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문예창작공모전 소설 당선작
2020 문예창작공모전 소설 당선작
세컨드 이방인
미디어스쿨
20172554 이보민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20170312 ...라고 합니다.
A가 자신을 나타낼 때 하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A는 대학생이고 교수에게 메일을 보낼 때 이렇게 보냈다. 인사, 교수님, 학번, 이름. 무언가 빠져있는 게 보이는가? 그렇다. A의 학과가 빠져있다. A는 어느 순간부터 학과를 쓰지 않았다. 이는 학과 이름이 여러 개라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A는 자신이 이방인이 되는 게 싫었다.
A의 대학교는 21세기에 발맞춰 다방면으로 잘하는 인재를 원했고 그 인재를 탄생시키기 위해 무지막지한 돈을 썼다. 우선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외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한 자들을 교수로 스카우트했다. 그리고는 학생들의 전공을 심화시켰고 세분화했다. 특히 A의 학과는 이름이 해 년마다 달라졌다. 새로운 시대에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나? 또 학생들의 전공을 두 개로 늘리기도 했다. 학생들이 처음 선택한 전공 한 개와 대학에 들어와서 선택해야 하는 전공 한 개(복수전공)가 있다는 것이다. 예상한대로 학생들의 불만이 쏟아졌지만, A의 학교는 돈이 많았다.
A는 2학년 때 복수전공을 선택했다. 억지로 해야 하는 복수전공이었기에 큰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나마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던 전공을 선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학과에서 A는 전공생이 아닌 복수전공생이었다. 퍼스트가 아닌 세컨드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A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A는 세컨드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A는 자신의 퍼스트를 듣기 바빴다. 퍼스트 수업은 죄다 실습수업이기에 이론 수업을 하는 세컨드는 자연스레 소홀해졌다.
A는 퍼스트 학과를 졸업 후 퍼스트에서 밀고 있는 직업을 선택할 거였다. 그것이 퍼스트 학과를 졸업한 자들이 자연스레 밟는 코스였다. A는 그 코스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기에 세컨드를 나중으로 미뤄두고 퍼스트를 빨리 숙달하고자 했다. 정확히 2학년 때 A는 자신의 목표를 완벽히 이루었다. 더는 퍼스트에서 크게 배울 게 없다는 것이다. 그때 A의 학점은 4.0에 가까웠으며 퍼스트 학점은 4.5였다. A는 자기를 가르치던 선배들을 다 제치고 퍼스트에서 1등을 했다. 퍼스트 중의 퍼스트였던 A이다. 그러니 완벽히 숙달한 게 맞다.
마스터 A는 세컨드로 자리를 옮겨 이제 세컨드에 집중했다. 세컨드는 퍼스트와 달리 말이 많았다. 늘 생각해야 했고 글을 써야 했고 평가 같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세컨드 학과는 개소리를 써도 사람 소리로 이해했다. 세컨드의 건물은 잔디밭 바로 뒤에 있었는데 건물에 들어가려면 잔디밭을 밟거나 잔디밭을 돌아서 가야 했다. 물론 A는 후자를 선택했다. 자라나는 잔디를 밟자니 영 찜찜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세컨드에서 들은 수업의 여파이다. A는 지난주 윤회에 대해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30초면 될 것을 1분 30초를 걸어야 했다. 그것이 A를 짜증 나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A는 퍼스트 수업에서 시간을 재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더더욱 시간에 예민했다.
세컨드의 수업 시간이 70분이라 하면 교수의 강의 20분 + 학생의 개소리 50분이었다. A가 염세주의자여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사실 정말로 개소리인 적도 있다. 그게 50분은 아닐지라도. 외딴섬에 혼자 떨어져 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사람의 온기로 가득한 섬에 홀로 입김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A는 한숨을 쉬며 수업을 들었고, 똑똑한 척하는 세컨드들의 틈에 박혀 퍼스트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퍼스트의 학문을 그리워한 것은 아니다. 그저 퍼스트에서 자기가 날아다니던 때를 그리워한 것이다. 사실 A에게는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A가 퍼스트에서 밀고 있는 직업을 하기 싫어졌다는 것이다. 그 직업은 더할 나위 없이 A와 어울렸지만, A는 재미가 없었다. 어떻게 해도 사람들은 손뼉을 쳤지만, A는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명성과 더불어 재미까지 있어야 했다. 특히 재미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제 제칠 사람도 없어진 A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세컨드까지 A를 괴롭혔으니 A가 세컨드를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A는 세컨드 수업에서 B학점을 받았다. 열심히 하지 않은 댓가지만 그래도 B는 A를 화나게 했다. 물론 A는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런 걸로 슬퍼할 A가 아니었다. 그냥 분한 거다. 세컨드 주제에 세컨드 값을 주었다는 게 화가 났다.
A가 휴학한 시점은 그때다. 의욕이 사라져버린 A는 자퇴까지 생각했다. 자신의 퍼스트 학점을 보면서 그리고 세컨드 학점을 보면서 자퇴와 직업 선택을 고민했다. 다시 학교에 가면 세컨드를 들어야 하는데 그건 싫고 퍼스트 직업을 갖기엔 재미가 없다. A가 친구들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았다. 현실주의 친구와 이상주의 친구들의 답은 모두 같았다. 이상하게도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A가 다닌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친구는 졸업 후 A가 잘하는 것을 선택해 부족함 없이 살으라고 했다. 그게 싫다면 일단은 일을 하면서 찾으라고 했다. 이상적인 친구는 졸업장을 따두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면 A의 생각이 실패할지라도 다른 선택지가 있을 것이라고.
A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더더욱 자퇴하고 싶어졌다. 원래 인간이라면 그런 거다. 물어는 보되 결론은 정해져 있는. A도 그런 인간이고 20대이다. 이건 20대의 특권이기도 하다. 휴학했으니 A도 여행을 가야 했다. 휴학은 곧 여행이어야만 한다. A는 그 이상의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던 날 A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다시 돌아올 게 분명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똑같을 것 같은 느낌. A는 그런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생각이 많은 채로 여행지에 도착했더니 즐겁지 않았다. A의 목표는 단지 생각을 정리해서 결괏값을 내는 거다. 그 결괏값이 0이 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A가 도착지에 발을 디뎠을 때 그곳은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다. 인종. 언어. 냄새 모든 게 A와 달랐다. A는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은 이방인 나름의 좋은 점이 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피곤하지 않다는 거다. 무신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신경 쓸 것이 배로 늘어난다. 교통, 숙소. 먹거리, 안전, 소매치기, 사람, 동전. 그렇지만 한국에서만큼 신경이 곤두서지는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A의 생각은 멈추지 않았고 이 지역은 비가 쏟아졌다. 틈만 나면 비가 왔고 해를 보기 힘들었다. A는 빨래를 뽀송뽀송하게 말리고 싶었다. 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빨래를 하고 말리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어떤 날은 낮에 잠깐 비가 개었는데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나와 옆구리에 낀 돗자리를 펼쳤다. 그 돗자리 위에 누워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얼굴로 일광욕을 즐겼다. 물론 선글라스는 필수이다. 신기한 광경이다. 한국에서는 해를 피하려고 난리들인데 여기는 버선발로 해를 맞이한다. 여기까지 와서 버선발이라니. A는 자기 생각을 비웃고 잔디밭에 누웠다.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은 천천히 흘러갔고 해는 쨍쨍했다. 늘 보던 풍경인데 그날 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이튿날 A는 여행지를 구경하다 길을 잘못 들었다. A가 길치였기도 하고 모든 게 처음 본 길투성이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숙소를 못 찾으면 택시 타지 뭐’ A는 이런 생각을 하고 발걸음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걸었다. 그러다 한 도시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건물이 굉장히 낡아있었다. 모든 상점이 최소 30년은 되어 보였다. 한 군데도 빠짐없이 새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파진 A는 앞에 보이는 빵집에 들어갔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현지 사람들이었다. 젊은 사람들, 늙은 사람들 모두가 같이 있었고 그들은 A가 느끼기에 분위기가 같았다. A는 빵과 커피를 주문하고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은 원목이었고 닳고 닳아서 원래의 나무로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포근한 느낌이 들어 A는 외투를 벗고 편안하게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구글맵을 켜자 도시 이름이 떴다. 도시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했더니 누군가 Anarchy를 주제로 포스팅한 게시물이 나왔다. A가 있던 곳은 무정부 도시였다. 정부가 없었기에 다른 담당 지역으로 떴고 기차와 버스 또한 따로 표를 사야만 했다. A는 무정부주의는 들어봤지만, 무정부 도시에 온 건 처음이었다. A의 상상과 달리 무정부 도시는 일반 도시와 비슷했다. 다만 건물이 오래 됐을 뿐이다. A는 이전에 어디선가 무정부 도시는 변화가 거의 없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유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늘 같은 곳에서 같은 물건과 음식을 판다. 이 카페도 알고 보니 40년은 족히 된 카페였다. 주인장은 바뀌었겠지만, 커피는 같다. A가 커피를 마시고 T.I.P이라 쓰여 있는 컵에 동전을 넣었다. 그냥 숙소에 갈 예정이었던 A는 이 도시에 흥미가 생겼다. 모두 제각기 갈 길을 가느라 바빴고, A만이 고개를 돌리며 구경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관광객이 아무리 현지인인 척 해봐도 티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A는 카메라도 없고 옷차림도 무채색이었지만 누가 봐도 관광객이었다. 한참을 둘러보던 A는 벽에 그려진 수많은 그라피티를 보았다. 이곳에서는 그라피티를 위해 따로 벽을 내주는 듯했다. 벽이 꽤 관리가 잘 되어있었고 그라피티는 그곳에 잘 스며들어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그라피티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글귀가 있었다. 누군가 빨간색 물감으로 글씨를 쓴 것 같았다. A는 그것 또한 그라피티가 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글씨를 자세히 보니 fuck tourist라고 쓰여 있었다. 하필 이걸 발견한 게 A였다. 생각해보니 A가 발견한 건 당연한 일이다. 현지인들이 그라피티를 자세히 볼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라피티를 구경하는 건 관광객이다. 그러니깐 그 글귀는 제주인을 만난거다. A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저 웃음만 났을 뿐이다. 누군가 자기를 보고 비웃을 거를 생각하니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발걸음을 재촉해 그 거리를 지나왔을 때 A는 일본식 라멘집을 발견했다. 간판을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A는 육수 냄새가 나는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라멘집에는 손님이 없었다. A와 같은 인종처럼 보이는 직원은 A를 테이블로 안내했다. 서툰 어투로 라멘을 시키고 10분이 지나자 음식이 나왔다. 맛은 꽤 괜찮았다. A가 한참 먹고 있을 때 주방장으로 보이는 이와 직원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히 일본말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두 사람은 중국어로 대화했다.
라멘은 이제 국물만 남았는데도 여전히 김이 났다. A는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고 웃겼다. 심지어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러니깐 내가 여행 와서 일본 집 라멘을 먹으러 온 것도 어이없는데, 이 라멘이 중국인이 한 거라는 거지?’ A는 실소했다. 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슬며시 나오다 A는 직원과 마주쳤다. 직원은 A에게 미소를 보내며 잘 가라고 인사했다. 사실 알고 보면 일본 라멘을 중국인이 한다는 건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인이 초밥을 만들고 중식을 만드니깐. 그냥 A는 자신이 이곳에서 중국인의 라멘을 먹었다는 게 재밌었을 뿐이다. A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건 없었다. 여기는 A의 나라가 아니다. 라멘집을 나오고 무정부 도시를 지나 돌고 돌아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A는 오늘 일을 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무정부 도시, 그래피티, 여행자, 라멘, 일본인, 중국인.
나가기 전에 널어놓은 빨래는 여전히 축축했다. 마를 일은 없을 거다. 그냥 그렇게 옷을 입어야만 한다. 한동안 해가 뜨지 않는다고 했으니깐. 아마도 A가 이 나라를 떠날 때까지 뽀송뽀송한 빨래는 만날 수 없을 거다. A는 씻자마자 깊은 잠이 들었다. 온종일 걸어 다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A는 잠이 들자마자 꿈을 꿨다. 원 모양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A가 직접 운전해 곡선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다. 도로 아래는 절벽이었다. 끝없는 추락만 있는 절벽. A는 땀을 흘리며 운전대를 잡았다. 자신의 차가 가장자리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1차선 도로였기에 A는 앞만 보고 액셀을 밟으면 됐다. 한참을 달리던 A의 차 앞으로 어떤 차가 달려왔다. 역주행 차다. 차는 멈추지 않고 A를 향해 달려왔고 A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숨죽여 추락을 기다렸다. A가 그 차와 부딪히려 할 때 차는 핸들을 꺾어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A는 그 순간 거기 타고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A의 차는 다시 원을 따라 돌기 시작했고 추락한 차는 소리 없이 추락 중이다. 그때 A의 눈이 떠졌다. 꿈은 정확히 기억했지만, 운전자의 얼굴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그 차는 일부러 핸들을 꺾었다. 추락을 위해 달려왔다. 그렇다면 뭐 때문에 A를 향해 액셀을 밟았을까. A는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올 리 없다. 그건 그저 꿈이니깐. A가 궁금한 건 자신과 눈이 마주친 자의 표정이다. 분명 편안한 표정이었다. 세상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그런 표정. 대체 그는 왜 낭떠러지로 추락하면서 그렇게 안락한 표정을 지었을까. 얼굴은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표정이 주는 느낌은 생생했다.
A가 침대에 앉아 물을 들이켰다. 한숨을 쉬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들면서도 생각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나의 죽음은 그 사람에게 달려있었을까. 그 사람이 만일 핸들을 틀지 않고 나에게로 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겠지? 거기는 1차선 도로니깐. 내가 피할 곳은 없잖아. 어쩔 수 없어. 대체 낭떠러지 밑에는 뭐가 있었을까. 역주행할 정도로 가치가 있나. 그곳은 낭떠러지가 맞았을까’
여행 마지막 날 A는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기차는 예약석과 자유석의 구분이 없었으며 미리 예약하면 좌석 위에 자동으로 예약 표시가 떴다. 딱히 예약을 하지 않았어도 됐지만, A는 혹시 모를 불상사를 위해 미리 예매를 했다. 끝에서 세 번째 줄 창가 자리. 옆자리에 아무도 없길 바라며 기차에 올랐다. 캐리어를 끌고 문을 열자 세 번째 줄 창가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젊어 보이는 여자가 A의 자리에 앉아있다. A는 프린트한 표를 다시 확인했다. 저 자리는 A의 자리가 맞다. A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자유석에 앉거나 저 여자를 쫓아내는 것. 잠시 고민하던 A는 역시 끝에서 세 번째 줄 창가 자리에 앉기로 했다. A가 그 여자에게 자신의 표를 보여주고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여자는 뒤를 확인하더니 여기에 꼭 앉고 싶냐고 물어봤다. A는 당연한 걸 묻는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짐을 챙겨 자유석으로 돌아갔다. A는 이상하게 뿌듯했다. 여자가 비켜간 자리에 캐리어를 밀어 넣고 가방을 올려두고 나서야 알았다. 어떤 오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A의 자리에는 예약 표시가 없다. 그러니깐 저 여자는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당황했을 법한데 아무렇지 않게 비켜준 거다. A는 바로 직전에 자신이 당당한 표정으로 표를 내민 걸 떠올리며 부끄러워했다.
‘그냥 자유석에 앉을걸.’ 어찌 됐든 A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큰 캐리어에 손에는 표, 당당한척하는 표정. 완벽한 투어리스트다. A의 뇌리에 전에 보았던 Fuck tourist가 생각났다. 물론 A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단지 붉은 물감이 떠올랐을 뿐이다. A가 공항에 도착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 A의 결괏값은 무엇이었을까? 0이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A도 모르기 때문이다.
A는 기내식으로 닭고기 덮밥을 선택했다. 밥이 놓이고 뚜껑을 열자 주황색 소스가 A를 반겼다. 걸쭉한 주홍빛 소스이다. A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수저로 소스를 퍼 향을 맡았다. 땅콩 냄새다. 분명히 땅콩잼 냄새가 난다. 대체 이건 무슨 음식일까. A의 뱃속에서 소리가 났다. 하늘 위에서 배가 고프다는 건 슬픈 일이다. 하는 수 없이 A는 땅콩 소스에 절여진 닭고기를 밥과 버무려 입에 넣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낯설지만 삼킬 수는 있었다. A는 이 요리의 이름이 대체 왜 닭고기 덮밥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닭고기 땅콩 덮밥이 정확한 표현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기내식은 퓨전 음식이었다. 그러니깐 아시아 음식을 유럽식으로 바꾼 그런거다. A는 시간이 꽤 흐른 후까지 닭고기 덮밥을 생각했다. 색다른 경험이라고 하기엔 모호한 그 덮밥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결국 A는 1년 만에 학교에 갔다. 다시 간 학교는 바뀐 구석이라곤 없었다. 사람들이 밟고 다녔던 보도블록만이 새것으로 교체되었고 여전히 수업을 들으려면 잔디를 밟고 가거나 돌아서 가야 했다. A는 자연스레 모퉁이를 돌아 강의실에 갔다. 마치 몸에 오랫동안 베인 습관처럼 A는 정사각형 잔디밭을 밟지 않았다. 사실 A는 자기가 잔디밭을 밟지 않았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저 발이 가는 대로 갔을 뿐이다. 세컨드 학과 강의실에 도착해 문을 열자 학생들이 있었다. A는 그 안에 들어가 최대한 몸을 숙이고 구석에 앉았다. 다행히 아무도 A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사회에서의 1년과 대학에서의 1년은 많은 차이가 있다. 1년 휴학했을 뿐인데도 학생들은 대단히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착각하곤 한다. A는 이 사실에 안심하면서도 기분이 나빴다.
A가 이 건물에 온 건 단순히 세컨드 학과의 학점을 채워야 졸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은 질문하지 않는 학생들과 질문을 요구하는 교수 혹은 수강생과 교수로 이루어져 있다. 여전히 개소리가 양쪽으로 오간다. A는 1년 전과 똑같이 흘러가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맞다. 달라진 건 없다. 강의실, 학생들, 교수, 잔디밭 모든 게 똑같다. 아, 하나를 빼고는. A의 퍼스트 학과는 또 이름을 바꿨다.
수업을 듣던 A는 우연히 세컨드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놀란 A가 눈을 피하자 세컨드 교수는 A를 콕 집어 질문을 했다.
“자네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복수 전공생인가? 이름은 뭐지?”
“...네.. 복수 전공생입니다. A라고 합니다”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A가 세컨드로 자신들의 퍼스트를 선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학과는 어디 학과이지?” 교수가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A를 쳐다보았다. 희고 얇은 머리에 안경을 쓴 교수는 누가 봐도 교수 소리를 들을 사람처럼 생겼다. 학생들은 교수와 A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지루하던 찰나에 흥밋거리가 생긴 거다. A가 흥밋거리라는 건 아니다. 진도가 멈추었다는 게 좋았을 뿐이다.
“학과는...학과는...” A는 망설였다. 질문을 받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하기 싫었다. A는 퍼스트 학과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퍼스트 학과의 이름은 달라졌고 아직 A는 그 명칭을 정확히 외우지 못했다. 그렇다고 A가 바뀌기 전 이름으로 말하면 다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A가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거나 휴학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이다.
“제 학과는 그러니깐.” A가 학과 이름을 말했다. A의 머릿속에는 입학하기 전의 이름, 입학하고 나서 생긴 이름, 바뀐 이름, 또 바뀐 이름이 떠돌았다. 그 중 무엇을 선택하든 상관없다. A에게 중요했던 건 자신이 세컨드 학생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는 거다. 교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진도를 나갔다. A를 보던 몇몇 학생들은 다시 고개를 돌려 교수를 바라보았다. A도 교수를 보았다. 세컨드 교수의 강의가 끝날 때까지 A는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은 서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친구들과 떼 지어 나갔다. A는 생각했다. ‘나는 뭐 때문에 망설인 걸까’
다음날에도 세컨드 교수는 A에게 질문했고 A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주 장황한 대답을. 다시 말해 차분한 개소리가 오갔다. 교수는 그 개소리를 정리해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지나치게 정돈된 설명이다. A는 부끄러웠다. 자신의 개소리를 사람들이 들었다는 것보다 자신이 개소리했다는 게 치욕스러웠다. 앞으로 다시는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A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렇지만 A의 다짐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 뒤로도 세컨드 교수는 A에게 종종 질문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A가 선택한 세컨드 학과는 복수 전공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는 학과였기에 교수들은 자신들의 학과를 택한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한 번은 세컨드 교수가 퍼스트들에게 질문했다.
“....에 대해 설명해 보겠는가?”
“어..음...그거는...” 한 퍼스트가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전공생이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 세컨드 교수는 실망한 기색으로 칠판에 글씨를 적어나갔다. 전공생이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 A의 귓가에 그 말이 맴돌았다.
“그렇다면 A는 이게 뭔지 알겠나?” 세컨드인 A는 모른다. 모르기에 모른다고 답해야만 한다.
“모릅니다.”
“틀려도 좋으니 모른다고 답하지 말게. 모른다는 건 일종의 회피야. 충분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문제를 나는 묻거든.”
‘회피...’ A는 세컨드 교수의 질문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질문은 퍼스트라면 알아야 하는 것이었고, A는 그저 세컨드였다.
“나는 모두가 내 수업에서 질문해주길 바랍니다. 앞으로 매주 한 명씩 의무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들려왔지만, A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A가 출석부 맨 밑에 있었기 때문이다. 출석부는 퍼스트들의 이름순이었고 A는 맨 마지막이다. 퍼스트들을 부르고 나면 세컨드인 A를 부른다. 이 말은 가장 늦게 질문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A의 예상대로 A는 마지막 질문자가 되었다. 첫 번째 학생이 질문하고 교수는 답을 한다. 두 번째 학생이 질문하고 교수는 답을 한다. A는 질문을 듣고 때로는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되묻기도 했다. 질문과 답변.
수업이 끝나고 A가 잔디밭을 돌아서 가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잔디밭에는 참새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A의 퍼스트 학과 교수이다. 퍼스트 교수가 A에게 전화했다. 퍼스트 교수는 A를 굉장히 아꼈다. 자신의 결과물로 A를 점찍어 놨는데 도중에 사라졌으니 당혹스러울 만도 했다. 전화 내용은 예상했다시피 퍼스트 학과 직업을 가지라는 거였다. 퍼스트 교수는 A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A가 원하는 것을 여기서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A가 원하는 건 뭐였을까. 그게 뭐였든 간에 A는 흔들렸다.
“자네는 그쪽에서 일하는 게 좋을 거야. 아무리 봐도 자네가 딱 맞아”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어요.”
“성적도 좋고 재능도 있는데 아깝구먼.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명확히 있는 건가?”
“그렇지는 않아요. 그냥 너무 익숙해져서...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요.”
“다른 사람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건데,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여기서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잖아?”
“행복하지 않을 거 같아요.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A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A의 단호한 말에 퍼스트 교수는 당황했다. 그 순간 퍼스트 교수는 A가 낯설게 느껴졌다.
“뭐 하고 살고 싶은 건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지금이 좋습니다.”
집에 가는 전철을 탄 A는 가만히 앉아 창밖을 보았다. 네모난 창문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파노라마처럼 보였다. 창 밖은 정지되어 있고 A의 몸은 고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A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끊임없이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A가 세컨드 교수에게 질문할 차례가 되었다. A는 느리고 장황한 질문을 늘려놓았다. 퍼스트 학생들은 A의 질문을 듣고 생각했고 교수는 정돈된 답변을 내놓았다. A를 마지막으로 질문은 끝이 났다. 70분의 수업 시간도 끝났다. A는 짐을 챙겨 나가다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A씨죠?”
“...네....” 낯선 이가 A를 알고 있다. 자신은 상대의 이름조차 모르는데 저 사람은 A를 알고 있다.
“저도 이 학과 복수 전공하거든요. A씨도 맞으시죠?” 세컨드 학과를 선택한 자가 또 있었다. 이 사람은 세컨드 이방인이다. A도 세컨드 이방인이다. 낯선 이와 A는 세컨드 이방인이다.
“네. 맞아요. 근데 저를 어떻게 아세요?”
“오래전부터 알았는걸요. 이 학과에서 복수 전공생을 보는 건 흔치 않으니깐요. 예전에 그 수업 듣지 않았어요?” A가 세컨드 학과에서 처음으로 학점 B를 받았던 그 수업이다. 그때 A는 왜 이 사람을 보지 못했을까.
“맞아요. 저는 계속 모르고 있었네요. 같이 듣고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괜찮아요. 이제 알았으면 됐죠. 앞으로 인사해요.”
“네. 그럴게요.” 왠지 A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다음부터 A는 세컨드 이방인과 인사를 한다. 이방인 둘은 서로 인사를 나눌 것이고 언젠가는 연대감도 느낄 것이다.
“과제 올라온 거 보셨어요? 내용이 어렵지는 않던데 하시고 있나요?”
“아, 과제가 있었나요?”
“이번 주 공지사항에 올라왔던데 한 번 확인해보세요. 저는 이만 가야 해서 나중에 봬요!”
공지사항을 확인해 보니 정말로 과제가 올라와 있다. 세컨드 학과 교수가 낸 과제의 주제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였다. A는 과제를 보고 익숙함을 느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번씩은 해봤을 그런 주제였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청소년 필독서가 어른들의 베스트셀러와 같은 거처럼. 사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른다. 어른들의 베스트셀러 책이 청소년의 필독서가 된 건지, 아니면 청소년 필독서가 어른들의 베스트셀러가 된 건지 우리는 모른다.
A가 과제를 끝냈다. 이제 세컨드 교수에게 이메일로 제출만 하면 된다. 이메일을 입력하고 파일을 첨부했다. 그리고선 간단한 인사말을 써넣으려 했다.
하지만 A는 안녕하세요 저는..까지만 쓰고 손을 멈췄다. 늘 여기서 멈췄다가 퍼스트 학과를 적어냈었는데 오늘따라 퍼스트 학과를 적고 싶지 않았다. 세컨드 교수가 퍼스트 학생들만 챙길까 겁이 나서가 아녔다. A는 그저 A가 되고 싶었다. 자연스레 세컨드에 스며들고 싶었다. 고향을 물어볼 때 자신이 태어난 곳보다 자라온 곳을 말하는 것처럼 A도 자신이 머물고 싶은 곳을 말하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20170312 A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