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도대전은 200년에 조조(曹操)와 원소(袁紹) 간의 대결로 벌어진 전투이다.
후한 말기, 중앙 정부의 권위가 무너지고 각지의 군벌들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중국은 혼란에 빠졌다. 그 시기 원소는 화북 지방에서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조조는 중원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두 군벌 간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조의 세력 성장 기반은 사실 원소의 지원이었다. 그 때문에 조조와 원소는 대립하는 관계보다는 우호적인 관계에 가까웠다. 그러나 원소가 반대한 헌제 옹립을 조조가 독단적으로 추진하면서 둘은 적대관계가 된다. 원소는 세력끼리 잦은 충돌이 있던 공손찬을 격파한 이후 조조를 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반대했다. 이유는 승리하긴 했으나 공손찬과의 전투에 의한 희생이 크고, 이러니 저러니해도 천자인 헌제를 품고 있는 군대를 치는 것은 의로움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조조를 공격해도 백성들의 지지보다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으므로 원소는 그 의견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조조와 원소는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견제는 꾸준히 있었다. 결국 원소는 조조의 부정을 밝히는 격문을 배포하고 10만 대군을 대동하고 결전을 벌인다. 이때 전풍이 강하게 반발하며 최대 3년을 바라보는 지구전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심지어 원소에 의해 투옥되기에 이른다. 이처럼 원소와 주변 참모들의 의견 대립은 계속 이어졌다.
반대로 조조는 순유의 진언에 따르며 원소군을 분리시킴과 동시에 장료를 동원하여 안량을 격파하는 등 순조롭게 승리한다. 주변 인물들과 의견 대립으로 위태로운 원소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주요 거점을 확보했으며 조조를 남쪽으로 더욱 몰아붙일 수 있었다. 원소는 기세를 몰아 조조를 처리하려 했으나 오히려 추격하던 문추가 죽임을 당하며 실패한다.
두 군벌은 잠시 소강상태에 놓이게 되고 서로 정비를 하며 새로운 전략을 구상한다.
원소는 진을 치고 서서히 조조 진영을 압박해나간다. 마침내 두 진영이 맞붙었고, 조조가 패한다. 원소는 기세를 몰아 관도까지 조조를 쫓는다. 원소는 군량을 잃고 사기가 저하된 상황에서도 조조의 진영을 공격한다. 하지만 조조는 지형을 이용한 방어와 효과적인 반격으로 원소의 공격을 막아낸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조조는 원소의 대군에 맞서기 위해 전략적으로 준비를 했다. 조조는 군사력을 집중시키고, 원소의 보급선을 공격하여 그의 군대가 식량 부족에 시달리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장기전은 조조에게도 부담이었고 형세는 나빠져만 갔다. 원소는 자신을 지지하는 반란을 계속해서 유도하며 관도 주변에 조조의 아군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며 조조를 고립시켰다.
이 시기 삼국지 연의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원소의 참모인 허유(許攸)가 조조에게 투항하는 장면이다. 원소가 참모들의 말을 들어주 허유는 조조에게 원소의 군량고가 위치한 우보(烏巢)를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허유는 비리가 탄로나 입지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자 원소에게 적극적으로 첨언을 하지만 원소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허유는 더이상 여기서 출세하긴 어렵겠다고 판단하고 조조에게 항복해 원소군의 상황을 알렸으며 기습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조조는 허유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보를 기습 공격한다. 이로 인해 원소의 군대는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조조의 기습은 성공했고 원소의 장수 순우경을 죽였지만 원소는 순우경의 패배를 예상하지 못하고 조조의 본진을 치려는 작전을 실행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원소는 장수를 잃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상황에 대한 책임소재를 따지며 내분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또 한 명의 부하가 배신을 했다.
장합은 조조에 투항한 이후 원소를 공격해 그가 급히 퇴각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도망이었기 때문에 원소의 행방은 커녕 생사도 알지 못해 그의 군사들은 오합지졸이 되어 혼란에 빠졌고 원소군은 무너졌다.
관도대전에서의 승리는 조조에게 결정적인 전략적 우위를 안겨주었고, 화북 지방에서의 패권을 확립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원소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고 패군을 수습해 귀환했으며, 자신의 패배를 기회삼아 반란을 일으킨 군현을 공격해 모두 평정했다. 패배 후에도 몇 년간 세력을 어느정도 유지한 원소였지만 그는 202년에 사망하였고 그의 후계자들인 원담과 원상은 내분을 일으켰다. 결국 세력이 분열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고, 원소의 강대한 군벌은 힘을 잃었다.
조조 역시 원소의 침입으로 영내에 큰 피해를 입어 내부 정리로 시간을 써야 했지만 관도대전 이후 분열하는 원담과 원상을 하나씩 처리하며 결국 기주를 평정했다. 관도대전을 발판으로 명실상부 당대의 최대 세력이 된 것이다.
관도대전은 조조와 원소 간의 결정적인 전투로, 삼국지 시대의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이다. 이 전투에서 조조는 뛰어난 전략적 능력을 발휘하여, 수적으로 우세한 원소의 군대를 격파한 중요한 전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