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걸작 희곡전_멕시코
연극 시늉하는 자
공연개요
공연 일시 : 2026년 8월 21일(금)-8월 29일(토)
평일 저녁 7시 30분 | 토 오후 4시
※ 일요일 공연 없음/ 월요일 공연 있음
공연 장소 : 창작플랫폼 경험과상상
극 작 : 로돌포 우시글리
연 출 : 유아람
예술감독 : 류성
번 역 : 최권준
출 연 : 정도훈, 한덕균, 정욱권, 박누리, 이성민, 이채성, 유아람, 이상희, 박성헌
팀매니저 : 정도훈
디자인 : 이상희
제작PD : 김민태
드라마터크 : 조일신
홍 보 : 김한봉희, 이상희, 위풍당당 성없뚱
예매처 : NOL ticket
티켓가 : 전석 3만 원(상상이상 전석 무료)
할 인 : 영등포구주민, 장애인, 학생 2만 원/ 예술인, 협약단체 1만 5천 원
문 의 : 010-2307-0011(문자전용)
제 작 : 극단 경험과상상 & 경험과상상문화예술협동조합
공지 사항
대중교통 이용시 : 당산역 (2호선, 9호선)에서 도보 10분 이내
주차시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 소극장입니다.
현장 매표소는 1시간 전에 오픈합니다.
공연시작 이후에는 입장이 불가하며, 환불하지 않습니다.
할인권종 구매시 증빙하지 못하면 차액을 지불해야 합니다.
공연 중 연무효과, 강한 소리, 강한 빛 등이 사용됩니다.
공연 중 사진촬영, 영상녹화, 음원녹취는 불법입니다.
작가소개
로돌포 우시글리 (Rodolfo Usigli)
멕시코의 극작가 · 수필가 ·외교관이다.
희곡 · 수필 · 시 · 번역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였다. 1972년 멕시코 국가예술과학상을 수상 하였으며, 대표작 《시늉하는 자》를 비롯한 작품들로 멕시코 현대극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줄거리
멕시코시티에서 교수직을 잃은 ‘혁명사 연구 전공’의 세자르는 가족을 이끌고 고향 북부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다 우연히 자동차 사고로 집에 묵게 된 미국인 역사학자 볼튼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멕시코 혁명의 영웅이었으나 역사 속에서 지워진 인물, '세자르 루비오 장군'을 찾고 있으며, 심지어 그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큰 돈을 사례하겠다고까지 한다. 돈에 눈이 먼 세자르는 자신이 그 영웅인 척 행동하고 만다. 하지만 이후 볼튼의 기사가 세상에 퍼지고, 군중과 정치인들이 그를 찾아오며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마침내, 주지사 후보 출마 요청까지 들어오면서 그는 점차 ‘혁명 영웅 세자르 루비오 장군’이 되어간다.
작품개요
로돌포 우시글리가 1938년에 집필하였으나, 출판까지 6년, 초연까지 10년을 기다려야 했던 작품이다. 1947년 5월, 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르테스에서 초연되자 관객은 열광하였으나 정부는 즉각 공연을 중단시키고 언론을 동원해 작품을 공격했다. "혁명을 모독하는 팸플릿"이라는 비판과 "멕시코 현대극의 기초석"이란 평가가 동시에 쏟아졌으며, 우시글리는 훗날 이 작품이 모욕, 비방, 조롱, 노조의 방해라는 영예를 모두 받았다고 회고하였다. 이후 미국, 스페인, 폴란드, 쿠바 등 세계 각지에서 상연되며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연극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작품해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실종된 혁명 영웅 세자르가 상징하는 기호는 정의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점이다. 극 중 멕시코 정치사회는 세자르의 혁명정신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위선자들이 활개 치는 거짓의 시대"다.
반동 인물인 나바로는 자신이 상관으로 모셨던 혁명 영웅 세자르를 암살했으면서, 이를 숨기고 자신이 세자르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처럼 포장하여 권력을 취하려고 한다. 그는 성공을 위해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용하고, 살인하고, 찬탈하고, 거짓말하는 철저한, 절대적인, 순수한 위선자다.
세자르 또한 위선자다. 생계와 열패감 때문에 혁명 영웅 세자르의 시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자르는 점차 자신이 사칭한 영웅의 정체성에 동화되고, 그와 같은 면모와 능력마저 발휘한다. 영웅의 실종으로 사라졌던 혁명의 열기가 다시금 치솟고, 대중들은 절대 악인 나바로를 쓰러트리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세자르를 적극 지지한다.
세자르는 나바로와는 다른 "역설적 위선자"다. 수단은 분명 거짓과 위선(가짜 행세)인데, 그 위선을 행하는 목적과 내면의 동기는 도리어 가장 순수한 진정성과 정의를 향해 있는 역설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의 위선은 정의인가 불의인가?
세자르의 위선을 불의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것은 "진실(영웅 세자르)이 실종된 시대, 거짓(교수 세자르)을 통해서만 정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늉하는 자>의 주제가 가진 차별성과 탁월성은 여기에서 비롯되며, 주인공 세자르가 맞게 되는 비극적 최후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혁명 이후 세대를 상징하는 미겔과 훌리아의 견해 차이는 역설적 위선에 대한 복잡한 평가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세자르의 아들 미겔은 진실이 아니면 위선이고, 아버지의 위선은 곧 불의라고 여긴다. 그러나 딸 훌리아는 아버지 세자르의 내면적 진정성과 정치적 유능함에 감화되어 열렬히 지지한다.
작품의 주제를 더 분명히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보자. 만약 결말에서 세자르가 죽은 뒤 영웅으로 추대받고, 대중이 그 가짜 영웅에영감받아 진짜 혁명(정의)을 완수한다면, 세자르가 행한 '위선'을 무엇이라고 평가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