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탁이 원소를 발해 태수로 임명한 것은 회유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원소를 향한 견제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복을 기주목으로 삼는 것으로 원소의 거병을 억제하려 하였다. 그러나 교모가 동탁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기도록 위조한 삼공부의 공문이 각지에 돌고, 원소를 지지하는 여론이 강해지자 결국 한복은 거병을 허락한다. 이 거병이 반동탁 연합군의 시초이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원소는 동탁의 전횡에 반발하여 각지의 군벌들에게 서신을 보내 동탁을 타도하기 위한 연합군 결성을 제안하는 내용이 있다. 원소의 제안에 따라, 조조, 손견, 공손찬(公孫瓚), 유표(劉表) 등 여러 군벌들이 연합군에 참여한다.
연합군은 총 18로(路)로 구성되었으며, 연합군의 맹주로는 원소가 추대되었다. 《삼국지연의》에 원소가 연합군을 결성하고, 각지의 군벌들이 원소의 깃발 아래 모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초기의 반동탁연합군 전투는 순조로웠다. 연합군은 낙양으로 진격하여 동탁의 군대와 여러 차례 충돌했고, 큰 승리를 거둔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손견이 가장 먼저 동탁군과 교전하여, 동탁의 장수 화웅(華雄)을 격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손견은 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며 연합군의 사기를 높혔다. 동탁이 손견을 포섭하기 위해 시도하지만 그는 동탁을 역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화친을 거절한다.
연합군의 압박을 받자, 동탁은 낙양을 불태우고 헌제를 데리고 장안(長安)으로 퇴각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후 장안으로 퇴각하는 모습이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낙양은 큰 피해를 입고,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겪게된다.
이전에는 황제 옹립에 대한 원소와 원술의 의견이 달랐다. 원소는 헌제 대신 새 황제로 유우를 옹립하고자 했고, 원술은 헌제를 황제로서 인정하고 있었다. 이 대립은 유우가 직접 자신이 황제가 되는 것은 불충이라고 언급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분열의 씨앗을 지우지는 못했다.
동탁이 장안으로 퇴각한 후, 반동탁연합군은 내부 갈등과 이해관계로 인해 분열되기 시작했다. 원소와 공손찬이 서로의 세력을 확장을 두고 충돌한 것을 시작으로 연합군을 떠났고 조조도 마찬가지였다. 삼국지연의에 원소와 공손찬 간의 갈등, 조조의 독자적인 세력 확장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동탁은 이후 192년, 부하 여포(呂布)와 왕윤(王允)의 반란으로 살해된다. 특히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가 동탁을 살해하는 장면이 가상인물 초선의 등장과 연반계의 사용을 통해 극적으로 그려졌다.
반동탁연합군의 분열 이후 후한 조정의 권위는 더욱 약화되었고, 그에 따라 각지의 군벌들이 독립적으로 세력을 확장해나간다. 이는 군벌시대의 진정한 개막을 의미하며, 후일 삼국지 시대의 군웅할거로 이어진다.
이처럼 반동탁연합군의 결성과 활동은 삼국 시대의 중요한 서막을 장식한다. 이후 드디어 조조, 손권, 유비(劉備) 등 삼국지연의의 주역들이 각자의 세력을 확립하게 되기 때문인데,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의 세력 확장, 손권의 강남 통치, 유비의 서천 점령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