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이>(2021)
연출 이정흠 | 배우 이영애, 김혜준
작가 성초이 | 제작 박성혜, 김영배, 박성은
이 드라마만큼 화끈하게 벡델테스트를 통과하는 작품이 또 있을까. 이영애의 4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 <구경이>는 주인공부터 악역까지 모조리 여성. 그런데 그런 성별 구성을 의식할 겨를이 없다. 경찰 출신 보험조사관 구경이(이영애)가 사이코패스 대학생 K(김혜준)를 쫓는 추적극이 종잡을 수 없이 흥미진진해서다. 이영애가 작품을 택한 것도 “이상한데 재밌어서”였다. 각자 분야에서 ‘선수’다운 내공을 갖춘 캐릭터, 장르적 재미로 무장한 서사가 탄탄하다. 구경이는 남편의 죽음 이후 무기력증에 빠져 집구석을 쓰레기장처럼 어지르고 사는 게임 폐인. 그런 구경이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게 남편 사건의 비밀을 쥔 K다. 여기에 권모술수의 용국장(김해숙), 아픈 딸을 지켜야 하는 보험조사원 나제희(곽선영)의 꿍꿍이가 겹겹이 더해진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작가팀으로 알려진 ‘성초이’가 4년 넘게 준비한 이 작품을 여러 제작사에서 퇴짜맞은 이유가 “캐릭터가 재미없다”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지난해 마침내 제작이 확정된 건 이 대본을 알아볼 만큼 세상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의미 아니었을까.진상이 밝혀져 가는 과정에서 구경이와 K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같이 보이거나, K가 흑화하며 온 세상이 어두워지는 상황들의 심상을 직관적으로 와닿는 이미지로 표현해낸 이정흠 PD의 연출도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심사위원 나원정(<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