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들은 체감할 수 없이 멀리 있는 듯 보인다. 도시의 구조적 빈곤, 주거 불안, 생계의 압박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닌, 오랜 시간 누적된 조건이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반대로 어떤 변화는 지나치게 근접해 있어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 선택지가 줄어들고 이동의 여지가 소거되며 생활 리듬이 미세하게 뒤틀리는 과정들은 개인적 경험의 차원에서만 포착되기에 사회적 문제로 호명되기 어렵다. 그러나 가까이 있으나 잘 보이지 않는 구조적 요인들이 개인의 삶을 점진적으로 압박하며 지역의 문화적, 경제적 환경을 동시에 재편하고 있다.
전북은 최근 각종 개발 소식에 볕든 얼굴로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지만, 그 아래에는 여전히 ‘가장 못사는 도시’라는 낙인이 스며있다. 경제력지수 최하위권, 높은 청소년 자퇴율, 빠르게 상승하는 아파트 가격이라는 모순된 지표들이 동시에 존재하며, 견뎌온 이들의 삶의 조건은 점점 좁아지는데 도시는 화려한 외피를 유지하기 위해 과장된 홍보문구로 실재하는 것들을 지운다.
예술과 문화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가장 먼저 축소되는 영역이다. 수치적으로 눈에 띄는 개발사업은 유지되고, 그 아래에서 감각을 지탱해온 세계는 가장 먼저 사라진다. 각종 축제로 순식간에 소비된 텅빈 광장만이 남고, 예술가는 지워진다. 사회는 그 빈 공간을 활기있는 도시 이미지로 대체하며 일그러진 구조를 더욱 은밀하게 감춘다.
이번 전시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은 이러한 지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멀리 있다고 믿었던 문제들이 사실은 우리의 방 한 칸 옆, 문지방 하나 건너에 이미 들어서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사회적 장치들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반복된 부침이 오더라도 이러한 지역적 현실 안에서 서로가 수행할 수 있는 행동, 협력의 가능성, 함께함의 의미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참여작가 9명의 내밀한 방을 통해 살을 애리는 추위 안에서 어떤 에너지로 작업을 해 나아가는 지를 살피고, 개인 간의 미세한 연대가 최소한의 지속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가정하여 각자의 나아갈 방향을 건강하게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성민과 윤철규는 예술가의 시선으로 동료 작가들의 전시 설치를 도우며 작품활동을 지속해 나아가고 있다. 이번 전시 또한 두 사람의 손으로 완성되어지며 시작된다. 공간의 소유주, 이를 유지해 온 작가들, 여기에 발을 들이는 참여자들이 서로의 필요를 조율하며 만들어낸 구조적 협업이 존재한다.
김성민이 바라보는 세계는 시리고 따듯하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듯 보이는 초연한 얼굴은 은근하게 우리의, 작가의 삶을 녹여낸다. 그것들은 오늘이고 여전히 내일일테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서로를 보살피는 듯 온기가 느껴진다.
윤철규의 풍경 속엔 빛과 그림자가 극적으로 대비된다. 화면의 반대편에 일렁이는 태양볕, 가로등 불빛, 달과 별 같은 것들이 인물의 그늘을 대변하듯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행복을 쫓는 말간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구보다 씩씩하게.
김미경과 지용출은 작업과 삶이 긴밀하게 연결된 관계를 유지해왔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지용출의 뜨거운 시절은 아내인 김미경을 통해 여전히 세상 밖으로 온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 사람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들풀’은 메마른 땅 위에 억척스럽게 피어나 생을 틔운 우리들을 떠올리게 한다. 들풀을 향한 조그맣고 따듯한 김미경의 시선은 언 바닥을 다 녹일 것만 같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단단하게 꺾이지 않는 그 모습이 긍지로 가득했던 민중문화운동의 시절을 내비춘다.
박종찬의 건물들은 건물이라고 보기엔 수상하게 해체하여 나열되거나 베일에 쌓여있다. 어딘지 붕괴된 작가의 집들은 일그러진 우리 사회와 닮아 있다. 가장 최근 작인 <내가 가는 길, 물이 그린 그림>에서는 돌아서면 사라지는, 쌓았다고 생각된 삶의 무용함을 들여다 본다. 생활전선으로 흡수되며 작가로서의 삶의 반경은 좁아져 있으나, 기획자이자 제작자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역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아간다.
이동진과 정강은 명산여관의 소유주와 공간 기획자로, 종종 전시가 일어나기도 했던 명산여관을 정강이 보살피기 시작하며 이동진이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공간을 내어주었다. 나고 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명산에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고, 별도의 개보수 없이 전선 하나로 위태롭게 운영되던 이곳은 이번 전시를 통해 전북도립미술관과 연대하여 안전한 작업 환경이 조성되었다. 두 사람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이러한 과정을 작업으로 풀어낸다. 전시의 참여작가이자 작품 설치에 도움을 준 김성민과 윤철규의 작업현장 또한 기록하여, 공간을 매개로 한 상호의존과 협력의 구조가 어떤 형태로 구성되는지 유휴공간을 통한 전시가 형성되는 과정을 담는다.
나잇노이즈(박수지+김심정)는 공업 단지 내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아가는 작가 그룹으로, 다매체로 시적 언어를 구현해내는 박수지와 목조 작업을 통해 공간을 구성해내는 김심정 두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이상 세계를 계속해서 빚어낸다. 특히 박수지는 깨진 작품의 내부 질감으로부터 새로운 작업으로의 확장을 시도하며 이번 전시를 통해 연대하고 확장하여 스스로 제 빛을 다시 찾아가는 <빛돌쌓기> 작업을 통해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바로잡게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감춰진 표면을 열어 보이고 너무 가까워 흐릿하던 시야를 확보하여,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와 방식을 찾게 되길 바란다. 작가의 서사를 빌리기 보다는 과정 안에서 서사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함께 보여주고자 한다.
조용한 거리에 남겨진 폐여관을 찾아내 먼지를 털어내고 작업실을 꾸려 앉은 작가들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또 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얹어 자기만의 방을 내어주고, 기관이 대안하는 공간을 찾아내 지원을 통해 따듯한 온기를 더하고, 이 공간을 내어준 이의 손을 통해 이 모든 일들이 기록되는 과정이 연대라고 지칭되길 기대한다. 핵개인의 시대에 어떻게든 연결되려는 몸짓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슴슴한 따스함이 전해지길 바란다.
사이드 미러를 통해 곁눈질로 주변을 살피듯, 걸음이 닿기 어려운 이 공간에서의 전시를 흘깃 살피어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 공동체가 구성되는 방식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이러한 움직임들이 그저 상징적인 개입으로 끝나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 본다.
이길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