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립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오래전에 폐업한 명산여관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한때 사람들이 오가며 머물고, 쉬고,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멈춘 듯 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흔적과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이 작은 공간에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다시 생각해 보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효율과 경쟁, 성과와 축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왔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빨리 앞서 나가는 것이 당연한 목표처럼 여겨집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종종 서로를 비교하고, 누군가의 몫을 빼앗아야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는 더 이상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든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현실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거대한 구조를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지만, 아주 작은 실천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는 없을까요. 이번 전시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안합니다. ‘증여’와 ‘선물’이라는 방식입니다.
증여와 선물은 단순히 물건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놓고, 그 행위가 다시 누군가에게 이어지도록 여지를 남기는 태도입니다. 계산하지 않고, 조건을 붙이지 않으며,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 바라보는 선택입니다. 이 전시는 이러한 태도가 예술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전국 광역시·도립미술관 가운데 가장 적은 예산과 전시 공간을 가진 미술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부족함을 이유로 물러서기보다, 가능한 모든 손을 잡고 함께 가는 방식을 선택해왔습니다. 이번 전시 역시 그러한 선택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화려한 시설이나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오래되고 불편한 건물에서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전시는 한 독립영화감독이 전북의 청년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작업 공간을 제공했다는 소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내어준 그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전시는 그 실천에 공감하고, 그 의미를 함께 나누는 자리입니다. 미술관은 오래된 전기 설비를 정비하며 공간을 다시 살렸고, 그 과정 자체는 하나의 기록이자 작품이 되었습니다.
참여 작가들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증여와 연대를 실천해온 이들입니다. 오랜 시간 동료로 함께해온 작가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삶과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또 다른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비를 전시 공간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다른 작가들의 설치를 돕는 역할을 자처해왔습니다. 이들에게 전시는 개인의 성취를 드러내는 무대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이 전시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무엇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지, 무엇을 함께 나눌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묻고자 합니다.
이 외진 공간까지 찾아온 관람객 여러분의 발걸음 또한 하나의 선물입니다. 이 전시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나눔과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명산여관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상상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전북특별자치도립미술관 | 관장 이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