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유치원 최승준, 이경진
아직 수정 보완을 더 해야 하지만 일단 기록을 모아놓습니다. 이 문서는 한미유치원의 교사들에게 매일 매일 보낸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히 이경진 선생의 기록을 먼저 담고 이후 최승준의 기록을 더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유모임과 기록을 역할을 나누어서 했죠)
아래 기록한 내용은 기억과 기록자의 인상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불확실한 정보를 담고 있을 수 있지만 참고해 주세요~
Anna Frank
+ 3, 4, 5, mix(4살반5살반,1~2개월 정도도 아이들의 발육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 2교사 26명, 특수아동이 있음 2명(이에 해당하는 보조교사)
+ 가족중 농장이나 방문이 가능한 곳이 있으면 아이들과 가곤 하는데 그에대한 비용은 부모들이 한다고 함.
+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
3세반 - 자연의 소재(흙, 돌, 나무가지..) => 유난히 자연에 대한 재료들이 많았다. 다른 살 수 있는 재료들 보다..교실안 나무가지가 수북..
4세반 - 프로젝터로 아이들이 구성한 것을 보는 것, => 작은 작업이라도 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재구성되고 부각시키면서 의의를 찾는 듯 하다.
5세반 - 가을을 사진으로 담은 프로젝트 => 나뭇잎이 변화, 날씨의 변화등 자연의 얼굴를 유심히 관찰하고 사진작업을 하여 엽서로도 판매중.
혼합반 - 어떻게 의자를 만들까 프로젝트 => 아이들의 의자는 실제로 앉을 수 없기에 스케치한 그림과 가상으로 앉은 자세로 사진을 찍어 서로 합성한 포스터가 인상적
+ 2달에 1회씩 저녁9:00시에 학부모모임을 갖음, 위와 같은 프로젝트를 공유, 학부모와의 논의를 통해 프로젝트를 계속 go 할것 인지 결정할때도 있다.
+ 아뜰리에
외관적인 모습에는 여느 아뜰레에와 별다른것이 없었다.
의자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아이들인 듯, 세우는데 중요한 의자의 다리에 대해서 연구 중인 것 같다.
나무와 철사로 작업중, 철사는 아이들이 가위로 직접 자른다.
이 때는 4명 정도의 아이들이 아뜰리에스타와 함께 연구 중이였으며, 아뜰리에스타는 발돋움이 되어 주는 것 같았다.
한 아이가 세우기를 완성하고 축하(?)를 받고 의자를 스케치한다. 다른 친구가 성공을 해서일까? 한 아이가 하기 싫은 듯 집중이 흐려진다.
그 순간 민첩하게 아뜰리에스타는 아이가 하려고 하는 의자의 다리를 잡아주고 용기를 붇돋아준다. 결국 이 아이는 4개의 나무와 철사로 세우는데 성공했다.
각 반에서 아뜰리에에서 작업이 필요할때 와서 작업을 한다고 한다.
학기 초에 교사들이 모두 모여서 아이들의 작업목표를 어디에 둘것인지 미리 정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아뜰리에스타와 담임교사의 협력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며 공유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였다.
+ 각 반
한국에서 레지오를 하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친근하다.
메시지 센터, 개인우편함, 각종 프린트로 된 재료들, 각자 집에서 가져온 장난감..
교사와 아이들의 모습도 모두 비슷했다.
왠지 우리 유치원 아이들과 선생님이 보고 싶어졌다. 편안함을 느껴서 일까..
+ 관찰, 방문이 끝나고 아뜰리에에 모두 모여 질문의 시간과 선물증정(?)이 있었다.
karea 의 센쓰있는 문방사우 쎝 선물로 한껏 분위기가 좋아졌다. (알맹이도 좋아하지만 포장지도 매우 좋아하는 듯.. )
+ 이탈리아에는 정부에서 정해진 교육과정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각 기관에서 교사, 아이들, 부모가 정하는 것이 그 해의 교육과정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에 보고서같은 것의 제출 또한 없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지만 볼로냐와 레지오에밀리아 이 지역에서 이탈리아의 핵심 브레인들이 많이 탄생했다고 한다.
볼로냐대학은 세계에서 처음 해부학이 일어난 곳으로 해부학의 효시로 알려져 있었다.
레지오 철학이 그들에게 스스로 믿음을 주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었나 싶다.
+ 한국에서 부모들이 걱정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연계는 이탈리아에서는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많을 것을 해야하는 한국의 초등교육과 그렇지 않는 이탈리아 교육 때문일것이다. (한 예로 1~2학년 내내 글씨를 배운다고 한다..)
부러울 따름이다. 다음 기회가 된다면 이탈리아의 초등교육 방문도 하고 싶어졌다.
이탈리아의 전체적인 교육체제가 레지오와 똑같진 않겠지만 같은 맥락은 아닐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 '레지오를 정의한다면?'의 질문에 이곳의 페다고지스타(이름까먹음)와 아뜰리에스타(이자벨라)는
"레지오는 모든 의견을 존중하는 곳이예요~."
"또한 서로간의 대화입니다"
" 평화는 함께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존중하고 들어주는 것이죠"
이 두 교사는 이것이 평화이고 레지오는 곧 평화라고 말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방문한 두 곳은 모두 영유아원이다.
* panda와 maramotti는 관찰 시간과 질문할 여유가 없어서 시설면으로만 보게 되었음.
PANDA
+ 1979년 시의 보조로 설립
3개월~36개월 아이들이 있음
+ 처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100m(살짝 보탬) 멀리 현관이 있었다.
일명 마당 진짜 넓은 집이다.
마당이라기보다 공원.. 엄청큰 공원이 부러움반 놀라움반이였다.
이 곳에서 아이들은 자연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 특징적인 부분은 기관 중앙이 유리문, 혹은 창문으로 되어있어서 서로 마주할 수 있었다.
요즘 미술관에서 더러 볼수있는 구조인데, 중앙부분에 작은 정원이 있다라고 보면 되겠다.
아뜰리에에는 역시 자연소재의 재료들이 가득했다.
흙, 돌, 나무잎, 나무가지, 조개껍질 등..
좀전의 Anna보다 더 많이 자연을 소재한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었나 보다.
인간은 자연에서부터 배운다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듯했다.
+ 영아원이라 그런지 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을텐데 신발신고 들어가기가 미안스러웠다. (외국인들은 이런거 괜찮을까)
식탁도 화장실도 유아반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사뭇 너무 다른 환경에 신기하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도 영아원을 가본적이 없으므로..)
+ 부엌은 피아자 바로 옆에 있었는데 커다란 창문으로 안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다. 아무래도 부모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부분이겠다.
또한 부엌을 보고 아이들이 느끼는 바가 있을 수도 있겠다. (엄마 보고싶다고 울던 아이도 부엌에서 달래진다고..)
+ 아이들은 모두 집에가고 없어 노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아직 집에 안간 두명의 아이가 선생님과 과일을 먹고 있는 모습으로 만족해야했다)
Giulia Maramotti
+ Max Mara의 설립자인 maramotti의 어머니 재단임
시의 방침을 따르고 있지만 maxmara라는 민간기업이 협력하고 있는 것이 특징.
젊은 여성들의 공동체(판타레이?)에서 레지오칠드런 방침대로 관리 운영.
+ 2008년1월에 지어진 최근의 영유아 센터.
3개월~36개월, maxmara직원의 아이들이 70명중 30명에 해당. (꼭 기업 영아센터는 아님)
시의 방침을 따라 소득 수준에서 결정됨 (소득이 높으면 시립은 다닐수 없음, 막스마라의 직원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방침)
+ maxmara의 지원으로 건축공모전에 당선된 두명의 건축디자이너가 설계.
통유리의 투명함과 빛과 자연의 조화가 모던하면서 세련된 모습이다.
낮잠자는 곳, 독립적인 교사실, 회의실, 엘리베이터, 피아자 정면의 부엌(부엌안에 작은 책상이 있다. 책상위에 과일과 채소들, 아이의 작업흔적)
모두 4개반 각반의 3명의 교사.
지금까지 기관에서 교사를 소개할때 꼭 요리사도 함께 서있었고 소개를 했다.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요리사도 아이들의 교사인것이다.
왜 레지오칠드런은 마라모띠라는 학교를 보여주고 이번 스터디 투어에서 마라모띠의 콜렉션이 있는 미술관을 방문하게 하고 있을까? 안나 프랑크의 경우 시의 재정적 지원이 풍부해 보이지 않았고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수혜성 경비와 같은 것을 받는 것 같았다. 여기에 그들은 새로운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어 보인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있는 기업과의 협력의 가능성. 물론 지속적인 재정적 지원이 아니라 설립을 지원한 것 뿐이다. 그리고 기업이 도움을 주었다고 개입을 하는 것 일절 없이 모든 권한을 유보한다. 모든 교육과 운영적인 측면은 시와 레지오칠드런이 책임을 지고, 젊은 여성들의 공동체가 인적자원으로 참여하여 개인의 기부, 시의 운영, 젊은 세대의 공동체의 협력을 탐색하는 실험.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우리의 현실에서 이와 같은 가능성의 탐색이 가능한지. 과연 여기에 사립유치원이라는 위치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 사회적 관계, 사회적 단위들의 역학관계가 어떤 형태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어쨋든 그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고, 그 것이 가장최근(2년전)에 지어졌던 학교로 존재하고 있었다.
3일째의 저에게 있어 키워드는 '감동의 정체' 입니다.
2002년 레지오를 처음 방문했을 때 라빌레타에서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안나프랑크에서는 흐르려는 눈물을 자꾸 삼켰습니다.
왜 2002년에는 감동을 받았고, 제가 이전에는 그다지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유치원일에 본격적으로 참여를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8년여의 시간이 흐른 어제 다시 느낀 감동의 정체는 도데체 무엇이었을까요?
안나프랑크를 학교를 방문해서 하나 하나 자세히 살펴보기 보다는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눈을 뜨고 보았고, 그리고
눈을 감고 보았습니다. 소리를 들어보려고 했죠.
아 뜰리에에 가보니 아뜰리에리스타도 시끄럽고, 아이들의 목소리도 시끄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뜰리에의 한켠에서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기도 했습니다. 교실의 살아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다양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인종의 어린이들이 있었습니다.
* 비아베끼의 제자인 이사벨라(2002, 2004년에도 만났적이 있는)는 2년간 출산과 육아로 휴직을 하고, 디애나에서 자신의 경험을 더 확장하기 위해 디애나에 있던 페다고지스타와 함께 안나프랑크로 옮겨 왔다고 했습니다. 계속 좋은 유치원에 머물기 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은 안되지만, 이 현장의 소리를 선생님들께 전해 드리고 싶은 생각도 문득했지만, 곧 접었습니다. 생생하게 와닿기 어려울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죠. 각자의 경험이라는 것이 다 다를테니까요.
오늘도 역시 지극히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2002 년, 아이들이 교실에 자유롭게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울컥했습니다. '이런게 응당 있어야 할 모습이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010년 오늘의 이 곳의 교실의 모습은 요즘 한국의 레지오를 시도하고 있는 유치원, 예를 들면 한미의 모습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충격적인 시설, 매체, 라빌레타나, 디애나에서 보았던 혁신과 아름다움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레지오를 몇번 방문하신 몇몇 원장님들의 인상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편안하해서 좋다고)
하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교사들이 하는 말, 어린이들이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기 때문에, 비언어적인 표현들 그들의 분위기, 소리의 느낌, 표정, 눈빛, 거기서 읽혀지는 상호작용... 자세히 경청해보고자 하고, 도데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궁금해 하는 자세로 잘 보려고 하니까. 바로 또 울컥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오히려 실제로 나누는 말의 뜻이 이해가 된다면 감동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이는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말의 의미는 모르는체로 경청하려는 노력을 약간 기울이기만 했는데도 역류하는 감정의 에너지는 도데체 무엇이었을까요?
어 쩌면 그동안 노력을 해오며 정착시킨 우리들 학교와도 그렇게 다르지 않은 모습.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바로 '일상'의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상을 이루어내기 위해 물밑에서 수많은 노력과 역사를 쌓아온 모습이 벽한구석을 메우고 있는 패널에서 나타났습니다.1963년부터의 역사를 기록한 사진, 왜 이사람들이 학교의 이름을 안나프랑크로 지었는가 그 이유를 이야기 했을 때, (마을의 시민(노동자)들이 모여서 모두 투표를 통해서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하네요) 안나프랑크가 미쳐 누리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만남, 박탈당했던 소중한 일상들을 기리기 위해서 그런 아픔이 생기지 않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학교. 그리고 아직 까지도 학교의 이곳 저곳에 있는 안나프랑크의 흔적들. 단순히 그런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믿음을 관철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멀리 한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만남의 시작점에서 그 이야기를 해줍니다. 어쩌면 그다지 관심없어할지도 모르는데도 말이죠.
이 곳의 교육과정, 공간의 구성, 어떤 매체를 쓰느냐, 운영적인 측면 등등으로 부터 정보와 힌트를 알아채려하고자 하는 '매의 눈'이 아니라 이 곳을 구성하는 '공기'를 느껴보고자 했습니다.
이 런 학교들 40여개가 하나의 마을에, 마을의 곳곳에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나 있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 것이 함의하는 바가 크게 다왔습니다. 이 곳은 특별한 곳이 아니라, 일상적인 곳입니다. 그러기에 더 특별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각각의 학교는 나름의 특색과 향기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고 이를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와 그리고 유능한 어린이를 믿는 신념을 가지고 그런 노력들을 지속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아마도 고통스러운 투쟁의 과정이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늘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과 반복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기에 해내고 있는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상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도 어쩌면 이미 그러한 모습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텐데, 그 소중함을 스스로 평가절하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달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 잘 이해하려고 귀 기울이는 자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는, 교사는, 학부모는, 사람은 모두 유능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해낼 수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이 현실속에서 자각이 되는 순간 다른 모든 것(교육과정, 기록작업, 매체, 운영, 환경, 정치 등)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 교실의 모습을 보면서 왜 한미에서 교실을 떠나 연구의 책임을 맡게되는 교사들이 결국 에너지를 잃어가며 기관을 떠나는 모습으로 귀결이 되는지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 교사는, 힘을 잃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이런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감정적 도취가 되지 않도록 냉철한 마음가짐을 되찾으려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없는 교육은 허상일 뿐입니다. 영혼의 울림, 마음의 공명이 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안나프랑크 스쿨은 어쩌면 마치 이 곳에서는 아파트 단지 안의 유치원, 인근의, 옆집에 있는 듯한 느낌의 유치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 계속 -
2010년 1월 21일, 스터디 투어 세째날
최승준, 이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