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문예창작공모전 소설 당선작
2019 문예창작공모전 소설 당선작
국어국문학과 20131107 김수동
1.
남자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사실 기타는 없고 오른손은 허공을 말아 쥐고 왼손으론 배꼽 언저리를 튕기고 있는 것이었지만 기석이 보기에 그것은 분명 기타였다. 반쯤 쥔 손끝이 간질 앓는 것처럼 미묘하게 부르르 떠는 것이 정확히 코드를 짚는 모양새였다. 지나가는 사람들 눈엔 이상한 손짓을 하는 노숙자처럼 보이겠지만 원곡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연주였다. 남자가 연주하는 건 마침 기석도 알고 있는 곡이었다.
허공에 손짓으로 그려내는 지미 헨드릭스의 ‘Purple Haze’는 퍽 열정적이었다. 덕분에 기석은 잠시 가던 길도 잊고 연주를 바라봤다.
이런 것도 에어 기타라고 부르나? 하고 기석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길 한 가운데서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머쓱해져 뒤통수로 손이 올라갔다.
오가는 사람들 중에 남자에게 큰 관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짝지어 가는 학생들이 남자를 보곤 쑥덕대며 킬킬댔고 사람들은 그의 행색에 혀를 차거나 뚜껑이 열린 채로 널 부러진 기타 케이스에 잔돈을 던지고 갔다.
기석은 민망함을 감추며 가던 길을 가려고 서둘렀다. 약속엔 늦을 것 같았다. 발길을 서두르는 기석의 머릿속엔 괜한 관심을 준 후회보다 다른 물음이 차올랐다.
‘그래서 기타는 어디 있는 거야?’
평일 오전의 상가 안은 한산했다. 근처 공원에서 소일하는 것도 지쳐 시간을 죽이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노인들과 늦은 취미를 위해 기웃대는 중년들이 가져오는 지루함은 먼지가 쌓인 채 하염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곳의 악기들과 닮아있었다.
사물이 비슷한 인간들을 끌어당기는 건지 그들이 자길 닮은 물건을 찾아서 오는 건지 뭐가 됐든 기석은 둘 다 싫었다. 낙원이라는 이름은 또 뭔가. 기석은 상가의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림도 없지, 굳이 따지자면 이곳은 연옥에 가까운 곳이었다.
기석이 가게에 들어섰을 때 길수와 형만은 배달 그릇을 바쁘게 늘어놓고 있었다. 안은 중화요리 특유의 기름향이 가득했다. 그 냄새를 맡자 아침도 거른 기석의 속에서도 창자가 꼬이는 소리가 울려왔다. 기석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형, 뭐야?”
“왔어? 저기 의자 좀 갖고 와서 앉아. 네 것도 시켰어.”
기석의 물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의자나 갖고 오라는 길수가 기석은 어이가 없었지만 몸은 순순히 의자를 끌어왔다.
“나 집에서 여기까지 두 시간인데……”
“시간 딱 맞춰 오게 잘 말했네. 원래 속이 비어있으면 나올 소리도 안 나와. 너는 음악 한다는 새끼가 그것도 모르냐.”
젓가락을 그릇 모서리에 삭삭 비벼가며 열심히 비닐 랩을 뜯던 형만이 무심히 말했다. 기석은 생전 북만 두들겼지 뭐 한번 불어본적도 없는 인간이 뭘 아냐고 면박주고 싶었지만 형만의 우람한 팔뚝을 보며 조용히 젓가락으로 짜장면 그릇 테두리를 비볐다.
“근데 난 짬뽕이 좋은데.”
“원래 짱깨는 짜장이 메인이야.”
“형은 짬뽕이잖아.”
“나는 해장해야 돼서.”
“미안, 메뉴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대신 탕수육 많이 먹어.”
길수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지만 기석은 그쪽 앞에 놓여있는 잡채밥을 보면서 미간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기석은 투덜거리며 면을 입에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볼멘소리는 사라지고 가게 안은 후룩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빈 그릇을 내놓고 믹스커피가 든 종이컵을 한 잔씩 나눠들은 세 사람은 이내 식후의 나른함에 그대로 늘어져 버렸다.
“나 오늘 레슨 받는 거 아니었어?”
“야 소화 좀 시키고 하자.” 형만이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게 아침부터 중화요리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새끼, 잘 먹어놓고 지랄이네. 너 요새 어디 가서 밥 사주는 사람은 있냐.”
“없어.”
“거봐! 형들이 챙겨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어깨라도 주물러 주던가 해야지. 나 때는 말이야 너처럼 굴면 나긋나긋해 질 때까지 줄 세워서 빠따 치고 그랬어.”
기석은 또 시작된 형만의 레퍼토리가 듣기 싫어 대충 눈을 피하며 남은 커피를 마셨다.
“나는 가게가 바쁜 줄 알고 일찍 오라고 한 줄 알았지.”
“바빴으면 좋겠다야.” 항상 사람 좋게 웃는 길수의 표정에도 쓴웃음이 걸렸다.
“그럼 왜 일찍 부른 거야.”
“이따가는 방송을 하셔야 되니까.” 형만이 툭 던지듯 말했다.
“길수형 방송도 해?”
“시작한지 얼마 안됐어.”
기석은 조금 놀라서 물었다. 길수는 그런 반응이 쑥스러운지 말끝이 흐렸다.
반년 전에 시작한 개인 방송이 구독자가 최근에 만 명을 겨우 넘겼다고, 취미삼아 시작했지만 보는 사람이 생기니까 제법 책임감이 느껴져서 매일 꾸준히 방송을 열고 있다고 길수는 얼굴을 붉히면서 조곤조곤 말했다.
“방송 콘텐츠가 뭔데?”
“딱 보면 모르냐? 길수가 얼굴이 좀 되잖아. 딱, 폼 잡고 치면 계집애들이 들어와서 보는 거지. 아깝다 나도 이 면만 좀 괜찮았으면……”
기석은 카메라를 보며 자기 얼굴을 더듬는 형만을 무시하고 길수에게 방송에 대해 좀 더 물어봤다.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인 길수였기에 기석도 관심이 쏠렸다.
“처음엔 기타 솔로 연습하고 혼자 녹음해서 들으려고 영상을 찍어서 업로드 했어. 근데 그렇게 영상이 쌓이니까 또 보는 사람이 하나 둘 생기더라고. 그래서 내친 김에 좀 색다른 게 뭐가 있을까하다가……”
“하다가?”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그래도 나름 클래식 전공생이었잖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옛날 학부생 때 연습하던 곡들 중에 좋아하던 곡 위주로 기타로 편곡해서 연주했지. 그게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아서 꾸준히 하다 보니까 정기적으로 방송도 키게 됐고……”
“형 보기보다 수완이 있네.” 이야기를 들은 기석은 살짝 감탄했다.
“수완은 무슨. 이제 여기서 더 커질 것 같지는 않아.”
“반응 좋다며.”
“보는 사람만 보는 거지.”
“신청곡이라도 받아봐.”
“가끔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어. 근데, 거의 아이돌 곡이나 유행하는 노래라서……”
“다들 그런 거 해.”
“난 그렇게 하긴 싫어서. 그냥 지금 봐주는 사람들로 만족하려고.”
속 편한 소리라고 기석은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학창시절에도 길수는 만만해 보이는 얼굴로 원하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의사 부모를 이기고 음대를 온 사람이었다. 아쉬운 것 없이 자라면 저런 강단이 생기는 걸까. 기석은 생각했다.
“우리 길수씨 근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심 신경 많이 쓴다?”
“내가 언제?”
“너 틈만 나면 구독자 수 새로 고침 하고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거울을 보다 말고 불쑥 참견하는 형만의 말에 길수가 당황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길수 역시 퍽 신경을 쓰곤 있었다. 그 모습에 조금 착잡하던 기석의 기분도 풀렸다.
“내가 요즘 인터넷 방송을 좀 봐서 아는데.”
“형은 젊은 애들 나오는 것만 보잖아.”
형만은 기석의 말에 말문이 멈췄지만 대꾸하지 않고 하던 말을 이어갔다.
“이 바닥도 그 뭐냐……옐로오션 상태거든.”
“레드오션이겠지.”기석이 정정했다.
“야 너 노란 불에서 미리 멈춰야 되는 거 몰라? 그게 그거지……아무튼 요즘 이쪽 바닥이라는 게 그렇더라고. 개나 소나 들어와서 한 몫 건져 보려고 하니까 새빠지게 해도 본전도 건지기 힘들어. 이럴 때일수록 그 뭐야, 비즈니스적인 시야가 필요하다고.”
역시나 수박 겉핥기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기석은 그래도 우쭐한 형만의 비위를 맞춰줄 겸 더 물어봤다.
“뭐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 본업이 방송도 아니고.”
너무나 뻔뻔한 형석의 대답에 같이 듣고 있던 길수는 이마를 짚었다.
“뭐 대충 게스트라도 끌고 오면 될 거 아냐.”
“누구.”
“여자.”
“아는 사람 있어?”
“내 마누라 데려올까?”
“미선이? 그냥 둘이 손잡고 어디 놀러가서 다시 오지 마.”
“너는 누구 데려올 사람 없냐?”
학을 떼는 길수의 말에 형석은 입만 다시고 이번엔 만만한 기석에게 물었다.
“오다 특이한 사람은 봤는데.”
사실 기석은 줄곧 노숙자 사내를 생각하고 있었다. 기타 없이 기타를 치는 남자. 어째선지 그 인상이 셔츠에 흘린 잉크처럼 배어서 잘 지워지지 않았다.
“특이한 사람 좋지. 원래 게스트는 한 번에 이목을 끌어야 돼.” 형석이 맞장구부터 쳤다.
“행색은 노숙자 같은데. 허공에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더라고 근데 엄청 느낌 있게 잘 쳐서. 계속보다 아까도 좀 늦을 뻔 했어.”
“MR 틀어놓고 하는 거? 그거 그냥 거지 동냥이잖아.”
“아니 앰프도 없이. 기타 케이스는 있는 데 비어가지고 옆에 열어놓고. 그런 것도 에어 기타라고 하는 진 모르겠는데……”
“그건 그냥 헤까닥 한 거지.” 형만의 핀잔에도 별로 개의치 않은 기석이 어깨를 으쓱 하는 데 길수가 뜻밖에 말을 했다.
“마브씨를 봤나 보네.”
“형 아는 사람이야? 마브면 뭐 교포인가.”
“아니 나도 잘은 몰라. 그 사람 뭐 입고 있었어?”
“무슨 다 헤진 청록색 코트.”
“그럼 맞아. 맨날 그 코트 입고 돌아다니는 게 마대 걸레자루 같다고 상가 사람들끼리 부르는 별명이야. Mop씨. 그 사람 역 앞에서 그러고 있는지 좀 됐어. 매일 나와 있거든.”
기석은 다시금 노숙자의 행색을 떠올려 봤다. 그럴 듯한 이름이었다.
점심이 지났어도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침보다 유동인구가 늘어난 거리에 홀로 앉아있는 그는 좁은 해류 속에 솟아난 작은 암초 같기도 했다. 세 사람은 그런 남자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었다.
“저 양반이야?” 형만이 탐탁치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맞아 저 아저씨.”
“맞네, 마브씨.”
“그래? 그럼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바로 가자.”
두 사람의 대답에 형만은 흥, 코를 한 번 풀더니 곧장 남자에게 다가갔다. 행동력이 너무 좋아서 곁에 있던 두 사람이 미처 말릴 새가 없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형석은 본인 가게에서 손님을 맞을 때처럼 만면에 미소를 띠고 노숙자에게 말을 붙였다.
“지금 기타치고 계시는 거죠? 저도 악기 좀 쳐 봐서 알거든요.”
살갑게 물어봤지만 남자는 대답은커녕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남자는 여전히 자기 연주에만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석이 모르는 곡이었다.
“형은 뭔 노래인지 알아?”
“‘Layla’네. 에릭 클랩튼 노래야.”
그렇구나. 기석은 끄덕이곤 다시금 남자를 관찰했다. 확실히 남자의 손놀림은 범상치 않았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해본다면 아티스트들처럼 본인만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다시 보고 있자니 역시 범상치 않았다. 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말아 씹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집중할 때의 버릇이었다. 남의 연주(?)에 감흥을 느껴보기도 오랜만이었다.
“형이 보기엔 어때?” 기석은 마찬가지로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길수에게 물었다.
“진짜 괜찮은데? 일단 느낌이 있어.” 그렇지. 기석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고무된 길수는 더 가까이 가서 연주를 관찰했다. 한편 계속 진전이 없자 형만은 아예 옆에 걸터앉은 채로 말을 걸고 있었다. 약간 약이 오른 모습이었다.
“어르신 저도 같이 해도 될까요? 저도 악기 할 줄 알거든요. 쿵작쿵작, 이거 있잖아요. 어르신이 기타치고 계시니까 내가 드럼 치면 딱 맞겠다.”
형만은 그리 말하곤 눈치껏 박자를 맞춰 허공에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산만한 덩치로 쭈그려 앉아 사지를 들썩이는 모습은 보기에 몹시 민망했고 폼은 잔뜩 과장되어 있었다. 팔을 들썩이며 이따금 휘두르는 데 곁에 있으면 누가 얻어맞기 딱 좋은 모양새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휘둘러진 팔이 남자의 어깨를 치고 말았다. 남자는 즉시 연주를 멈추고 형만을 노려봤다.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자기 연주에 심취했는지 눈까지 감고 연주를 하느라 형만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있었다.
노숙자가 처음으로 입을 벌렸다. 벌린 입에선 말소리가 아닌 엉뚱한 소리가 들려왔다. 침이 끓는 소리였다. 기석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늦었다. 퉤하는 소리와 함께 누런 가래가 형만의 뺨에 척 달라붙었다. 가래침을 맞은 형만의 몸 역시 우뚝 멈춰 섰다.
형만은 뺨을 쓸어내고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상황 파악을 하는 중인 것 같았다. 형만은 다혈질이긴 했지만 본인의 체급을 알기에 쉽게 손부터 나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형만이 화가 날 때는 그런 경우 곱게 끝난 적은 없었다. 기석의 기억에 그럴 때는 익히 아는 전조가 있었다.
‘제발 웃지만 말아라.’ 기석은 속으로 빌었다.
“허어, 참 이거…….” 오도카니 가래가 말라가는 손바닥을 보던 형만의 입에서 한숨 비슷한 감탄사가 나왔다. 그리곤 짧게 한 마디를 덫 붙였다.
“재밌는 영감탱이네?”
형만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야, 막아!” 기석이 막아야 된다고 몸을 뻗는 순간 먼저 달려든 길수가 형만의 겨드랑이에 양팔을 감아 넣고 기석을 향해 외쳤다.
양팔에 두 명이나 매달고서 날뛰는 형만에게 매미처럼 매달린 채 휘둘러지면서 기석은 자신의 하루가 남자를 마주치고 기묘하게 꼬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왜 노숙자가 치는 연주에 신경을 썼을까. 엄밀히 말하면 연주도 아닌 것을.
공복에 밀어 넣은 짜장면이 계속 휙휙 휘둘러지니까 속에서 올라올 것 같았다. 내가 팔에다 먹은 걸 게워내면 이 인간이 멈출까? 아니면 더 날뛸까? 애초에 이 인간은 나랑 같은 사람이 맞기는 한가? 사람의 탈을 쓴 곰이 아닐까? 우린 모두 단군의 후예니까 하나쯤은 모계 쪽 피가 진한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아수라장 속에서 기석은 불편한 속과 별개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원심력 때문에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힘이 모자라 팔을 놓친 기석의 몸이 핑그르르 풀려났다. 기석이 어찌어찌 멈춰 섰을 땐 하필이면 남자와 형만 사이를 가로 막아섰다. 다음 순간 가속을 받은 형만의 주먹이 기석의 안면에 안착했다. 짱돌 같은 주먹이 안면에 날아와 박히자 기석의 어지러운 머릿속은 단번에 멈췄다.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기석이 한 마지막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그래서 기타는 어디 있는 거야?’
2.
파출소에 억울함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아니 제가 안쳤다니까요?” 형만은 연신 책상을 내리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피로했다.
“자꾸 그렇게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시면 조서에 불이익이 갈 수 있습니다.”
마주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경사는 그런 형만의 말을 무시하며 그의 행동에 경고를 주고 조서 작성에 열중했다. 사리 분별을 못하는 상태가 아닌 만큼 눈치껏 팔을 거둔 형만은 다시 한 번 좀 더 정중하지만 여전히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조금 욱해서 손이 올라간 건 맞는 데 누가 맞지는 않았다니까요?”
“저 분은 뭐에요 그럼.”
경사는 눈대중으로 그의 왼편에서 콧잔등에 얼음 팩을 대고 마찬가지로 증언을 하고 있는 기석을 가리켰다.
“아니, 저쪽은 제 친한 아는 동생인데……”
“저기요 선생님.”
“예……”
타자를 멈춘 경사가 정색하자 형만은 다소곳하게 손까지 모으고 대답했다.
“저희는 익명으로 거리에서 다툼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간 거구요. 가보니까 상해를 입고 쓰러지신 분이 있었잖아요. 그러면 사실 관계를 정리해야 되서 지금 서까지 동행하신 거예요. 확인하고 문제없으면 보내 드릴 겁니다. 이제 대답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넵.”
형만의 대답에 경사는 짧게 고개를 젓곤 다시 무미건조한 질문들을 이어나갔다. 형만이 충실하게 대답할 동안 먼저 조사를 마친 기석은 일어나 마찬가지로 조사를 마친 길수 옆으로가 앉았다.
“좀 괜찮아?”
“뭐 나름 쓰-읍, 괜찮아.”
미간에 몰리는 통증을 참으며 기석이 대답했다.
“저 형 진짜 성질 고쳐야 돼.”
“미안하다. 내가 이번엔 꼭 저 새끼 버릇 고쳐 놓을게.”
“나 이번엔 진짜 합의금 받을 거야.”
정색하며 말하는 길수에게 기석은 장난으로 정색하며 받았다. 그런 기석에게 길수는 작게 웃으며 치료비에 웃돈까지 얹어서 보내주겠다고 장담했다.
“그나저나 진짜 침을 뱉을 줄은 상상을 못했네.”
기석이 아직 조사를 받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아까 그러는 거 보면 정신이 좀…… 지금도 보면 아까부터 계속 저러고 있어.”
제일 먼저 시작한 남자는 모니터를 앞에 두고 여전히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유인 즉 그는 모든 말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어떤 물음에도 대답을 안 하고 있으니 조서가 작성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그치거나 대답을 강요하기엔 죄가 없었고, 내버려두기엔 관련자는 맞으니 경찰도 난감했다.
“어르신 성함이라도 말할 생각 없으세요?”
남자를 맡은 젊은 순경이 최대한 어르고 달래가며 물어봐도 남자는 허공을 보고 작게 오므린 팔로 또 다시 허공을 튕기고 있었다. 간간히 입술이 들썩이며 뭔가 웅얼거리는 것 같기는 한데 신음이상의 무언가로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기석은 졸지에 자신을 봉변당하게 만든 남자를 이제는 신기함을 넘어서 뭔가 형언 할 수 없는 감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관심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골치 아프게 엮일 거라고 육감적인 차원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마음먹은 김에 기석은 자리를 떠야겠다 싶었다. 시간을 보니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6시였으니 중간에 병원에라도 들르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형, 나 출근해야 돼서 먼저 가볼게.”
“어어, 그래 얼른 가봐. 저 돼지는 내가 기다리면 되니까. 어디로 출근한다고 했지?”
“서초동.”
“빨리 가야겠네.”
“그래야지.”
“일은 할만 해?”
“별거 없어. 중요한 건 감독이 알아서 다해.”
“다행이네.”
기석은 말에 어렴풋한 연민이 실린 걸 느꼈다. 무례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조금 서두르듯 일어났다.
“형.”
“왜?”
“나 다음에는 기타 말고 베이스 좀 알려줘.”
“기타는 더 안치게?”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길수는 어리둥절한 것 같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담배가 한 대 피고 싶었던 기석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얄궂게 속이 텅 비어있는 담뱃갑을 우그러뜨리며 기석은 뭐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방금 나온 파출소로 들어가 한 대 빌릴까 하다 들어가자니 귀찮고 모양도 안 나서 그냥 가기로 했다. 자리를 뜨는 내내 입안이 깔깔해서 기석은 고이는 침을 뱉으며 걸었다.
만일 기석이 귀찮음을 참고 파출소로 다시 들어갔더라면 그는 자리를 뜨는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을 것이다. 그러면 어딘가 무서운 남자의 시선에 다시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다른 모든 일들처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와 기석이 다시 마주친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기석은 베이스를 배우러 여느 때처럼 길수의 가게로 갔다. 기타를 치다 베이스를 친다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애초에 다른 악기를 배운다기보다 곁다리로 한 번 걸치고 가는 느낌이었으니까. 길수는 베이스가 뭐가 좋아 보였냐고 물었지만 기석은 그저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리곤 다시 코드를 뚱땅거리는데 집중했다.
정신없었던 저번 주와 달리 이번 주는 둘 다 오롯이 가르치고 배우는 데만 몰두했다. 레슨을 시작하고 집중이 돌아오자 연습을 하면 항상 느끼던 일상적인 감각이 돋아났다. 지난주와 대비되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차분한 감각이었다.
잔 물기를 쫙 뺀 레슨은 무척이나 일찍 끝났다. 일어나는 기석에게 길수가 점심이라도 먹자 했다. 그 제안에 기석은 메뉴를 물었다. 길수가 순두부, 고등어 백반, 해장국 등등 예시를 꺼냈다. 나오는 족족 고개를 내젓던 기석은 ‘딱히 당기는 게 없네.’라고 말하고 상가를 나섰다. 그렇게 길가로 나와 편의점에서 참치가 든 김밥에 우유하나 그리고 담배 한 갑을 샀다.
편의점 창가에 앉아 데우지도 않은 김밥을 입안에 우겨넣고 마시는 우유의 맛은 더럽게 맛이 없었다. 기석은 그저 빨리 식후를 하고 싶은 마음에 속을 채울 것을 찾은 것이었다. 점심으로 끌리는 것도 없었지만 공복에 담배를 태우는 건 더 싫었다.
마침내 한가로이 골목 구석에서 흡연을 하는 중이었다. 기석은 골목 한 구석에 쭈그린 채로 담벼락에 기대 묵묵히 한 모금씩 피우고 있었다. 눈을 감고 연기가 돌아다니는 길목 하나하나를 느끼고 있던 기석은 누가 오는 줄도 모를 정도로 이완되어 있었다. 그래서 코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떴을 때 지저분한 노숙자와 한 뼘 간격으로 얼굴을 맞대고 있다는 걸 알자 펄쩍 놀라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지른 기석이 겨우 숨을 고르고 보니 노숙자의 인상착의가 익숙했다. 걸레 같은 코트를 입고 다녀 별명이 붙은 남자, 마브씨였다. 마브는 잔뜩 주름진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은 기석의 왼편 담벼락에 기대어 놓은 케이스에 담긴 베이스였다.
“한 대 드릴까요?”
갑작스런 재회에 긴장한 기석이 말했다. 혹여 해코지라도 당할까 조심스런 말투였다.
“그거……인가.”
처음으로 입을 연 마브의 목소리는 낮은 저음에 중간에 새는 소리가 있었다. 깊은 토굴에서 울리는 바람 소리 같았다. 그래서인지 발음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뭐라고 하시는……”
“그거 기타냐고.”
“아뇨, 베이스요……”
“왜.”
“네?”
“기타는.”
“베이스인데……”
“베이스 말고.”
“아니, 무슨……”
선문답 같은 대화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고 나서야 기석은 노인의 화법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요지는 왜 기타를 안치고 베이스를 치냐는 것이었다.
기석은 잠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치밀어 오르는 두통을 참았다. 이젠 노숙자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가. 이런 부류의 인간은 애초에 대꾸를 하면 안 되는 법이었다.
기석이 짐을 챙겨 자리를 뜨려는데 뒤에서 예의 동굴 바람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 다른 악기 했었지? 입술을 보니까 금관이구만.”
대충 찍었겠지.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기석의 발은 멈췄다.
“재능이 없어서 관둔 것 같은 데 다른 악기를 잡는다고 될 리가 있나.”
가방이 바닥에 던져지고 들고 있던 라이터가 굴러다녔다. 기석은 순식간에 마브에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았다. 낡은 셔츠를 틀어쥔 주먹 위로 기석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좆도 모르면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마……”
기석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한 대 후려칠 기세였다. 반면 멱살이 잡힌 마브의 표정은 담담했다. 사실 담담한 게 아니라 아예 박장대소를 했다.
누가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것 마냥 웃음이 터진 마브는 기석이 어이가 없어 손에서 힘을 빼자 아예 바닥을 구르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어떻게 보나 정신이 나간 사람이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진심으로 화를 낸 건지 깨닫자 기석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지갑을 보니 오천 원 지폐 한 장에 천 원 권이 두어 장이 있었다. 기석은 합이 만원이 안되는 금액을 모두 집어서 바닥에 누운 마브에게 던지고 이번에야말로 진짜 자리를 뜨려고 했다.
마브가 바짓단을 붙잡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런 미친……경찰 부르기 전에 놔.”
“그 악기 아직 하고 싶어?”
“이거 안 놔?”
“따라오면 하게 해줄게.”
“이런 시발!”
마브의 손을 뿌리치다 보니 부득이 발길질이 나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가 차인 마브의 몸이 굴러가더니 엎드린 채로 널 부러져 미동이 없었다. 기석은 아차 싶었다.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기석은 다가가 조심스레 발끝으로 마브의 몸을 뒤집었다. 바람 새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찢어진 이마와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마브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아까처럼 박장대소는 아니었지만 킬킬대는 웃음이 휘파람 소리 같았다. 골목엔 휘파람 소리가 메아리 치고 기석의 귓전에도 소용돌이치듯 맴돌았다.
“따라와.”
마브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 비척거리며 난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 걸음 가다 멈춰 서서 돌아보는데 안 따라 올 거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기석은 잠시 서 있다 가방을 들어 멨다. 그리곤 떨어진 지폐들을 줍고 깨진 보도블록 틈 사이에 박힌 라이터도 주운 후에 그를 따라갔다.
마브는 보기보다 걸음이 빨랐다.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며 걸어가는 것 같은데 어째선지 좀처럼 쉽게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휘청거리며 걷는 데 잠시 눈을 떼면 훌쩍 앞서가 있었다.
길의 문제도 있었다. 마브가 가는 길은 대중이 없고 예측을 할 수도 없었다. 한참 걷다 갑자기 방향을 꺾어서 따라가면 실외기가 줄지어 서서 더운 김을 뿜고 있는 곳을 까치발로 지나는가 하면 담벼락을 넘는 건 예삿일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더니 옥상으로 나갔는데 다시 골목이 펼쳐지고, 지상인지 지하인지 가게 안으로 들어갔는데 또 가게가 나오고 환풍기로 들어가서 승강기로 나가는 등 나름 서울 토박이라고 생각했던 기석은 나중에 가서는 지금 있는 이곳이 종로 이전에 서울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마브가 멈춰 섰을 때쯤 기석은 땀범벅이 된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기묘한 방식으로 도착한 곳은 종로의 여는 후미진 골목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골목이었다. 문을 연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 가운데 마브는 지하로 가는 계단이 판자로 막혀있는 곳 앞으로 가 판자를 치우고 아래로 내려갔다. 기석 역시 따라 내려가는데 얼마 안가 앞이 보이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발아래를 비추며 내려가야 했다.
마브는 계단 끝에 있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석이 따라 들어가자 여전히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공간이었다. 라이트를 비춰 봐도 제법 넓은 공간인 듯 테이블과 소파 몇 개 정도만 눈에 들어와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웃풍이 드는지 서늘한 공기에 오랜 쌓여 매캐한 먼지와 쥐똥 냄새가 실려 왔다.
“저기요! 어디계세요!”
기석은 어느 새 또 자취를 감춘 마브를 찾기 위해 소리쳤지만 메아리치는 그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차츰 어둠에 익숙해지고 라이트로 주위를 좀 더 살피자 내부 구조가 이전보다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중앙으로 나 있는 복도를 기준으로 양편에 테이블들이 있고 맞은편 끝에는 무대로 보이는 단이 있었다.
기석은 계속 마브에게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안쪽으로 다가갔다. 기석이 무대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조명이 켜졌다. 빛이 들어오자 기석은 이제야 이곳이 어떤 곳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여러 대의 구형 티비가 정사각형으로 짜여 벽 한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티비들 옆엔 요란하게 꼬인 마이크 선 한 무더기가 쌓여있고, 무대 위엔 빈 스탠드와 심벌즈가 다 날라 간 드럼 세트가 있었다. 이곳은 원래 가요장이었다. 그것도 전속 밴드들이 반주를 해주는 아주 구식 가요장.
조명은 무대 한 가운데만을 비추고 있었다. 조명 아래로 먼지들이 회오리치는 게 보였다. 먼지들은 이따금 빛을 받아 번쩍였는데 마치 번개들이 번뜩이는 눈보라 같았다.
마브는 눈보라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다시 나타난 마브의 분위기는 이전과 뭔가 달랐다. 얼굴은 흐른 피를 닦아내다 생긴 핏자국과 땟자국이 섞여 얼룩덜룩했다. 록커들이 하는 기괴한 화장을 연상시켰다.
마브의 발아래에는 예의 그 기타 케이스가 놓여있었다. 그가 몸을 숙여 기타 케이스를 열어젖혔다. 케이스 안은 이번에도 비어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무엇이 있는 것처럼 두 손을 받쳐서 케이스 안에 집어넣더니 그대로 빈손을 들어올렸다. 잡은 모양새가 마치 기타 같았다.
허공에 기타를 들어 올린 마브는 목에 끈까지 걸어 넘겼다. 물론 그 역시 실체는 없었다. 실체 없는 헤드를 만지고 실체 없는 넥을 쓰다듬는다. 그것은 마치 잘 짜인 무언극 같다만 기석은 미동도 없이 그를 바라봤다. 조율을 마친 마브는 스탠드에 역시 있지도 않은 마이크를 꼽고 나서야 비로소 준비를 끝냈다.
짧은 침묵이 지나가고 마브가 이내 마이크에 대고 짧게 말했다.
“The house of the rising sun.”
그리곤 연주가 시작됐다.
“There is……a house……in New Orleans……”
소리가 들렸다. 발음이 반쯤 새는 마브의 목소리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음울한 컨트리풍의 기타 리프였다. 그것은 사방팔방을 통틀어 어느 곳에서도 직접적으로 울려오는 게 아니었으나 분명히 들렸다. 그것은 어떤 발원지를 가지지도, 매질을 타고 전해지는 파동도 없었지만 들리고 있었다. 기석은 유심히 귀를 기울여 소리의 발원지를 찾을 수 있었는데 듣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기석의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오고 있었다.
“My mother was a tailor! She sewed-my new blue jeans!”
소리는 수면 위에 동심원이 그려지는 것처럼 기석을 중심으로 펴져 나가며 주위를 덮었다. 기타 리프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엔 은근슬쩍 베이스 라인이 덧대졌다. 그리곤 마찬가지로 있지도 않던 크래쉬 심벌을 잘게 두드리는 소리가 끼어들더니 마침내 기묘한 전자 키보드가 나타나 현란하게 건반 위를 움직이며 곡은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I'm goin' back to New Orleans! To wear that ball and chain!”
어디에도 실체는 없었지만 소리가 보인다고 해야 할 지. 하나의 밴드가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밖에 표현 할 수 없었다. 밴드는 기석을 둘러싸고 회전하며 하이라이트 부분을 연주했다. 마브는 이제 기타를 치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스탠드를 잡고 노래를 부르다 그 자신도 연주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And God…… I know I'm one……”
마브가 마지막 가사와 함께 잡고 있던 스탠드를 놓자 모든 것들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물이 배수구로 빠지듯이 나타날 때와 반대 순으로 하나 둘 가장 바깥에서부터 사라졌다. 하나의 잡음까지 모조리 왔던 곳으로 사라지고 고요가 찾아왔을 때 가요장은 여전히 먼지로 자욱했고 마른 쥐똥 냄새는 고약했다.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기석을 보며 마브가 거무튀튀하게 변색된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기석이 무슨 대답을 할지 알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기석은 입고 있던 야상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는 퍼지지 않고 자욱하게 두 사람 사이를 메웠다.
“내가 뭘 하면 됩니까?”
마지막 연기를 내뱉고 꽁초를 튕겨 버린 기석이 말했다.
“오오, 이 친구야. 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뭘 아는지가 중요하지.”
마브는 호들갑스럽게 무대를 내려와 검지를 기석의 관자놀이 옆에 대고 까닥이며 말했다.
“뭘 알아야 하는 데요?”
“진실.”
마브는 그 단어를 무겁게 뱉어냈다.
“정확히는 음악의 진실. 그건 이 세상의 진실과도 같은 거지.”
이야기가 너무 거창해지고 있었다. 좀 전까지 느껴지던 전율은 사라지고 다시금 미친 노숙자와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지금 또 의심하고 있지?”
라고 기석이 생각할 쯤 또 어떻게 알았는지 매섭게 캐물었다.
“의심하면 안 돼. 믿어야 돼. 그런 식이면 친구가 악기를 다시 연주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정곡을 찔려 뜨끔한 기석은 한 편으론 섬뜩했다. 자신의 과거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걸까. 불가능 한 이야기였지만 그런 식이라면 이 남자가 보여준 것들은 뭔가. 의심하면 안 된다. 기석은 남자의 말을 곱씹었다.
기석이 항복의 의미로 두 손을 들고 살짝 물러났다. 마브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두 손을 비비며 웃었다.
“세 가지야. 내 부탁을 세 가지만 들어주면 돼.”
먼지가 푹푹 일어나는 소파에 걸터앉은 기석이 뭔지 말해보라는 투로 바라봤다.
“첫 번째는 나한테 역사를 배우는 거야. 정확히는 팝의 역사지.”
그 정도쯤이야 라는 느낌으로 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는 날 친구의 친구가 하는 방송에 출현시켜 줘.”
그럴 거면 왜 자기 코에 금이 가게 한 건지 기석은 의문이었지만 좀 전에 약속한 것을 떠올리며 이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길수를 설득하는 건 그리 어려울 게 없는 일이었다. 기석에겐 생각이 있었다. 조금 의외인 감이 있었지만 두 번째 조건에도 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브는 잠시 가까이 와보라는 손짓을 했다. 기석이 몸을 일으켜 다가가자 마브가 귓가에 손을 대고 속삭였다. 몇 마디 안 돼는 짧은 말이 오가자 기석의 눈이 처음으로 크게 커졌다. 말을 마친 마브가 가만히 서 있는 동안에도 기석은 같은 표정이었다.
“아니, 그건 어떻게……진심으로?”
마브는 아무렇지 않게 끄덕였다. 앞의 것들과 비교해서 마지막 조건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위험 부담의 정도가 차원을 달리했다. 당황해서 입술을 씹는 기석에게 대답을 독촉하는 시선이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기석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있던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기석이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브는 이를 드러낸 채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쉭-쉭, 마브가 웃을 때 마다 빠진 이빨 사이로 바람이 샜다.
3.
의사는 관찰되는 외상은 없다고 말했다. 엑스레이, MRI, 저주파든 고주파든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하고 나온 수많은 차트와 사진들을 짚어가며 전문 용어를 쏟아냈다. 한 참을 혼자 떠들 길래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물었다. 의사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엔 외상 후의 스트레스가 심적인 부분에 작용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환자 분의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일체유심조라 이거지.’
앞에 놓인 종이 더미들을 양 손으로 구긴 기석은 그대로 의사의 면전에 뿌렸다.
차량이 반파된 사고에서 조수석에 있던 기석이 다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유일한 상처라고 해봐야 앞 유리가 깨지면서 튄 파편이 윗입술에 스쳐서 생긴 작은 생채기가 전부였다. 병원에선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당일에 연고를 바르고 지금에 와선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된 그 기적 때문에 기석의 삶은 무너졌다.
트럼펫을 연주할 수 없었다. 십 수 년에 걸쳐 길을 낸 수로가 둑이 무너져 모두 쓸려나가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 것처럼 기석은 20년 가까이 연주해온 악기가 낯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슬럼프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격려가 이어졌다. 길은 다시 내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보낸 시간들이 점차 퇴적되어 갔다. 그런 시간이 1년을 채워가던 어느 날 졸업을 앞두고 있던 기석은 다급한 마음에 휴학을 했다. 그리고 계절이 순배를 돌아 다시 찾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완전히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
휴학을 마치고 돌아온 학교는 예전과 같은 공간이 아니었다. 그전까지 응원해주던 이들은 모두 졸업한지 오래였다. 남아있는 몇몇도 자기 살길을 찾느라 바빴다. 그래도 기석은 버텼다. 더 이상 악기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했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자신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기석은 내내 보이는 눈치와 은밀한 모욕들도 버텨냈다. 그런 기석을 나가떨어지게 만든 건 은사라고 여기던 남 교수 덕분이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러 온 기석에게 남 교수는 계속 자기 소일거리 이야기를 했다. 대화의 맥이 잡으려하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다녔다. 기석이 그가 대화하는 내내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느끼던 중이었다. 노크와 함께 누가 들어왔다. 고교시절부터 유수의 콩쿨에서 입상을 한 신입생이었다. 그 후배를 맞이하는 남 교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다. 자신에게 향하지 않는 그 시선이 기석은 익숙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은사의 눈이었다.
다음날 기석은 자퇴 수속을 밟아 학교를 나왔다.
자퇴 직후 사고를 낸 당사자를 찾기 위해 기석은 사고 차량의 차주였던 형만을 찾아갔다. 기석은 그에게 사고자의 연락처를 아느냐고 알고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고기를 손질하던 형만은 기석의 얼굴을 보더니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당시의 기석의 막무가내였다.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자 기석은 배알도 없는 병신이냐고 소리치며 주변에 있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던졌다. 접시와 식기가 주변을 날라 다녀도 형만은 날뛰는 기석을 힐금 보고 묵묵히 남은 고기를 마저 손질했다. 이윽고 작업을 다 마치고 나서야 형만은 칼을 꼽아 놓고 장갑을 벗으며 기석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형만은 차를 몰아 그대로 시내로 나갔다. 차안에서 내내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만이 차를 댄 곳은 인근 대학 병원의 주차장이었다. 자주 와본 걸음으로 형만은 병원 내부 편의점에서 건강음료를 사서 승강기에 탔다. 형만이 앞서서 들어간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열 명 남짓한 환자들 중에서 의식이 있는 사람이 손에 꼽았다.
형만은 창가 옆에 있는 자리로 다가갔다. 병석에는 기석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호흡기를 단채 누워있었다. 남자의 곁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형만은 그녀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사온 음료를 그녀 옆에 내려놨다. 여자는 형만을 보자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형만은 당황해 손사래를 쳤지만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이고 또 숙였다. 기석은 아무 말 없이 남자와 고갤 숙인 여자를 바라봤다.
남자의 직업은 에어컨 수리기사였다. 그리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대리기사를 뛰고 있었다. 사고 원인은 졸음운전이었다. 피로가 쌓여 그날따라 자주 졸던 남자는 귀가 중에 한 순간 깊게 잠이 들어버렸고 마침 기석이 취해 누워있던 형만의 차를 그대로 들이박았다. 일찍 결혼한 남자는 아이가 둘이었다. 형만이 합의금을 받지 않고 합의 해줬지만 입원비를 대기 위해 이제는 맞벌이였던 아내가 남편 대신 밤낮으로 일을 나가고 있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석은 홀로 남자를 찾아갔다. 남자의 아내는 처음엔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석에게도 형만처럼 고개를 숙였다. 기석은 숙인 고개 사이로 익숙한 감정이 느껴졌다.
여자는 기석을 원망하고 있었다. 왜 당신이 아니고 내 남편인가. 왜 내 남편인가. 왜 나인가.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고갤 숙이는 것이었다. 기석은 그 감정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입술 하나로 쓸모없어진 자신과 달리 남자라면 아무 이상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누워 있어야 한다면 부양할 가족도 간병하기 위해 고생할 가족도 없는 자신이 적격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으니 이거야말로 인생의 아이러니였다.
이후에도 기석은 한 달에 두어 번 정기적으로 남자를 찾아갔다. 남자의 아내는 그를 거북해하는 눈치였지만 발길이 계속 이어져 익숙해지자 마주치면 작게 목례를 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남자의 병실은 대부분 아무도 없는 날들이 많았다.
기석이 남자의 병실에 찾아가는 건 무언가를 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대개 가만히 병상을 바라보다 집에 갔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으나 평소와 다르게 기석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기석은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표지를 넘겼다. 좋게 말해도 잘 쓴다고는 할 수 없는 필체로 짤막하게 정리 된 글이 쓰여 있었다. 지난주에 약속했던 대로 마브가 진행한 역사 수업의 필기였다. 가장 위쪽엔 괄호를 치고 ‘팝의 역사’라고 제목이 붙어있었다.
-음악이란 무엇?
-단순히 인위적으로 조율된 청각적 신호의 집합이 아님. -> 인간을 움직이는 힘?
-선사시대부터 그 힘을 이용함. 예)고대 제사장들의 제사 음악, 전쟁에 동원 된 북과 나팔.
-음악에 취한 사람은 신을 보거나 괴력을 발휘함. -> 음악을 연주한 이의 명령대로 조종되는 경우도 있었다(증거는 없음).
-2차 대전 이후의 영국은(갑자기 왜?) 미국에게 초강대국의 자리를 뺏김. 그 자리를 되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모색.
-그 중 위 사례에 주목한 영국의 과학자들은 연구 끝에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음악적 정수를 발견함.(어떻게?)
-반복적인 인체실험을 통해 과학자들은 개인에게서 정수를 추출하는 것 역시 성공함.
-정수는 이식하는 것은 쉽지 않았음. 많은 피 실험자들이 그 과정에서 실패하여 죽음.
-> 그러나 결국 실험 끝에 소수의 인원에게 이식하여 실용화 시키는데 성공.
-오늘날 대중들은 그 실험군의 이름을 ‘Beatles’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음.(헛소리)
삐뚤빼뚤한 필체와 중간 중간 따로 남긴 메모는 노트에 적힌 이야기를 더욱 유치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자신이 적은 내용들을 찬찬히 읽던 기석은 이내 양손으로 안면을 쓸어내리며 한 숨을 가득 내뱉었다.
“아저씨.”
기석은 여느 때와 같이 눈을 감고 있는 남자를 불렀다.
“소원을 이룰 수만 있으면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할래요? 대신 실패하면 무조건 인생이 파탄 나는 거야.”
기석과 남자 사이엔 심박 수를 알리는 신호음만 울렸다.
“뭐, 우리는 이미 파탄 나있으니까. 애초에 밑져야 본전이네. 그리고 아저씨는 하고 싶어도 못하잖아.” 기석은 그렇게 말하며 입만 웃었다.
노트를 덮어 가방에 넣은 기석은 이후 병실을 나섰다. 사온 음료수 중에 한 병을 챙겨간 건 비밀이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가요장에서 만났다. 기석이 환경의 불결함을 지적하며 차라리 자기 집에서 보자고 제안해도 마브는 보안상의 문제로 제의를 일축했다. 덕분에 기석은 항상 땀범벅으로 노트를 피고 마브를 노려봤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한쪽 바퀴가 빠진 칠판까지 가져다 놓은 마브는 그런 기석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분필을 휘갈겼다.
“지난번에 어디까지 얘기했지?”
“비틀즈.”
“그래! 맞아 비틀즈! 이 모든 일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
마브는 함부르크라고 칠판에 적었다.
“비틀즈가 함부르크에서 초기 시절을 보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야. 함부르크에 있는 동안 비틀즈는 이식 수술을 받은 거라고 영국 정부의 관할 아래에서.”
또 시작이구만 하는 느낌으로 기석은 팔짱을 끼고 바라봤다.
“함부르크 시절을 전후로 비틀즈는 음악적이나 기교적으로 이전과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아. 당연하지 수천 명 분의 정수를 이식 받았는데! 그렇게 많은 정수를 받는 다면 말이지 음악적 악상도 기교도 정상적인 범주의 인간과는 차원을 달리하게 된다고. 그뿐만이 아니야.”
“아니면?”
“아우라Aura. 희랍어 숨에서 유래된 말이지. 그리고 그 단어 그대로 내쉬는 숨결이 달라. 다시 말해 개인이 뿜어내는 영적 파동이 다르지. 그것이 일정한 음정을 가진 멜로디가 되서 주변에 퍼져나가면 평범한 인간은 그대로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리는 거야.”
마브는 그렇게 말하고 겪어봐서 알고 있지 않으냐는 눈으로 바라봤다. 내내 시큰둥하게 듣고 있던 기석도 거기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60년대 들어서 영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해.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실제 침략전쟁이었다고. 미국 정부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꼈지만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었지. 원자 폭탄이상으로 문화 폭탄은 강력했어. 결국 60년대 내내 영국에게 시달린 미국은 거의 백기를 들기 일보 직전까지 가게 되지.”
마브는 목소리는 강의를 하면서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구부정한 허리가 세워지고 혈색이 돌더니 앙상한 손발에는 힘줄이 바로섰다. 발음도 정확해지고 말은 점차 청산유수가 되어갔다. 이야기 자체가 그에게 힘을 주는 것 같았다.
“미국 역시 반격의 준비를 했어. 첩보전을 통해 정수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극비리에 대항마를 준비했지 미국이 선택한 건 젊은 신예 록 가수였어.”
마브는 칠판에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이름을 적었다. 기석은 내심 뜨악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한편으론 이쯤되면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는 심정도 없잖아 있었다.
“정수를 주입받은 엘비스는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지. 미국은 간신히 본토 방어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어. 하지만 안심하기엔 중요한 걸 간과했다고. 정수의 부작용에 대해선 몰랐던 거야. 앞에서 말했지 다수의 정수를 시술 받은 인간은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된다고. 대신 그만큼 신체와 정신에 부하를 준다는 사실을 단 기간에 기술을 따라잡은 미국은 놓치고 있었지. 결국 1977년 이식을 받은 엘비스의 신체가 붕괴하고 미 정부는 그의 사인을 자살로 발표하지.
하지만 미 정부는 포기하지 않고 좀 더 가기로 해 인간에게 담을 수 없다면 무생물은? 천재 물리학자 칼 세이건의 제안이었지. 여기서 이 사람이 왜 나오느냐고? 나도 몰라 천재라잖아. 봉고도 꽤나 잘 쳤으니 음악적 조예도 없는 건 아니지. 어디까지 얘기 했더라, 그래그래 무생물, 추출한 정수를 사물에 담는 발상. 성공 가능성은 몰랐지만 정부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표면적으로는 당시에 진행하던 우주 탐사 프로젝트 그랜드 투어에 연장선상으로 위장했던 그 프로젝트는 골든 디스크라고 명명되었지. 보이저 2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의 패러디라고 할까.
누구 생각인지 그다지 좋은 작명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뭐 국운을 건 프로젝트이니만큼 살벌하게 돌아갔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와중에 때마침 미국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일도 일어났어. 1980년 12월 8일 비틀즈의 리더 격이던 존 레논이 총격으로 사망해. 범인 마크 채프먼은 정신질환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 쪽에선 뭐, 다 아는 사실이지……”
“뭘 알아요?” 어깨를 으쓱하는 마브에게 처음으로 기석이 물었다.
“암살이었다고. 뻔하잖아.”
“누가 왜 암살하는데요.”
“당연히 영국 정부지! 친구, 이해력이 이렇게 모자라면 빨리 말해줘야 돼. 처음부터 말하기 힘들어.”
“그러니까, 왜 영국 정부가 존 레논을 죽였는데요.”
기석은 다른 사람도 아닌 마브에게 지적으로 무시당하자 몹시 자존심이 상했지만 궁금한 건 궁금했기에 참고 물어봤다. 마브는 김이 샌다는 뜻으로 푸하고 입술을 털었다.
“비틀즈가 영국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니까. 노래만 봐도 알잖아. 사랑, 평화, 섹스가 좋아 전쟁 따윈 싫어요. 아무리 통제하려해도 인간의 자유의지는 제어할 수 없는 법이니까. 존 레논은 본보기로 죽은 거였지. 이제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도 될까?”
기석은 대답 없이 팔짱을 낀 채 소파에 퍽 소리가 나게 기댔다. 뒤이어 올라오는 먼지를 마셔 잔뜩 기침을 하는 기석을 잠시 안쓰러운 눈으로 보다 마브는 다시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따.
“결과적으로 보면 영국 정부가 내린 판단은 단기적으론 옳은 것 같았지만 장기적으론 자충수였다고 할 수 있었어. 4명이 부담하던 것을 3명이서 부담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비틀즈는 결국 해체하게 돼. 이 소식을 접하게 된 미국에선 그야말로 싸우지도 않고 이긴 격이었는데, 이건 프로젝트를 이끌던 과학자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어. 영국을 타도하기 위해 움직이던 프로젝트는 적이 자멸하자 아이러니하게도 동력원을 잃어버린 거야.
그대로 좌초될 위기였던 골든 디스크 프로젝트는 다행히 당시 대통령이던 레이건에 의해 새로운 목표를 지시 받아 견인 될 수 있었어. 바로 냉전을 끝낼 비대칭 전략 병기로서의 목적이었지. 생각해봐 이념이 있는 곳에 음악이 빠질 수 있겠어? 앞에서 말했지 원자폭탄 보다 뜨거운 걸 찾으라면 바로 문화폭탄이라고.
1981년 마침내 완성된 골든 디스크는 적합하다고 판단된 개인에게 주어지게 돼. 본래 5명으로 기획되어 있었지만 이례적인 적응도를 보인 개인을 고려한 도박적인 수였어. 거기에는 대통령의 개인적인 의견이 강력하게 작용했지. 비틀즈의 사례를 들면서 여러 마리 개의 목줄을 틀어쥐는 건 어렵지만 한 마리의 목줄을 쥐는 건 쉬운 일이라는 논리였지.
그런 논리로 잭슨 집안의 8남 마이클이 대망의 골든 디스크의 첫 사용자로 낙찰되었어. 마이클 잭슨, 23살의 나이로 핵폭탄보다 강력한 힘을 얻은 남자.”
마브는 그 이름을 잠시 음미하듯 되뇌었다.
“마이클은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었어. 혹자는 고르바쵸프 같이 머리에 커피 얼룩이나 있는 인간 덕분에 냉전이 끝날 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고 전적으로 마이클의 활약이 컸지. 크렘린 궁에 Dangerous가 울려 퍼지던 날 펜타곤에선 샴페인을 터트렸어.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더 이상 비길 데 없는 최강국이었어. 더 이상 골든 디스크가 필요하지도 않아 보였지.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라고. 정부는 이제 마이클을 자국의 내부 상황을 다스리는 데 사용하려고 했어. 마이클은 아이처럼 순진했으니까 더욱 다루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지.
물론 마이클이 그렇게 천치 같은 인간은 아니었어. 아이 같은 것은 그의 순수한 감성이지 지능이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힘이 어떤 파급력과 위력을 가졌는지 쯤은 알고 있었어. 그리고 자신의 이 이대로 권력자들을 위해 쓰인 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예상할 수 있었지. 남들보다 순수한 그의 양심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더욱 힘들었어.
바로 그것이 그를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했지. 자신과 불특정다수의 삶을 두고 저울질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 아니겠어? 그러나 선택은 내려야하는 법이고 마이클은 결단을 내렸어. 그는 결국 다수의 삶을 구원하는 쪽을 선택했어. 그건 정말이지 위대한 희생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
이봐, 아직 감동을 느끼기엔 일러. 아, 먼지가 눈에 들어갔다고?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지금 같은 이야기를 할 땐 집중을 하라고. 자자 얼마 남지 않았어. 눈물이 쏙 빠질 시간이야. 마이클이 실천한 방법은 단순하지만 고통스러운 것이었어. 세 번의 월드 투어를 다니는 동안 마이클은 골든 디스크를 아주 조금씩 티가 나지 않을 만큼 쪼개서 흘려보냈어. 골든 디스크는 보통의 인간이 다룰 수도 없는 물건이었고 그는 분명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그런 무지막지한 물건을 쪼개는 건 수명을 깎아내는 일과 같았지. 타오르는 태양을 상상해봐. 그리고 그 다음엔 그걸 한줌씩 손을 직접 잡아 뜯어낸다고 떠올리는 거야.
마이클의 행위는 처음엔 들키지 않았지만 결국 꼬리를 밟힐 수밖에 없는 것이었어. 애초에 그의 몸이 자신의 행위를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게 육안으로 드러났으니 말 다했지. 정부는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마이클에게서 골든 디스크를 회수했지만 이미 일부를 제외한 디스크의 대부분은 세계 각지에 퍼져있었어. 그들은 분노했지만 이미 떠나간 디스크를 회수하기는 요원했지. 그래서 대신 남아있는 마이클에게 공격의 화살이 쏟아졌지.
마이클의 생애 후반 동안 그에게 가해진 공격들을 봐. 그것들이 정말 특정한 목적이 없는 악의들로만 보여? 그들은 마이클을 공격해 그의 모든 것들을 짓밟으려 했어. 그리고 대부분 성공했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지. 실낱같은 그의 생명을 손에 틀어쥐고 끊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만족한 듯 손을 털었어.
그가 죽은 지 벌써 10여년 가까이 지났지만 누구도 이런 사실들엔 신경 쓰지 않고 있어.”
거기까지 말을 마친 마브는 입을 다물었다. 그 표정은 기석이 처음 거리에서 그를 봤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기석은 그의 눈에서 항상 빛나는 곤충과도 같은 비인간적인 안광이 아닌 인간적인 감정의 편린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찰나의 것이었다. 마브의 눈은 그새 방향을 알 수 없는 광기가 차올라 있었다.
“수업 끝!”
마브가 박수와 함께 소리쳤다. 기석은 정신없이 칠판을 비롯한 무대 위의 잡동사니들을 움직이는 마브를 바라봤다. 치우는지 어지르는 건지 도깨비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도깨비 같은 것 그것이 그를 표현하기에 가장 정확했다.
기석은 비틀즈가 왜 죽었고 마이클 잭슨이 불쌍했네 하는 이야기 따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 없었다. 마브의 본 모습이 과묵한 건지 미친 건지 망상증인 건지 인간적인 건지 감성적인 건지 멜랑콜리 한 건지 센티멘털 한 건지는 어느 것이어도 상관없었다. 도깨비불이 무슨 모양으로 타오르건 간에 도깨비불은 도깨비불인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기석에게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따위는 상관없었다. 그저 약속한 대가에 대한 지불 능력이 그에겐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돈을 받아내려면 가끔은 채무자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방법이었다.
“질문이 있어요.”
“오호 뭐가 궁금해?”
“그래서 그 조각 난 디스크들은 어떻게 된 건데요.”
“아주 좋은 질문이야.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네? 그치? 그건 말이야……”
기석의 질문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브는 들고 있던 잡동사니들을 던져버렸다. 그리곤 아까부터 구석에 처박혀 있던 물건을 챙겨와 기석의 눈앞에 들어보였다.
“여기 있지!”
항상 속이 비어있던 그의 기타 케이스였다. 자신의 소원을 이뤄줄 물건을 당장 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기석은 어쩐지 두근거렸다.
“보고 싶나봐?”
“확인 할 수 있으면 좋죠.”
“좋아.”
마브는 한 번에 걸쇠 두 개를 풀었다. 뚜껑을 연 케이스 안은 텅 비어있었다.
“뭐하는 거예요 지금?”
“왜?”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데?”
“없는 게 아니면 뭔데요.”
“친구는 소리를 볼 수 있어?”
“없죠.”
“그럼 소리의 뭉쳐 놓는다면 보일까?”
“안 보이겠죠.”
“그럼 그보다 많은 소리를 뭉쳐 놓은, 예컨대 소리의 결정이 있다면 보일까?”
“그것도 안보이겠죠.”
“거 봐.”
‘대신 들리겠지.’ 기석은 또다시 이길 수 없는 말싸움은 하기 싫어 뒷말은 속으로만 했다.
“그래요 있다고 쳐요. 근데 나중에 내가 약속을 지키면 어떻게 줄 건데요. 그쪽만 보이지 나는 내가 받아도 떨어트렸는지 발로 차고 다니는지 알 수도 없는 걸.”
“그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마브가 케이스를 뚜껑을 덥고 걸쇠를 잠그며 말했다.
“이대로 가져가면 되니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기석은 자신을 쳐다보는 마브를 보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믿어야 한다.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냐고 되묻는 눈이었다. 떠보려다 손해만 본 기석은 애꿎은 소파만 걷어찼다. 케이스를 가져가라니 뭔 혹부리 영감 혹도 아니고, 그렇게 꿍얼대며 기석은 담배를 찾았다.
4.
길수를 설득하는 것은 간단했다. 자신처럼 길수도 마브의 앞으로 데려와 자신이 경험한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앞에서도 마브는 전과 같은 연주를 선보였다. 이번 곡은 건즈 앤 로지스의 Welcome to the Jungle이었다. 찢어지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기타 리프가 호쾌하게 뻗어 나와 가까이 서 있는 이들을 강타했다.
“선생님!”
길수의 반응은 기석의 예상 이상이었다. 마브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길수의 모습은 무협지의 사제 간에 처음 조우하는 장면 저리가라 하는 것이었다.
기석의 예상을 빗겨나간 것은 그것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스승님!”
기석이 절대 혼자 오라고 당부했음에도 길수가 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끌고 온 길수 옆에 꿇어앉은 형만은 사람이 되기 위해 찾아온 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들이었지만 덕분에 마브의 인터넷 방송 데뷔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방송 장소는 가요장이었다. 스튜디오를 대실해서 방송을 하는 게 낮지 않겠냐고 기석이 제안했지만 마브가 일관되게 거부했다. 기석의 편을 들어주는 인원은 없었다. 별 수 없이 기석은 형들과 예정에도 없던 대청소를 하며 가요장을 임시 스튜디오로 꾸몄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클래식 기타맨입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분을 모시고 방송을 키게 되었는데요.”
길수는 방송을 송출하고 평소보다 훨씬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채팅창은 새로운 스튜디오에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뒤이어 등장한 마브에게는 무척이나 냉담했다.
-노숙자 좀 치워라.
-좀 씻겨서 오시지.
“하하, 이 선생님께서 사실 엄청난 은둔 고수시거든요. 여러분 부디 겉모습은 신경 쓰지 말고 한 번 연주를 감상해 보시죠.”
-그래도 비위가 상하네요
-굳이 보고 싶지 않아요
-방송 노선을 알 수가 없네
방송의 분위기는 부정적인 흐름을 타자 급속도로 냉각되어 갔다.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한 길수는 민망한 웃음만 나올 뿐 채팅을 읽는 눈은 둘 곳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던 마브가 팔을 들어 자세를 잡고 움직였다. 코드를 잡는 움직임을 보던 기석은 얼른 메고 있던 베이스에 손을 올려 치기 시작했다. 둥둥 두두둥 둥둥, 베이스 라인이 들리자 형석 역시 박자를 타며 드럼에 시동을 걸었다. 메인 기타는 없었지만 바탕이 완성된 리듬이 들려오자 매섭게 올라오던 채팅들도 조금 수그러들었다.
기석이 눈치를 주자 그제까지 정신을 못 차리던 기석이 얼른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익숙한 멜로디였다. 90년대 히트한 B급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의 주제가였다.
“If there's something strange-In your neighborhood. Who you gonna call?”
마브가 노래하자 세 사람이 일제히 외쳤다.
“Ghostbusters!”
마브는 연주가 진행될수록 리듬을 타며 흐느적댔다. 치렁치렁한 코트와 볼품없는 외견이 합쳐져 그 자신이 유령처럼 보이는 춤사위였다.
-ㅋㅋㅋㅋㅋㅋ이거 뭐임
-이상한데 빠져드네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들이 있었지만 채팅창에는 재미있다는 의견들도 하나 둘 나타났다. 탄력을 받은 그들은 뒤이어 유명 팝송들을 커버해서 연주했다. 세 번째 곡을 마쳤을 때 방송은 순항 궤도에 올라있었다. 우려 속에 시작된 것 치고는 이 날 방송은 성공적으로 끝마친 편이었다. 후에 그들은 성공을 자축했지만 진짜 본편은 다음날부터였다.
마브가 리듬을 타며 흐느적대는 영상을 짧게 잘라 합성한 영상이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왔다. 영상은 순식간에 엄청난 추천을 받아 사이트 최상단에 노출되었다. 일견 기괴해 보이기도 하는 영상이 유저들의 마이너한 감성을 자극했는지 삽시간에 수많은 합성과 패러디가 범람하게 만들었다.
마브는 어느새 인터넷상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은 유명인 이었다. 일단 유명해지자 방송에는 곧장 전에 없던 대규모의 입구 유입이 이루어졌다. 방송의 규모가 너무 불지불식간에 커져서 길수가 방송을 관리할 사람을 급하게 구할 정도였다.
방송으로 마브를 보러 온 사람들이 그를 보고 난 후에 보이는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거나 자신들의 잣대로 비웃었다. 웃는 이들은 어느 쪽이건 마브를 웃어넘길 만큼 가볍게 여겼다. 반면 웃지 않는 이들은 하나의 형태로 귀납됐는데 그것은 바로 추종하는 것이었다.
방송이 반복되면서 끝자락에 마브는 항상 자기 멋대로 카메라 앞을 막아서며 자신만의 음악이론과 음모론을 횡설수설 쏟아냈다. 그런 행동을 기석 말고는 막는 사람이 없었다. 기석이 겨우 카메라 앞에서 뜯어내야 방송 끝이 났다. 그런데 마브를 말리는 것은 기석이 어찌할 수 있었지만 마브가 하는 말에 달라붙는 이들은 막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마브가 인터넷상에서 유명해지건 길수의 방송이 나날이 성장세를 보이 건 기석은 이번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마브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게 중요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두 달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아직 계절은 단풍이 저물지 않았다. 기석은 이제 마지막 약속을 남겨두고 있었다. 마지막이었지만 기석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마지막 약속은 그만큼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무서워?” 어느새 기석 옆에 다가온 마브가 물었다.
“아니요.”
“아직도 하고 싶어?”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하면 마치 물러줄 것 같은 말투였다.
“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나도 몰라요,”
그 말 그대로였다.
5.
V3는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다. 그룹 이름은 라틴어 문구 veni, vidi, vici에서 따온 것이다. 멤버들의 평균 나이는 23세, 각각 보컬과 댄스 랩에 특화 되어 있는 3인조로 구성되어있다. 보컬을 하는 리더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랩 담당은 전남 익산 출신 댄스 담당은 부모님이 두 분 다 한국인이었지만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한인 2세다.
위키에 적힌 정보들을 읽으며 기석은 처음으로 V3라는 그룹에 대해 알아갔다. 뉴스에도 곧잘 나오곤 했기에,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위상을 지녔는지는 관심이 없었기에 읽다가 종종 놀라는 부분들도 많았다. 가령 이들의 팬클럽 회원 수가 해외와 국내를 합쳐 한국 인구의 몇 배에 달한 다던가 하는 부분들이 더 그랬다.
모니터에서 눈을 뗀 기석은 침대에 풀썩 누웠다. 매트릭스에 공기가 빠지는 것처럼 기석의 입에서도 깊은 한 숨이 나왔다. 내일 오후 7시 한국 인구보다 몇 배는 많은 아이돌 그룹이 서울 한 복판에서 공연을 한다. 장소는 바로 기석이 일하는 콘서트홀이었다. 왜 굳이 상암이나 잠실 같은 대형 공연장소가 있는 곳이 아니라 코딱지만 한 자기네 콘서트홀에서 귀국 이후 첫 공연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7천 명을 간신히 넘기는 콘서트홀에서 내일은 특수 배치를 통해 1만 명까지 수용 인원을 늘린다고는 하지만 고작 1만 여석을 가지고 초거대 아이돌 팬덤을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뉴스에선 내일 인근에 추정인원만 3만 여명 정도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기석은 눈을 감고 그 인파를 상상해봤다. 건물과 거리에 땅이 보일 틈이 있을까 싶었다. 선망과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십대 이십대들이 포화직전의 상태로 운집해 있을 것이었다. 기석은 눈을 떴다. 그는 그 공간을 공연 바로 30분 전에 정전시킬 계획이었다.
이론상 계획은 완벽했다. 두 달 전부터 기석은 준비했으니 기석은 준비했던 대로만 하면 실행하면 됐다. 기석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했다. 홀 내부엔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의 경호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음향실에 들어가기 전에 주위를 살펴 가장 가까이 있는 소화전을 열어 준비한 작업복을 넣어 놨다. 설비팀에서 입는 작업복과 최대한 유사한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 구매한 것이었다.
일찍 온 시간 동안 기석은 원래 출근해서 하는 일들을 미리 처리했다. 정확히 30분 뒤 음향 감독이 팬더같은 다크써클을 늘어트린 채 올라왔다. 커피를 마셔도 졸려 보이는 감독에게 인사를 나눈 기석은 한 일을 보고했다. 감독은 수고했다고 한 뒤 본인이 자리에 앉아 기기들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기석은 얼마 안 있어 잠시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일어났다. 그리고 소화전에서 아까 숨겨놓은 옷을 꺼내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을 가는 길목에도 경호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왔다 들어갔는데 옷이 바뀌어 있다면 눈에 띌 것이 분명했다. 기석은 거기에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기석은 복도를 지나기 전에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뒤 복도 반대편에서 소란이 들리고 다급하게 무전을 주고받으며 달려가는 경호원들의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기석은 주의가 다른 곳에 쏠린 사이 얼른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는 중에 복도에서 익숙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놔! 짜식들아 내가 누군 줄 알고? 어!”
30분 일찍 올 때 함께 와서 북쪽 쪽문에 숨어 있게 한 형만이었다. 환복을 마친 기석을 모자까지 눌러쓰고 화장실을 나왔다. 원래 입었던 옷은 작업 가방에 넣어 챙겼다. 전기실 앞에 오자 기석은 조금 긴장이 되는 걸 느꼈다. 하지만 경호원중 누구도 작업복과 가방을 챙긴 기석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침내 전기실 안에 들어온 기석은 차단기 레버에 준비한 로프와 추로 지렛대를 만들어 놓고 나왔다. 연습했던 대로라면 지렛대의 원리로 대량 20분안에 차단기가 내려갈 것이었다.
전기실을 빠져나온 기석은 곧장 음향실로 갔다. 방음 때문에 살짝 사이공간이 있는 곳에서 기석은 옷을 갈아입었다. 혹여 누가 복도를 지나다니진 않을까 음향실에서 감독이 나오진 않을까 하며 엄청나게 눈치를 보며 환복 했는데 사실상 가장 떨리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완전 범죄에 성공한 기석은 음향실 한 구석 자기 자리에 앉아 차단기가 내려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얼 하기엔 불안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기엔 진정이 되지 않던 기석은 어제 마브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V3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겁니까.’
‘다시 찾아야지,’
‘그 디스크?’
‘맞아, 골든 디스크.’
‘그건 당신 기타 케이스 안에 있다면서요.’
‘그건 일부야. 그리고 내가 본 건 완성품이고.’
‘V3가 골든 디스크의 완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그들이 또 다시 시작 한 거야.’
‘무슨 증거로 같은 사람들이 만든 거라고 확신하는데요.’
‘이름을 봐 V3라니 무슨 약자겠어. Voyager 3라는 뜻이잖아.’
‘찾아보니까 veni, vidi, vici의 줄임말이라던데.’
‘둘러대기로는 뭘 못해.’
기석은 거기까지 생각하다 피식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말싸움으로는 결코 그를 이길 수 없었다.
공연 20분 전, 기석의 예측보다 10분 정도 늦게 홀은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 일제히 정전이 됐다. 어둠이 군중을 뒤덮자 사람들은 처음엔 당황하여 침묵을 지켰다. 어둠이 가시질 않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누군가가 발을 밟혔는지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를 기점으로 어둠 속은 전쟁터가 됐다. 비명과 악소리가 난무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기 위해 날뛰느라 넘어지고 밟히기 일 수였다. 안전 요원들이 급하게 라이트를 켜서 흔들며 군중을 진정시키려했지만 산불 앞에 시냇물일 뿐이었다.
모두가 이성을 잃은 시간 기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상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마브를 찾으러 갔다. 마브는 약속한 곳에 잘 숨어있었다. 외투를 입은 몸을 옹송그린 게 방수포를 씌운 화물들과 비슷했다. 기석은 설명할 시간도 없이 마브를 일으켜 세워 V3가 있을 대기실로 쪽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러다 기석은 얼마 안가 아차 싶었다. 대기실 쪽 문 현관에는 이미 경호원들이 잔득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보였다. 경호 업체가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쯤은 해두었을 것이란 사실을 간과한 기석의 실수였다. 숫자도 숫자지만 대형 라이트까지 켜놓아서 무대처럼 밝았다. 더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하고 기석이 포기하려던 찰나였다. 기석의 아래에서 호각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마브가 입에 호루라기를 물고 있었다.
-삐리이이이익!!
“와아아!!”
수십 명이 넘어가는 고함소리가 기석과 마브가 온 쪽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하나같이 청록색 코트를 입고 얼굴로 마스크를 가린 이들이었다. 어림잡아도 서른 명이 넘어가는 인원이었다.
“뭐해! 어서 가!”
대체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복면 일당 중 하나가 기석을 붙잡고 어서 가라고 재촉했다. 기석이 아는 목소리였다.
“길수 형?”
“통성명할 시간 없어! 빨리!”
복면 일당들은 모두 마브의 추종자였다. 기석은 마브와 함께 뛰면서 이쯤 되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마브의 설계였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물어 볼 시간이 없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수많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대기실 앞에 당도했다. 현관에서 벌어진 사태 때문인지 대기실 외부에 보이는 경호원은 없었다.
“얼른 들어가요.”
“그전에 이거 받아.”
얼른 들어가라고 기석은 보채는 와중에 마브가 익숙한 물건을 건넸다. 그가 늘 가지고 다니던 기타 케이스였다.
“친구는 약속을 다 지켰으니까 가질 자격이 있어.”
“알았으니까 좀, 빨리 가요.”
경호원들이 언제 올지 몰라 기석은 마음이 다급했다. 마브는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아마도 일은 실패하겠지. 그러니까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친구가 이제부터 내 몫을 대신해서 살아야 해. 나도 원래는 그들 밑에서 일했어. 하지만 마이클을 곁에서 보면서 깨우쳤어 세상은 나 홀로 소리 낼 수 없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 마브의 눈이 반짝이는 것이 눈물 때문인지 옆에서 그의 얼굴을 비추는 비상 조명등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소리는 없어. 수만 수천가지의 소리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의 완벽한 소리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내 삶을 뉘우치기 위해 이 순간까지 살아왔어.”
“……”
기석은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친구, 한 가지만 더 알아둬. 삶은 항상 고통스럽지만 다행인 건 그래서 더 아파도 괜찮다는 거야. 왜냐하면 그럼 평소와 다를 건 하나도 없잖아.”
마브는 그렇게 말하고 대기실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불이 돌아왔을 때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6.
향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V3 콘서트 정전 사건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식어가고 있었다.
기석과 길수 형만, 세 사람이 고기 집에서 소주를 넘기며 서로의 무용담을 나누는 그런 후일담은 없었다. 형만은 취객 연기를 너무 실감나게 한 나머지 제지하던 경호원 한 명의 턱이 나가게 만들었다. 법원에선 과거의 경력을 바탕으로 상습적이라는 판단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길수는 다행히 다른 복면들과는 달리 무사히 빠져나갔다. 너무 급하게 도망치던 나머지 계단에서 발목을 접질려 전치 6주의 골절상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기석은 완전 범죄는 얼어 죽을 완전 범죄였다. CCTV를 하나도 고려하지 못한 범죄 내역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고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바로 용의자로 지목되어 잡혀버렸다. 자사 측 직원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덥기 위해 손해 배상과 해고 처리로 끝나 감방 신세를 지지 않게 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직장에서 잘린 이후로 기석은 일용직 노동자로 공사 현장에 나가고 있었다.
세 사람은 이후로도 가끔 만났다. 주로 형만의 가게였다. 고기를 굽긴 구웠지만 서로 말 없이 고기를 굽고 서로의 앞에 놔주었다. 세 사람이 소주를 넘기고 있으면 티비에서는 항상 마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뉴스에선 마브가 IMF 때 파산한 레코드 회사의 사장이었다고 했다. 본명은 김득철, V3의 소속사 대표와는 선후배 사이로 열등감에 벌인 범죄라고 보인다고 했다.
“난 어쩐지 사기꾼 같았어.” 길수가 잔을 비우며 말했다.
“난 뭘 하는 건지 못 알아 들었어.” 형만이 잔을 비우며 말했다.
“된 통 걸린 거지.” 기석이 마지막으로 말하며 잔을 비웠다.
세 사람은 그러곤 계속 말없이 잔만 비웠다.
기석은 여전히 가끔 남자가 누워있는 병실을 찾아갔다. 이전과 다른 것은 항상 기타 케이스를 들고 간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간다는 건 아저씨를 보고 하는 이야기였나 봐.”
기석은 남자 곁에 앉으며 말했다.
“뭐, 아저씨는 반도 못 건졌지만.”
그렇게 말하고 뭐가 웃긴지 잠시 소리 없이 끅끅대며 웃었다. 웃음이 가라앉자 기석은 기타 케이스를 열었다. 기석은 마브처럼 연주할 수 없었다. 혹부리의 영감의 혹이 그럼 그렇지.
기석은 그래도 나름 마브가 했던 것처럼 허공을 말아 쥐고 왼손으로 배꼽 언저리를 튕기는 시늉을 해봤다. 실실 웃음이 나왔지만 기석은 계속 코드를 짚었다.
“There is……a house……in New Orleans……”
찬찬히 노래를 시작한 기석은 이내 목청이 터져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내 간호사들이 달려와 들려나가는 내내 기석은 계속 노래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