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를 하북의 패자로 만들다


기주는 현재의 중국 하북성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황하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한나라 시대에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기주는 비옥한 농경지를 가지고 있어 농업 생산량이 매우 풍부했고, 주요 상업 중심지로도 기능하여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지리적인 측면을 살펴보자면, 북쪽으로는 오환, 남쪽으로는 조조의 연주와 인접해 있었기에 군사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이 지역을 장악하면 북쪽과 남쪽으로의 군사적 이동이 용이해져 천하를 다투는데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로 기주를 장악한 원소는 이후 유주, 병주, 청주를 장악하며 명실상부한 하북의 패자가 되어 당대 가장 막강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기주는 명문가 출신인 한복(韓馥)이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는 기주를 안정적으로 통치할 만큼의 정치적, 군사적 역량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당시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여러 군벌들이 기주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원소는 반동탁 연합군의 주도자로서 명성을 얻었고, 하북 지방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는데, 옥새를 둘러싼 갈등 등으로 인해 반동탁 연합이 해체된 후, 원소는 하북 지방에서의 자신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고자 했다. 그는 한복에게 직접적으로 군사 행동을 취하기보단, 심리적 압박과 정치적 교란을 통해 한복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한복의 주변 인물들을 포섭하거나 협박하면서 한복은 점점 그 입지가 불안정해졌고, 결국 한복은 스스로 기주를 원소에게 넘기고 떠났다.

이후 원소는 하북 지역을 놓고 대립하던 또다른 북방의 강자인 공손찬과 전쟁을 치뤘고, 압승을 거두며 공손찬을 자결하게 만든 뒤 하북 지역의 패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