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준비하면서 늘 궁금했던 걸 채선생에게 물어보니, 답변이...
+ short answer
+ 얻을 수 있는 장점
+ 왜 그런 방법론을 안쓰는지.
이 녀석들은 글 잘쓰는 법, 말 잘하는 법을 따로 배우나 싶을 정도로 내가 듣고 싶어하는 포인트들을 잘 잡아낸다.
일반적인 한국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수학적인 측면에만 잔뜩 신경을 써서 와장창 수식만 들고오고 뒤에가서 이도저도 아닌 답, 혹은 야단맞지 않을 답을 대답하는 형태로 대답을 하는데, 질문한 사람의 의도를 파악해서 '이런 장점이 있지만 어떤 이유로 안쓰이는지'까지를 답해주는 센스.
점점 AI가 (평균)사람보다 나아지고 있는 사회가 되어가는구나.
바티칸의 미장센과 스릴러를 즐기려 봤는데 이런 명언이…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 정해진 대로 사회를 돌리려는, 게다가 그게 ‘맞다’고 착각하는 모든 J에게. 그리고 자기의 정의가 너무나 certain해서 상대가 완전히 부서지기를 원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Certainty is the great enemy of unity. Certainty is the deadly enemy of tolerance.
Our faith is a living thing precisely because it walks hand in hand with doubt. If there was only certainty and no doubt, there would be no mystery and therefore no need for faith.
Certainty를 추구하고자 시스템을 만들고 거기에 authority를 주어 AI가 쉽게 지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uncertainty를 허락하고 매번 사람이 authority를 가지고 결정하는, AI도 학습하기 어려운 세상을 만들 것인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한국학생들은 틀리는 것에 대해서 너무 깊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조금 틀릴 것 같으면 해보지를 못하고, 어떤게 정답인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어떤게 오답인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미있는 연구는 답을 모르는 연구입니다. 연구경력이 길지 않은 대학원 학생들이 간단하게 '풀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는 연구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20년넘게 받아온 '교과서 뒤에 감추어져 있는 정답'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기 바랍니다.
우리 연구실은 풀기 어려운 문제, 답이 잘 나올 것 같이 않은 문제, 그렇지만 의미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풀고 싶어하는 문제를 푸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런 문제엔 명확한 정답이 없습니다. 또한 단기간에 절대 풀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푸는 법을 잘 build up하는 것 부터 배워나가서 단계별로 풀어나가는 즉 번트부터 성공해 나가는 프로세스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99번은 틀릴 각오를 해야합니다. 한번 만에 못풀것 같아서 겁먹어서도 안되고, 한두번 틀렸다고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기말고사가 아닙니다. 학교시험틀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마음껏 틀려가면서 공부해 나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제발 틀리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말아주길 바랍니다. 어떻게 풀어나갈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주세요. 당연히 도중엔 틀립니다. 그러다가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해야지 여러분이 원하는 정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년이 걸릴 수도 평생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평생을 걸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한 것이지요.
틀리는 과정에서 다음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거 틀린 것 아닌가요? 이렇게 하면 안되지 않나요? 라는 생각보다 이런 결과라면 이런 사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요? 라는 생각을 해주고 공유해주기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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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교수님이 자주 하셨던 말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모범생들’
그 흔한 BGM하나도 쓰지 않고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양가 이상의 다가적인 감정을 갖게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거대한 역사. 악의 평범성이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나 살벌하게 악과 일상이 이웃함을 보며, 나는 도대체 어디에 마음을 주고 있나 하다 보면 크게 한방을 맞는다. 평범한 하루의 일상속에서 창밖으로 들리는 소리와 저만치 보이는 풍경이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 할 수가 있구나.
“아버지도 음악이나 영어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나, 공부라는 것은, 처음엔 누구나 모르는 상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조금씩 알게 되니 자신의 방법으로 헤쳐나가는 것이라고. 그러는 도중 진짜 스승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되니, 그걸 위해서 배우는 준비를 해두는 것이 독학이다. 라고 이게 아버지의 말씀이었다고 어머니가 알려주셨습니다.
…
그렇지만 나는 나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진짜를 향해서 가야한다, 는 마음은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거기엔, 어머니로 부터, 아버지는 도중에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방법으로 해나가셨다, 라고 자랑스러운 태도로 이야기하신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 오에 겐자부로
일본에서는 철학계의 락스타라고 소개되는 마르쿠스 가브리엘.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은 듯.
“이익을 위해서는 도덕을 버리고, 정의라고 말하면서 전쟁까지 하는 (이라고 할 때 국가와 정치라는 마크로적인 면에서 생각을 하고 동감하지만, 자신이 있는 카페와 술자리에서 발생하는 미크로적 현상은 보지 못하는). 자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된 현대인”이라고 현대를 분석하는 철학자. 한국에더 몇권 번역된 책이 있으니 읽어봐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