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의 출생
-948년~1031년
-지금의 낙성대에서 태어났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다. 사실 낙성대는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도 있었는데, 개경에 있었던 강감찬의 집을 가리켜 '낙성대'라고 불렀다.
강감찬
강감찬의 업적
강감찬은 고려의 문관이다. 본관은 금주이다. 983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시랑, 한림학사를 거쳐 13평장사가 되었다. 요나라의 3차 침입을 격퇴하였고, 1019년에 검교태위 문하시랑 동내사 문하평장사 천수현 개국남 식읍삼백호에 봉해졌다.
-요성종을 설득해 물러가게 하였다.
-요나라에 항복 반대을 하였다.
-동여진의 침입에 대비 하였다.
-거란군에게 큰 승리를 거둔 귀주대첩으로 유명하다.
귀주대첩
916년, 몽골과 민주 지방에서 유목 생활을 하고 있던 거란족은 여러부족을 통일해 요나라를 세웠어요. 점점 세력을 키운 요는 926년 발해를 멸망시켰습니다. 고려는 이런 요를 "짐승의 나라" 라고 부르면서 북진정책을 추진 했습니다. 이후 중국에 송나라와 화친정책을 펴면서 요에게는 적대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송도 요를 견제하기 위해 고려와 친선을 도모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요는 이를 구실삼아 고려를 침입하였지요. 귀주대첩은 강감찬 장군이 요의 침입에 맞서 크게 이긴 싸움을 말합니다.
거란을 크게 무찌른 전투, 귀주 대첩 ( 역사 만화 )
거란의 1차 침입 이후에도 고려는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지 않았습니다.
이에 거란은 두 차례를 공격해 왔어요. 하지만 고려는 그때마다 거란의 공격을 잘 막아 냈습니다.
이때 일어났던 대표적인 전투가 '귀주대첩' 입니다. 고려의 장군, 강감찬은 귀주에서 거란을 물리치며
큰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고려와 거란 사이에는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설명이 필요없다 귀주 대첩의 영웅 강감찬
귀주 대첩의 영웅 강감찬 장군의 생애와 마지막을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