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Korea

2023년 8월호

지수는 닻을 내린 배처럼 단단하다. 흔들림 없이 항해하는 지수의 마음

일렁이는 질문과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도 지수는 망설임 없이 나아간다.


〈엘르〉와 2년 반 만에 만났어요. 지난 촬영 때 사진을 꽤 오랜 기간 인스타그램 프로필로 사용해서 은근 뿌듯했죠

오늘 촬영도 그만큼 맘에 들었습니다(웃음).

 

캐서린 디올, 에디트 피아프 같은 아이코닉한 여성에게 헌정한 디올 2023 F/W 컬렉션과 함께했습니다. 지난 쇼에 직접 참석했던 만큼 오늘 촬영 소감도 남다르지 않을지

쇼가 정말 좋았어요. 평소 블랙이나 화이트의 모던한 느낌이나 어두운 색감을 선호해서 ‘이 옷은 이럴 때 입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면서 쇼를 봤죠.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게도 이번 컬렉션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따로 말하기도 했고요. 오늘 촬영장에 와서 룩을 실물로 보니 설레더라고요. 일상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룩이 많다고 할까요. 새로운 가방은 물론이고요.


올해 지수를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던 곳은 무대였습니다.  블랙핑크 월드 투어 ‘Born Pink’가 한창 진행 중이던 4월, 첫 솔로 앨범 〈Me〉 활동까지 마쳤어요. 아무리 바쁜 게 익숙해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일정이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투어 중이라는 게 더 큰 동력이 됐어요. 콘서트 무대에서 솔로곡을 하루빨리 선보이고 싶었거든요. 블링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다소 무리인 스케줄도 열심히 밀어붙였죠. 사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웃음). 체력이 좋은 편이기도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저는 하루 24시간도 엄청 길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요.

 

뭔지 알아요! 어떨 때는 영화를 세 편이나 봤는데도 ‘아직 6시간밖에 안 지났구나. 아직도 하루가 한참 남았네’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맞아요. 24시간에 걸맞은 삶을 살아낸 느낌? 요즘처럼 투어 중간중간 쉬는 기간이 있을 때면 그 하루가 정말 길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루하루 ‘꽉꽉’ 채워서 보냈다는 느낌이 커서 솔로 활동도 즐거웠어요. 국내 음악방송도 오랜만이었고요. 지난해 ‘Shut Down’과 ‘Pink Venom’ 활동 때만 해도 관객들이 소수밖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팬사인회도 대면보다 영상통화가 많았고요. 그래서 멤버들도 제 활동을 부러워했어요.


그렇게 준비한 ‘꽃(Flower)’ 솔로 무대를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선보였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너무 떨렸어요. 이렇게 큰 페스티벌에서 솔로 무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요. 생각해 보니 저보다 앞서 솔로곡을 선보인 로제나 리사도 페스티벌 무대에서 솔로 무대를 하는 건 처음이더라고요. 제니도 혼자 무대에 서면 여전히 긴장될 테고요. 나만 이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긴장감이 덜어졌어요. 혼자 하는 무대지만 같이 하는 느낌이었죠. 최근 곡이라 응원을 많이 받기도 했고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월드 투어도 중반을 훌쩍 넘었습니다. 서른 개도 넘는 도시에서 공연한 소감은

파리와 미국에서 펼쳐질 앵콜 콘서트만 남았으니 거의 막바지에 도달한 셈이죠. 처음에는 우리가 이 많은 공연을 해낼 수 있을까 싶어서 실감도 안 났어요. 막상 해보니 다양한 문화권의 팬을 만나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해냈다’는 뿌듯함이 커요. 투어 후반부니까 기운이 빠졌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성취감에서 오는 에너지가 충전된 상태예요.

 

공연을 거듭할수록 의미 있게 느껴진 무대가 있다면

처음 투어를 시작할 때는 지난해에 발표한 앨범 수록곡들과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이겠다는 의지가 강했어요. 그런데 데뷔곡을 부를 때 팬들의 반응이 더 와닿더라고요. 새로운 무대도 좋아해주시지만 ‘붐바야(Boombayah)’ 같은 초기 곡도 여전히 기대하는 걸 보면서 우리 활동이 크나큰 애정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곡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커진 것도 물론이고요.

 

무대 뒤에서 멤버들을 “블랙핑크야!”라고 귀엽게 부르더라고요(웃음). 한편 멤버들이 콘서트에서 눈물을 터뜨릴 때 다독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맏언니 같기도 해요

무대 위에서 다 같이 감사 인사를 할 때나 앵콜 무대가 시작되기 전, 암전된 상태에서 핑크색 응원봉만 켜져 있으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어요. 많은 사람의 애정이 눈으로 보이니 여러 생각이 들죠. 로제나 리사가 어린 시절을 보낸 호주나 태국에서 더 벅차 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울컥해요. 투어가 여러 감정을 선사하는 건 분명해요.


투어 틈틈이 브이로그를 부지런히 찍어 개인 유튜브 채널에 올렸습니다. 파리, 쾰른, 코펜하겐, 런던, 암스테르담…. 도시도 다양했죠.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원래는 ‘집순이’예요. 지난 투어 때는 전혀 돌아다니지 않았는데, 이번 투어는 유럽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중간중간 쉬는 날이 있었어요. 그럼 팬들에게 투어 중인 우리 모습을 보여줄겸 한번 촬영해 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브이로그를 계기로 저 또한 도시를 느낄 수 있었고, 나중에 돌아볼 추억이 많아졌으니 결과적으로 일석이조였던 거죠! 지금은 또 뭘 올려야될지? 유튜브 채널을 꾸준히 운영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생기긴 했지만요(웃음).

 

개인 유튜브 채널 ‘행복지수 103%’의 채널 수익금은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요. 어떻게 기부를 생각했나요

정말 소박한 채널이잖아요. 전문성 있게 열심히 준비하거나 양질의 정보를 전한다면 모를까, 방에서 뒹굴뒹굴하는 제 일상을 편안하게 보여주는 건데 이걸로 수익까지 얻는 게 내키지 않았어요. 팬들도 저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보는 것일 테니 결과적으로 이게 좋은 일로 이어지면 보는 사람도, 제 마음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기부를 생각하게 됐죠. 어떤 곳에 전달해야 가장 뿌듯할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어디에 전달됐는지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지난 7월 2일 헤드라이너로 섰던 ‘British Summer Time Hyde Park 2023’ 페스티벌 홈페이지를 보니 블랙핑크를 ‘K-Pop Trailblazer(개척자)’로 소개했더군요. 우리가 진짜 ‘개척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반반 아닐까요? 저희도 다른 분들이 만들어둔 길을 걸었지만, 또 플랫폼이 확장되며 K팝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던 시기에 데뷔하면서 저희가 개척해 나간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다듬어진 길 위를 걸은 부분이 있었던 것처럼 저희 뒤에 올 분들의 길이 좀 더 평탄해지는 데 저희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어요. 그들도 그들만의 것을 개척하며 서로 연결될 수 있으면 좋고요. 어쨌든 기분 좋은 표현이네요. 무대 위의 지수는 어떤가요 무대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공간이에요. 작은 사고가 생기기도 하고, 지연이 생기기도 해요. 시간이 지체될 것 같다면 빨리 대안을 찾아야 하니 즉흥성이 필수죠. 무대 위에서는 어떻게 보면 조금 날카롭게 깨어 있는 편이에요. 집중력이 높아지죠.

 

올해 솔로 활동을 통해 인기 웹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개인의 모습도 친근하게 선보였습니다. 보여주고 싶었던 면모가 잘 전해진 것 같나요

‘털털하다’는 반응이 많은 게 사실 의외였어요. 팬들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지만, 좀 더 대중적인 채널에는 덜 노출되다 보니 많은 분이 이제야 알아보셨구나 싶더라고요. 그냥 봤을 때는 제가 소극적이고 조용해 보나 봐요. 새삼 내가 대중에게 보여지는 첫인상이 어떤지 궁금해지기도했죠.


데뷔 8년 차에 궁금해하기에는 확실히 새삼스럽네요(웃음) 

왜냐하면 저는 정말 똑같거든요. 한번 좋아하게 된 것은 오래 좋아하고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딸기가 좋으면 다른 과일이 있어도 딸기만 먹는 거죠. 라면도 아무리 새로운 제품이 나와도 먹던 제품을 먹고요. 부모님도 저를 보며 어쩜 이렇게 어릴 때랑 똑같냐고 할 정도로 항상 같은 터라 의외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다는 게 신기했나 봐요.


욕조와 책을 사랑하는 마음도 여전할 테고요.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나 시간대는 언제일지

일과를 마치고 자기 전 소파에 누워 있을 때. 오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잠만 자면 되는 순간이 너무 좋아요. 편하게 드러누워 ‘잠이 잘 오는 노래’ ‘비 내리는 소리’ 같은 음악을 틀어놓고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 것 같으면 침대에 가서 잠들죠.


현재를 살고 있는 지수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남아 있는 무대들이요. 앙코르 콘서트부터는 코첼라 때 선보였던 세트리스트로 갈 예정이라 지금까지 투어에서 보여줬던 무대와 달라지거든요. 아쉬웠던 부분을 잘 숙지해서 좀 더 완벽한 무대를 보여드릴 예정이니 저희 공연을 또 보러 와주시는 분들도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가면 좋겠어요. 그리고 건강! 코로나19에 걸려 무대에 서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아쉬웠어요. 화도 많이 났고요. 강행할 수는 없으니 일단 컨디션 회복에 애썼는데,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건강관리를 더 열심히 하게 돼요. 꼭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투어를 마칠 겁니다.

 

무대 위에서 곡을 부르며 해소되는 감정도 있고, 어떤 가사는 내 마음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감정을 완벽하게 전하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지수는 느끼는 것들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가요

저는 힘들거나 서운함, 슬픈 감정은 굳이 전달하거나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멤버들이나 부모님께 ‘사실 나 요즘 이런 기분이야’라고 말하는 제 모습은 지금도 상상이 안 되거든요. 그렇다고 쌓아두고 있지도 않아요. 일단 혼자 생각하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감정도 많더라고요. 즐거운 감정은 잘 공유합니다. 재밌게 본 영상이 있다면 꼭 링크를 보내 공감받아야 해요(웃음).

 

혼자 나를 돌아보며 나아가는군요

털어내는 것도 잘하고, 받아들일 것은 빨리 받아들여요. 제가 바꿀 수 없는 일도 분명 있잖아요. 변화의 여지가 있다면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까지 신경 쓰면서 저를 몰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내가 지켜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