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의 전횡에 반발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대장군 하진이다. 하진은 십상시의 권력을 약화시키기를 원했다. 하진은 이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황제를 설득해 군사를 동원하려고 했는데 《삼국지연의》에서는 하진이 십상시의 전횡을 막기 위해 외부 군벌들, 즉 원소와 협력하여 그들을 제거하려 했다고 나온다.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십상시 중 하나인 건석은 영제와 후계자를 논의하면서 하황후의 오빠인 하진을 죽이려 한다. 그 것을 통해 자신들이 지지하는 황자인 유협을 명실상부한 후계자로 만들고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계획은 사마 반은에 의해 하진에게 알려졌다.
영제가 승하한 후 하진은 원소에게 5000명의 군사를 주고 궁궐에 쳐들어가게 했고, 결국 조카 유변을 13대 황제인 소제로 즉위시키는데 성공한다.
하진은 이어서 십상시를 제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군사를 동원하기로 하는데 이 계획에는 원소가 찬성하고 진림과 노식은 반대했다. 결국 각지의 영웅들을 모아 작전을 펼치려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계획이 누설되었고, 오히려 하진이 십상시의 수장 장양의 계획에 따라 상방감 거목에게 암살당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하진의 암살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하진의 죽음으로 인해 원소와 조조 등은 궁중으로 진입하여 십상시를 처단하려 했고 이는 조정에 큰 혼란을 야기시켰다.
취화루 아래에서 원소와 조조에 의해 조충, 정광, 하운 곽승 등이 베이고 군사들은 십상시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으며 환관들도 모두 살해했다. 심지어 수염 없는 사람들도 환관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했다. 하진을 살해했던 상방감 거목을 포함해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장락궁에서 살해당해 십상시의 난이라 불리게 되었다.
십상시는 궁중에서 도주하려 했으나, 대부분이 붙잡혀 처형되었고, 일부는 도주 도중 자결했다는 내용이 《삼국지연의》에 등장한다.
장양과 단규는 십상시의 난을 피해 소제와 유협을 데리고 피신하는데 성공했지만 습격을 당해 얼마 못가 장양이 자결하였고, 단규는 소제와 유협을 잃어버리고 민공에게 죽임을 당한다. 소제와 유협은 구출되어 원소, 조조, 왕윤 등과 함께 낙양으로 향한다.
한편, 동탁도 낙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탁은 병권을 장악했으며 원소를 내쫓고 하씨 일족을 멸족시키는 등 조정을 장악해나가면서 유협을 황제로 세우고자 한다.
정원이 양아들 여포를 이용해 동탁을 저지하려 하나 오히려 이숙의 계략에 당해 양아들 여포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렇게 더이상 막을 자가 없어진 동탁은 황제 유변과 하태후를 폐위 시키고 진류왕 유협을 14대 황제 헌제로 만든다.
십상시의 난은 후한 조정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십상시가 제거된 후에도 조정은 안정되지 않았고, 오히려 권력 공백으로 인해 군벌들이 세력을 확대해나갔다.
특히 이 사건을 계기로 동탁세력이 큰 성장을 이뤘고 이후 한나라를 반동탁연합군의 시대로 데려다주었으며, 군웅할거의 시대로의 발판 역할을 했다.
십상시의 난은 후한 왕조의 붕괴와 삼국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중요한 사건으로, 중국 역사에서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 사건은 환관들의 부정부패와 전횡이 조정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십상시의 난을 계기로 군벌들이 세력을 키워나갔고, 이는 이후의 역사적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