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태계의 협업과 갈등
정재은(영화감독)
도시 생태계의 협업과 갈등
정재은(영화감독)
강연일 : 2023.5.10.(수) 오후 2시~4시
강연장소 :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조관 104호 | 온라인 유튜브 생방송
강연자 : 정재은 (영화감독)
강연 내용 : 도시와 인간, 비인간의 관계로 도시 얼굴 읽어내기
<강연 요약 영상으로 다시보기>
이번 강연에서는 얼굴이라는 주제와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고 창의적 사고를 유발할 수 있도록 주제와 관련있는 작품 예시를 소개하고 정재은 감독님의 작품과 작업과정을 공유하며 도시 생태계의 갈등에서 비롯된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1. '얼굴'을 소재로 하는 영화 작품 사례
<마틴 귀어의 귀향> 몇 년간 아내 곁을 떠났다가 돌아온 남편의 얼굴이 이전과 똑같지만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포착한 마을 사람들, 남편이라고 믿는 아내, 그리고 남편 간의 갈등을 통해 정체성의 가시화에 대해 다룬다.
<뷰티인사이드> 매일 얼굴이 변하는 주인공과 사랑을 다룬 한국 영화이다. 주인공은 매일 자고 나면 얼굴이 바뀌어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된 얼굴로 어떻게 사랑을 찾고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을 전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아사코> 여자가 남자친구와 사귀다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고통을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후에 이 여자는 외모가 사라진 남자와 똑같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영화 작품 사례들을 통해 얼굴과 관련된 이야기, 정체성, 가시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왼쪽부터 <마틴 귀어의 귀향>(1982), <뷰티인사이드>(2015), <아사코>(2018)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 22년 전 프랑스에서 만난 여자를 잊지 못한 감독이 그녀가 살았던 도시를 방문해 사진 이미지만으로 사람을 찾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과 얼굴을 담은 프로젝트이다. 감독인 호세 루이스 구에린은 한 사진을 영감의 출발점으로 삼고 파고 들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법을 보여준다.
<김군> 강상호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로 5.18 광주 사태 때 사진 중 한장 속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 사진의 남자인 김군은 북한군이라고 지목을 당하는데, 감독은 이 지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김군을 실제로 만나본 사람을 찾고 이야기를 들으며 김군의 실제 인물상을 밝히려 한다. 개인 간의 관계를 넘어 사회적 기억과 정치적 논쟁까지 파급되는 얼굴과 정체성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왼쪽부터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 <김군>
얼굴과 자신을 드러내는 자화상
영화 평론가 장 미셸 프로동은 세계화의 특징으로 뽑은 "나라고 하는 우월적 존재의 부각"은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며, SNS, 사진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의 시작이 언제였을까? 과거의 예술가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얼굴과 정체성을 드러냈다. 예로 한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자화상인 <공제 윤두서의 자화상>과 유명한 자화상인 <강세황의 자화상>, <나혜석 자화상> 등이 있다. 이처럼 '얼굴'을 소재로 스스로를 그려 드러낸다는 점에 주목해 "나라고 하는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를 탐구해 볼 수 있다.
왼쪽부터 <공제 윤두서 자화상>, <강세황 자화상>, <나혜석 자화상>
2. 공간과 갈등을 다룬 작품 제작과정
다큐멘터리와 영화 모두를 가로지르는 핵심은 사건과 갈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과 갈등은 얼굴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어떤 사건이 포함되고 어떤 갈등이 있는지에 따라 선택이 결정되며, 사건과 갈등의 크기와 깊이는 다양하다. 갈등의 크기가 크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것은 아니며, 작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고, 작은 갈등과 사건도 일상 속에 존재한다.
정재은 감독님은 갈등과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보다는 우회적인 방식을 선호하기에 공간을 통해 사건과 갈등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활용했다고 한다. 공간이 갈등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그 남자의 사정>과 <태풍 태양>을 통해 드러냈다. 이후 작업을 이어 가며 인위적으로 연출된 공간이 아닌 실제하는 공간과 그 안에 담긴 의미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건축가와 공간과 그 공간에 사는 주민으로 관심이 옮겨가며 <아파트 생태계>라는 작품이 탄생했다. 아파트는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고,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아파트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되며, 공공의 공간인 아파트에 엮인 사람들의 갈등과 서로 다른 관점을 드러낸다.
이후 <고양이 아파트>라는 작품을 통해 둔촌주공 아파트가 재건축이 될 때 아파트 구역에 살던 수많은 고양이들을 어떻게 될 지, 그리고 아파트가 단지 주거권을 가진 사람들 소수의 아파트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화두를 던졌다. 아파트가 고양이같은 비인간과 함께 사는 공적인 장소이며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아파트의 고양이들을 이주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이 커다란 아파트 구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고양이는 약 250마리로 하나의 해결책으로 이 많은 고양이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지원하는 고양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데에도 시민간의 갈등이 생겼고 여러 사람과 단체 간의 갈등도 빈번히 나타났다. 무엇보다 진정 고양이가 원하는대로 그들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동물 너머>의 저자 전의령 작가가 말했듯,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점이었다.
<아파트와 생태계>
<고양이와 아파트>
3.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
윌리엄 크로닌은 인간의 접촉이 없는 역사 이전의 순수한 자연으로서의 야생이라는 지배적 관념은 서구의 독특한 구성물 일 뿐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 지구상에 인간의 영향이 닿지 않은 순수 자연은 존재하지 않기에 인간은 비인간 존재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그들과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게다가 동물은 사회, 정치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캐슬린 키트는 동물에 대한 배려라는 문제가 궁극적으로 계급, 젠더, 권력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동물 보호의 역사를 권력과 그 지형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읽자고 주장했다.
인간이 주체이고 동물이 대상인 이분법적인 ‘반려동물'이란 개념과 달리, 관계성과 얽힘을 포착하려는 ‘반려종'이란 개념으로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를 이해해보길 제안했다. '반려종'이란 인간이나 비인간은 관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도나 헤러웨이는 저서 『개는 개』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도나 헤러웨이는 ‘인간-사물-동물-식물-미생물-기계 등이 뚜렷이 구분되는 주체와 객체 또는 행위자와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를 생성해 나가는 ‘반려종'이라고 재명명했다. 이는 우리가 읽어내고, 관계를 맺을 때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다와다 요코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와 통한다.
마지막으로 전의령 작가의 책 『동물 너머』는 동물에 대한 생각과 관점에 대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고민해보자고 말한다. ‘분리의 관점에서 인간-동물 관계를 바라보고 그 사이를 >조정하려는 노력은 불가피하게 다양한 인간집단들 사이의 역사적 얽힘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동물에 대한 배려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사회적 통제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구절을 예시로 들며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를 기존의 윤리적 전환이 아니라 시선의 이동을 통해 읽어내어 볼 것을 제시했다.
강연. 정재은(영화감독)
요약. 진영민(아트콜라이더랩 외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