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고린도후서 7:10-11 (개역개정)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마틴 루터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 적은 없습니다. 당신의 삶에 회개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떼어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성경적 회개란 비정상이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복음 중심적 삶을 위한 기준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나의 죄성에 대한 인식이 성장할수록 우리는 회개하게 되고 예수님의 복음을 믿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위선과 행위에서 돌아서야 한다. 성경적 회개는 우리가 고안한 방법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복음의 능력이 우리 삶에 열매를 맺도록 길을 낸다. 반면 죄는 우리의 회개를 오염시키고 우리 삶의 열매를 빼앗는다.”
복음 중심의 삶 중에서
솔직히 우리는 ‘회개’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기준에서 정말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회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복음의 가장 중요한 기초 마가복음 1:15 이다. 마틴 루터 Martin Luther 는 95개조 반박문에서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라고 정의했으며 설교의 황태자 마틴 로이드존스 Martyn Lloyd-Jones 도 회개의 열매가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나타나야 함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성경적 회개가 무엇일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회개의 깊은 단계로 나아가보자.
첫째,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편 51:4)
다윗의 “주께만 범죄하여”라는 고백은 논란이 될 수 있는 구절이다. 수평적 책임을 거부한 채, 수직적 차원만 해결한다는 고백일까?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향한 속죄제, 사람을 향한 속건제를 함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윗은 여러 사람에게 죄를 지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행위가 단순히 행위 자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마틴 로이드 존스 Martyn Lloyd-Jones 의 『회개』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우리 모두는 언제나 죄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과, 죄악 혹은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과 우리를 위해 세우신 그분의 계획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소리가 우리에게 죄즐 짓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규칙을 파괴하며 그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부모 앞에서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부모의 마음이 힘들어진다. 싸운 것에 대해서는, 자녀들이 각자 서로에게 사과해야 한다. 아울러 부모의 가르침,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것, 더구나 부모의 눈앞에서 싸웠으니, 부모님께도 사과해야 한다.
이것이 “주께만 범죄하여”의 본질이다. 더 나아가 회개란 겉으로 드러난 행위를 넘어 하나님을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죄의 원어는 ‘하마르티아 ἁμαρτία', 즉 ‘과녁을 벗어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의 본질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구체적인 행위인 것이다.
둘째, 회개는 자기 중심적 후회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7:10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 안에서 두 가지 근심을 말한다. 하나는 사망을 이루는 세상 근심(후회)이며 또 하나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근심(회개)이다. 우리의 근심은 어떠한가? 우선, 가짜 회개를 살펴보자. 회개는 자기연민, 감정적 자극, 책임회피가 아니다. 이것은 모두 자기 중심성에 기초하며 세상 근심(후회)으로 나아가게 한다. 하지만 성경적 회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회개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게 된다. ‘자기 연민’에서 ‘자기 부인’으로 나아가며, ‘감정적 자극에서 믿음의 반응’으로 도전하며, ‘책임 회피’에서 ‘전적인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성경에 후회와 회개의 예를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후회와 자기 연민에 빠졌다. 그리하여 사무엘의 옷자락을 붙들고 사무엘상 15:27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높여달라고 부탁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것보다 자신의 왕권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반대로 다윗은 진실한 회개를 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몇 십 배, 몇 백 배 사울보다 다윗이 더 잘못했다. 그러데 다윗은 용서를 받고 그의 왕권은 계속 유지되었다. 왜 그랬을까? 진 에드워드의 『세 왕 이야기』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왕권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질 것도, 보호할 것도, 지킬 것도 아니란 말이지요. 나는 성을 떠나겠습니다. 왕권은 이제 주님의 것입니다. 왕국도 마찬가지지요. 나는 하나님을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장애물도, 또 내가 하는 어떤 일도 그 분의 뜻을 이루시는 데에 조금도 틈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그분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막을 만한 장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내가 왕이 될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압살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는 데 아무 문제가 없으실 것입니다. 자, 이제는 가능한지요? 하나님이여, 하나님 되시옵소서!“
셋째,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다윗과 사울의 길, 베드로와 가룟유다의 길, 장발장과 자베르의 길. 우리의 삶 역시 두 길 위에 놓여져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하겠는가? 코너에 몰렸을 때 어쩔 수 없는 회개가 아니라 매일의 삶 가운데 회개를 사랑하고 회개를 즐거워하며 회개를 통해 믿음의 여정으로 나아가기를 축복한다. 마지막으로, 복음 중심의 삶의 한 대목을 천천히 읽고 회개를 사랑해 보자.
”우리가 복음의 빛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갈 때, 이러한 회개의 삶은 점점 더 일상이 될 것이다. 복음적인 진정한 회개는 핑계를 대며 후회와 결심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우리의 죄에 놀라지 않고 정직하게 인정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고 신속하게 예수님께 돌아와 용서와 변화를 구하게 될 것이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3:19
포도원 가이드
1. 위에서, 두 가지 근심(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세상 근심)을 살펴보았다. 나의 근심은 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2. 진정한 회개는 후회와 결심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 자신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용서와 변화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부부와 자녀와의 관계, 세상(일)과의 관계 가운데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야 하는 영역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3. 회개는 수직적 영역(하나님)도 있지만 수평적 영역(사람)도 존재한다. 언젠가 하늘에서 풀리겠지만 땅에서 풀어야 하는 영역은 무엇일까? 잠잠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진실로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해야 할 대상, 관계는 무엇인가? 비록 당장은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기도로 나아가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고백해 봅시다.
글 이정훈 목사
레거시 사역 대표, 다음 세대와 가정을 세우는 목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