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문예창작공모전 소설 당선작
2020 문예창작공모전 소설 당선작
운명과 장난
국어국문학전공
20141119 박선욱
도둑은 그녀의 아이를 훔쳤다. 세상 공기를 마시지도, 빛을 보지도 못한 채 배 속에 고이 모셔둔 아이였다. 아들이라면 ‘웅’, 딸이라면 ‘유’가 좋았다. 그녀는 살면서 자신의 이름이 너무나도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이름도 그랬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외자 이름이었다. 순우리말 이름이 유행이라는 글을 보고 혹하기도 했지만 하나의 글자로 만들어진 이름엔 아무래도 한자가 나은 것 같았다. 아들의 삶이 빛나기를 바랐고, 딸이 여유롭게 놀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랐다.
구석에는 나름 사치를 부린 아기침대가 있다. 사실 방의 분위기와는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가구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아기침대에 관한 온갖 지식을 동원하였다. 재질과 매트리스의 두께는 물론 난간의 간격까지 따지고 따졌다. 색은 아무래도 흰색과 베이지가 좋았다. 디자인은 그다음이었으나 그녀의 눈에는 애니메이션 속 공주의 침대를 미니어처로 만든 듯 귀여웠다. 중고가 익숙한 그녀에게 새 생명을 위한 새 물건은 냄새만으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흡족한 것이었다.
함께 미소를 짓는 그녀의 남편은 평범한 이름만큼 평범했다. 사람들이 대충 생각하는 평범함이 누군가에겐 특별함이 될 수 있다. 남편의 평범함이 그녀에겐 특별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코, 소박하게 살면 절대 굶지 않을 직장도 있었다. 그녀는 그 코가 멋있기도 귀엽기도 했고,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남편을 보았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거래처 직원이었던 남편을 처음 본 기억이 떠올랐다. 더운 여름이라 자신의 손수건을 땀으로 적시던 남편이었다.
“와, 오늘 밖에 엄청 덥네요. 여기가 천국이네.”
손수건이 지나간 얼굴의 미소가 눈에 박혀 버렸다. 메일로 주고받으면 될 일을 억지로 남편의 회사에 방문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남편은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사귀고 알게 된 남편 최고의 장점은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미안해’와 ‘고마워’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의외로 굉장히 어렵고, 듣기도 힘든 말이었다. 남편은 이 두 말과 더불어 ‘사랑해’까지 남발할 줄 아는 남자였다. 이는 그녀가 남자친구를 넘어선 남편으로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게 된 이유였다.
연애와 결혼은 한순간이었다. 상견례와 결혼식 모두 평범하게 진행됐다. 평범함 속엔 그녀가 반한 미소, 이제는 자신의 미소도 함께였다. 그녀가 지향한 평범함 속에서 다가온 최고로 특별한 것은 배 속의 생명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임신에 어리둥절했으나 남편의 고집으로 장기휴직을 신청했다. 남편은 자신에게 가장 특별한 두 생명을 안전하게 모시고 싶었다.
아침은 주로 시리얼만 먹는 남편이 출근을 준비했다. 그녀는 굳이 남편을 따라 현관문을 나왔다.
“다녀온다, 여보. 제발 좀 쉬고 있어. 사랑해.”
“알았어, 알았어. 오늘은 어차피 할 일도 없어. 빨리 갔다 와.”
남편이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 다음은 끼잉하며 열리고 똑같이 끼잉하며 닫히는 대문의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침에는 항상 2층 현관문 앞에서 공용주차장으로 향하는 남편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배웅해야 진정으로 하루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퇴근한 남편이 돌아올 때는 끼잉하는 대문의 소리와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로 알 수 있었다.
둘의 집은 면목동 구석에 있는 단독주택 2층으로 두 회사의 중간지점이다. 대문을 들어오면 마당과 계단이 있었다. 2층짜리 집을 온전히 가진 것이라면 행운이겠지만 1층 집주인에게 세를 들어 살고 있다. 집주인 아줌마는 아이가 두 명인 주부이자 퍽 좋은 성격을 가졌다.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었지만 둘 다 늦둥이 같았다.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에 비해 주름이 너무 많았다. 음식을 많이 한 날은 반찬통에 담아 그녀 부부에게 가져다주었다.
“아기 옷은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우리 애들 입었던 게 그대-로 있어.”
집주인이 정을 담아 임신을 축하하던 말이었다. 반찬통을 돌려주기 위해 1층에 들리면 꼭 집주인이 주는 과일이나 음료를 손에 쥐고 나오게 됐다. 유일한 단점은 집의 내부만큼 외부는 꾸미지 않는 것이었다. 1층 현관을 들어가면 펼쳐지는 고급 가구들과 거의 벽 전체를 채우는 TV가 있었지만, 마당은 그렇지 않았다. 붉은 대야나 아이들의 자전거, 킥보드가 널브러져 있었다. 여름 물놀이용품도 구석에 대충 쌓여있으며 곳곳에 콘크리트가 깨지고 갈라져 있었다.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기에는 방해되지 않았고, 게다가 집주인이니 뭐라 말한 적은 없었다. 어차피 내년에 마당 콘크리트를 싹 갈아엎으며 꾸밀 생각이라고 한 것을 들은 기억도 있다. 낡은 대문도 전자식으로 바꿀 생각이라고 하니 그녀에게도 좋은 소식이었다.
그녀의 하루는 남편의 당부와 달리 바빠질 예정이었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중국어 교실이 먼저였다. 그녀는 회사 동료에게 중국과 관련한 업무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전부터 영어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휴직이 끝나면 회사로 돌아갈 의지가 강한 그녀였기에, 취미 겸 자기계발로 알맞았다. 머리는 하나로 꽉 묶고 발바닥 전체가 땅에 닿는 샌들을 신었다. 구두들은 특별한 존재를 위해 당분간 신발장 신세였다. 더 예쁘게도 꾸밀 수도 있는 그녀였다. 피부는 하얗고 아직 젊다. 하지만 최대한 편하게 다니는 것이 아이를 위하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멋이었다. 주부들이 대부분인 교실로 들어갔다.
“찐-티앤, 즈-은더, 흐-은, 싱-윈.”
선생님의 중국어와 달리 입에서는 멋대로인 성조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음치 같기도 하고. 옛날의 중국영화 속 과장된 더빙 같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나 자신의 소리가 괴상하게 느껴지는지, 웃음이 터지는 순간도 많았다. 수업이 끝나고 저절로 친해진 주민들과 인사했다. 그중에 부쩍 친해진 두 명의 또래와 카페를 갔다. 둘 역시도 나온 정도는 달랐지만, 배가 불러 있었다. 그녀는 셋 중에 중간의 나이였다. 카페에 들어서자 고소한 커피 향과 에스프레소 머신의 소리가 느껴졌다. 그녀는 커피를 향으로만 만족하며 페퍼민트 차를 주문했다.
“오히려 이런 게 제일 힘들다니까?”
함께 간 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세 명 중 유일하게 완전한 주부였다. 제대로 된 회사생활이 없었고, 출산 후에도 육아에 집중할 모양이었다. 팔찌와 목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꽤나 잘사는 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맞아, 커피는 버릇처럼 마시는 거잖아.”
그녀가 대답했다. 회사 점심시간에는 필수로 챙겨 먹던 커피가 그립기도 했다. 특별한 존재를 가진 만큼, 자잘하고도 습관적인 희생도 필요했다.
“나는 커피보단 맥주. 하루 마무리하는 의식 같은 거였는데.”
그중에서 제일 어린 동생이 말했다. 이제 막 계약직을 벗어났지만, 남자친구와의 사랑과 결실이 강제휴직을 일으킨 친구였다. 다행히도 티가 나지 않는 결혼사진에서부터 새 생명이 함께였다. 셋의 대화 대부분은 역시 서로가 새로 알게 된 임신과 육아 관련 지식이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의 수다가 원래 그렇듯이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그녀는 장을 보기 위해 먼저 일어났다. 요리엔 자신이 없었지만, 남편이 뭘 차려도 잘 먹는다는 게 부담을 덜어줬다. 오늘의 메뉴이자 도전과제는 제육볶음이었다. 양파와 파, 당근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마트 안에 있는 정육점에 들러 제육에는 무슨 부위를 쓰는지 물어보고 목심과 앞다릿살도 조금씩 샀다. 배 속에 있는 웅이나 유, 그녀와 남편이 먹을 양이기에 집까지 들고 가기에도 충분했다. 우편함에서 봉투들을 꺼냈다. 핸드폰 요금 고지서와 카드 명세서였다. 닫으면 저절로 잠기는 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1층 집주인도 어딘가 나간 듯했다. 높은 구두를 신었을 때는 발끝으로만 딛던 계단을 올랐다.
현관문을 열려고 열쇠를 돌렸지만, 문이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불안감이 스치기도 전에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아기침대가 아니었다. 너무나 생뚱맞게 거실 한가운데 꽂혀있는 부엌칼이었다. 칼에 박힌 시선을 돌리자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그녀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장바구니를 떨어뜨렸다. 순간 느껴진 공포로 인해 바로 현관문을 닫았다. 맨 처음 하이힐을 신었을 때처럼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손도 떨리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웬일로 근무시간에 전화가 온 것이 반가웠다.
“어쩐 일이야? 이런 시간에 전화를 다 해주고?”
“여보, 빨리 와줘. 여보, 빨리. 경찰에도 신고해야 되는데, 여보, 어떡해? 집에 도둑이 든 것, 들었어. 나 너무 무서워 여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저녁은 외식하자는 말이나, 언제 도착하냐는 질문을 예상한 남편은 당황했다.
“내 말 똑바로 들어. 지금 바로 골목 나오자마자 있는 파출소로 가. 알겠지? 내가 신고할게. 바로 갈게, 지금.”
남편은 누군가에게 말할 새도 없이 회사를 뛰쳐나와 택시를 잡았다. 골목 입구에 경찰차가 있었다. 그녀는 경찰과 함께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남편을 보고 일어서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허벅지 사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를 본 그녀는 그대로 남편을 향해 쓰려졌다.
경찰에 의하면 부엌칼은 역시나 도둑의 짓이었다. 신고하지 말라는 협박인지, 겁을 주기 위한 것인지, 단순한 장난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시간이 급박해 물건은 제대로 훔치지도 못했으면서도 그런 짓을 저질렀다. 집안의 상태를 보자면 초보였으나, 대문이 취약한 것과 집이 비어있는 시간도 알고 있었다. CCTV도 없고 뒷골목으로 도망치기에도 좋은 집이었다. 도둑이 오랜 시간 주변을 탐색한 것으로 보였다. 경찰들에 의하면 그랬다.
그녀는 구급차를 타고 도착한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침대 옆에 앉아 있는 남편과 주위를 둘러싼 엄마, 아빠, 시부모님이었다.
“여기 어디야? 어떻게 된 거야?”
“여보 괜찮아?”
괜찮냐고 묻고 있는 남편의 눈은 괜찮지 않았다. 엄마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고 아빠는 뒤를 돌아 있었다. 시부모님은 함께 의사를 부르러 갔다. 그녀는 눈물 자국 위에 똑같은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아기는? 우리 아기는?”
“일단 쉬어…. 선생님이 안정해야 한대, 여보. 일단 쉬고….”
느낄 수 있었다. 빨개진 남편의 눈과 흐려지는 말끝으로 알 수 있었다. 도둑이 훔쳐 간 것은 집 안에 있던 물건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에 모셔둔 가장 큰 보물을 훔쳐 간 것이다. 이미 의사에게 절망의 소식을 들은 남편은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다. 링거가 꽂힌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이날부터 부부에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단어는 유산이었다.
검사와 치료보다 많은 눈물로 지낸 입원 기간이 끝나는 날이었다. 남편은 그녀를 부축해 보조석에 태웠다. 백미러로 비치는 눈에 띄게 들어간 볼살보다 하나의 존재가 사라진 배를 보는 것이 더 슬펐다. 남편은 다음날부터 밀린 일을 수습하기 위해 출근해야 했다. 다행히 당분간은 그녀의 엄마가 같이 살기로 했다. 몸 상태보다는 정신상태가 걱정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부엌칼이 박혀있던 장판은 새것으로 바뀌어있었다. 경찰 조사가 끝난 후 유산 소식들 들은 집주인이 부부를 위해 가장 먼저 했던 배려였다. 이 어설픈 도둑은 2층을 다 털지 못하고, 주인집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인기척을 들은 집주인이 방문했다.
“새댁 괜찮아…. 그런 미친놈이 한 짓 다 잊고, 다시 힘내면 돼. 그리고 자기는 젊잖아. 젊으면 뭐든지 다시 할 수 있어.”
길지 않은 위로를 끝내고 그녀의 엄마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꼭 말해 달라고 당부했다. 집주인이 내려가고 엄마는 짐을 챙기러 떠났다. 중국어 프로그램의 언니와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역시나 위로의 말을 듣고는 다음에 보자는 말을 했다. 하지만 둘의 나온 배를 보고 덤덤할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눈은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남편은 병원에서 필요했던 짐을 풀고 나서 옆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헤매던 초점이 한군데에 멈췄다. 흰색과 베이지의, 공주가 쓸법한 아기침대였다. 침대 난간에 기대어 흘린 그녀의 눈물이 매트리스에 떨어졌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라는 표현은 지금 쓸모없었다. 세상 어느 심리학자나 언어학자가 봐도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지만,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이 괜찮다는 말은 현재를 말하고 있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미래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과 울음에 취한 상태 같았다. 그러던 그녀는 아주 작게 말했다.
“도둑이 훔쳐 간 거야…. 침대는 남겨놓고 우리 애기만 훔쳐 간 거야….”
그는 인물이 괜찮았다. 흔히 말하는 기생오라비처럼 곱상한 쪽은 아니지만, 남자답다는 말은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악마는 매일같이 깡 소주를 마셨다. 안주는 그를 향한 폭력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집안의 모든 물건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사실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배워왔다고 할 수 있다. 언제나 대박을 노려왔던 아버지는 함께 대박을 노리던 친구에게 속아 모든 것을 날렸다. 젊은 적부터 말이 통하던 친구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갖고 날라버렸다. 결과적으로 친구는 대박을 터트린 셈이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마시던 술은 하루하루가 됐고 부인을 향한 말싸움은 폭력이 됐다. 폭력으로 낳은 자식은 폭력으로 길러졌다.
악마가 술에 곯아떨어진 반복 속 어느 날, 그의 어머니는 결심한 듯 그를 깨웠다. 혼자라면 그저 버텼을 어머니는 더이상 자식이 맞는 꼴을 볼 수 없었다. 둘은 악마를 두고 떠났다. 홀로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는 온갖 일을 하며 그를 키웠다. 둘이 사는 원룸이 그에게는 행복했다. 천국은 천사가 사는 곳이 아닌, 악마가 없는 곳을 의미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모자의 가난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고등학교를 들어가며 선택한 것은 빼앗는 일이었다. 악마의 친구가 그랬듯 자신보다 멍청해 보이는 친구들의 돈을 뺏었다. 악마가 매일 저지른 폭력은 물려받은 것처럼 자신의 친구들을 향했다. 어머니의 눈물과 다그침은 이미 어긋나버린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과로와 스트레스는 병을 가져온다. 거기에 더해지는 똑같은 원인은 죽음을 일으킨다. 그의 눈물은 어머니의 죽음을 말릴 수 없었다. 아들 치과는 보내도 머리의 통증은 참아내던 어머니는 갑자기 떠나버렸다. 아무도 없는 장례를 치르고 온 고등학생인 그는 집에 들어와도 혼자였다. 이 모든 막막함 속에 필요한 것은 오직 돈이었다. 그때부터 학교는 나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된 후에도 그런 삶은 마찬가지였다. 성인이 되는 해 1월 1일에 당당히 술을 마시러 들어오는 동갑들에게 서빙을 했다. 담배는 무지하게 피워댔지만, 술은 입술만 대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은 악마가 마시던 소주가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평생을 축하주와 퇴근 뒤의 마시는 상쾌한 맛의 맥주 한잔도 상상할 수 없었다.
평소같이 진상 손님을 상대하던 술집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어울렸던 무리에서 유독 친했던 녀석이었다.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고개는 숙이고 목소리는 내린 채로 메뉴판을 갖다 줬다.
“야 너 맞지? 이 새끼는 아는 척도 안 하냐 서운하게. 나 몰라?”
“아 너였냐? 겁나 바빠. 정신없어서 몰랐어.”
그에게만 어색한 인사를 끝낸 뒤, 일부러 더 바쁘게 서빙을 했다. 더는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서 변명이라도 대고 퇴근하려 했지만 가게는 실제로도 바쁜 상황이었다. 당연히 시끄러운 손님들과 경쟁하는 듯한 음악 소리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운 테이블이 일어났다. 재수 없게 마침 계산하는 곳 근처에 있던 것이 그였고, 계산하는 사람은 녀석이었다.
“계산해드릴게요.”
카드를 내밀며 핸드폰도 내밀기에 얼굴을 쳐다봤다.
“야 번호 바꿨냐? 섭섭하게 진짜. 연락할 테니까 번호 줘봐.”
뒤에 4자리는 아무 숫자나 칠까도 생각했지만 일하는 곳도 알고 피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번호를 줬다.
모르는 번호로 톡이 온 것은 며칠 뒤였다.
“야 잘 지냈냐.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데 술이나 한번 마시자.”
그는 핑계를 대며 거부했지만, 톡과 전화로 끈질기게 연락을 했다. 결국은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술집에서 만나면 술은 입에도 못 대고 안주만 주워 먹는 자신을 보이기 싫었다. 약속 날짜와 시간, 장소에 도착하자 구석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나 왔다. 잘 지냈냐?”
“야 여기서는 아는 척을 해주네? 뭐 하고 살았냐. 학교는 갑자기 안 나오고. 연락 바로 끊기고.”
“그냥 이렇게 산다. 맨날 돈에 쪼들리지. 죽지 못해 산다 진짜로.”
동정받기 싫어 그나마 생각한 대답이었다. 장난 섞인 말투로 우울함을 감추고 싶었다. 항상 돈에 쫓기는 채로 살고 있기에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때 기억나냐?”
추억을 부르는 문장으로 시작한 수다는 길게 이어졌다. 더군다나 함께 많은 것을 겪은 둘이었다. 이상한 것은 말이 잘 이어지다가도 질문에만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친구였다. 요즘 뭐하냐는 간단한 질문도 다시 나를 향한 질문으로 받아치고 있었다. 대화 중에 다시 톡을 열심히 보던 친구가 말을 꺼냈다.
“야 너 진짜로 돈 후달리냐? 그럼 내가 하는 말 들어봐봐. 목소리 낮추고.”
그는 괜스레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하는 친구 때문에 저절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친해진 형이 있어. 이 형이 하려는 게 있는데, 모든 준비는 다 돼 있는데, 사람이 한 명 필요하다고 하거든?”
그 뒤의 말을 듣고는 절대 좋은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혹시 깜빵 간 적 없지?”
어이가 없어진 그의 실소를 본 친구는 덧붙여 말했다.
“이유를 말해줄게. 그 형은 한 번 갔다 왔어. 근데 포기를 못 해. 능력도 있고 목표도 딱 있어. 근데 또 걸리면 끝장이야. 그러니까 쓸만한 애 하나 뽑아서 자기는 정보 주고, 걔는 털어오고 해서 나누자 이거지. 처음 걸린 놈은 방법 쓰면 잡혀도 바로 나오니까.”
듣다 보니 꽤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의 상황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정보만 확실하면 한 번에 크게 벌 기회였다. 인생역전은 못 하지만 몇 달 치의 돈을 버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절박했다. 그의 마음이 기우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잘나가던 자신을 버리고 착실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며 살아온 속에는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당시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막 나가는 모습, 스릴을 원하고 있었다. 그의 대답은 결국 이렇게 나왔다.
“그럼 일단, 그 형 좀 만나보자.”
순식간에 약속이 잡힌 삼자대면은 ‘형’이라는 사람의 집이었다. 그의 원룸처럼 담배 냄새가 찌들었고, 구석에는 갈색과 초록색 병이 가득했다. 눈에 띄는 것은 한쪽 벽에 붙어있는 지도들과 메모였다. 처진 눈 때문에 의외로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얼굴만 본다면 이런 경험과 계획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친구가 서로를 소개한 뒤, 본격적인 얘기가 시작됐다.
“형이 조사랑 준비는 다 했거든? 너는 그냥 몸만 쓰면 돼. 가지고 나올 거 다 가져 나와서 뒷골목에 산 쪽으로 온 다음에 형한테 주면, 물건 파는 것도 내가 해결할 거야. 그다음에 셋이 돈 나누면 끝. 매일 잠자는 시간 빼면 일만 하는 거 힘들지 않아? 이번에 괜찮게 좀 하는 거 같으면 나랑 계속 갈 수도 있는 거고. 봐둔 집은 널렸으니까.”
“한번 하면 얼마 정도 벌 수 있어요?”
“그건 미안하지만 너 하는 거에 달렸지. 나는 무조건 쉽고 안전한 곳 위주로 조사했으니까 잡힐 일은 절대 없어.”
불확실한 돈의 규모는 그를 더욱 끌리게 했다. 형의 안 어울리게도 자상한 말투는 경찰에 잡히고 말 거라는 불안한 마음보다 잘하면 한 번에 대박이라는 생각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하면 돼요? 날짜는요?”
“날짜는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아. 내가 기본적인 문 따는 방법도 가르쳐줘야 하니까. 그거는 금방 배우면 되고. 거짓말이 아니라 너만 한다고 하면 며칠 뒤에 바로 작업 들어가는 거야.”
“…문 따는 거 내일부터 시작할까요, 형?”
그는 평일에 하던 아르바이트 두 개를 그만뒀다. 무슨 일이든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고,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태권도장을 가듯 형의 집으로 향했다. 방에는 온갖 모양의 문고리들과 연장이 쌓여갔다. 과외는 며칠 만에 그의 손을 도둑의 것으로 완성했다. 형과 그는 만족하듯 작업 날짜와 장소를 골랐다.
“여기는 단독주택인데, 대문이랑 1층 2층 현관문 셋 다 옛날 거라서 쉬울 거야. 낮에 비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 들어가면 되고, CCTV도 없어. 요즘은 웬만한 골목마다 CCTV가 있으니까 우리한테는 최고의 조건이야. 내일은 내가 한번 지켜볼 테니까 모레 바로 시작하자.”
형은 온종일 집을 관찰하며 평소처럼 비는 집에 안심했다. 문도 바뀐 게 없었고, CCTV도 여전히 없었다. 골목 입구에 있는 치안센터가 걸리기는 했으나, 혹시나 걸리더라도 도망치기엔 충분했다. 다음 날 아침, 그와 친구, 형은 형의 집에 모여있었다.
“형은 뒷산에서 기다릴 거니까, 물건들 가지고 오면 같이 집으로 올 거야. 너는 골목 입구 쪽에서 망을 봐. 거기 사는 여자랑 아줌마 나가는 거 보고, 돌아올 때 알려주면 되는 거야. 너는 형이랑 같이 있다가 나갔다는 전화 받으면 작업 시작하자.”
친구는 차를 갖고, 형과 그는 도보로 집을 나섰다. 골목 입구 쪽에서 차를 대고 기다리는 친구가 전화해주면 정말로 시작이었다. 뒷골목에 도착한 그는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고등학생일 때의 비행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었다. 평소 도둑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대낮에 환한 햇빛을 받으며 작업을 준비한다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당연히 낮에는 더욱 이상하게 보일 복면조차 없었다. 그는 속으로 단어만 반복했다.
“대문, 2층, 털고, 1층, 털고, 나오고. 대문, 2층, 털고, 1층, 털고, 나오고….”
드디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아줌마까지 해서 다 나왔다. 들어가.”
“형, 다 나왔대요. 저 갈게요.”
“떨지 말고, 다음도 있으니까, 무조건 안전하게만 하고 와. 그리고 마지막으로 팁을 줄게. 나오기 전에 현관문 열자마자 보일만 한 곳에 부엌칼을 꽂아놓고 나와. 겁먹어서 그 순간엔 아무것도 못 하고, 시간을 벌게 되니까. 갔다 와.”
뒷골목에 있던 형은 뒷산으로, 그는 집으로 향했다. 장갑 외에는 이상할 게 없는 청바지와 면티를 입은 복장이었다. 집까지 이어진 골목을 걸으며 아까와 같은 단어를 반복했다.
“대문, 2층, 털고, 1층, 털고, 나오고. 대문, 2층, 털고, 1층, 털고, 나오고….”
드디어 대문 앞에 섰다. 다른 집들의 담으로 둘러싸인 골목은, 그를 제외한 아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훔친 물건들도 담고 나올 스포츠가방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일반인이 본다면 귀이개로 생각할만한 길쭉하고 얇은 도구들이 들어있었다. 그는 첫 번째 관문인 대문을 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왼손엔 양쪽으로 꺾인 모양의 쇠를 들고 오른손으로 얇은 꼬챙이를 들었다.
“떨지 말자, 떨지 말자, 떨지 말자, 배운 대로만, 배운 대로만, 배운 대로만….”
청심환을 먹지 않은 것이 후회할 정도로 떨었지만, 전문가의 족집게 강의가 그의 손을 본능적으로 문을 열게끔 만들어줬다. ‘츨컥’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잠깐의 희열을 느낄 새도 없이 ‘끼잉’하는 소리가 그를 놀라게 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알지만 괜히 마당을 둘러본 후, 대문을 닫았다. 다시 ‘끼잉’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또 놀랐다. 크게 요동치는 심장 소리만 들리던 그에게는 대문 소리가 공포영화 속 귀신이 다가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2층으로 향했다. 전에 열어본 문고리와 똑같은 모델이라는 것을 보고 반가움이 들었다. 대문보다는 떨림도 덜했던 그는 쉽게 문을 연 뒤, 집안에 들어섰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진짜로 남의 집에 들어왔다는 생각과 함께 다시 떨림이 시작됐다. 제일 먼저 보인 아기침대는 무시한 채 보이는 서랍마다 열어대기 시작했다. 혹시나 몰라 책이란 책은 다 펼쳐보았지만, 건질 것이 없었다. 벽에 걸린 결혼사진 속의 부부와 눈만 마주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이번에 다가온 귀신은 소리가 아닌 감촉이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 진동을 느낀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골목에서 대기 중인 친구였다.
“야, 야! 지금 바로 튀어나와! 아줌마 떴다, 아줌마!”
사실 친구가 본 여자는 그녀는 물론 집주인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상황이 처음이고 떨렸던 친구의 착각이자 과대망상이었다. 친구는 바로 시동을 켜고 형의 집으로 향해 골목을 나왔다.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그가 2초 동안 행동을 멈췄다. 마음은 떨렸어도 넉넉할 시간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스포츠가방은 더 담긴 것도 없이 흐물흐물한 그대로였다. 바로 부엌에서 칼을 빼 들고 들어오자마자 보일 거실 한가운데에 박아넣었다. 땀을 소매로 닦아가며 집을 빠져나와 뒷산을 향해 뛰었다.
“이렇게 빨리 끝났다고? 뭐 어떻게 된거야.”
“전화 왔어요. 집주인이 돌아왔다고. 아무것도 못 건졌어요.”
“지금 돌아올 리가 없는데? 일단은 철수하자 그럼.”
형의 집에 돌아오자 먼저 차를 타고 도착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분명 그 아줌마가 분명하다고 말했고 둘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작업에서부터 잡히느니, 다른 동네에서 봐둔 집을 노리는 게 나았다. 집주인이 도착하기도 전에 빠져나온 그를 본 사람도 없으니, 잡힐 일도 없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떨렸던, 가장 후회되는 행동을 다시 할 수는 없었다.
“저… 진짜 못하겠어요. 죄송해요, 형. 너도 이제 연락하지마.”
형과 친구는 예상보다 순순히 그를 포기했다. 자신도 가담한 범죄를 신고할 리가 없었고, 새가슴인 그보다 철없고 돈 없는 놈 하나 새로 끼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나왔을 때와 그대로인 스포츠가방을 놓고 집을 나왔다. 자신의 방에 도착해 신발만 벗은 채로 누워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마다 며칠간 있었던 기억을 지우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오늘 겪은 모든 긴장감과 후회를 잊으려는 것처럼 잠이 들었다.
다행히 원래 다니던 아르바이트는 아직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술집은 고등학교 때부터 그의 신세를 알던 사장님이 있는 가장 오래된 곳이었다. 그날의 후회를 스스로 만회하려는 듯 다시 일을 시작한 그는 빈자리를 완벽히 채웠다. 전보다 더 늦게까지, 지칠 줄을 몰랐다. 아무래도 정도 많이 들은 곳이기에 사장님의 권유에 따라 다른 일은 그만둔 채 술집에서만 일하게 됐다. 그 후로 얼마 되지 않아 새로 연 2호점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게 된 사장님은 그를 1호점의 매니저라는 큰 직책으로 승진시켰다. 그가 사랑에 눈뜨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가게와 집을 반복하던 그가 미래의 아내를 만나게 된 곳 역시 술집이었다.
근처에 있던 아주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단체 예약이 잡힌 어느 날이었다. 제일 구석에 있던 아내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아직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신입이었다. 사장과 선배들의 술 권유에 원샷을 반복했다. 다행히도 아내를 데리고 나간 것은 여자 선배였고, 손님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자 구석 자리에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다음 날 가게 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하자마자 들어온 것은 어제의 신입이었다. 아내는 아직 숙취가 덜 풀린 것 같은 얼굴이었고, 그는 지갑과 함께 숙취해소제 한 병을 내밀었다.
“그렇게 다 받아마시지 말아요. 지갑도 놓고 가고. 이거 마시고 힘내세요.”
나중에 듣기를, 남자다운 얼굴에 수줍게 내미는 숙취해소제가 귀여웠다고 한다. 그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아내가 귀여웠다. 다음 날 저녁, 이제 막 바빠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아내는 작은 쇼핑백에 피로 회복제와 쪽지를 담아왔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번호가 적혀있었다. 그녀에겐 작은 보답과 관심이었지만, 그는 평생 처음 받는 선물과 사랑이었다.
급속도로 가까워진 둘이지만 주말 낮을 제외하고는 만날 수 없었다. 주말에는 아내를 따라 교회도 나갔다. 평일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는 아내와 저녁부터 장사를 시작하는 그였기에 시간이 나질 않았다. 매니저가 되고 전보다는 훨씬 괜찮은 집을 얻은 그는 회사와 집이 꽤 멀었던 그녀에게 같이 살자고 했다. 아내는 결국 장모님과 둘이 살던 집을 나왔다. 아내가 출근하고 그가 퇴근하는 때에는 서로가 배웅하고 맞이해줬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비해 과분한 행복이 불안했다. 서로가 조심하자고 했으나, 불붙은 사랑은 그녀의 임신테스트기를 두 줄로 만들었다. 아내는 처음엔 몹시 불안해하고 당황했다. 이제야 적응해가는 직장생활에 제동을 거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를 사랑했다. 둘은 서로의 행복을 더해줄 아기를 위해 결혼을 결심했다. 장모님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알기에, 홀로 자란 그가 더욱 대견해 보였다. 결혼식은 뒤로 미룬 채 둘은 혼인신고를 했다. 장모님은 휴직을 신청한 아내와 출산 준비를 서둘렀다. 아이가 당장 나오더라도 부족한 것이 없도록 했다. 특히 아내는 작은 인형들로 이루어진 모빌이 가장 좋았다. 아기침대는 점원의 추천을 받아 샀지만, 모빌만큼은 자신이 보고 또 봐서 고른 것이었다.
아내의 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날, 그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 진동을 느꼈다. 다행히 장모님과 함께 있던 아내가 병원을 향했고, 그는 서둘러 뒤를 따랐다. 이미 분만실에 들어간 아내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부부 관계를 위해서는 그러지 않는 게 더 좋다는 말을 듣고 기다렸다. 잠시 후 간호사의 말을 듣고 들어간 그는 아이의 탯줄을 잘랐다. 이 손의 떨림은 후회로 가득하였던 그 날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아기는 크게 울어댔고, 아내는 물었다.
“손가락, 발가락 다 달려있나요?”
“네,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고 예쁜 공주님이네요.”
그는 아내와 입원 기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나왔을 때와는 달리 팔에는 그들의 딸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낮에는 회사로 복직한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돌봤다. 그가 출근하고 아내가 퇴근할 때는 잠깐의 수다와 함께 교대했다. 주말 낮은 모두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그는 이때부터 매일 기도를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제가 저지른 일들과 잘못은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의 행복을 평생토록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멘.’
아이는 혼자만 다른 시간을 사는 것처럼 자랐고, 유치원에도 들어갔다. 아이들에겐 지겨울 수 있는 교회에서 너무나 얌전한 딸을 보고 칭찬을 듣기 일쑤였다.
“어머, 어쩜 이렇게 얌전하게 자랐어요? 코부터 생긴 게 너무 예쁘게 생겼네.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쁘니?”
그와 아내는 흐뭇해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는 장난식으로 나를 닮아 코도 예쁜 거라며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당신보다 훨씬 예쁘게 태어나서 다행이라며 혹시 돌아가신 어머님을 닮은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머니도 괜찮은 인물이셨지만,
딸과 닮은 것은 아니었다. 그날 목사님의 설교 주제는 잘못과 용서였다. 예배가 끝날 때쯤,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아 기도했다.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 중 자신에게 제일 알맞은 주제라 생각했다. 매일 하던 기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도를 하며 그날을 생각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저는 아직도 그날을 후회합니다. 부디 철없던 저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 부부에게도 행복이 가득하게 해주시옵소서.’
오랜만의 떠올린 그 날의 기억이 교회에서 있는 자신을 마치 그 집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그만큼 몇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였던 아기침대, 벽에 걸린 결혼사진…. 결혼사진의 부부는 참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떠오르지 말아야 할 것이 겹쳐 보였다. 바로 딸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몇 년을 힘들게 지냈다. 다른 것도 아닌, 자신과 함께 존재했던 생명을 잃는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회사에 복직해서도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 그만두었다. 남편과 주위의 권유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처럼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도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보다 크고 좋은 변화를 가져왔다. 회사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집안일에도 열정을 보였다. 톡으로만 안부를 주고받던 중국어 교실 친구들과 다시 만나기도 했다. 센스있는 친구들은 항상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긴 채 혼자서만 나왔고, 육아에 관련된 이야기는 꺼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종교를 가지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괜찮으면 엄마랑 교회 같이 다닐래? 예배드리면 마음도 편해지고, 사람들도 착하고.”
평소처럼 통화하던 엄마의 권유였다. 아직 친구들 외에 새로운 만남은 피하던 그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계책이었다. 교회라면 학교와 회사에 다닐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던 그녀였다, 단념했던 엄마가 자신을 위해 어렵게 꺼낸 얘기임을 알자, 엄마가 불쌍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엄마는 정말 꾸준히도 나가시네. 알았어요. 이번 주에 한 번 나가보지 뭐.”
주말에 그녀는 자신의 집과는 좀 떨어져 있지만, 엄마가 평생을 다니던 교회를 향했다. 동네 있는 건물 중 한 층만 빌려 운영하는 교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예배를 드리러 나온 수많은 사람이 우글거렸고, 많은 돈이 들었을 것 같은 교회 건물의 높은 곳엔 십자가와 시계가 있었다. 엄마는 멀리서 그녀가 온 것을 보고 반가운 미소로 맞이했다.
“교회가 이렇게 커? 사람들도 엄청 많네.”
“엄마는 여기가 완전 작을 때부터 다 본 사람이야. 얼른 들어가자. 엄마가 인사하면 같이 인사도 하고.”
엄마가 자신을 봤을 때의 모습처럼 사람들은 반갑게 그녀를 맞아주었다. 이렇게 큰딸이 있는지는 몰랐다며 모녀가 똑 닮아서 예쁘다는 말도 들었다. 적응되지 않는 사람들의 칭찬과 과할 정도의 미소가 어색했다. 엄마가 자리를 잡고 챙겨주는 성경책을 손에 들자, 예배가 시작됐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며,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는 것으로 자라게 된다는 약간은 뻔한 설교였다. 기도시간에는 분위기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하나님이라는 작자는 얼마나 대단하시길래 뭐든지 용서해주나?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용서만 빌면 천국 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어떻게 부르는지 몰라 입만 뻥긋거린 찬송도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졌다.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들도 있었고, 청년반이라는 곳에 간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큰 교회인만큼 가족들의 모습도 많았다. 예배시간에 울면 어쩔까 걱정되는 아기도 많았다. 시선이 아기에 머무는 순간, 그녀의 뇌는 우울한 그 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것은 그녀가 맘대로 할 수 없는, 추우면 몸을 떨게 되고 더우면 땀이 나는 것과 비슷한 작용이었다. 잠시 머물렀던 생명이 남기고 간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그중에는 아직 젊은 부부와 딸로 이뤄진 가족도 있었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남자와 무슨 일인지 눈치를 보는 아내, 그런 남자와 아내의 손을 잡은 아이가 있었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그는 시선을 돌리지도 못한 채 얼굴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그녀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초면인 아이를 보고 그녀의 속에서는 어떤 얘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내 딸이야. 저 애가 도둑이 훔쳐 간 내 딸이야.’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벗어난 현실에서 이것이 그들의 운명인지, 절대자의 장난인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