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 80 × 120cm 창문, 나무, 각종 출력 2014
창은 지붕이 되고, 지붕은 벽이 되며 집의 구조는 제자리를 잃는다. 흩어진 구조는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온 ‘안전한 사적 영역’으로서의 집을 낯설게 만든다.
오늘날 집은 은신처보다 ‘부동산’이라는 투자 개념으로 더 크게 작용한다. 이 작업은 그런 현실을 비틀어, 집의 가치와 의미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드러낸다. 뒤틀린 집 앞에서 관람자는 우리가 사는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the path i walk, a picture painted by water
가변크기 mixed media 2019-2023
2. 금강하굿둑 | 사진, 투명 물감, 물통, 구르마 2019
내가 걸어가는 순간 그 자리가 곧 길이 되지만, 그 길은 물로 쓰여져 금세 사라진다. 우리는 때때로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도, 이미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 때문에 돌아서지 못하고 고집을 이어간다.
가망 없는 투자를 반복하거나, 재능이 없음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꿈들이 그와 닮아 있다. 하지만 사회적 약속이나 위치에 대한 욕망 또한 물로 그려진 것처럼 언제든 증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을 선택하게 될까. 이 작업은 그런 질문을 남긴 채, 우선 ‘나’부터 물로 길을 써보며 사라지는 방향의 의미를 탐색한다.
50 × 20 × 30cm 모래, 스티로 2014
34층 건물의 꼭대기 층을 떼어내어 단독으로 놓았을 때, 그것은 여전히 34층인가, 아니면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1층인가? 높이는 위치를 규정하지만, 위치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언제든 전도된다.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더 큰 빈곤을 내려다보며 위안을 삼는가, 혹은 끊임없이 위만 올려다보기 때문에 스스로 빈곤하다고 느끼는가. 그 경계는 불분명하다. 이 작업은 바로 그 모호한 지점을 바라본다. 「34층」은 위와 아래, 결핍과 위안, 비교와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시선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45.5 × 53cm 캔버스에 아크릴, 2014
4층 건물에서 1·2층과 4층을 가리고 3층만을 보게 되면, 그 층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상태로 남는다. 위도 아래도 보지 못한 채 존재한다면 과연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작업은 그 질문을 구조적 결핍으로 드러내며, 높이와 낮음이 아닌 ‘관점’이라는 조건을 다시 묻는다. 결국 3층은 중간이 아니라, 비교가 제거된 세계에서 잠시 머무는 하나의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