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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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발해만으로 둘러싸인 대륙에 있었다

(국토 위치) 조상들이 살아온 위치

- 기존 방법론 : 재야사학자들은 기존 역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환단고기 등 고서적(small data)을 통해 고조선 또는 삼국시대 강이나 산 위치 논쟁을 통해 조상들이 살아 온 위치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 (문제점) 자료부족과 전문가 부족

- 새로운 방법론 : 오래된 역사책이며 가장 많은 지명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고려시대 역사서(big data)들의 주(州)의 이름과 고려시대와 동시대인 송나라 등 고지도에 나타난 주(州)의 위치를 비교하여 고려시대 조상들이 살아왔던 위치를 파악하려는 시도입니다. 

과거 행정제도로 사용했던 주군현(州郡縣) 제도에서 주(州) 는 가장 크고 고지도에서도 가장 많이 표시된 정보입니다.     

또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삼국사기, 고려사 등 역사서들을 오랜시간 번역하여 주(州) 지명을 검색하기 쉽게 인터넷에 올려놓았고, 송나라 고지도들도 수많은 재야사학자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아 일반인 누구나 위치 검색이 편리합니다. 

 http://db.history.go.kr

고려시대 주(州)의 이름(Big Data)을 기준으로 삼국시대 주(州)의 지명을 역추적하면 삼국시대의 위치도 파악될 듯 해요.. 왜냐하면 주(州) 이름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저와같이 고지도에서 주(州) 이름 찾기 같이 해볼까요 ?


(사례 1) 북송의 사신 서긍이 고려 개경을 방문하고 쓴 고려도경(1124)에서 밝힌 고려의 위치

"고려는 등주(登州)ㆍ래주(萊州)ㆍ빈주(濱州)ㆍ체주(棣州)와 정확하게 마주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고려도경)

 https://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cnkd_003r_0020 

☞ 산동반도에 위치했던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세운 제나라의 15주 중 등주(登州)ㆍ래주(萊州)ㆍ체주(棣州) 지명이 같다

남송(南宋) 동진단지리도(東震旦地理圖, 1260~64)의 등주(登州), 래주(萊州), 빈주(濱州), 체주(棣州) 위치

 동진단지리도(東震旦地理圖) 

북송의 고려도경(1124)의 등주(登州), 래주(萊州), 빈주(濱州), 체주(棣州) 위치 

고려도경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1247)의 등주(登州), 래주(萊州), 빈주(濱州), 체주(棣州) 위치

 지리도

(Tip) 스마트폰에서 위 지도들을 두 손가락으로 벌리면 지도를 크게 볼 수 있음

* 고려도경(1124년, 40권)

 https://ko.m.wikipedia.org/wiki/고려도경 

* 북송→남송 천도(1127년, 금나라 침입 때문)

 https://ko.m.wikipedia.org/wiki/송나라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1247)

 지리도 


(사례 2) 제나라 州와 신라ㆍ백제ㆍ고려 州 이름 공통점

구당서 124권 ‘이정기전’에는 제(齊)나라를 세워 당나라와 겨룬 고구려 유민 출신 이정기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http://ko.m.wikipedia.org/wiki/이정기_(732년) 

그가 다스린 15개 주는치주(淄州),청주(靑州),제주(薺州),해주(海州), 등주(登州),내주(萊州),기주(沂州),밀주( 密州), 덕주(德州),체주(棣州),서주( 徐州),조주(曹州), 박주(濮州),예주(兗州),운주(鄆州)

충격적인 것은 고려 왕건의 오른팔인 유금필 장군이 전투한 주 이름과 일치하는 이름이 청주(靑州) 라는 점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A%B8%88%ED%95%84 

이에 신라 백제 및 고려의 주 이름과 이정기의 제나라 주 이름을 비교해 보니 동일 지명은 치주(淄州), 청주(靑州), 해주(海州),등주(登州), 내주(萊州), 체주(棣州) 등이 있다 .

* 청주(靑州)는 현재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淸州)가 아니다


(사례 3) (삼국사기) 안주(安州) 위치를 통한 고구려 평양의 위치 = 고려의 서경(西京)

" 평양성(平壤城)은 지금[고려]의 서경(西京)과 같으며, 그리고 패수(浿水)는 곧 대동강(大同江)이다. 어찌 이를 알 수 있는가? ........."

https://db.history.go.kr/common/compareViewer.do?levelId=sg_037r_0020_0030&type=ancient 

☞ 위 구절은 평양 위치에 대한 김부식(1075~1151) 주장으로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은 평양의 위치를 고려의 서경(西京)이라고 정확히 알고 있었음. 

★ 김부식은 고려 서경(西京)의 묘청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안북대도호부로 간다. 

https://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98r_0010_0010_0120 

★ 고려의 서경(西京) (= 평양)은 안북대도호부 관할 지역에 위치

* 안북도호부(安北) : 태조 14년(941년)에 팽원군(彭原郡)에 안북부(安北府)를 둔것이 시초이다. 성종 2년(983년에) 영주(寧州) 안북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가 되었다. 고종 43년(1256년) 원나라의 공격을 받고 창린도로 피했다가 후에 다시 돌아왔다. 공민왕 18년(1369년)에 안주만호부(安州萬戶府)가 되었다가 안주목(安州牧)이 되어....

☞ 안북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 영주(寧州)=안주(安州)

https://ko.m.wikipedia.org/wiki/고려의_행정_구역 

* 지리도(墜理圖,1247)에서 안북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 안주(安州) 위치 (오른쪽 노랑색) 

지리도  

대동강은 고려의 서경에 흐르는 강의 이름.

- "묘청에 난"에 가담한 정지상의 시에도 "대동강" 구절이 나옴

http://m.cafe.daum.net/heartwings/SLT1/57?q=D_cbHzArtfdds0&  

☞ 대동강 등 강이나 산이름 등으로 고려의 서경(西京)을 찾는 것은 정보가 작아서(small data) 단순 예측에 불과이며 신뢰성이 떨어짐.지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수 많은 주(州) 이름(big data)로 고려 서경(西京) 찾으면 평양을 쉽게 찾을 수 있음


(사례 4) 신라 경주의 위치 = 고려 동경(東京)

고려의 동경은 동서남북에 위치한 4대도호부 (大都護府) 중 안동(安東)도호부와 연관

* 고려 4대도호부(大都護府)는 동서남북에 위치한 안동(安東)도호부, 안서(安西)도호부, 안남(安南) 도호부,안북(安北)도호부로써 都護府란 이름처럼 군사적 성격이 강함

* 안동도호부(安東) : 성종 14년(995년)에 김주(金州)에 처음 설치되었다. 현종 3년(1012년)에 상주로 옮기면서 대도호부가 되고, 현종 5년(1014년)에 경주로 옮겼다. 1030년에 길주(吉州)로 옮기면서 안동부가 되었다

https://ko.m.wikipedia.org/wiki/고려의_행정_구역 

☞ 고려 동경(=경주)는 안동(安東)도호부 속함

☞ 안동(安東)도호부는 김주(金州), 상주(尙州), 경주(慶州), 길주(吉州) 위치를 찾으면 됨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오른쪽 하단 끝에 길주(吉州)를 찾음. (가운데 노란색으로 안북(安北)대도호부의 안주(安州)도 보임)

지리도 

* 우리는 묘청의 난 진압을 위해 김부식이 안북(安北)대도호부를 갔다는 사실에서 고려 서경(=평양)은 안북(安北)대도호부에 속함을 이미 알고 있음


(사례 5) 후백제 수도 전주(全州)는 안남(安南)대도호부에 위치

* 안남도호부(安南) : 후백제가 멸망한 직후 그 수도였던 전주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태조 23년(940년)에 폐지되었다. 성종 14년(995년)에 낭주(朗州)에 다시 설치되고, 현종 9년(1018년)에 전주로 옮겼다가 13년(1022년)에 폐지되었다. 의종 4년(1150년)에 수주(樹州)에 다시 설치됨

https://ko.m.wikipedia.org/wiki/고려의_행정_구역

지리도(墜理圖,1247)에서 가운데 왼쪽에서 전주(全州)를 찾음

지리도

☞ 후백제의 수도인 전주(全州)가 위 지도의 전주(全州)라면 이 지역이 원래 백제 영역을 의미

☞ 지리도(墜理圖)에서 찾은 안주(安州)와 전주(全州) 위치가 매우 매우 가까이 위치했음


(사례 6) 지도에서 발견한 海의 위치를 통해 (삼국사기)의 백제 위치 재해석

1. 지도에서 발견한 海의 위치

九州山川實證總圖 

☞ 九州山川實證總圖에서 海는 발해만을 의미

燕山圖 

☞ 燕山圖에서 海는 발해만을 의미

2.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위치

《구당서(舊唐書)》에서 전하기를 “백제는 부여의 별종으로 동북쪽은 신라이고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월주에 이르고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왜(倭)에 이르며 북쪽은 고려이다.” 한다.

https://db.history.go.kr/common/compareViewer.do?levelId=sy_002r_0010_0200_0010&type=ancient 

★ 삼국사기 위 구절의 백제 위치 재해석

위 삼국사기를 번역할 때 渡海를 '바다를 건너면'으로 해석하였음. 그런데 지도에서 海 는 발해만을 의미함. 즉, 渡海를 '발해만을 건너'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구당서(舊唐書)》에서 전하기를 “백제는 부여의 별종으로 동북쪽은 신라이고 서쪽은 海를 건너(발해만을 건너) 월주에 이르고 남쪽은 海를 건너(발해만을 건너) 왜(倭)에 이르며 북쪽은 고려이다.” 한다

☞ 이때까지 우리는 신라는 백제 동쪽으로 알고 있었는데.. 신라가 백제의 동쪽이 아니라 동북쪽이라면 충격적인 이야기임. 

☞ 海는 바다가 아닌 발해만으로, 大海는 서해(황해)바다로 해석하면, 백제는 신라 고구려뿐 아니라 海(=발해만)를 건너 월주와 왜와 붙어 있었다는 이야기임.

☞ 다르게 해석하면 백제 신라 고구려는 海(=발해만) 근처 산동반도 유역의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이야기임


(사례 7) 고려의 안변도호부(安邊) 화주(和州) 등주(登州) 위치

* 고려의 5대도호부(大都護府) 위치

https://ko.m.wikipedia.org/wiki/고려의_행정_구역

☞ 안변도호부 화주(和州)와 등주(登州)는 고려 위치 파악에 중요한 단서 중 하나

지리도(墜理圖,1247) 가운데에서 화주(和州), 산동반도에 등주(登州) 찾음

지리도

☞ 지리도(墜理圖,1247) 찾은 안변도호부 화주(和州)는 발해만 위쪽이고 등주(登州)는 산동반도


(사례 8) 통일신라시대의 장보고 신라방의 등주 양주 초주에 위치

1. 기존 시각

"등주(登州)·양주(楊州)·초주(楚州) 건설된 신라방이 있었고, 등주에는 신라의 사신·유학생을 유숙 접대 위한 신라관(新羅館)이 설치"

 http://www.shilla.or.kr/board/boardcontent.php?seqnum=147  

→ 산동반도에 위치했던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세운 제나라의 15주 중 등주(登州) 지명이 같다.

→ 고려도경에서 밝힌 고려가 위치한 등주(登州) 지명이 같다.

남송 때 작성된 동진단지리도(東震旦地理圖, 1260~1264 ?) 에서 찾은 등주(登州)·양주(楊州)·초주(楚州) 위치

 동진단지리도(東震旦地理圖) 

2. 저의 새로운 시각

등주(登州)·양주(楊州)·초주(楚州)에 건설된 신라방은 당나라에 건설된 신라방이 아니라 우리민족이 계속 살아온 땅이 아닐까요 ? 

왜냐하면 양주(楊州)는 견훤전과 궁예전과 고려사에 나오고 등주(登州)는 고려사에 나오는 주(州)의 이름과 동일하기 때문임


(사례 9) (영토분쟁) 서희가 거란과 담판(993년)으로 얻은 강동 6주 

<고려>가 마침내 여섯 개의 성을 쌓았으니, 흥주(興州), 철주(鐵州), 통주(通州), 용주(龍州), 구주(龜州), 곽주(郭州)이다. (송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cnkb_030_0950_0660 

<성종> 13년(994)에 〈서희가〉 군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쫓아냈고, 장흥진(長興鎭)·귀화진(歸化鎭)과 곽주(郭州)·귀주(龜州)에 성을 쌓았다. 이듬해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안의진(安義鎭)·흥화진(興化鎭)에 성을 쌓았고, 또 그 이듬해 선주(宣州)·맹주(孟州)에 성을 쌓았다. (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94_0010_0010_0040 

★ 지리도(墜理圖) 가운데에 통주(通州), 철주(鐵州)를 찾음

지리도


(사례10) (영토) 윤관장군이 동북 9성을 축조

윤관(尹瓘)이 포로 346구(口)와 말 96필, 소 300여 마리(頭)를 바치고 의주(宜州)와 통태진(通泰鎭)·평융진(平戎鎭)의 2진과 함주(咸州)·영주(英州)·웅주(雄州)·길주(吉州)·복주(福州)와 공험진(公嶮鎭)에 성을 쌓고 북계(北界) 9성이라 하였으며, 모두 남계(南界)의 민(民)을 이주시켜 성을 채웠다.(고려사)

https://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96r_0010_0030_0100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오른쪽 아래 끝부분에서 길주(吉州)를 찾음.가운데 중간에 함주(咸州) 찾음. 함주(咸州)에서 약간 왼쪽에 의주(宜州) 찾음

지리도


(사례11) (전쟁) 여진의 길주(吉州) 공격에 대한 윤관장군의 군사 이동경로 

   정주(定州)→함주(咸州)→길주(吉州)

다음 해(1109) 여진(女眞)이 길주(吉州)를 포위하니 오연총(吳延寵)이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크게 패했다. 왕이 또 윤관(尹瓘)을 보내 그들을 구원하게 하고, 근신(近臣)에게 명령하여 금교역(金郊驛)에서 전별하게 하였다. 윤관과 오연총이 정주(定州)로부터 병사를 이끌고 길주(吉州)로 가다가 나복기촌(那卜其村)에 이르니 함주사록(咸州司錄) 유원서(兪元胥)가 말을 달려와서 보고하기를‥‥(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96r_0010_0030_0140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왼쪽 아랫부분에서 정주(定州)을 찾음‥가운데 중간에 함주(咸州) 찾음. 오른쪽 끝 아래에서 길주(吉州)를 찾음.

지리도 

(Tip) 스마트폰에서 위 지도를 두 손가락으로 벌리면 지도가 확대되어 주(州)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음 

★ 지도를 근거로 살펴보니 왕의 여진 토벌 명령과 신하의 환송을 받은 윤관장군은 산둥반도 윗 지역의 위치한 정주(定州)에서 군사를 이끌고 한반도 방향 길주(吉州)로 이동했음 ‥ 

☞ 중고교 교과서처럼 한반도에 개경이 있었다면 군사이동이 한반도에서 북쪽방향으로 가거나 한반도에서 산동반도 방향으로 가야되는 것 아닐까요 ?

☞ 북송의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서 밝힌 것처럼 고려가 산동반도에 위치했다면(사례1) 윤관장군의 군사이동경로는 당연히 산동반도에서 한반도 방향이 타당함 ‥


(사례12) 고려 남경(南京)은 조선의 한양이 아니다.

"고려 땅에 삼경이 있는데 송악(宋岳)이 중경이 되고 목멱양(木覓壤)은 남경(南京)이 되며, 평양이 서경이 되어 왕이 11·12·1·2월에는 중경에 거하고, 3·4·5·6월에는 남경(南京)에 머물고, 7·8·9·10월에는 서경에 머물면 36국(國)이 조공(朝貢) 하리라" (도선기)"1067년(문종 21) 때 양주(楊州)에 남경(南京)을 설치... "

https://ko.m.wikipedia.org/wiki/고려의_행정_구역

☞ 고려 남경(南京)은 양주(楊州)에 위치

동진단지리도(東震旦地理圖, 1260~64) 의 양주(楊州) 는 산동반도 남쪽에 위치

 동진단지리도(東震旦地理圖)

★ 고려 남경(南京)이 있는 양주(楊州)는 고려 개경 (開京=中京)이 있는 산동반도 남쪽.

한양부(漢陽府)를 고쳐서 한성부(漢城府)라 하고, 아전들과 백성들을 견주(見州)로 옮기고 양주군(楊州郡)이라 고쳤다.(태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406006_001 

★ 조선의 양주(楊州)는 후삼국의 견주(見州) 명칭을 바꾼 것으로 고려의 양주(楊州)와는 위치가 다름

☞ 고려의 남경이 있는 양주(楊州)는 대륙에 위치한 반면 조선시대의 양주(楊州) (=견주(見州)) 는 한반도에 위치하며 한양 근처에 있음

★ 후삼국시대부터 양주(楊州)와 견주(見州)는 각각 존재했음 - 궁예전에서 신라 9주 이외의 주 : 광주,충주,흥주,나주,죽주,양주,공주,견주,청주(廣州,忠州,興州,羅州,竹州, 楊州,公州,見州,靑州)


(사례 13) 지도에서 발견한 海의 위치를 통해 (고려사)의 고려위치 재해석

1. 지도에서 발견한 海의 위치

九州山川實證總圖 

☞ 九州山川實證總圖에서 海는 발해만을 의미

燕山圖 

☞ 燕山圖에서 海는 발해만을 의미

2. (고려사)에 기록된 고려 위치

우리 해동(海東)은 삼면이 바다에 막혀 있고, 한 모퉁이가 육지에 이어져 있는데, 그 폭과 둘레는 거의 10,000 리(里)나 된다. (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56r_0010_0010 

★ (고려사)에 기록된 고려 위치 재해석

우리 해동(海東)은 삼면이 발해만(=해(海))에 막혀 있고 한 모퉁이가 대륙(=육지)에 이어져 있는데, 그 폭과 둘레는 거의 10,000 리(里)나 된다.

☞ 애국가에 한반도가 3000리 화려강산이라고 나온다‥ 한반도는 10,000라고 하지 않는다

https://m.tip.daum.net/question/84622355 

☞ 고려는 海(=발해만)을 둘러싼 산동반도 유역의 중국 대륙에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내용


(사례 14) 송에서 거란을 협공하여 연주(燕州)ㆍ계주(薊州) 를 되찾자고 요구하다 

송(宋)이 장차 거란(契丹)을 쳐서 연주(燕州)와 계주(薊州)를 수복하려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거란과 땅이 맞닿아 있어 자주 침공을 받자 ‥(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03_0060_0010_0040 

남송의 동진단지리도(東震旦地理圖, 1260~1264 ?) 윗쪽에서 계주(薊州) 찾음

동진단지리도(東震旦地理圖)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가운데 왼쪽 중간에 계주(薊州)를 찾음

지리도 

★ 거란이 점령한 계주(薊州)는 발해만 위쪽에 위치하고 있음‥ 

☞ 고려가 송과 같이 발해만 위쪽에 위치한 거란땅이 된 연주(燕州)ㆍ계주(薊州)를 협공하려면 발해만 위쪽에서 거란과 국경을 마주한 고려가 적격임‥

☞ 고려가 한반도에 위치한다면 송은 멀리 떨어진 고려보다는 거란과 붙어있는 가까운 여진을 이용했을 것임 ‥


(사례 15) (전쟁) 거란군의 남진 경로

북계(北界) 변방에서 재차 보고가 올라오기를, “거란군이 이미 영덕성(寧德城)을 도륙하고 계속 진격하여 안주(安州), 의주(義州), 귀주(龜州)의 3개 주(州)를 포위하였습니다. 또 군사들이 인주(麟州)와 용주(龍州) 2주의 경계로부터 와서 철주(鐵州)와 선주(宣州) 2주를 공격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22_0050_0090_0040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중간 노란색으로 안주(安州) 찾음..오른쪽 아래에서 철주(鐵州) 찾음

지리도 


(사례 16) (영토분쟁) 금나라, 고려에게 보주(保州) 할양 문제 제기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15_0080_0120_006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1247)의 오른쪽 끝의 현재 압록강의 길주(吉州) 옆에 보주(保州) 위치

지리도

* 금나라(1115~1234)

https://ko.m.wikipedia.org/wiki/금나라 

★ 의주(義州)=보주(保州)= 포주(抱州)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58_0010_0040_0030_0070 


(사례17) (전쟁) 유인우가 쌍성을 함락시키고 함주 이북을 수복하다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 유인우(柳仁雨)가 쌍성(雙城)을 함락시키자 총관(摠管) 조소생(趙小生), 천호(千戶) 탁도경(卓都卿)이 도망쳐버리니 화주(和州)·등주(登州)·정주(定州)·장주(長州)·예주(預州)·고주(高州)·문주(文州)·의주(宜州) 및 선덕진(宣德鎭)·원흥진(元興鎭)·영인진(寧仁鎭)·요덕진(耀德鎭)·정변진(靜邊鎭) 등지를 되찾게 되었다. 함주(咸州) 이북은 고종(高宗) 무오년부터 원이 차지했는데 이때 와서 모두 수복하였다. (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39_0010_0070_0060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왼쪽 아랫부분에서 정주(定州)을 찾음‥가운데 중간에 함주(咸州) 찾음.. 함주(咸州) 바로 옆에 화주 (和州) 찾음..함주(咸州)에서 약간 왼쪽에 의주(宜州) 찾음..가운데 왼쪽에 고주(高州) 찾음

지리도  

☞ 유인우가 원나라로부터 국토수복지역은 지도에서 대부분 발해만 위쪽 지역과 산동반도의 등주(登州)도 포함됨


(사례 18) 몽고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에 임명하다

용진현(龍津縣) 사람 조휘(趙暉)와 정주(定州) 사람 탁청(卓靑)이 화주(和州) 이북 지방을 몽고에 넘겨주었다. 몽고가 화주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摠管)으로, 탁청을 천호(千戶)로 임명하였다. (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24_0080_0120_004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왼쪽 아랫부분에서 정주(定州)을 찾음‥가운데 중간에 화주(和州) 찾음

지리도  

(Tip) 스마트폰에서 위 지도를 두 손가락으로 벌리면 지도가 확대되어 주(州)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음


(사례 19) 우왕이 명에 철령위 설치의 중지를 요청하는 표문을 보내다

철령(鐵嶺) 이북을 살펴보면, 역대로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함주(咸州)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公嶮鎭)에 이르니, 원래부터 본국의 땅이었습니다. (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137_0010_0020_016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왼쪽 아랫부분에서 정주(定州)을 찾음.가운데 중간에 함주(咸州) 찾음. 함주(咸州) 바로 옆에 화주(和州) 찾음.가운데 왼쪽에 고주(高州) 찾음

지리도  

☞ 철령(鐵嶺) 이북의 주(州) 지명들은 지도에서 발해만의 왼쪽지역 및 위쪽지역


(사례 20) (군대 요청) 원 우승 타추가 군사와 군량의 징발해 건주(建州)로 수송해 줄 것을 요청하다

건주(建州)는 고려[本國]와의 거리가 3,000여 리(里)나 되고 산천(山川)이 험준하여 군량 수송로가 통하지 못하고...(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30_0040_0040_0040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가운데 중간에 건주(建州) 찾음

지리도 

☞ 건주(建州)는 발해만 위쪽에 위치함


(사례 21) (영토위치 추정) 윤관장군이 웅주(雄州)·영주(英州)·복주(福州)·길주(吉州)의 4주(州)에 성을 쌓았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12_0070_0120_003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오른쪽에 끝 아래에서 길주(吉州) 찾음

지리도 

그런데 웅주(雄州)·영주(英州)·복주(福州)는 위의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찾지 못했다. 그러나... <고려사>에서 복주(福州)·길주(吉州)·의주(宜州)의 3주(州)에 윤관장군이 남계의 주민을 이주시켰다는 글이 보인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82_0010_0050_1030 

또한 <고려사>에서 영주(英州)·복주(福州)·함주(咸州)·웅주(雄州)의 4주(州)에서 철수한다는 글이 보인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82_0010_0050_105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가운데 오른쪽에서 함주(咸州)를 찾음.. 함주(咸州)의 왼쪽에서 의주(宜州)를 찾음

지리도  

☞ 웅주(雄州)·영주(英州)·복주(福州)는 함주(咸州)ㆍ 의주(宜州)ㆍ길주(吉州) 근처라고 추정된다


(사례 22) 신주(信州)와 해주(海州) 위치

신주(信州) 등지를 침략한 왜적을 이성계의 군대가 물리치다.. 중략..태조가 여러 원수들과 함께 해주(海州)에서 왜구를 공격했는데....(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133_0050_0080_004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가운데 위쪽에서 신주(信州)를 찾음. 가운데 아래쪽에서 해주(海州)를 찾음

지리도 

★ 신주(信州)는 본래 고구려의 승산(升山)으로, 고려 때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58_0010_0020_0060_0030 

★명 황제가 철령 이북 지역을 요동에 귀속시키라고 지시하다는 (고려사) 내용 중에 신주(信州)가 나옴‥신주(信州) 위치는 철령이북지역과 관련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임.. 우리는 이미 (사례 19)의 우왕이 명에 철령위 설치의 중지를 요청하는 표문에서 철령이북 지역의 많은 주(州)들을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찾을 수 있었다‥즉, 철령(鐵嶺) 이북의 주(州)들은 발해만의 왼쪽지역 및 위쪽지역이라는 사실을 ‥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137_0010_0020_0070 


(사례 23) 거란과 여진과 고려 위치

1. 서쪽 여진은 거란과 인접 추정

서북계(西北界) 여진이 거란군의 군사행동을 알려오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03_0140_0020_0010 

서희가 또 아뢰며 이르기를, “거란의 동경(東京)으로부터 우리 안북부(安北府)까지 수백 리 땅은 모두 생여진(生女眞)이 살던 곳인데, 광종(光宗)이 그것을 빼앗아 가주(嘉州)·송성(松城) 등의 성을 쌓았습니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94_0010_0010_0040 

2. 동쪽 여진은 거란과는 인접되지 않았고 고려와는 인접 됨

거란이 동쪽 여진을 공격하려면 고려를 통과해야 할 것으로 추정...동북여진(東北女眞)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거란의 요구를 거절하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05_0040_0050_0020 

☞ 고려가 산동반도와 발해만 위쪽에 위치하면,거란이 고려의 동북(東北)에 위치한 여진을 공격하려면 고려에게 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오른쪽에 여진□계(女眞□界) 쓰여있음

지리도  

☞ 고등학교 교과서처럼 고려가 한반도에 위치하면, 거란과 여진은 인접하게 된다. 거란이 고려에게 길을 열어달라는 요청없이 직접 동북(東北)에 위치한 여진 공격이 가능하다‥

(시각 차이) 저와 기존 사학자들의 고려 위치를 보는 시각 차이

1. 기존의 고려 위치를 보는 시각 

문주 · 화주 · 고주 · 정주 등의 주의 위치 비정에 대해 이케우치 히로시나 《조선사》 등에서는 모두 현재 북한의 함경도 남부 지역에 위치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전의 조선의 국학자들은 철령위의 '철령'이라는 지명을 통해 그 위치를 비정하려 시도하였다.

https://ko.m.wikipedia.org/wiki/철령위 

2. 저의 고려 위치를 보는 시각

(고려사) 등 역사책에 자주 나타난 주(州)의 지명을 동시대 송나라 고지도들에서 주(州)의 지명을 찾아 고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사례 19)에서 철령(鐵嶺)이북 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함주(咸州) 위치를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찾았음‥

☞ 저의 견해는 강이나 산 ㆍ 섬이나 ㆍ령(嶺)을 기준으로 위치를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정보가 가장많이 존재하는 주(州)를 근거로 고지도에서 고려의 위치를 파악하려는 시도

★ (저의 연구방향)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철령 이북의 주(州)들의 이름들이 역사책에 대거 등장하는데 조선 태종때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壹疆理歷代國都之圖) 의 CD 판을 구할 수 있으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활약한 주(州)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전망

https://ko.m.wikipedia.org/wiki/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 일본에서 디지털 복원시킨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https://mnews.joins.com/article/7989743#home 


(사례 24) 금나라와 고려 관계

생여진(生女眞)의 아골타가 금을 건국하다..중략.. 우리 평주(平州)의 승려 금준(今俊)이 여진(女眞)으로 도망쳐 들어가 아지고촌(阿之古村)에서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금의 선조이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14_0010_0010_0090 

1. 평주(平州)의 위치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가운데 왼쪽 아래에서 평주(平州) 를 찾음

지리도  

2. 생여진(生女眞)이 살던 위치

서희가 또 아뢰며 이르기를, “거란의 동경(東京)으로부터 우리 안북부(安北府)까지 수백 리 땅은 모두 생여진(生女眞)이 살던 곳인데, 광종(光宗)이 그것을 빼앗아 가주(嘉州)·송성(松城) 등의 성을 쌓았습니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94_0010_0010_004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 오른쪽 아래에서 거란의 동경(東京) 찾음

안북(安北)대도호부의 안주(安州)는 노란색 표시되어 있고 가운데 위치

지리도  


(사례 25) 홍건적의 개경 침입과정의 주(州)들 위치를 통한 고려시대 압록강(鴨綠江) 위치

추정무리 20만 명을 거느리고서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삭주(朔州)와 이성(泥城)을 침략하니‥중략‥은주(殷州)·순주(順州)·성주(成州) 3주 ‥중략‥안우가 여러 부대를 거느리고 안주(安州)로 나아가 주둔하여 승첩을 올리기를‥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113_0010_0010_0040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가운데 위쪽 춘주(春州) = 삭주(朔州) 찾음..가운데 중간 노란색으로 안주(安州) 찾음

지리도  

★ 춘주(春州) = 삭주(朔州)임 (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58_0010_0010_0030_0010 

★ 은주(殷州)·순주(順州)·성주(成州) 3주는 서경이 있는 운중도에 소속됨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82_0010_0030_0060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는 요수(遼水)와 하(=요하)와 압록 위치가 모두 표시되어 있는데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나타난 춘주(春州) = 삭주(朔州), 안주(安州)위치가 모두 발해만 위쪽의 하(=요하)에 위치해서 고려의 압록강=요하임..‥ 지리도(墜理圖) 오른쪽의 압록=현재 압록강을 의미 ‥

(참조) 고려시대 압록강(鴨綠江) 위치는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고 요하라고 주장

http://m.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2  

* 연산도(燕山圖)에서 압록강 = 요하

燕山圖 

* 요하 위치에 대한 3가지 학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c8663&logNo=20176143769&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고려도경) 압록강[鴨綠水]은 그 물빛이 오리 머릿빛[鴨頭]과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요동(遼東)과는 500리 떨어져 있는데 ‥중략‥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海(=발해만)로 들어간다‥중략‥평양성(平壤城)에서는 서북쪽으로 450리이며 요수(遼水)의 동남쪽으로는 480리에 있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cnkd_003r_002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왼쪽에서 요수(遼水) 찾음

지리도  

☞ 고려도경은 고려의 압록강은 요수(遼水)와 다르며 고려의 압록강 = 요하를 지칭하듯 묘사하고 있음

☞ 저는 강이나 산ㆍ섬ㆍ령(嶺)을 기준으로 고려 위치를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중국 고지도에서 역사적 정보가 가장 많이 존재하는 주(州)들 위치를 근거로 강이나 산ㆍ섬ㆍ령(嶺) 위치를 찾고 고려의 위치도 파악하려는 시도임‥

(참조) 고려시대 강 이름 : 요수와 요하 위치 

난하(=요수), 대릉하, 요하 위치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남송,1177年)에서 요수 위치

지리도의 요수와 요하 위치

燕山圖에서 요수의 위치 

☞ 위 지도에서 요수(=난하)를 기준으로 요수의 왼쪽은 요서, 요수의 오른쪽은 요동으로 지칭 


(사례 26) 고려ㆍ몽고ㆍ동진(東眞) vs. 거란과 관계

화주(和州)·맹주(孟州)·순주(順州)·덕주(德州) 등의 4성(城)을 공격하여 깨뜨리고는 곧바로 강동(江東)으로 향하였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103_0010_0010_0040 

☞ 몽고와 동진(東眞) 연합군이 고려와 연합하여 고려땅에 주둔한 거란을 물리치는 내용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가운데 중간에 화주(和州) 찾음

지리도  

★ 동진(東眞)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4dwc&articleno=16152374 

동진(東眞)이 등주(登州)를 침입하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24_0070_0060_0040 

☞ 동진(東眞)은 산동반도에 위치한 고려의 등주(登州)를 침입하기도 했음 ‥


(사례 27) 거란과의 전쟁에서 강조 장군이 진을 친 통주(通州) 위치를 통한 고려시대 압록강(鴨綠江) 위치 추정

군사 30만을 거느리고 통주(通州)로 가서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였다.11월, 거란 임금이 친히 보병과 기병 40만을 의군천병(義軍天兵)이라 이름하여 거느리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였다. 강조(康兆)는 군사를 이끌고 통주성(通州城) 남쪽으로 나와 전군을 셋으로 나누어 강을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127_0010_0060_003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중간에 통주(通州) 찾음

지리도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는 요수(遼水)와 하(=요하)와 압록 위치가 모두 표시되어 있는데 통주(通州)위치가 발해만 위쪽의 하(=요하)에 위치해서 고려의 압록강=요하임‥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압록=현재 압록강을 의미 ‥

(자문자답) 요하 지역이 왜 중요한가?

요하 중요성 

(고구려 첫번째 수도 졸본 위치) 

삼국사기 저자인 고려의 김부식이 파악한 고구려 첫번째 수도 졸본" 곧 이른바 주몽이 도읍한 곳이라고 말하는 흘승골성(紇升骨城)과 졸본(卒本)은 아마도 한(漢)의 현도군(玄菟郡)의 경계이고, 대요국(大遼國) 동경(東京)의 서쪽이며, 《한지(漢志)》에 이른바 현도(玄菟)의 속현 고구려(高句麗)가 이것일 것이다. 옛날 대요(大遼)가 멸망하지 않았을 때에 요(遼)의 황제가 연경(燕京)에 있었으니, 곧 우리의 조빙하는 사신들이 동경(東京)을 지나 요수(遼水)를 건너 하루 이틀에 의주(醫州)에 이르러, 연계(燕薊)로 향하였음으로 고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삼국사기)

→ 고구려 주몽의 첫 도읍 졸본은 대요국 동경 서쪽에 있음 !!

http://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levelId=sg_037r_0020_0010 

☞ 김부식(1075~1151)은 고구려 주몽 도읍을 대요국(大遼國) 동경(東京)의 서쪽으로 파악. 대요국 동경을 지나 요수(遼水)를 건너 남경(연경,燕京)까지 1~2일에 의주(醫州)에 이르러 가능하다 밝히고 있음

남송 때 작성한 지리도(墜理圖,1247) 에서 오른쪽에 대요국 동경 찾음..왼쪽에 요수(遼水)와 남경(연경,燕京)을 찾음

지리도 

* 요나라 5경

https://ko.m.wikipedia.org/wiki/%EC%9A%94%EB%82%98%EB%9D%BC 


(사례 28) 고구려 두번째 수도 국내성 위치 : 요하 옆의 발해만(=海) 근처

"서해 바닷가의 옛 국내성(國內城)의 경계로서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는 위원(威遠)·흥화(興化)·정주(靜州)·영해(寧海)·영덕(寧德)·영삭(寧朔)·운주(雲州)·안수(安水)·청새(淸塞)·평로(平虜)·영원(寧遠)·정융(定戎)·맹주(孟州)·삭주(朔州) 등의 13개 성(城)을 거쳐 요덕(耀德)·정변(靜邊)·화주(和州) 등의 세 성(城)에 이르러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니" (고려사)

→ 바다는 海를 번역한 것으로 (사례7)에서 海는 발해만을 의미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82_0010_0050_082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가운데 위쪽 춘주(春州) = 삭주(朔州) 찾음..가운데 중간에 화주(和州) 찾음

지리도 

☞ 요하는 서남쪽 방향으로 흘러서 발해만(海)으로 들어간다‥ 지도에서 하(=요하)라는 강변에서 삭주(朔州)와 화주(和州)를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동쪽방향이 된다 ‥ 즉, 고려 압록강=하(요하)를 알 수 있다‥ 또한 고구려 국내성은 요하가 발해만(=海, 바다로 번역했음)으로 들어가는 지역 근처이다‥


(사례 29) 안주(安州)와 화주(和州) 위치를 통해 추정해 본 고려시대 압록강 위치

경천흥(慶千興)을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삼아 안주(安州)에 진영을 설치하게 하고, 안우경(安遇慶)을 도지휘사(都指揮使)로 삼아 의주(義州)에 진영을 설치하게 하며..중략...김귀(金貴)를 도병마사(都兵馬使)로 삼아 화주(和州)에 진영을 설치하게 함으로써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40_0020_0060_006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가운데 중간 노란색으로 안주(安州) 찾음..가운데 중간에 화주(和州) 찾음

지리도 

☞ 덕흥군은 원나라 요양의 군대를 이끌고 요동에 진을 치고 고려의 압록강=요하를 건너 요하 근처의 안주(安州)와 화주(和州) 등에 방어진을 구축한 공민왕 군대에게 패전하게 된다 ‥


(사례 30) 이리간 위치를 통해 본 고려시대 압록강 위치

심주(瀋州)와 요양(遼陽) 사이에 이리간(伊里干)을 설치하고 ‥중략‥ 또 압록강 내에 이리간 2곳을 설치하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29_0010_0060_0080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82_0010_0030_034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가운데 중간에 심주(瀋州) 찾음

☞ 심주(瀋州)와 요양(遼陽) 위치를 볼 때 고려 압록강=요하 를 의미


(사례31) 서희의 강동 6주 위치로 살펴 본 고려의 압록강(鴨綠江) 위치

압록강(鴨綠江) 안팎 또한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女眞)이 그 땅을 훔쳐 살면서 완악하고 교활하게 거짓말을 하면서 길을 막고 있으니, 〈요로 가는 것은〉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더 어렵다. 조빙이 통하지 않는 것은 여진 때문이니, 만약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영토를 돌려주어 성과 보루를 쌓고 도로를 통하게 해준다면, 어찌 감히 조빙을 잘 하지 않겠는가? ... 중략‥‥서희가 아뢰어 이르기를, “제가 소손녕과 약속하기를 여진을 깨끗이 평정하고 옛 땅을 수복한 뒤에야 조근(朝覲)이 행하여질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제 겨우 강 안쪽을 수복하였으니, 요청하건대 강 밖의〈영토까지〉 획득하고 나서‥‥중략‥‥<성종> 13년(994)에 〈서희가〉 군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쫓아냈고, 장흥진(長興鎭)·귀화진(歸化鎭)과 곽주(郭州)·귀주(龜州)에 성을 쌓았다. 이듬해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안의진(安義鎭)·흥화진(興化鎭)에 성을 쌓았고, 또 그 이듬해 선주(宣州)·맹주(孟州)에 성을 쌓았다. (고려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kr_094_0010_0010_0040 

<고려>가 마침내 여섯 개의 성을 쌓았으니, 흥주(興州), 철주(鐵州), 통주(通州), 용주(龍州), 구주(龜州), 곽주(郭州)이다. (송사)

http://db.history.go.kr/goryeo/compareViewer.do?levelId=cnkb_030_0950_0660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중간에 통주(通州) 찾음..중간 오른쪽 아래에서 철주(鐵州) 찾음

지리도 

☞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에서는 요수(遼水)와 하(=요하)와 압록 위치가 모두 표시되어 있는데 서희의 강동6주 중에서 통주(通州) ㆍ철주(鐵州) 의 위치가 지도 중간의 하(=요하)에 위치해서 고려의 압록강=요하임‥ 한편 남송(南宋) 지리도(墜理圖 , 1247)의 오른쪽 끝의 압록=현재 압록강 위치를 표시‥‥

(참고) 압록강 위치 관련 주장들

1. 국제뇌교육대학원 박사과정 고광진, "고구려시대 압록강은 요하(遼河)였다"

https://m.yna.co.kr/view/AKR20120223082800005 

2. 강원대학교 사학과 남의현 교수, 고려시대까지 압록강은 현재의 요하였다...

http://m.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2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60615/78678631/1 

3. 윤한택 교수(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압록강(鴨淥江)은 오늘날 중국 랴오닝성을 관통해 흐르는 랴오허, 압록강(鴨綠江)은 북한과 중국 국경선인 압록강”

https://mnews.joins.com/article/21597792#home 

4.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천하 3대강 '압록강'은 북한의 압록강이 아니다

http://m.pluskorea.net/44294 

5. 김정권 국사찾기협의회장, 시대에 따라 이동된 요하 

http://m.greatcorea.kr/a.html?uid=610 

6. 카타르시스(필명), 요하의 위치에 대한 주장들 정리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c8663&logNo=20176143769&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 (기타) 고조선 국경 패수 위치에 대한 주장들

홍여하-요하, 신경준-어니하, 김경선-난하, 성해응-혼하, 리지린-대릉하 패수설

http://m.greatcorea.kr/a.html?uid=796  

http://m.greatcorea.kr/777  

http://m.hanryeo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3962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cp=seoul&id=20160622025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