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맵을 통해 표시한 과거 고구려의 수도들
1.졸본
2.국내성
3.평양
4.장안
高句丽人 고구려
고구려(서한 왕조 초기 - 668년)는 부여에 의해 지어졌다.
고구려는 서한 왕조에서 수나라와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동북 남부와 한반도 북부에 등장한 영향력 있는 변방 민족 정권이었다.
고구려 지역은 아주 일찍부터 고대 중앙 권력의 관할하에 있었다.
고구려는 한나라 현의 현수현과 요동현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항상 속국으로 불렸다.
>중국 측의 주요 주장들
중국 측의 주요 주장은 크게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고구려는 중국의 고대 민족이 세운 중국 고대의 지방정권이다.
중국학자들은 민족의 기원이 국가와 역사의 귀속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긴다.
이에 입각하여 그들은 중국의 고대 민족이 고구려를 세웠으므로 고구려사는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중국학자들은 고구려의 민족 기원을 예맥(濊貊)·부여(夫餘)·고이(高夷)·상인(商人)주·염제족(炎帝族)에서 찾는다.
최근에는 이들 모두와 한족(漢族)이 결합해서 고구려를 구성했고, 그중 한족이 중심이었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중국 측에서는 예맥을 포함한 고구려의 구성원 모두가 중국의 고대 민족이었으므로, 고구려는 중국 고대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고구려가 한사군 중 하나인 현도군 경내에서 건국되었고, 여러 번의 천도에도 불구하고 한사군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 주장하고 있다.
▶ 고구려는 중국의 관할 아래에 있는 지방정권이었다.
서한왕조는 이미 동북의 광대한 지역에 대한 행정관리를 실시하고 있었고,
한원왕조 3년(기원전 108년)부터 쉬안쑤(許蘇), 러랑(毛赤), 린툰(林分), 전판(申湖)의 4개 현(郡)이 차례로 세워졌으며,
관할 구역은 한반도의 동북과 북반을 포함하였다.
그 후 4개 현의 관할 구역에 변화가 생겨 고구려현 인근에 세워진 고구려(高口麺) 정권은 한나라 현(漢會)의 현수현(遼安縣)과
요동현(遼東縣)에 속하게 되었다.
상(商) 말기부터 한(漢) 왕조 초기까지 고구려(高口人)는 주(周)나라의 제후였던 지지조선(地地會)의 관할이었다가
한나라에 들어서면서 위(魏)나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한나라의 속국이었다.
이후 기원전 108년 한나라는 위(魏)의 조선을 멸망시키고 여랑(林陽) 등 4개 군(郡)을 세웠으며,
한반도 중부 이북 지역에 중원(中原)과 같은 통치를 시행했다.
▶ 고구려 유민 중 중국인이 된 사람이 더 많으므로 고구려는 중국사다.
고구려 유민 중 2만 8천여 호나 되는 사람들이 당에 의해 중국 내지로 이주하였고
일부는 고구려 옛 땅에 남아 있다가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자 그 아래로 들어갔다.
중국에서는 고구려 유민의 1/7만 신라로 내려가 한국인의 선조가 되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이 되었으므로 고구려사는 중국사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