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2026.09.01_30 새벽강(전주)
'드러낸다'는 것은 전시를 만드는 사람에게 너무도 당연한 동사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전시장은 그 욕망을 부추긴다. 아무것도 없는 흰 벽은 무엇이든 올려놓고 싶게 만든다. 더 선명하게, 더 크게, 더 잘 보이게. 마치 보이는 것이 곧 존재의 증명인 것처럼. 전시는 드러내려는 욕망이다. 하지만 걷다 보면 알게 된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길 위에서 생겨나는 욕망을 따라 걷다 보면 많은 것들과 마주친다. 사람들, 사건들, 이야기들, 비와 바람, 여름. 술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냄새. 오래된 의자의 흔들림. 누군가의 말투와 웃음. 향기와 무심코 입고 나온 셔츠의 색. 우연히 마주친 눈빛. 흘러나오는 음악. 창밖을 지나가는 고양이. 별것 아닌 것들. 아니 별것 아니라고 여겨지는 것들. 삶은 이상하게도 그런 것들에 의해 조금씩 방향이 바뀐다.
나는 적어도 질문을 품고, 문제를 직면하며 살아왔다. 아니, 해결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승리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화도 났고 좌절도 했다. 외면하는 법도 배웠다. 좋아. 그렇다고 하자.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이라면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걸어왔는데도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큰 사건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인연들이었다. 사람만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스치는 모든 순간. 사물과 사물의 배치. 오늘의 날씨. 우연. 침묵. 실수. 때를 놓친 인사. 말하지 못한 마음. 어쩌면 작품도, 새벽강도 그런 인연 중 하나일지 모른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술을 마시러 왔다가 작품을 만나고, 누군가는 작품을 보러 왔다가 사람을 만난다.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에 아주 작은 인연 하나가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새벽강은 전시장이 아니라, 작은 인연들이 잠시 머무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오래 걸어온 끝에 내가 알게 된 것은 하나다. 살아간다는 것은 거대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작은 인연들 덕분이라는 것. 이번 전시도 드러내려는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끝내 드러나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이곳을 스쳐 간 작은 인연들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믿는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2022.07.30 은암미술관(광주)
시선 / 디지털감각기계 / 낯선 생
이산의 관심은 ‘관계’다. 2017년 발표된 <시선>은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써 비가시적, 비물질적, 비언어적 요소를 드러내고자 했다. 2018년 <반복과 증폭에 맞서는 투명화 전략>, <두 번째 생>을 통해 인류생존전략에 물음을 제기하고 ‘두 번째 생’이 선언되었다. 인류의 생존전략은 미래에도 ‘드러냄 전략’을 유지할 것이다. 그 반대편의 전략은 숨거나 감춘다기 보다 ‘투명화’라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 투명화는 드러냄에 반대편에 있지만 드러냄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않는다. 투명화 전략을 통해 등장하는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 자 죽, 은자, 소외된 자, 잃어버린 자, 현실화되지 않는 자이다. 드러냄을 멈추고 전략으로써 투명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그것이 인류문명에 특히 개체로서의 사람에게 어떻게 구체화 될 것인지? 현실 불가능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서 죽음을 이해하고 전략으로 삼을 수 있는지? 닦달이 아니라 지극한 우러나옴을 시도해본다.
2021.08.13_17 사용자공유공간planc
시선 / 두번째 생 첫번째 질문 #1 / 낯선 생
이산의 관심은 ‘관계’다. 2017년 발표된 <시선>은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써 비가시적, 비물질적, 비언어적 요소를 드러내고자 했다. 2018년 <반복과 증폭에 맞서는 투명화 전략>, <두 번째 생>을 통해 인류생존전략에 물음을 제기하고 ‘두 번째 생’이 선언되었다. 인류의 생존전략은 미래에도 ‘드러냄 전략’을 유지할 것이다. 그 반대편의 전략은 숨거나 감춘다기 보다 ‘투명화’라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 투명화는 드러냄에 반대편에 있지만 드러냄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않는다. 투명화 전략을 통해 등장하는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 자 죽, 은자, 소외된 자, 잃어버린 자, 현실화되지 않는 자이다. 드러냄을 멈추고 전략으로써 투명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그것이 인류문명에 특히 개체로서의 사람에게 어떻게 구체화 될 것인지? 현실 불가능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서 죽음을 이해하고 전략으로 삼을 수 있는지? 닦달이 아니라 지극한 우러나옴을 시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