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하나 될 수 있을까?
복음으로 하나 될 수 있을까?
누가복음 6:31-36 (개역개정)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건강하고 활기찬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얕고 피상적인 공동체가 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정직함, 고군분투, 사랑, 실패, 예수님께 매달리기, 서로 회개하기, 서로 용서하기,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기, 서로가 십자가를 가리키도록 돕기 등이다. 이것이 복음 중심 공동체의 아름다운 혼란이다.
『복음 중심의 공동체』 로버트 H. 슌, 생명의말씀사
‘공동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얕고 피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건강하고 활기찬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복음 중심의 공동체 저자인 로버트 H. 슌 Robert H. Shunn 과 윌 워커 Will Walker 는 ‘아름다운 혼란’이라고 답한다. 기질적으로 혼란을 싫어하고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혼란 자체가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복음 중심의 공동체 역시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하나가 되기는 그리 쉽진 않다. 그 안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혼란이 존재한다.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신다.
첫째, 단순성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누가복음 6:31-33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확하고, 선명하며, 직관적이다. 더구나 외우기도 쉽다. 실제로 우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인정과 박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보다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부터 어려워진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가까이해야 할 사람, 조금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 아예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본능적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원수를 만들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만약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무슨 칭찬이 있겠느냐고 말이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 나와 잘 통하는 사람,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은 칭찬할 거리조차 안 된다. 심지어 죄인들도 그렇게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숨이 턱 막힌다. 과연 어찌해야 하는 걸까?
둘째, 희소성이다.
그분의 명령을 제대로 따를 수 없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분의 단순한 가르침은 그동안 그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내용이며, 아주 명확하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누가복음 6:35-36
과연 이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이런 기준대로 살아내는 공동체가 몇이나 될까? 그렇게 살기가 어렵다고 생각될 때, 먼저 그렇게 사신 분, 예수님을 바라보게 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뺨을 때리고 외투와 옷을 벗길 때도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셨다 누가복음 23:34. 그분은 십자가 밑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지킨 요한뿐만 아니라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도 사랑을 보여주셨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생명까지 빼앗긴 분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제자이다. 예수님을 날마다 따라가는 제자이다. 예수님을 이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비록 적은 수가 그렇게 한다 해도 반드시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공동체는 새로워질 것이다.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가 원하는 관계가 아닌 주님이 원하시는 관계를 세워야 한다. 내가 갈망하는 교회가 아닌 주님이 갈망하시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께서 묶어주신 사람들과 복음 중심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여전히 공동체 안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복음 중심 공동체의 마지막 도전을 읽어보자.
때때로 우리는 공동체를 줄타기의 외줄 아래 있는 그물처럼 여기기도 한다. 사고를 대비하는 안전장치로 말이다. 하지만 성경은 공동체가 외줄 그 자체라고 말한다. 줄타기에서 외줄 없이는 앞으로 전진할 수 없다. 우리는 공동체를 위해 창조되었다. 우리는 공동체를 위해 구속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변화된다.
포도원 가이드
1. 포도원 (교회, 공동체)에 대한 감사를 먼저 나누어 봅시다.
2. 복음 중심 공동체의 글을 읽어봅시다. 우리(가정, 공동체)가 겪고 있는 ‘아름다운 혼란’은 무엇입니까?
건강하고 활기찬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얕고 피상적인 공동체가 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정직함, 고군분투, 사랑, 실패, 예수님께 매달리기, 서로 회개하기, 서로 용서하기,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기, 서로가 십자가를 가리키도록 돕기 등이다. 이것이 복음 중심 공동체의 아름다운 혼란이다. 『복음 중심의 공동체』
3. 다음 말씀을 읽고 ‘주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복음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하여’ 결단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글 이정훈 목사
레거시 사역 대표, 다음 세대와 가정을 세우는 목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