 좋은 대조를 이룬다. 동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날카로운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문장을 다듬고 사건의 개연성을 확보하면 더욱 좋은 작품으로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인조인간>은 인공지능 후의 인간이라는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연극판이라는 배경을 설정하여 인간과 인조인간의 모호한 구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주인공과 남자친구의 관계 등 주변 서사에서도 인간과 비인간의 대조를 강조하며 상징이 과잉 사용된 점이 아쉽다. 또한 문제제기는 좋았으나 그에 대한 작가의 전망은 뚜렷하지 않았다. 이에 장려작으로 삼았다.
수상작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언급하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 <오, 나의 베르단디!>는 아마 <오, 나의 여신님!>을 패러디한 작품인 듯한데,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하면 석고상으로 굳어버린다는 기발한 착상이 돋보였다. <무대 위의 이방인>은 문장이 탄탄하고 예술가의 광기라는 주제의식도 뚜렷했으나, 그 뚜렷함이 진부함으로 다가오지 않을 방법이 필요할 듯하다. <꽃잎의 시점>은 나무와 가지, 꽃잎의 시점에서 탄생과 죽음을 논한 것이 흥미로웠으며 <해저담>은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창조해낸 점이 주목된다. <보통잡부>와 <찌질이의 사랑>은 손에 그릴 듯 잡히는 장면과 심리의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장점을 간직하면서 신변잡기의 수준을 넘어 소설로 발전시켜보기를 권한다.
수상한 모든 작가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아울러 아쉽게 탈락한 모든 응모자들이 작품을 한층 가다듬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문예창작공모전이 지금,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길 바란다.
심사위원 이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