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세우는 제자도 1 - 가정
가정을 세우는 제자도 1 - 가정
마태복음 19:1-9 (개역개정)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 홍성사』에서 C.S.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는 우리가 맨 처음 “사랑에 빠질 때” 우리 안에서 생긴 갈망은 그 어떤 결혼 생활로도 충족될 수 없는 갈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결혼 생활은 “실패한 결혼”이 아니라 “세상에 있음직한 최상의 결혼”을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루이스의 말이 옳다면, 아니 옳다고 믿는다면 ‘결혼에 대한 실존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내 결혼 생활은 물론 평생의 행로가 결정될 것이다. 루이스는 결혼에 대한 실존을 대처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배우자를 탓하면서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둘째는 냉소적인 태도로 결혼에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셋째는 이 세상 어떤 경험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갈망이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결혼생활을 만드신 이의 뜻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를 떠나서 유다 지역으로 이동하고 계신다. 얼마 후에는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고,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게 되신다. 그런 여정에서 예수님은 가정과 이혼을 다루신다. 왜 그러신 걸까? 제자의 길에서 성경적인 가치로 가정을 세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첫째, 결혼의 해체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태복음 19:3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시험하며 말했다. “이유가 있다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이혼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이혼을 해도 되는가를 물은 것이다. 이 장면은 결혼 생활에 금이 가고 해체되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배우자를 탓하면서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완약한 모습,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만 냉소적인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는 모습, 결혼 자체에 환멸을 느끼는 표정도 떠오른다. 어떤 이유든 대면서 이혼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하셨을까? 예수님이 알려주신 결혼의 본질을 살펴보자.
둘째, 결혼의 본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10:4-6
예수님은 창세기 2장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태초에 ‘에덴웨딩홀’에서 하나님이 주례사로 하셨던 말씀이다. 결혼의 본질, 결혼을 만드신 이의 뜻을 따르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져다는 것이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7절)라고 묻는다. 이때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인용해서, 율법에 이혼에 대한 법규가 나와 있으니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즉 이혼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율법이 있으니 이혼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참 의도를 일깨워주심으로써 그들의 생각에 오류가 있음을 보여주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마태복음 19:8-9
예수님은 성경이 이혼을 부추기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모세가 허락한 것은 우리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며 본래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을 설계하고 주례하신 이의 고백이다. 마지막으로 팀 켈러 Timothy J. Keller 목사님의 『결혼을 말하다 The Meaning of Marriage, 두란노 』에서 말하는 결혼의 본질을 살펴보기 원한다. 이를 통해 우리 가정이 걸어야 할 결혼의 행로도 다시금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그릇된 선택은 없다. 결혼이 복음의 신비를 드러낸다. 결혼은 복음을 통해 심령이 속속들이 새로워지며 바닥을 헤매던 삶이 다시 일어서게 되는 주요한 수단이다. 결혼이 고통스러우면서도 멋진 까닭은 한없이 아픈 동시에 그것이 무한정 근사한 복음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이란 이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수준 이상으로 죄에 깊숙이 빠져 있으며 내면에 수없이 많은 흠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큰 사랑과 용납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결혼 관계를 통해서만 진정한 내면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감상이다. 힘을 북돋우고 지지해 주지만 우리 안의 결점들은 부정하게 한다. 사랑이 빠진 진리는 가혹하다. 정확한 정보를 주긴 하지만 진심으로 귀 기울일 수 있는 방법은 빠져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실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동시에 인류를 향한 철저하고도 무조건적인 헌신을 보여 준다. 자비로운 헌신은 우리를 강하게 해서 자신의 실체를 직시하고 자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확신과 회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매달리며 거기서 안식을 얻도록 우리를 이끈다.
포도원 가이드
1. 추석 명절입니다. 명절에 가족(배우자)을 섬길 영역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2. C.S. 루이스가 말한, 결혼의 세 가지 행로를 생각해 보고, ‘결혼을 만드신 이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가정은 현재 그분의 계획대로 세워지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3. 명절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용서하고 사과하며 다시 회복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지 나누어 봅시다.
글 이정훈 목사
레거시 사역 대표, 다음 세대와 가정을 세우는 목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