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부문 벡델초이스 10 | 2025 Bechdel Choice 10 in SERIES
시리즈 부문 벡델초이스 10 | 2025 Bechdel Choice 10 in SERIES
시리즈 부문 벡델초이스 10 심사총평
OTT 플랫폼의 다변화와 플랫폼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각기 다른 타깃을 위한 콘텐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시장의 확대로 반길만한 점은 이로인해 기존의 “안전한 흥행 공식”에서 벗어난 시도들이 자연스럽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과거엔 ‘리스크’로 여겨졌던 여성 중심 서사 역시 이제는 플랫폼의 성격과 기획 방향에 따라 다양하게 구현되고 있다. 그동안 영화 산업에서 시도되지 못했던 다양한 실험을 가능케 했다. 특히 다양한 소재, 장르물에서 여성 서사와 여성 캐릭터의 확장은 최근 몇 년간 한국 드라마의 가장 뚜렷한 변화 중 하나로 꼽힌다.
시리즈가 보여주는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증가는 영화계가 여전히 남성 중심 제작 시스템 하에 여성 원톱 주조연의 작품이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획 단계에서 걸러지는 것과 대조적인 흐름으로 읽힌다. 드라마 산업은 영화에 비해 여성 작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업계다. 이는 단순히 통계적인 차원을 넘어, 여성 캐릭터의 현실감과 감정 표현, 그리고 서사의 결을 결정짓는 중요한 배경이 되어 왔다. 성비 균형이 불러오는 콘텐츠의 질적 변화는 벡델데이가 꾸준히 주목해 온 지점으로, 창작 주체의 성별이 콘텐츠에 미치는 영향이 제작 구조의 변화와 시너지를 부르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걸 올해 시리즈의 경향성이 보여준다.
심사는 작년 6월 1일 부터 올해 5월 31일까지 공개된 총 102편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올해는 여성 중심 서사와 캐릭터가 올해 시리즈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압도적인 호응을 얻으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획기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영화 개봉작들이 극장가 위기와 맞물리며 저조한 성적에 그쳐 아쉬움을 안겨주었던 것과 사뭇 다른 결과다. 올해 시리즈는 시대극이나 사극같이 규모가 큰 작품 안에서 여성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개발한 작품들이 특히 각광을 받았다. 드라마 장르에는 이례적으로 순제작비 600억 원의 제작비로 제작된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는 글로벌 흥행 기록을 세우며 화제를 모았다. “그간 평면적으로 소비됐던 ‘여성’ ‘엄마’ ‘할머니’에 관한 디테일한 전개로 거대한 감정의 스펙터클을 선사한 작품”(이화정 프로그래머)이라는 평을 얻은 작품이라는 평을 얻었다. tvN의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 국극단에서 활동하던 여성 정년이의 성장사를 통해, 젠더를 전복한 여성 국극의 가치와 진보적 정신을 조명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젠더 관념을 넘나드는 여성 국극과 여성 창작자들이 만든 작품의 기획 의도가 맞물린 작품”(김지연 기자)이라는데 높은 점수를 주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전복적인 가치관을 전개한 JTBC <옥씨 부인전>은 “사극 안에서 처음 접하는 영웅서사”(김교석 칼럼니스트)의 평과 함께, 사극의 역사에서도 기록할 만한 족적을 남긴 작품이다. 이들 모두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불러 와 가장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메시지를 설파함으로써 새로운 지점을 요구하는 오늘날의 시청자와 호응할 수 있었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름과 신분을 숨겨야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사회적 제약에 처한 여성의 활약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옥씨부인전>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다룬 시리즈도 주목한 지점이다. 바디체인지물의 익숙한 구조 안에 MZ세대 청년과 중년 여성이 직면한 현실을 전하는 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들을 불러와 지금 직면한 사회문제를 유쾌하게 시사하는 시리즈’(김지연 기자)라는 평을, 쌍둥이 자매가 신분을 숨기고 서로의 일터로 바꿔 들어가 겪는 현실을 통해 여성이 처한 상황과 극복을 그린 tvN <미지의 서울>은 ‘자극적 장치와 빌런에 기댄 작법을 배제한(이화정 프로그래머)’다. 모두 사실적 터치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수작이다.
성비의 변화를 통해 장르적 긴장감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은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디즈니+ <하이퍼나이프>는 의학드라마의 구조 안에 여남 구도의 사제지간을 통해 기존의 전형성을 극복한 시리즈로 “무엇을 예상해도 경로를 이탈하여 자기만의 길을 가는” 시리즈를 ‘기분좋은 도발’(김민정 교수)이라 평했다. 프로파일러가 살인사건에 얽힌 딸의 비밀과 마주하는 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가족간의 애정이 신파를 위한 감정소모가 아니라 스릴러적 서사의 밀도를 높인 촉매제로 활용되었다”(김민정 교수)는 평을 얻었다. 이혼변호사의 사건해결을 그린 SBS <굿파트너> 역시 “브로맨스의 구도를 깨고 여성들이 주도하는”(김교석 칼럼니스트) 성별의 전복을 통쾌하게 실현한 작품이다.
여성이 처한 현실의 고충을 연대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서사들도 주목받았다. 입시 경쟁으로 몸살을 앓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U+tv <선의의 경쟁>은 ‘기존 청춘물, 학원물의 장르 공식과 다른 전개와 소재, 표현방식’(김교석 칼럼니스트)으로 색다른 성장 서사를 완성해 낸다. 성인용품 방판을 구실로 연대해 폭력과 무시, 차별에 직면한 ‘주부’들의 현실을 극복하는 JTBC <정숙한 세일즈>는 ‘미디어에 빈번하게 묘사된 억척스럽거나 헌신적인 ‘아줌마’가 아닌 ‘평범한 아줌마’들의 캐릭터 전개’(김지연 기자)로 여성 캐릭터에 입체성을 부여한 작품으로 평가됐다.
초이스 10에 선정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벡델리안 수상자는 <정년이> 정지인 감독(감독상), <옥씨부인전> 박지숙 작가(작가상), <미지의 서울>의 박보영 배우(배우상), <정숙한 세일즈>를 제작한 한석원, 황기용, 신혜미 대표에게 돌아갔다.
이화정(벡델데이 2025 프로그래머)
시리즈 부문 벡델초이스10은 2024년 6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선보인 시리즈 102편을 대상으로 선정위원들의 선정됐다. 올해 시리즈 부문 심사에는 김교석 TV 칼럼니스트,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김지연 씨네플레이 기자, 이화정 벡델데이 프로그래머가 참여했다.
2025 Bechdel Choice 10 in SERIES
굿파트너 사진 제공: 스튜디오S, 스튜디오앤뉴
연출 김가람 | 출연 장나라 남지현 김준한 표지훈 지승현 한재이 | 작가 최유나
할리우드의 기본 서사는 부자의 서사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언가를 물려주고, 아들은 그 아버지를 뛰어넘는 성취를 거둔다. 브로맨스의 원형이기도 한 이 남자들의 이야기를 현직 이혼변호사인 최유나 작가와 인물 사이의 긴장감을 맛깔나게 담아내는 김가람PD는 여성들이 주도하고 성장을 견인하는 이야기로 성별을 바꿔버렸다. 단순한 장르물이 아니다. 연출, 작가, 주연 배우까지 여성들이 함께 만들어낸 <굿파트너>의 세계관이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 실제로,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한 장나라를 만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김교석(TV 칼럼니스트)
낮과 밤이 다른 그녀 사진 제공: 삼화네트웍스, SLL
연출 이형민, 최선민 | 출연 이정은 정은지 최진혁 | 작가 박지하
지금껏 이런 바디체인지 로코는 본 적 없었다. 두 개의 육체 모두,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들이다. "별 볼일 없는 취준생"은 "경력은 없는데 나이는 많고, 쓸데없이 말 많은" 아줌마가 되어 두 나이대의 여성이 직면한 현실을 모두 경험한다. 나이 든 여성이 된 늦깎이 취준생은 '아줌마'의 얼굴로 미디어에서 조롱받기 일쑤인 'MZ 세대'의 화법과 태도로 편견에 맞선다. 연령 차별, 경력 단절, 청년 세대의 취업난 등 사회문제를 유쾌하게 시사하는 시리즈.
김지연(씨네플레이 기자)
미지의 서울 사진 제공: 스튜디오드래곤
연출 박신우, 남건 | 출연 박보영 박진영 류경수 | 작가 이강
벡델데이가 찾아 헤맨 시리즈의 등장. 똑같은 외형에 가려졌던 미지와 미래가 자신 고유의 ‘얼굴’을, 여성을 향한 폭력에 맞서서 이름을 바꿨던 상월과 로사가 각자의 ‘이름’을 찾아 가는 과정은 소름돋을 만큼 경이롭고 뭉클하다. 편견, 좌절, 실패, 낙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서 숨어 지내는 대신 마침내 이들은 사회와 어우러질 단단한 용기를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의 성취는 균형을 잃지 않는 무해하고 건강한 ‘시선’에 있다. 자극적 장치와 빌런에 기댄 작법은 배제된다. 누군가를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상대를 적대시하거나 왜곡하지 않고도 이 시리즈는 우리로 하여금 “언젠가는 꼭, 너를 읽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이화정(벡델데이 2025 프로그래머)
선의의 경쟁 사진 제공: 와이랩 플렉스, STUDIO X+U
연출 김태희 | 출연 이혜리 정수빈 강혜원 오우리 | 작가 김태희 민예지
‘소녀들의 이야기’에 아시아가 들썩였다. 미스테리 걸 스릴러를 표방하는 이 드라마는 4명의 소녀(여고생)를 기존 청춘물, 학원물의 장르 공식과는 다소 다른 전개와 소재, 표현 방식으로 다룬다. 그 덕에 장르물의 쾌감뿐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 그리고 현실적인 차원의 퀴어 코드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연출을 맡은 김태희PD는 이기는 법만을 가르치는 사회에서 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모두의 이야기라고 이 드라마를 정의했다. 현실의 부조리나 어려움을 폭력으로 버무려진 판타지 학원물만이 살아남은 오늘날, 이 날선 소녀들의 이야기는 연대나 사랑으로만 귀결되는 청춘의 모습과는 다르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색다른 성장 서사다.
김교석(TV 칼럼니스트)
옥씨부인전 사진 제공: SLL
연출 전혁 | 출연 임지연 추영우 김재원 연우 | 작가 박지숙
이른바 가족 콘텐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TV드라마인데 설정은 최근 디즈니의 그 어떤 콘텐츠보다 진보적이다. 모진 시련과 풍파가 겹겹이 닥쳐와도 동네와 가족을 지키고, 약자들을 보호해내는 불세출의 영웅이 조선시대 노비 출신 여성이라는 설정은 꽤나 전복적이다. 유교사상이 세상의 전부이던 조선에서 키다리 아저씨의 드높은 조력 없이 진취적인 여인 한 명이 굳건한 울타리를 만들어내는 처음 보는 영웅서사다. 더욱 처음인 광경은 임지연이 보호해야 하는 약자 중에 조선시대에 상상하기도 힘든 성소수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치 벡델을 위한, 벡델에 의한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김교석(TV 칼럼니스트)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사진 제공: MBC
연출 송연화 | 출연 한석규 채원빈 한예리 노재원 윤경호 | 작가 한아영
하드보일드 스릴러 장르의 냉정함에 한국적 정서인 가족애를 결합한 전략은 탁월했다. 스릴러의 긴장감은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 속에서 더욱 증폭되며 이들 가족 간의 애정은 눈물 젖은 신파를 위한 감정 소모가 아니라 스릴러적 서사의 밀도를 높이는 촉매제로 기능한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가족 간의 역학과 그들의 심리적 변화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가족애가 이토록 세련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자아낸다. 이는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과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성취다. 이 작품은 벡델데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관계적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존중을 품고 있으며 그 정신을 섬세하고도 강력하게 구현해낸 수작이다.
김민정(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공 교수)
정년이 사진 제공: 스튜디오드래곤
연출 정지민 | 출연 김태리 신예은 라미란 정은채 | 극본 최효비
"때는 1950년대 전쟁 직후, 여성 국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소녀들은 왕자가 되길 꿈꾼다" 지금에서야 막 예술계의 화두가 된 젠더 프리 캐스팅의 시초는 우리 여성 국극이었다. 소녀들이 되고자 했던 ‘왕자’는 비단 국극에서의 역할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터.
젠더 관념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여성 국극만큼이나, 드라마의 연출은 여성 국극 무대와 인물들의 서사를 자유로이 오고 간다. 드라마 <정년이>는 잊혔던 여성 예술의 복원이다.
김지연(씨네플레이 기자)
정숙한 세일즈 사진 제공: SLL, 하이지음스튜디오, 221b
연출 조웅 | 출연 김소연 연우진 김성령 김선영 이세희 | 극본 최보림
비단 '성인용품'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첫 국내 시리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숙한 세일즈>를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미혼모, 지금은 그저 남편의 밥을 챙기는 신세가 된 고학력자, 남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던 아내 등 사회에서 설 자리 없었던 여성들은 '방판'을 구실로 사회적 위치를 찾고, 서로 연대한다. 미디어에서 빈번하게 묘사되던 억척스럽거나, 헌신적인 '아줌마'가 아닌, '평범한 아줌마'들의 성인용품 방판기.
김지연(씨네플레이 기자)
폭싹 속았수다 사진 제공: 넷플릭스
연출 김원석 | 출연 아이유 박보검 문소리 박해준 | 작가 임상춘
여자는 식구들 다 먹는 “조구도 못 먹는” 밥상머리 찬밥 신세다. 문학소녀의 ‘재능’은 여자라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가난한 집안의 여자는 이중, 삼중의 차별에 갇혀 자란다. 그런 애순에게 물숨 토해내며 자식 건사하는 해녀 엄마 광례는 ‘너는 달리 살아라’ 말한다. 남들은 한 번도 주지 않았던 용기를, 세상과 대적할 꿈을 심어 준다. 각자의 이름 대신 ‘할머니’ ‘엄마’라는 대명사로만 불리던, 가족을 위한 헌신과 노동의 일상에서 사라졌던 여성에게 ‘정말 수고 많으셨다’고 말해준다. 그들의 꿈과 욕망이 무엇이었는 지 기술해 준다. 더욱이 압도적 여성배우들이 활약할 장을 만들어 준 성과는 상찬이 모자랄 지경.
이화정(벡델데이 2025 프로그래머)
하이퍼나이프 사진 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연출 김정현 | 출연 박은빈 설경구 윤찬영 박병은 | 작가 김선희
서로를 미워하는 동시에 과잉 집착하는 기묘한 사제 관계가 드라마의 최고 관전 포인트다. 감상이 아니라 ‘관전’이다. 드라마 안팎으로 시청자와 등장인물의 팽팽한 긴장 관계가 형성된다. 주인공 세옥과 덕희는 시청자가 무엇을 예상하든 그 경로를 이탈하며 자기만의 길을 간다. 이토록 자유로움을 만끽한 드라마 주인공이 있을까 싶다. 특히 ‘여성’ ‘의사’ ‘제자’ 세 개의 층위의 세옥은 우리가 알던 세상의 모든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기분 좋은 도발이다. 벡델테스트 7가지 항목의 핵심은 사회 편견과 기성 질서에 제한받지 않는 ‘자유함’이다. 세옥 is free! 단언컨대, 디즈니가 아니라 넷플릭스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김민정(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공 교수)
벡델데이 2025 9. 6.(토) ~ 9. 7.(일) @KU시네마테크
주최·주관 DGK(한국영화감독조합)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벡델데이 2025 사무국 DGK(한국영화감독조합) | 02-6080-4422 | dgk@dg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