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촉의 최후의 보루가 된 곳


유비는 형주를 얻고 난 뒤, 서촉 지방을 장악하면서 천하삼분의 기반을 다진다. 서촉 지방은 그 지명도 다양하고, 역사적·문화적 의미도 각별하다. 서촉, 서천, 파, 촉, 파촉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익주 지역은 오늘날 중국의 사천(四川)지방을 가리킨다. 사천은 가릉강, 민강, 타강, 양자강 등 네 강을 가리킨다.

익주에는 촉, 파, 한중 등 10여개의 군국이 있었는데, 익주를 다스리던 유장은 촉군에 속해있는 11개 성(城) 가운데 하나인 성도(成道)에 있었다. 익주의 행정 중심지가 성도였고, 성도가 촉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익주 지방 전체를 쉽게 ‘촉’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성도는 오늘날 중국 사천성의 행정 중심지이기도 하다. 파와 촉은 춘추 전국 시대부터 있던 지명인데, 사천이라는 말이 공식 행정 구역으로 등장한 것은 원나라가 이 지역을 사천행중서성(四川行中書聖)으로 정하면서부터다.

유장은 아버지 유언의 뒤를 이어 익주 목 자리에 오른 인물로, 한중의 장로를 경계했고, 조조와는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중 지역은 익주 목의 관할 구역에 속했지만 지리적으로 한수(漢水)를 경계로 하여 위치했으며 전략적 요충지였다. 익주의 중심지인 촉군과 한중 사이에는 가릉강과 타강이 흐르고 있었으며, 검각의 높고 험한 고개를 지나야 왕래할 수 있었다.

사천 지방은 도교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성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곡명산은 오두미도의 창시자인 장릉이 산 위에 단을 세우고 포교를 시작한 곳으로 이름이 높다. 오늘날에도 많은 도교 사원이 있어 관광지로 이름이 높은데 특히, 도가(道家) 사상의 창시자인 노자(老子)를 기리기 위한 사원인 청양궁에는 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태백은 ‘촉으로 향하는 길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힘들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촉의 지세는 험난한 것으로 유명했다. 유비와 조조가 촉 정벌을 두려워한 것도 촉의 험난한 지세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중국을 개혁 개방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 역시 사천 지방 출신이다. 그를 대표하는 ‘흑묘백묘론’ 역시 사천 지방에 내려오는 속담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