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문 벡델초이스 10 | 2025 Bechdel Choice 10 in FILM
영화 부문 벡델초이스 10 | 2025 Bechdel Choice 10 in FILM
영화 부문 벡델초이스 10 심사총평
영화 산업의 위기에 직면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양한 시선을 가진 작품의 저하, 수익성을 향한 편향된 콘텐츠의 증가일 것이다. 다행히 작년 판데믹 이후 영화 시장의 ‘고예산-남성중심’ 서사의 증가가 대두된 것과 달리 올해는 여성이 주도하는 다양한 서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에서 위기의 한가운데서도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사는 작년 6월 1일 부터 올해 5월 31일까지 극장 개봉한 작품과 OTT 오리지널 영화 총 125편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올해는 상업영화에서 장르를 이끌어 가는 여성 캐릭터의 주체적 활약을 다룬 작품이 증가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사제가 아닌 수녀를 퇴마의 주체로 설정한 <검은 수녀들>은 ‘신념과 직업정신으로 퇴마에만 열중하는 한국영화계에 귀한 여성주인공의 출현’(구정아 프로듀서)이라 평가받았다. 남성 중심의 장르로 인식되던 범죄 느와르 액션물을 여성의 시선으로 전복한 두 편의 작품 <파과> <리볼버>가 불러온 파장도 컸다. ‘<파과>는 여성캐릭터에게 척박했던 장르의 땅을 갈아엎는 근본적인 토양 개선 프로젝트’(이화정 프로그래머), ‘<리볼버>는 남성 중심의 범죄 느와르를 여성의 시선으로 전복한 작품’(민용근 감독)에서 각각 평가의 지점을 얻었다. 십대 히어로, ‘야쿠르트 아줌마’로 슈퍼히어로물에 성별과 나이의 장벽을 허문 <하이파이브> 역시 기존과 다른 시선으로 여성 캐릭터의 입체성을 구현해 ‘평범한 이들의 연대 그 이상의 캐릭터 구현’(성찬얼 기자)으로 주목받았다.
단, 이같은 시도가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도 남겼다. 초이스10에 선정된 이들 작품 모두 심사기간(2024.6.1~2025.5.31) 한국영화 순위 10위 권 안에 들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꼽힌다. 저조한 성적에 비판의 시선을 던지고 기획 투자의 문을 닫는 대신, 더 디테일한 개발이 이어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바로 이들 작품이 거둔 성과에 벡델데이가 주목하는 이유기도 하다.
성평등한 서사와 캐릭터를 꾸준히 만들어 온 독립영화 진영은 더 다양한 캐릭터, 연령대, 관계성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어머니의 고충을 그린 <그녀에게>는 ‘단순히 좋은 어머니라는 인물을 넘어 경력 단절의 문제까지 고민하는 입체적 캐릭터’(성찬얼 기자)를 담아낸 수작이다. 한국을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시각을 통해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의 공기를 반영한 <한국이 싫어서>,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의 혐오를 현실 스릴러로 만든 <럭키, 아파트> 등은 사회 구조 안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저조할 경우 미치는 파장이 어떤 것인지 조망할 수 있게 해준 작품들이다.
사회가 가진 선입견을 재조명하는 데 있어 여성들 간의 연대, 관계를 묘사한 작품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성소수자 딸과 엄마의 갈등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편견을 점검하는 <딸에 대하여>, 임신한 학생과 선생, 사제지간을 통해 서로 다른 세대와 입장의 차이를 극복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린 <최소한의 선의>가 대표적이다. 치어리딩이라는 단체 활동을 통해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응원하는 긍정적인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 <빅토리>는 ‘자신의 세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십대들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려냈다’(구정아 프로듀서)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 모두 남성 캐릭터 간의 이해와 소통이 주를 이루던 작품들과 달리, 여성 캐릭터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캐릭터들의 입체성을 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다.
올해는 창작진들의 성비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 여성 작가의 시선이 여성 캐릭터와 서사의 개발에 대한 기여했던 것과 달리 올해 선정작들을 살펴보면 남성 감독이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한 작품이 부쩍 증가했다. 이같은 창작자의 성별 변화는 여성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매력적인 서사의 중심으로 인정받았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물론 다른 관점에서 창작자의 성비 불균형은 지적해야 할 문제다. 신인 감독의 진입이 저조한 산업적 위기의 한가운데, 여성 감독의 상업영화 진입은 더 많이 가로막혀 있다는 점은 한국 영화계가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당면한 과제로 보인다.
초이스 10에 선정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벡델리안 수상자는 <딸에 대하여>의 이미랑 감독(감독상), <최소한의 선의> 김수연 작가(작가상), <파과>의 이혜영 배우(배우상), <빅토리>와 <하이파이브> 두 편을 제작한 이안나 안나푸르나필름 대표(제작자)에게 돌아갔다.
이화정(벡델데이 2025 프로그래머)
2025년 올해의 ‘벡델초이스10’은 2024년 6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선보인 한국영화 125편·시리즈 102편을 대상으로 예심과 본심을 통해 선정됐다. 올해 영화 부문 본심 심사에는 <리틀 포레스트>, <조제>의 프로듀서인 영화제작자 구정아 볼미디어 대표, <혜화, 동>, <소울메이트> 등을 연출한 민용근 감독, 성찬얼 씨네플레이 기자, 이화제 벡델데이 프로그래머가 참여했다.
2025 Bechdel Choice 10 in FILM
검은 수녀들 사진 제공: 영화사 집
감독 권혁재 | 출연 송혜교 전여빈 이진욱 문우진 | 각본 김우진 | 114min | ⑮
전작의 기획을 새롭게 비튼 이 영화는 남성이 여성으로, 사제가 수녀로 바뀌면서 기대와 결과값 또한 새로이 조정되었다. 자신의 신념과 직업정신(!)으로 퇴마에만 열중하는 여성 주인공의 모습은 생각보다 한국영화에서 귀하며 여성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성의 발전과 변화 또한 이 영화가 여성 버디 영화로서도 작동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인다.
구정아(볼미디어 대표)
그녀에게 사진 제공: 애즈필름
감독 이상철 | 출연 김재화 성도현 빈주원 이하린 | 각본 이상철 신아가 | 105min | ⑫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의 교집합에 있음에도 (어쩌면 그렇기에) 제대로 다뤄진 적 없는 '장애아의 가족'. 류승연 작가의 경험이 담긴 원작을 토대로 장애아를 감당해야만 하는 어머니를 따라간다. 이 극단적 환경의 여성을 단순히 좋은 어머니로 발전하는 인물을 넘어 경력 단절을 어떻게든 헤집고 싶은 직업인으로서의 야망까지 담아내 입체적인 여성상을 완성한다.
성찬얼(씨네플레이 기자)
딸에 대하여 사진 제공 : 아토
감독 이미랑 | 출연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 | 각본 이미랑 | 106min | ⑫
쉽게 잊는 사실. 모든 여성은 딸이(었)다. <딸에 대하여>는 그리하여 여성과,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로 대한민국 여성과 이를 메워싼 사회의 시선을 조망한다. 누가 봐도 가치있는 삶을 살았으나 가족이 없는 여성, 원하는 모습이 되지 않은 가족이 원망스러운 어머니, 원하는 삶을 위해 세상과 맞서야 하는 딸의 대비는 편견을 형상화하고 환기한다.
성찬얼(씨네플레이 기자)
럭키, 아파트 사진 제공 : ㈜인디스토리
감독 강유가람 | 출연 손수현 박가영 | 각본 강유가람 | 95min | ⑮
<기생충>의 반지하가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을 적나라하게 파고 들어갔다면, 강유가람 감독은 고층 아파트에 쌓아 올려진 소수자를 향한 혐오의 층위를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간다. 9년 차 동거인, 레즈비언 커플 선우와 희서에게 영끌해서 산 아파트는 ‘럭키’가 아닌 ‘불행’을 향한 투자가 된다. 소수자를 향한 이웃의 날선 혐오와 차별은 여과없이 이들에게 전달되고 커플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영화는 악취로 대변되는 공포의 원인이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내뿜는 혐오의 민낯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밝혀낸다. 영리한 구조와 용감한 접근으로 완성된 현실 스릴러.
이화정(벡델데이 2025 프로그래머)
리볼버 사진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감독 오승욱 | 출연 전도연 지창욱 임지연 | 각본 오승욱 주별 | 114min | ⑮
전도연이기에 가능했던 ‘하수영’이라는 여성 캐릭터는 무척이나 고유하다. 모든 것을 잃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허무와 고독과 냉철함을 머금은 품위 있는 기운은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면모를 보여준다. <리볼버>는 기존 남성 중심이었던 범죄 느와르를 여성의 시선으로 전복하며, 모든 것을 잃었던 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존엄을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재구축해나가는지 인상적인 영화적 언어로 보여준다.
민용근(영화감독)
빅토리 사진 제공: (주)마인드마크
감독 박범수 | 출연 이혜리 박세완 이정하 조아람 | 각본 박범수 박성훈 강민선 | 120min | ⑫
‘치어리딩’은 단독으로 의미 있는 액티비티가 될 수 없으며 응원해야 할 대상과의 관계성에서만 존재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게다 영화적으로 그 역동성과 흥겨움만큼 클리세가 크게 자리잡은 영역도 없을 거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치어리딩의 세계는 단독의 세계이며 십대 여성 주인공들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세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기 발견과 성장과 고뇌는 그들이 놓인 사회적 환경과도 상호 작용하며 자장을 넓혀가니 그녀들을 응원해 마지 않을 수 없다.
구정아(볼미디어 대표)
최소한의 선의 사진 제공: 싸이더스
감독 김현정 | 출연 장윤주 최수인 | 각본 김수연 | 110min | ⑫
제목에 영화와 삶을 곱씹게 만드는 함의가 담겨있다. 나이와 환경이 전혀 다른 ,두 여성이 조금씩 눈높이를 맞춰 서로를 바라보게 되고, 끝내 함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과정은 우리에게 ‘최소한’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선의’라는 단어의 의미를 각각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두 단어가 만나는 지점이 결국 우리가 서로를 선입견 없이 들여다보기 위해 다시 시작해야할 출발선 아닐까.
민용근(영화감독)
파과 사진 제공: 수필름
감독 민규동 | 출연 이혜영 김성철 연우진 김무열 신시아 옥자연 | 각본 민규동 김동완 | 122min | ⑮
<파과>는 여성 캐릭터에게 척박했던 장르의 땅을 갈아엎는 근본적인 토양 개선 프로젝트다. 존재를 지우고 살아가던 여성이 오히려 노년에 이르러 자아를 찾는 경로에 탑승. 조각은 <파과>안에서 모든 걸 아낌없이 발산하는 당당한 극의 주체가 된다. ‘여성에 노년을 더해 이중고를 가진’ 조각은 그럼에도 욕망하고 행동한다. 그간 한국영화에서 이물감이 있다 치부됐던 모든 요소가 되려 조각을 설명할 적극적인 도구로 활용 된다. 비녀를 비수처럼 꽂아 내리고 총을 쏘며 외줄에 매달린 노구의 육체를 가진 이 ‘과장법’의 액션도 얼마든 지 멋지고 매혹적일 수 있다는 걸 거두절미, 시각적으로 각인 시킨다.
이화정(벡델데이 2025 프로그래머)
하이파이브 사진 제공: NEW
감독 강형철 | 출연 이재인 안재홍 라미란 김희원 유아인 오정세 박진영 | 각본 강형철 | 119min | ⑮
<하이파이브>의 성취는 사회에 필요한 평범한 이들의 연대를 히어로물에 녹여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소 마이너한 개개인, 그리고 다소 쓸모없어 보이는 능력. 그것을 연결하는 인물이 '한국형 커리어우먼' 야구르트 아줌마(프레시 매니저) 김선녀란 설정은 화룡점정. '파워'가 중요한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십대 소녀를 내세운 선택까지 탁월하다.
성찬얼(씨네플레이 기자)
한국이 싫어서 사진 제공: 엔케이컨텐츠
감독 장건재 | 출연 고아성 김우겸 주종혁 | 각본 장건재 | 107min | ⑫
한국 여자만 한국이 싫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아니 대다수가) 자신의 나라와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을 터. 그러나 한국의 젊은 여자가 한국이 싫은 이유는 말하자면 구구절절하고 알아달라고 하기엔 비가시적이다. 말 그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숨쉬고 사는 동시대적인 공기를 반영한 주인공의 여정은 타인의 시선을 자기 안으로 옮겨 자유분방하게 이어진다. 로맨스의 테두리에 가둬지지 않는 여성의 사랑 이야기는 이토록 고된 여정을 필요로 할 수도.
구정아(볼미디어 대표)
벡델데이 2025 9. 6.(토) ~ 9. 7.(일) @KU시네마테크
주최·주관 DGK(한국영화감독조합)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벡델데이 2025 사무국 DGK(한국영화감독조합) | 02-6080-4422 | dgk@dg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