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군과 열심히 쓴 논문이 얼마 전 Engineering Structures에 게재 확정이 되었다.
맨 처음 드래프트를 완성한 건 올해 3월이었다. 당시에는 꽤나 결과에 자신이 있어서 꽤 좋은 평가를 받을거란 무모한 자신감과 함께 MSSP에 투고했다가 2달만에 대차게 까였다. 다만 Reject and Resubmit이 와서 그래도 괜찮은 발견이 있긴 했던 모양이라는 단단한 착각과 함께 열심히 이런 저런 실험을 추가하여 6월에 냈지만 최종적으로 9월달에는 완벽하게 까였다. 나는 아직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이 부재하다는 뼈저린 교훈과 함께.
그렇게 6개월을 소모하고 난 후, 이유는 모르지만 '대충 그만 하고 문턱이 낮은 곳에 내버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 때 떠오른 것이 '실적 압박이 덜한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항상 가장 좋은 저널에 낼 수 있도록 하라'는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님의 조언이었다. 1년에 몇 편씩 꼭 써야 한다는 식의 강력한 규정이 없는데, 이러한 여유를 게을러지는 수단으로 삼지 말고 좋은 연구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하라는 뭐 그런 말씀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실제로 수년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NCS만 주구장창 두드려서 기어코 굉장한 논문을 내는 분들이 여기 학교에는 왕왕 계시다.
여하튼 그리하여 NCS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그만큼이나 높은 문턱의 Engineering Structures에 투고한 것이 9월이고, 어제 최종적으로 게재 확정이 되었다.
최초 드래프트를 완성한 이후 9개월이란 시간이 흐르는 사이 논문의 가치가 희석되었는가 하면, 당연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하는 이 지극히 개인적인 연구란 코로나 신약 개발이나 인류 기아문제 해결처럼 촌각을 다투는 일도 아니거니와, 이미 시작부터 state-of-the-art로부터 한참 뒤쳐진 상태인지라 지금 내나 5년 뒤에 내나 똑같은 구식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가치가 희석되지 않았다기 보다는 희석될 가치가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실적의 압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최대한 무시하는 편이다), 하루라도 빨리 내서 기술이나 발견을 선점할 이유도 없었다 (하면 좋지만, 나에게는 아득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MSSP에서 최종적으로 까인 9월경 '문턱이 낮은 곳에 내버릴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나는 수영을 거의 못 하는 편인데 혜선이의 도움 덕분에 재작년 무렵부터 '바다 위에 눕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바다 위에 눕는다는 건 말 그대로 그냥 누워있는 것이다. 잔잔한 바다에 가만히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당시 해변가에서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렇게 누워 있던 중 뭔가 기묘한 위화감을 느껴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원래 위치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엉뚱한 곳에 당도해 있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내 쪽에서 어떠한 의지를 가지지 않았으나 파도의 흐름에 따라 말 그대로 떠내려 가 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잔잔한 바다이니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거친 파도가 있었다면 그야말로 위험한 곳까지 떠내려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집단이 구성되었다는 것은 곧 구성원들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지배적인 사고 체계나 공유하는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지배적인 사고 체계는 단순히 생각과 관념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의 정서와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실제 구성원들은 그러한 방향을 따르며 거기에서 안녕과 평안을 누리는 법을 학습하고, 동시에 집단의 지배자들은 사고 체계를 벗어나는 행동을 적절히 통제하여 집단을 관리한다. 이것이 안토니오 그람시가 이야기 한 헤게모니이다.
학계라는 곳에도 당연하지만 사고체계와 방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얼마 안 되는 시간동안 내가 경험한 대한민국 학계의 흐름이란 다행히 좋은 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흐름을 잘 탄다면 연구비도 많이 따고, 논문도 많이 쓰고, 훌륭한 후학도 더 많이 양성할 수 있다. 그 흐름에 순응한다고 해서 결코 추악한 교수나 비겁한 연구자가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 흐름을 거부해야만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내가 경계하는 것은, 흐름을 잘 타지 못 하는 경우이다. 마냥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다가는 엉뚱한 곳에 당도해 버릴 수도 있다. '문턱이 낮은 곳에 낼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조직(혹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헤게모니를 거스르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나마 내가 아는 헤게모니를 '극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조직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일정 순간 헤게모니로부터의 자유를 줄 수 있다. 그러니까 바다에서 아에 나와버리면 더 이상 해류와 함께하는 뜻밖의 여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나약한 개인이란(제 얘깁니다) 결국에 어떠한 조직에 속할 수 밖에 없고, 거기에는 또 거기 나름의 헤게모니가 존재할 것이다. 게다가 불편한 해류를 만날 때마다 바다를 빠져나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나를 안내해 줄 바다'를 찾아다니는 것은 그리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좀 더 더욱 확실한 방법은, 당연하지만, 몸과 발을 움직여 수영을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더 이상 파도에 '전적으로' 몸을 맡기지는 않는 것이다. 현해탄을 가로지를 정도의 수영실력이라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위급한 상황에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의 생존수영 정도는 배워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좋은 파도에는 몸을 맡기고, 도무지 따라가기 힘든 파도 앞에선 가만히 멈추며, 겨우 겨우 원하는 곳에 떠내려나마 갈 수 있다.
언젠가 파도와 함께 엉뚱한 곳에 떠내려간 그 날, 혜선이는 팔을 휘저어 방향을 정하거나 제 자리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여전히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능숙하게 수영해 갈 실력은 못 할지언정, 최소한 원치 않는 곳으로 떠내려 가는 일은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라고 해도 사실 내가 주로 드러눕는 바다는 지극히 평온하고 안전한 곳들이었지만... (마치 시립대처럼).
Engineering Structures에 고작 논문 한 편 쓰고 이토록 장황한 소회를 밝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연구실 홈페이지들과 같이 학생들과 오붓하게 찍은 사진을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예정이지만 (왜냐하면 내가 있으면 도무지 오붓한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여운 건 박제하는 것이 준비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올려봅니다.
이런 귀여운 케이크의 경우
보통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끝)
백수 시절, 우리 동네에서 좋은 논문을, 그곳도 엄청나게 많이, 게다가 잘 쓰기로 유명한 OG 성님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너 인마 이 따구로 살면 안 된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조언과 덕담을 들었는데, 그 때 들었던 규칙 중 하나가 3-3 룰이었다.
여기서 앞의 3은 리뷰중인 논문의 숫자, 뒤의 3은 작성중인 논문의 숫자이다. 즉 3개는 리뷰중, 3개는 작성중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빠르게 3-3을 만들자' 라는 마음으로 작업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가령 리뷰중인 논문 중 하나가 통과되어 3에서 2가 되는 즉시 쓰고 있는 논문의 속도를 높여 투고를 서두른다든지, 그렇게 작성중인 논문 하나가 리뷰의 단계로 넘어가 3에서 2가 되는 순간 어서 빨리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어 새로운 논문의 작업을 시작한다든지.
당연하지만 이런 루틴에 도달하신 성님들께서는 당신들이 지금까지 논문 몇 편을 썼는지 따위는 전혀 기억하지 못 하셨다 (정확히는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다는 표현이 맞지만). 3-3이라는 건 결국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점검, 즉 과거의 이력을 되짚어 보는 것과는 방향성이 정반대이다. 과거의 기록을 헤아리며 한껏 게을러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것이다. '몇 편 정도 쓰면 교수가 되나요?' 같은 걸 물어봤다가 아직도 그런걸 세고 있냐며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3-3 같은건 그 때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너무나 아득한 수치이지만, 여튼 그 이후 나름대로 2-1 내지는 2-2 룰 정도를 지켰던 것 같은데...
요새는 결국 백수 시절과 같이 1-2, 1-1, 0-1의 형태로 수렴해 가는 것 같다. 후자의 [작성중인 논문]이야 어떻게든 늘려놓을 수 있다지만, [리뷰 중인 논문]이 바닥다는 상황에 놓이면 특히나 초조해진다. 심사가 끝나면 논문이 게재되었다는 보람보다도 '아 이제 도시락 다 까먹었네' 하는 다급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실적이라는 것을 강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나 혼자 시스템의 분위기에 쫒겨 안달을 내는 것은 여러모로 서글픈 일이다.
여하튼 그 시절 3-3을 이야기 하시던 분들은 요새 뭐 하고 지내나 살펴 보았다. 사실은 그 분들도 이제 1-1 정도에 수렴하셨기를 바라며 확인해 보았으나, 아쉽게도(?) 성님들께서는 상황과 환경에 관계 없이 여전히 3-3에 준하는 왕성한 연구력을 발휘하고 계신듯 하였다. 참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어마어마한 논문 숫자보다도, 소위 '자유직'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지켜온 자기만의 루틴과 직업적 소명을 꾸준하게 지켜내고 있는 점 말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저의 현재 스코어는 2-0, 오세훈 시장님이 알면 불러다 조인트를 후려까시겠지만 다행히 큰 관심은 없으신 것 같다.
김태용이라는 사람은 아주대학교의 교수로, 송준호 교수님의 지도 하에 박사를 마치고 권오성 교수님이 계신 토론토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재 중의 수재로 유명하다.
그런 귀하신 분을 어제 구조공학세미나 수업의 강사로 초청하여 1시간 반 정도의 강의를 들었다. 구조 신뢰성이라는 굉장히 어려운 주제를 나 같은 문외한조차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설명해 주어 무척이나 유익하였다. 지금까지 한 연구 성과에 대해서도 단순히 '결과가 잘 나왔다' 정도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발견들이 해당 분야 기술 발전에 있어 어느 정도 수준에 위치하는지, 학술 커뮤니티의 담론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설명해 준 점 역시 참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전반적인 연구의 내용이나 주제에서 나름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었다. 송준호 교수님이나 권오성 교수님 같은 대가의 지도를 받다보면 어쩔 수 없이 연구의 내용이나 주제에서 일부 겹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창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오리지날리티라는 것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 두 번의 '번뜩임'만으로는 어렵고, 결국 일정한 두께의 시간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졸업한 이후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어느 정도의 독자적인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세미나가 끝나고 학교 근처에서 같이 식사를 하며 어떻게 그런 생소한 연구주제들을 정하고 또 과감하게 진행하느냐고 물었더니 '필요하다고 느껴서'라고 답하였다. 분명한 필요로부터 시작한 연구이기에, 또한 그러한 필요를 느끼는 주파수나 감도가 세련되었기에 오리지날리티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만 느끼는 필요라면 새로움도 옅어질 뿐 아니라 그 결과가 학술 커뮤니티의 관심사에서 조금은 동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쪽은 내 경험담이다.
세련된 감도로부터 얻어낸 필요가 아닌 그저 개인적인 호기심 해결을 위한 연구만을 십수년째 하고 있는 나는 과연 학술 커뮤니티의 발견과 인류 지식의 진보에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을까. '저런 연구를 하고도 안 짤리는구나' 하는 용기를 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오랜만에(사실 처음으로) 연구실 홈페이지에 걸맞는 걸 올리면 어떨까 싶어 생각하다가, 이번 APSSRA 2024에 다녀온 소감을 적어본다.
압쓰라...라고 읽던가. 여하튼 아시아 태평양 구조 신뢰성 심포지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략 4년에 한번씩 한다고 하니 올해로 약 30년이 된 유서 깊은 심포지엄이다. 축사를 해 주신 윤정방 교수님께서 도쿄에서의 1회 때인가의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구조 신뢰성 분야의 전설 같은 선생님들이 무척이나 정정한 모습을 하고 있어 매우 놀랐고, 단상에서 사진 속 위인들을 소개하시는 윤정방 교수님은 1995년 그 시절보다 훨씬 정정하셔서 더욱 놀랐다.
이토록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심포지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도 온 적이 없는데, 당연하지만 구조 신뢰성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매우 어려운 학문 분야이고, 전공자의 80% 이상이 안경을 착용하며 호리호리하고 차분한 성격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성균관대 심성한 교수님의 도움으로 겨우 꼽사리 낄 수 있었다. 발표 기회도 주셔서 심신미약 상태로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고 와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틀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수많은 고수들의 발표를 듣고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1) 구조 신뢰성이란 여러가지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구조물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평가하고, 그에 따른 위험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학문인 것 같다.
(2) 불확실성을 다루어야 하니 통계와 데이터가 매우 중요하다. 구조물의 내구성, 하중의 크기, 재난의 빈도나 심각성, 어느 하나 고정된 값 하나로 설명할 수가 없고 확률이나 통계가 들어가지 않는 부분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독특한 통계적 특성을 잘 반영한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3) 그런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은, 역시나 매우 복잡했다. 꼬부랑 글자들이 가득한 화면을 보며 '이런걸 도대체 누가 이해하는거지' 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놀랍게도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 녀석들 알지도 못 하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건 아닐까도 싶었지만(한심) 발표가 끝날 때마다 다들 활발하게 토론하는걸 볼 때에는 뭔가 조금 쓸쓸한 기분도 들었다.
(4)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꼬부랑 수식들도 즉석에서 이해할 정도의 훌륭한 수재들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이 땅의 사회간접자본의 안전을 사수하고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역시 나 하나쯤은 놀아도 될 것 같다는 깊은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어째 적으면 적을수록 연구실 홈페이지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지만...
울산과학기술대학교의 이영주 교수님께서 심포지엄의 조직, 기획, 운영 등의 모든 부분을 총괄하셨다. 그 덕에 2박 3일 내내 동선이나 발표 환경, 식사, 행사 진행에 있어 정말 단 하나도 거슬리는 것이 없었다. 그 중 제일이었던 것은 역시나 스태프로 수고하는 학생분들의 해맑은 표정이었다. 보통 이런걸 하면 귀찮아 할법도 한데 어쩜 행사 내내 무슨 장로교 새신자팀마냥 함박웃음으로 있을 수 있나 진심으로 감탄하였다. '웃지 않으면 박사 2학기 연장' 같은 조항이라도 있었던걸까.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개최되는 플래그십 컨퍼런스, 혹은 국내라고 해도 5대 건설사가 스폰서로 붙은 초대형 종합학술대회를 생각해 보았을 때, 이러한 특정 분야 사람들의 학술 공동체란 규모나 기세 측면에서 아무래도 조금 소박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구성원의 8할이 안경을 쓰고 말랐으며 차분하기로 유명한 구조 신뢰성 분야 연구자들의 모임이라서 그런지, 이번의 심포지엄은 유난히도 '도란도란'의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덕분에 참석한 사람들과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훨씬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으며, 무엇보다 발표 하나 하나에도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공동체의 사이즈가 아담할수록 도리어 더 큰 활기와 참여에의 실감을 얻는 경우를 실제로도 나는 참으로 많이 경험하였다. 누군가의 눈에는 일견 무력해 보일 수 있는 로컬에서의 소박한 모임이나 활동이라는 것이 때로는 거대담론이나 거창한 켐페인 따위보다 훨씬 더 실재적인 기능을 해내는 것 역시 이러한 탓이 아닐까 싶다.
요새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카이스트나 서울대학교 같은 연구중심대학 사이에서 나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연구실을 운영하며 어떠한 책임감을 가지고 학생을 받아야 하는가였는데, 역시 '도란도란' 지내는 사이에 이영주 교수님 학생들처럼 부디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나 하나쯤은 놀고...
다 적고 보니 역시나 오늘도 연구실 홈페이지에 올리기에는 완전히 거리가 있다.
연구과제가 끝나고 나면 결과 보고서 같은걸 쓴다.
나는 아직 남들의 연구 결과를 평가할만한 전문가에 이르지 못 하여 내부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 한다. 그러나 여하튼 십수년간 피평가자의 입장으로 지내온 바에 따르면 연구과제의 평가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정량적 실적을 기준으로 이루어 지는 것 같다.
정량적 실적이란 가령 논문은 몇 편이나 썼는지, 특허는 몇 개나 냈는지, 졸업생은 얼마나 배출했는지 같은 수치화가 가능한 것들을 말한다. 온갖 그림과 표를 동원한 장황한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결국 이 수치화된 성과들을 시스템에 입력하는 게 평가의 핵심이다. 심지어 각 성과물이 얼마나 질적으로 우수한지에 대한 평가 역시 수치화 할 수 있게 되어있다. 논문집의 영향력 지수나 랭킹, 논문의 인용횟수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장황한 결과 보고서에는 연구의 정성적인 기여도를 쓰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피평가자 입장에서 느끼기에는 매우 형식적이다. 의사결정 효율성 증대, 기술 자립화, 비용 절감, 경쟁력 강화, 산업 발전에의 기여...같은 영혼이 결락된 문장들을 잔뜩 적어두고 나면 당연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것 같다. 결과 보고서 분량 제한이 과거 20-100페이지에서 최근 5-10페이지 내외로 대폭 줄어드는 것 역시 이런 아무도 믿지 않는 무의미하고 과장된 수사들을 더 이상 적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평가 시스템이 정량적 성과만을 준용하는 것은 결국 인력과 예산 부족에 기인한다. 당장 정성적 평가를 위해 수많은 전문가 집단을 동원할 여력이나 심층적인 인터뷰나 분석을 할만한 방법론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 결과의 장기적 성과나 실제적인 사회적 파급력을 찬찬히 볼 시간적 여유도 없다. 게다가 정성적 평가란 결국 평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보니 결과의 객관성을 확보하기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속한 이 사화에서는 연구 결과도, 교육 성과도, 심지어 '사회 봉사'조차도 정량적 성과물과 수치를 가지고 평가한다.
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평가가 이러한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결국 이들이 속한 집단의 의사결정 역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치를 증가하는 쪽'으로만 결정되고야 만다. 어떻게 하면 논문을 '많이' 쓸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연구비를 '많이' 따 올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융복합 과목의 '개설수'를 늘릴 수 있는지가 우선이다. 물론 논문을 적게 쓰고, 연구비를 덜 받고, 융복합 과목을 폐강하는 것보단 좋지만, 기묘한 찜찜함이 남는다.
양적 성장이 인류 최대의 과제가 되는 순간, 존중이나 행복 따위의 정성적 가치는 도무지 머리를 둘 곳이 없다. 가령 "교직원들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같은 것은 대학 총장의 주요 업적에 들어갈 수 없다. 정량적 평가가 주도하는 세계에서 이러한 정성적인 성과들이란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구성원들의 일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실적을 요구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업을 따 오고 건물을 올리는 쪽이 훨씬 더 근사하고 믿을만한 업적이다.
이러한 경향을 가지고서는 무엇보다도 재정지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정부(시스템이라고 해도 좋다)의 드라이브 앞에서 조직의 고유한 철학 따위를 지킬 수가 없다. 컴퓨터 관련 인기 학과의 정원을 늘리기 위해 심지어 인문/사회 학과의 정원을 빼앗는 일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무자비한 무전공 정책이 지닌 문제점은 누구라도 쉬이 상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정량적 수치를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대학은 이를 선택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당연하지만 조직의 운영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란 것이 늘상 존재한다. 이상적 가치만을 좇으며 모든 재정지원이나 양적 성장을 포기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은 동아리 수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교차하는 제도권의 전쟁통에 들어온 이상 당연히 여러 부분에 있어서 냉정해져야 한다. 거시적 승리를 위해서는 가끔은 일부 가치를 포기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력적인지에 대해 누구보다 냉철하게 인정해야 한다.
다만 조직의 운영이 아닌, 이러한 정량적 평가가 주도하는 세계에 놓여진 개인은 어떠한가를 나는 생각해 본다.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을 정도의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진 와중에 심지어 그럴듯한 직장까지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떻게 재산을 더 늘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니 고민을 할 수는 있지만, 부동산과 재테크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삼켜버릴 정도의 가공한 파괴력을 얻게 된 데는, 결국 개인의 성공이나 삶의 행복을 평가하는 데에도 연봉이나 집 평수, 자동차 종류 같은 '정량적 실적'이 우선하고 있어서는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정성적 성과는 연구 결과의 좋고 나쁨을 수사하는 데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정성적 성과가 유효하다고, 아니 유효해야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질적 평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인간 존엄에 대한 가치까지도 절하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통장에는 40억원이 있다는 사실도 물론 중요하지만(매우 중요하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든지 하는 것들이 삶의 행복에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 지를 상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것을 상기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인문이니 철학, 예술이라고 쓰기엔 조금 거창하지만, 어쨌든도 양적성장에 큰 쓸모는 없는데 묘하게 귀엽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뭉글뭉글해 지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령 오래된 군복이라든지... (아니야).
생후 24개월이 되지 않은 갓난아기 셋과 함께 제주도에 다녀왔다. 지나고 보니 도대체 무슨 깡다구로 간다고 했는지, 아마도 무지한 덕분에 이렇게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1세 무렵에 비행기를 타면 도대체 얼마나 슬픈 것인지 나는 잘 알지 못 하지만 여튼 갓난아기 중 하나가 65분 내내 우렁차게도 울어댔다. 우는 아이에게 이륙한 비행기란 얼마나 가혹하냐면, 마땅히 달랠만한 방법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중간에 내릴 수가 없다. 오열하는 아이를 마주한 부모는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고, 행복한 여행을 꿈꾸며 비행기에 탄 나머지 손님들에게는 기약 없는 대재앙이 펼쳐질 뿐이다.
그런데 "나머지 손님 중 하나"인 나는 당연하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애는 얼마나 힘들까, 부모는 얼마나 난처할까 같은 걱정이 먼저 들었다. 저 부모들은 얼마나 개념이 없길래 저런 갓난아기를 비행기에 데리고 오는지... 같은 불평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아마도 나 뿐 아니라 누구라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비슷한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뒷좌석에서 들리는 모르는 초등학생의 떼 쓰는 소리는 유난히도 불편했다는 점이다. 아이패드에 저장된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하는 아이의 순수한 욕구나 어떻게든 아이들의 미디어 노출을 제한하고 싶은 부모의 사정에 좀처럼 마음이 가닿지는 않았던 것이다. 공공장소에서까지 자기 교육관을 고집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면 어떻게 하냐는 식의 엄격/근엄/진지한 판단과 불평이 초정리 광천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물론 한없이 연약한 갓난아이의 울음과 (보통은 기압차로 인해 귀가 멍멍해져서 우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인식의 체계를 갖추고도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구는 초등학생의 떼를 같은 범주에 두고 생각할 수는 없다. 단순히 친분관계에 근거하여 그런 반응의 차이를 보인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적당히 합리화 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날 갓난아이와 초등학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벽보다 훨씬 높고 견고한 정서적 울타리가 존재한다고 나는 느꼈다.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하여 나는 큰 관심을 둔다. 함께 울고 웃으며 한없는 관용을 베푼다. 그러나 동시에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다. 시비를 가릴 때에는 엄격하고 퍽퍽한데, 특히 울타리 안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 때에는 그 엄격함과 꼬장꼬장함이 극에 달한다. 게다가 그 울타리란 날마다 생동하듯 정교하게 설계되고 재구축 되는 탓에, 이제 내 울타리 안에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울타리를 벗어나지만 않으면 나는 항상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할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토록 견고한 정서적 울타리가 개인의 일상을 영위하는 데 유익한지는 불분명하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건설하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장벽과 별개로 불법이민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합법적인 비자를 들고 국경을 통과한 뒤 비자가 만료된 뒤에도 미국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불법이민자의 대부분인 탓이다. 상당한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하며 유지하는 정서적 울타리 역시 마찬가지, 실상 불쾌한 사건 자체를 제어하는 데에는 큰 효과는 없다. 우리의 일상이란 결국 울타리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토록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이 파편화 되고 또 다원화된 사회에서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전부 울타리를 치다가 보면, 결국 내가 서 있는 영토는 참호보다도 좁은 곳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그렇게 좁아진 정서적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과 안녕이 얼마나 될까 가늠해 보면, 그토록 높고 견고한 울타리를 짓고 보수하는데 드는 정서적 비용을 생각했을 때에는, 뭐 그리 크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지금 당장 울타리를 제거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 역시 언젠가 울타리 밖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재성이랑 정은이를 보러 거제도에 갔을 때 거기 있는 노키드 레스토랑에서 입뺀을 당한 적이 있었다. 불쾌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노키드존이란 요리사 쪽에 부여된 하나의 방어권(?)이며, 나는 여전히 노키드존에 대해 긍정적이다. 다만 어쨌든 그제서야 나는 갓난아이의 부모란 여러모로 분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몸소 경험하게 되었다. 아이가 있으면 관광식당 말고는 갈 수가 없다는 것이 뭔가 모르게 서글퍼지기도 하였다.
'나 역시 언젠가 울타리 밖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이러한 인식이 순식간에 울타리를 허물수는 없지만, 최소한 노키드 레스토랑에 가지 못 해 속상해 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다. 그리고, 뭐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무릎반사와 같이 불끈 솟아 오르는 불쾌함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고 내가 입은 피해에 완전히 무감한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다만 내 쪽이 경험한 불쾌함의 크기와 동시에 상대방이 처한 난처한 상황 역시 같이 헤아릴 수 있는 정도 말이다.
학교에 있다보니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상담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에게 공감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또 절망하게 된다. 아마도 거기에는 그러한 견고한 울타리가 한 몫을 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 본다.
공무원 집단에서 일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안 된다'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은 '원래 안 됩니다'이다.
그러니까 뭐가 안 되는데, 그 이유가 '그 전에 그렇게 한 경우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들을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이 무적의 논리는 공무원 집단을 구성하는 하나의 정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하니 정말이지 공무원 집단의 생활은 매일이 감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100원을 주고 산 노후한 장비가 있다고 치자. 4-5년이 지난 현재의 가치는 60원 정도. 그런데 이걸 고치려면 80원이 든다면, 이 경우 굳이 장비를 고치는 것보다 버리고 새로 사는게 싸니까 버려도 된다고 규정에 나와있다. 이처럼 규정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합리적이다.
문제는 담당자한테 장비를 버려도 되냐고 물어보면 '안 된다'고 한다는 것이다. 장비 불용에 대한 규정집, 담당관과 나눈 이메일 내용, 80원이 필요하다는 수리 견적서 등을 잔뜩 가져가서 보여줘봤자 '그렇긴 한데(이미 알고있다) 이전에도 내용년수가 남은 장비를 버린 경우가 없다. 그냥 3년 후에 기한을 채워서 버리는게 낫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고철 덩어리를 3년간 창고 어딘가에 깊숙히 박아두는 비효율을 참으면, 매년 장비 활용 여부를 조사하는 분에게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충 뭉개기만 털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십년간 검증된 '장비 불용의 성공열차'에 올라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굳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봤자 염병에 불과하다. '왜 장비가 고장났죠?', '왜 관리를 제대로 안 했죠?' 같은 소리나 듣고 말지도 모른다. 다른 얘긴데 장비 조사관에서 '저희 장비 잘 안 씁니다' 고 해봤자 '그렇긴 한데(이미 알고있다) 그냥 잘 쓰고 있다고 하는게 낫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효율과 혁신보다는 안전빵이 더욱 중요한 공무원 집단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감히 거스르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굳이 최상급자와 통화하여 '버려도 된다는데요?' 같은 확답을 듣고 기어코 장비를 버리겠다고 여럿을 괴롭혀봤자 결론적으로 집단 전체의 효율은 굉장히 떨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단계의 결제와 서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책임자가 되어버리는 이 시스템에서는 '그 전에 한 경우'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수 밖에 없다.
다만 내가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은 이러한 [안 되는 이유는 안 했기 때문이다]라는 경향이 단순히 공무원 집단에만 해당되는 정신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꽤나 많은 부분이, 심지어 스스로 진보나 개혁을 자처하는 집단이나 현실에 없는 무언가를 그려내는 예술가들조차도 최소한 행정절차에서만큼은 이러한 보신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 하는 경우를 나는 무척이나 많이 보았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가령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공기관의 업무처리 방식이 일상으로 스며들었다든지), 아마도 해 온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거나 혹은 귀납적으로 학습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아주 가끔은, 집단의 효율이 극도로 감소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어야 하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씩 나는 기어코 장비를 버리는 결정을 하고야 만다. 왜 장비가 고장 났는지, 왜 활용도가 낮은지, 왜, 왜, 왜.... 수많은 문서와 사유서를 적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서명을 해야 하지만, 그래서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듣지만, 공사가 다망하신 본부장이나 부시장과 통화를 하는 수고를 겪으면서도 나는 기어코 버리고야 만다. 아주 가끔은 '그전에 하던 대로 안 해도 그렇게 좆되지는 않는구나'를 확인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사실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그냥 싫어서 그렇다. 왜 그리 싫으냐 물으면 나 역시 예전부터 싫어했기 때문에...(결국 거기서 거기).
미국 토목학회에서 주최하는 EMI/PMC 학회를 시카고에서 한다길래 냉큼 다녀왔다 (놀러).
1. 없는 살림에 거금을 들여 소연 학생과 같이 다녀왔다. 석사과정이지만 운 좋게 발표를 할 기회를 얻었다. 영어도 그렇고 말솜씨도 그렇고 여러모로 나보다 잘 하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면서, 그러면 소연 학생은 나한테 뭘 배우고 있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몰라...
2. 시카고 가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송준호 교수님을 만났다. 이코노미를 타고 가신다길래 왜 비즈니스를 타지 않으시나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는데, 머쓱한 표정으로 '학생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려고...'라고. EMI 펠로우로 선정될만큼 어마어마한 학자이시지만 학회장에서 학생들과 같은 총명한 눈으로 여러 세션을 오가며 학생들의 발표를 경청하시는 모습 역시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분들이 필드에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앞서가며 어떤 모범을 보여주신다는 건 큰 위로와 도전이 된다.
3. 미국의 멋쟁이 연구자들은 최첨단 알고리즘을 쓰는 것보다는 그 툴을 이용해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였고 어떤 목적을 달성하였는지, 즉 기능과 활용 자체에 훨씬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CNN, 심지어 ANN을 쓰더라도 문제만 확실히 해결하면 된다는 느낌이었다. 그 대신 연구의 동기나 문제의 정의만큼은 굉장히 자세하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하는데, 그 덕에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이 사람들이 무슨 연구를 하였으며 왜 했는지 따위를 굉장히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스펜서 교수님이 늘 말씀하시던 '중학교 2학년 조카한테 설명한다고 생각하라'는 말씀이 이런 뜻이구나 싶었다 (이제서야).
4. 샴페인도 4년만에 다녀왔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1주일에 3-4번씩은 가던 단골 로스터리 까페에 제일 먼저 들렀다. 메뉴도 사람도 그대로인 모습에 안도하며, 늘상 앉던 바탑에 자리를 펴고 에디오피아 구지 원두를 아이스로 내려 '얼음 많이 넣어 주세요' 하고 앉았더니 빡빡이 성님께서 4년 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컵에 슥 담아서 주셨다. 어떻게 기억을 하시는 건지 잘은 모르지만 이 곳은 지금이나 4년전이나 (심지어 30년 전과도) 그대로임을 실감하였다.
5. 숙소를 따로 잡지 않았는데, 사보이에 있는 윈필드 빌리지(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초저가 집인데, 그래서 대학원생의 90%가 여기에 산다)에 사는 분께서 여행을 가신다며 방을 내어주셨다. 아이 셋을 키우는 가족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방을 내어주는 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가 보니 '소파에서 주무시지 말고 꼭 안방에서 주무세요' 라는 쪽지가 적혀 있었다. 과연 나는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안방 침대를 내어줄 수 있을까 (사실 가능하다).
6. 생각난 김에 샴페인의 유일한 쉼터 아트마트에 들렀다. 아트마트는 샴페인과 같은 촌구석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부르고뉴 와인, 아티장 치즈, 르쿠르제의 냄비와 그릇, 기타 온갖 예쁘고 비싼 떼기들을 파는 곳이다. 집을 내어주신 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달코자 인텔리젠시아와 스텀프타운의 원두를 한아름 구매하였다. 직원분이 커피를 좋아하냐고 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에스프레소 한 잔을 공짜로 내려주고 원두 한 봉지를 서비스로 주었다. 이러한 '호쾌한 환대'야말로 미국의 정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으면서도, 남의 집에서 잔다는 말에 홈리스로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7. 샴페인에는 고작 2년 머무는 주제에 혼자 마신 와인만 대략 300병 정도가 되었다. 그 중 280병을 구매한 사보이의 작은 리쿼샵에도 방문하였다. 스태프들은 전부 바뀌었지만 맥주를 파는 곳에 매니저가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매니져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매번 자전거를 타고 가서 베낭에 와인 6병을 넣어 가는 모습을 안쓰럽게 보던 중(아닐수도 있다), 비가 내리치는 어느 날 베낭에 와인을 넣는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다. 이 역시 '호쾌한 환대'라고 볼 수 있지만, 역시 홈리스... (2트).
8. 길에서 객사하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어른들도 두루 뵙고 왔다. 그 중 제일 가깝게 지내었던 영감님이 몸이 편찮으시다 하여 제일 먼저 들렀다. 영감님은 영어 하나 안 통하는 그 옛날 무작정 미국으로 가셔서 택시운전과 세탁소, 아이스크림 장사 등 수십년간의 허슬을 통해 기어코 정착하신 그야말로 레알 이민 1세대신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옛날 서울대를 졸업하시고서도 무작정 한국을 등지고 연고도 없는 미국에 이민을 오신거라고 한다. 그 이유는 굳이 여쭤보지 않았다.
9. 다른 이야기인데 샴페인에서 지낼 무렵 미국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에 대한 내용을 배우며 "물을 포도주로 바꾼 시점은 언제일까요?" 같은 걸 질문하셨다. 아마도 뭐 믿음의 순간이 언제인가, 기적의 순간은 언제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셨던 것 같은데, 영감님께서는 조용히 옆에 친구분과 "화이트 와인이었나... 레드면 알았을거 아냐." 라며 심각한 논의를 하고 계셨다. 나는 지난 10년간 그 날 보다 크게 웃은 적이 없다. 이런 분들이 필드에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앞서가며 어떤 모범(...)을 보여주신다는 건 역시나 큰 위로와 도전이 된다.
10. 적어놓고 보니 확실히 놀러 갔다온 게 맞다. 몰라...
박사논문을 다 쓰고 한참 놀고 있던 시절, 김호경 교수님께서 '이건 무조건 된다'면서 빨리 써 보자고 하신 논문 주제가 하나 있었다.
라고 하면 별 거 아닌 일 같지만, 당시 [당일 처리]해야 할 시급한 사안이 하루에도 족히 20개는 되었을 김호경 교수님이 친히 논문을 쓰자고 먼저 제안하신다는 게 최소한 나에게는 보통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박사논문 심사 중 이해성 교수님께서 "standarization인가 그 맘대로 정한 이상한 식(실제 내 맘대로 정한 이상한 식이 맞다) 쓰지 말고, 변위복원 필터를 써 봐라. 이건 엄청 잘 만들어진 필터이다. 내가 직접 해보진 않았지만 신호의 비정상성도 꽤 효과적으로 줄여줄거다." 라고 의견을 주셨는데, 실제로 써 보니까 변위복원이 비정상성 처리나 OMA 결과 안정화에 꽤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김호경 교수님은 '이건 바로 논문이 되겠는데?' 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보통 여기까지만 설명해도 되지만(=아무도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연구실 홈페이지라는 본분에 입각하여 좀 더 자세한 얘기를 써보자면...
가속도와 변위 사이의 물리적인 관계에 따라 가속도를 변위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가속도의 고주파 성분은 각주파수 제곱만큼 감소하게 된다. 그에 따라 저주파 신호가 자연스럽게 최대 지배모드가 되고, 결국 OMA의 시스템 차수를 과대평가하지 않아도 저주파 모드를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시스템 차수를 과대평가함에 따라 실제 물리적인 모드와 무관한 거짓 피크들을 검출하고 여기에서부터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과대평가를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OMA 결과의 변동성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뭐 논문을 내고 난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비교적 명료하게(라고 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한다) 설명할 수 있다지만, 사실 당시 내 입장에서는 '그냥 가속도 신호에 로우필터를 적용한 정도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제로 작업을 그저 차일피일 미뤘다. 뭔가 이 정도를 새로운 논문의 형태로 투고하기에는 여러모로 궁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나름의 [감각]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떼우다 보면 흐지부지 되고 말겠지 하는 마음과 함께...
문제는 여간해서는 연구를 재촉하지 않는 김호경 교수님이 이번만큼은 진행상황을 자꾸 여쭤 보시는 것이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최초의 아이디어를 제공하신 이해성 교수님까지 저자에 합류하시면서 상황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분의 대가가 모여서 한 번 좋은 논문을 써보자고 의기투합한 상황에서 '그런데 교수님들, 이런 정도의 연구가 논문이 될 리는 없지 않을까요?' 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찜찜한 기운으로, 정확히는 '이런게 되겠어?' 라는 마음으로 논문 작성을 마치고 어디에 투고할지를 얘기하다가 나온 저널은 점입가경, 바로 Mechanical System and Signal Processing 이었다. 내가 감히 평가할 깜냥이 되지도 않지만, 어쨌든 MSSP란 여하튼 참으로 유명하고 좋은, 이 쪽 분야에서는 소위 말해 업계 넘버원이라고 해도 무방한 대표적인 플래그십 저널 중 하나이다.
나조차도 그닥 자신이 없는 내용을 상위 1% 저널에 낼 때의 기분을 느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대가 없는건 당연하고, 오히려 교수님들이 리뷰 결과를 받아들고 분노하시면 어떻게 하나, 너 이놈 이런 걸로 학위를 했냐면서 박사학위를 취소하겠다고 하시면 어쩌나, 아 그냥 리뷰어들의 혼쭐을 받아다가 다음 논문을 쓰는 아이디어라도 발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도의 마음 뿐이다.
그러나 MSSP에 투고한 이 논문은, 예상과는 달리 1라운드에서부터 어느 정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몇 가지의 진지한 질문은 있었지만 이미 그 전에 수행한 실험만으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 1라운드 리뷰보다 따뜻하고 온화한 말투의 코멘트를 받아본 적이 없다 (보통은 폐부를 쑤시는듯한 40여개 정도의 질문더미를 마주한다).
그나마 제일 어려운 질문이라면 '변위복원을 쓰면 왜 고주파 성분이 억제되는지 자세히 쓸 것' 정도였다. 이건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추가적인 실험 없이도 답변이 가능한 내용이다. 그래서 대충 Thank you for your valuable comment... 따위로 시작하는 평범한 답변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리뷰어의 코멘트 자체가 까다로운 건 전혀 아니었다.
문제는(사실 문제는 아니다) 이해성 교수님, 뭐 그 당연한 내용을 구구절절 써놨냐면서 'This is a physically natural phenomenon.' 한 줄이면 충분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실제로도 이해성 교수님이 적어주신 것보다 명확한 답변은 없다. 굳이 땡큐니 뭐니 하면서 이해해 달라고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나는 언제 어디서나 납작 엎드려 이 자리까지 온 사람인지라, 교수님을 잘 설득하여 겨우겨우 좀 더 길고 친절한(?) 답변서를 내기로 결정하였다. 결국은 저 질문보다도, 저 질문에 Thank you로 시작하는 답변을 쓰자고 교수님을 설득하는 그 과정이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래 너네 선생님이랑 알아서 해라 하하하하" 라는 교수님의 답변을 들었을 때야 비로소 나는 게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결국 게재확정이 되고 난 뒤, 나는 김호경 교수님께 "솔직히 저는 이게 안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건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셨나요?" 라고 여쭤보았다. 교수님께서는 잠깐 생각하시더니만, "그냥 너무 클리어하니까..." 라고만 하셨다. 아마도 뭐라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안 될 리가 없다는 겐또. 그러니까 이것은 논리라기보다는 감각의 영역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때에 나는 '이건 된다'라고 하는 감각이야말로 교수(혹은 전문가)에게 무척이나 필요한 덕목임을 알게 되었다. 연구를 잘 하고, 논문을 잘 쓰고, 연구비도 잘 따고, 다 중요하지만 역시 그 모든 것의 기저에는 '이건 되고, 이건 안 된다'는 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 감각이 없다면, 거칠게 이야기해서는 기술자는 되었을지언정 전문가의 영역에는 들어가지 못 했다고도 감히 말 할 수 있다. 당시의 나 역시 어떠한 연구결과를 만들어 낼 기술은 있었다. 감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이건 안 된다'는 잘못된 감각이었을 뿐.
'되고 안 되고'에 대한 감각이 날카롭지 않다면 감히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무렵 MSSP 출판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생겨난 기준 중 하나이다.
감각 만능주의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모든 조직이 감각으로 운영될 수는 없으며 전문가의 의사결정이 개별적인 감각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전부 감각이나 감정만 따라다니다가는 비효율과 불공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규정만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지난 십수년간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다. 시스템이 효율과 속도를 최우선의 가치로 추구하는 사이 제일 흔하게 무시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율법 조문에 적힌 텍스트를 뛰어넘어 실제 몸을 움직여가며 갈고 닦아온 '이게 된다'라는 감각이란, 제 아무리 고도화된 시스템이나 정교한 규정이라 해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인간의 핵심 역량 중 하나이다. 나는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건전한 감각'을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교수 혹은 전문가 집단이 다시금 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이건 된다'라는 생각으로 6년만에 MSSP에 논문을 냈다가 1달 반만에 리젝을 받고 적어봤다. 슬프다.
이제와서 이러는 것도 우습지만, 어쨌든 '연구실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계속 써도 되는가' 하는 고민이 문득 들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학부모님께 '홈페이지에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 같은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진지하게 이런 고민이 들 수 밖에 없다.
우선은 형식적으로는 연구실 홈페이지이니 내 마음대로 이렇게 적고 싶은 걸 적어서는 곤란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담한 규모라고는 해도 어쨌든 4-5명 정도의 구성원이 있는데 그들의 의견을 물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립대 공식 홈페이지 구석 어딘가에 게시판이 하나 있고, 거기에 총장님께서 2주에 한 번 꼴로 시립대 식당 메뉴에 대한 리뷰 같은걸 올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면... 음 이 쪽은 오히려 좋은데.
여하튼, 그래서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막상 연구실의 학생들에게 매번 '안녕하세요. 이런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려고 하니 결제를 바랍니다' 라고 한다면 이 쪽은 이 쪽 나름대로 더욱 끔찍한 일이다. 학생들은 연구실 홈페이지가 있는지도 모르거니와 이런 글을 끝까지 읽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하물며 뭔가 불만이 있다고 해도 '죄송하지만 세번째 문단의 홍어 이야기는 사족입니다' 같은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근본적으로는 이런 생각과 의견을 계속해서 공개(?)하는 까닭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단순히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해서라면 아무래도 한참 잘못된 방법이다. 인구 42명 정도 되는 인천 섬마을 어딘가에서 새벽 3시마다 정기공연을 하며 전국민의 호응과 관심을 기대하는 꼴이다. 정서적 해소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굳이 그 창구가 연구실 홈페이지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당연히 이런 글을 계속해서 쓰는 까닭은 내 마음... 이지만, 그 최초의 동기에는, 서울대학교 황진환 교수님의 연구실 홈페이지와 조선대학교 김형기 교수님의 연구실 홈페이지가 있었다. Research Interests에 적힌 수많은 연구주제야말로 그 연구실을 소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저런 진솔한 글과 의견들을 통해 막연하기만 한 연구실/PI의 정서나 철학 따위가 조금이나마 드러날 수 있다면 그것도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글을 쓸 때에는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옮기는 데 최대의 목적을 둔다. 투박하고 정합성이 떨어질지언정 최대한 정직하고 자연스럽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탈고를 하지 않고 한 번에 프리스타일로 써 버리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어떠한 필터를 통과할 때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괜찮은 경향'이 섞이게 되고, 그렇게 실제의 나보다 좋은 사람인 척을 하다 보면 결국 최초의 동기와는 전혀 무관한 엉뚱한 말이나 지껄이게 된다.
그리고, 그래서 여기에 글을 쓰는게 좋다. 온갖 거짓말과 과장, 그 외에 온갖 있어 보이는 척을 하는 것이 직업적 소명인 사람으로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 과정을 통해 어긋난 정서를 조금이나마 교정할 수 있다. 특히나 변변찮은 연구결과를 가지고 마치 인류 식량난이라도 해결한 사람마냥 온갖 미사여구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보고서라도 쓰고 난 뒤에는 꼭 이 곳에 꼭 방문하여 이런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연구성과의 사회적/경제적 기대효과 같은데 '잘 안 풀리던 문제를 해결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같은 걸 적어도 된다면 참 좋을텐데 (안 좋음).
내가 처음 시립대에 지원할 당시를 돌이켜 보면, SCI(E) 논문 숫자가 대략 10개 남짓이었다.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을텐데, 당시에 잡마켓에 나와 있었던 연구자들의 실적이 최소한 20개는 훌쩍 넘었으니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라한 혹은 처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당시 시립대의 실적평가 기준인 3년 내로 따지면 살아남은 논문은 고작해야 5개. 그러니까 사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어떻게 임용이 된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혹시 아시는 분 있나요?
이처럼 나는 논문을 많이 쓰지도 못 하고 그렇다고 잘 쓰지도 못 한다. 지금도 어쨌든 연구를 업으로 삼고있는 주제에 여전히 1년에 고작 2-3개나 겨우 쓰는 정도이니, 일반적인 서울 시내의 사립대였다면 매주 이사장실로 불려가 조인트를 맞는 불우한 조교수 생활을 보내다 결국 4년 내에 정리해고를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오세훈 시장님이라도 이런 근무태만의 실태를 안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으시겠지만 다행히 시장님은 공사가 다망하신 탓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놀랍게도 논문을 쓰는 행위 자체를 썩 좋아하는 편이다. 감히 말하건대 나는 논문을 잘 못 쓰는 사람 중에서는 논문 쓰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 (주: 홍어를 싫어하는 사람중에 홍어를 제일 많이 먹었다는 현수형한테 배운 표현이다).
운 좋게도 나는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논문을 썼다. 보통 다양한 외부적 요인들로 인해—과제 실적을 채우기 위해,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승진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논문을 쓰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다. 대학원 때는 늘 연구재단 과제만 해서 실적을 채운다는 개념이 없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실적이 변변치 않은 때, 그러니까 '이제는 억지로라도 뭔가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던 중 덜컥 임용이 되어버린데다가, 그렇게 임용된 시립대는 감사하게도 실적 압박이 거의 없다.
그런 경향이 마냥 좋으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이렇게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논문만 쓰다보니 당연히 논문의 양은 현저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외부적 요인이 트리거가 되어 논문을 강제적으로나마 꾸준히 작성하다 보면 확실히 연구 자체에도 좀 더 성실하고 치열하게 임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렇게 '논문 작성'의 체질이 한 번 형성되고 나면, 논문을 쓰는 스킬 자체가 향상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질이나 임팩트 역시 좋아지는 경우를 나는 무척이나 많이 목격하였다.
그럼에도 이 쪽 나름의 장점이라면, 논문을 작성하는 행위나 과정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데 있다.
절망적인 영어 실력으로 되도 않는 영작을 수행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온갖 조악한 문장들을 모아 문단을 구성하고, ChatGPT의 교정을 받아 다시금 하나 하나 과장된 표현들을 뜯어 고치고, 두서 없이 워드에 가득 쌓인 문단 꾸러미들을 옮기고 조립하고, 그렇게 희미하게 논리적 흐름을 형성한 뒤, 가설과 결론의 정합성을 조탁하고, 각종 시각화 툴로 그럴듯하게 꾸민 뒤, 최종적으로 투고본 PDF를 다운로드 받는... 그 과정만으로 나는 이미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결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이너 리뷰의 경우 나는 오히려 '이렇게 통과되어도 되나?', '제대로 본 건 맞을까?' 와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오히려 선호하는 쪽은 메이저 리뷰에 심각한 질문 수십개가 왔을 때이다. 질문을 하나하나 읽으며 부족한 부분을 성찰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하고, 추가실험을 설계하고, 새로운 결과와 기존 내용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최대한 납작 엎드려 답변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꽤나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는, 물론 게재가 되면 제일 좋지만, 리젝이 되어도 아주 속상하지는 않다 (조금 속상하다). '인류가 이렇게 발전했는데 이 정도 소박한 지식과 발견을 굳이 잉크값 아깝게 찍을 필요는 없잖아' 정도는 오히려 내 쪽에서 충분히 실감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심사결과나 외부의 평가보다 궁극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건, 어쨌든 또 한 번 논문이라는 걸 쓰기로 결심하였고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완주해 냈다는 만족감이다.
물론 만족감이라고 해서 '마냥 즐기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쓰고 싶은 논문을 쓰고 싶을 때 쓴다고 해도 거기에는 굉장한 수고와 노력, 인내, 심지어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 영작을 수행하는 것도, 도무지 보이지 않는 논리의 흐름을 찾아 헤매는 일도, 내가 하는 일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차가운 질문에 납작 엎드리는 것도, 그 무엇도 주말 오후 침대에 누워 침착맨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 즐거울 수는 없다 (당연하지만).
평균 수면시간이 4시간인 것으로 유명한 텍사스 A&M의 기석이는 '학생이 드래프트를 보내면 무조건 그 날 안에 피드백을 준다'라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소시민이 그 정도에 이르긴 어렵겠지만 어쨌든 논문을 쓰기로 결심한 순간부터는 이처럼 각자의 고통을 감수하고 어떠한 쾌락을 포기하면서까지 논문 작성에 몰두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고로움이 마냥 감정적으로 즐겁기만 할리는 만무하다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상상만 해도 왠지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만족감은 단순히 감정적인 기쁨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여기서의 만족감이란 곧 (1)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2) 내가 관심있는 내용에 대해 (3) 누군가가 알아듣기를(혹은 흥미를 느끼기를) 기대하며 (4)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감각이다. 이 감각이 존재하는 한 다른 것들—심사 결과, 인용 횟수, 수상이나 세간의 관심—은, 물론 있으면 당연히 너무나 좋지만, 없다고 해서 크게 낙담하지는 않게 된다. 그리고 이 네 가지의 조건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곧 쓰고 싶은 논문을 쓰고 싶은 때에 쓰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침대에 누워서 침착맨을 봤다. 빨리 또 써야 하는데...(하품)
의사증원이 필요한지 아닌지 나 같은 범부는 잘 알지 못 한다. 당장 2023년에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은 내가 무슨 말을 보탤 자격이 있으리오.
다만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아주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전문인 직업군을, 이렇게 전국민이 똘똘 뭉쳐 개썅시정잡배범죄자 수준으로 취급해 버리는 분위기란 직감적으로 뭔가 위험하다고 느낀다. 인터넷에서 매일같이 펼쳐지는 멍석말이에서는 묘한 위화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가령 뉴진스의 민지가 칼국수 때문에 작성한 사과문을 보는 것처럼, 이강인 누나 인스타에까지 가서 염병을 떠는 광경을 마주할 때와 같은 위화감 말이다.
물론 이러한 멍석말이가 갑자기 의사라는 직업군에만 가해진 것은 아니다. 임기 초 낮은 지지율로 고생하며 취임덕 소리까지 듣던 정부가 최초로 '선방'했다고 평가받는 지점은 화물노조의 파업을 강경하게 진압했을 때였다. 그때만큼은 남녀노소 좌우여야 모두가 하나되어(아마 의사들 조차도) 화물노조를 개썅시정잡배범죄자 취급하였다. 업무복귀명령이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민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노동자의 집단행동(혹은 파업)에 대한 이러한 전국민적 거부감과 멍석말이란 실상 이전의 노조들이 보여온 폭력성과 막무가내 씥에 대한 반대급부일 것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노조들은 구태의연한 방식의 폭력적 투쟁을 일삼고 있으며, 시위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실상 국민들의 공감대를 사데에는 그닥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와중에 노동자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달라는 말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술한 바와 같이 직감적으로 느끼는 위험함의 지점에는, 나 역시 언제라도 그 멍석말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실감이 존재한다. 이미 R&D 예산 삭감의 이슈, 정원 50% 무전공과 같은 괴이한 연구/교육 정책들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금도둑, 카르텔, 날강도, 경우에 따라서는 개썅시점잡배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제 아무리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해도 그런 취급이 썩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발생한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시스템이 만들어 낸 오답과 실수를 해결하는 것이 곧 역사가 발전해 온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과정에서 노동자 하나 하나가 느끼는 무력감과 허탈함이란 쉬이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긴다.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를 미워하고, 서로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적 경향을 단순히 시간과 재정, 체계와 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일국의 대통령까지 깜빵에 쳐 넣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권력은 오늘도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기에 합당한 수많은 근거를 제시한다. 그들 말대로 어쩌면 우리는 정말 개썅시정잡배범죄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까지 부르짖을 만큼 빨갱이 state of mind는 아니지만, 최소한 노동자의 한 사람인 우리만큼은 각자가 일상에서 구현하는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숭고한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스템이 만들어 낸 오답과 실수를 해결하는 길이란,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진 서로의 가치와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오후 5시 14분에 연구실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세금도둑 소릴 들어도 할 말은 없다.
대한토목학회에서 운영하는 영문논문집 KSCE Journal of Civil Engineering 이 있다.
1997년에 처음 창간되어 2010년에 처음 JCR 랭킹을 받았다고 한다. 임팩트 팩터는 2.2 정도이고 JCR 랭킹로 보자면 토목공학 분야에 리스트 된 139개 저널 중 87위이다.어느 저널이 다 그렇듯 가장 논문을 많이 내는 국가는 중국인데 2위가 한국이라는 점이 썩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 외에도 이란, 인도, 튀르키예, 호주, 말레이시야, 일본 등 주로 아시아권에서 많이 내는 것 같다 (10위권에 미국과 영국도 있긴 하지만).
JCR 분류가 Q3이니까 아무래도 요새의 연구자들이 선호할만한 저널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나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는 이래저래 '무슨 일이 있어도 Q1에 내야만 한다'는 분위기 같은게 있기 때문에, KSCE에 논문을 투고한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소위 MDPI나 Frontier를 위시로 하는 약탈적 저널이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Editor-in-Chief를 비롯한 에디터진은 말 그대로 각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할만한 교수님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 역시 세 번 정도 리뷰에 참여한 적이 있었고 전부 리젝을 했는데, 당시 에디터 분들은 모든 리뷰어들의 의견을 (당연하지만) 100% 존중해 주었다. 약탈적 저널의 에디터들은 출판이 곧 돈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게재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리뷰어들을 회유한다.
다른 이야기인데 작년에 간 이탈리아 학회에는 일본 교수님들이 꽤 많이 오셨었다. 야수(Yasutaka Narazaki)의 말로는 후지노(Yozo Fujino) 교수님이 꽤 오랫동안 주력으로 참여하신 덕분이라고 했다. 어쨌든 야수 덕분에 몇몇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저녁도 같이 먹었는데,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일본 토목학회에 대한 불만이었다.
요약하자면,일본 내부적으로 꽤 활발한 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논문집에 실리는 논문의 수준 역시 꽤 높은 반면, 국제화에 대한 노력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학술대회 발표는 거의 대부분 일본어로 진행되고(뭐 이건 토목학회도 마찬가지이지만), SCI(E) 수준의 영문논문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하다. 중국에서 일본 토목학회의 학술대회에 참여하려면 초청장이 필요한데, 그런걸 발급하는 프로세스도 없어서 함께 가려던 학생들이 꽤나 고생을 했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야수는, "수준이 어떻든, 자국 기관에서 운영하는 국제적 수준의 영문저널이 있다는 건 좋은 것이다"고 하였다.
중국은 대학마다 자체적인 저널을 만들고 SCI(E) 인덱스를 얻어내는 데 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야수가 속한 저장대학교에도 꽤 순위가 높은 공학저널이 2-3개 정도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실제 저널의 수준 대비 임팩트 팩터가 부풀려진다는 부작용도 존재하지만, 어쨌든 그러한 '으쌰으쌰'를 통해 여러가지 연구가 촉발되고, 국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연구적 관점에서 보다 개방적인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 야수의 말이다. 저널이란 결국 학술 공동체가 소통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국경이랄 게 존재하지 않는 학문의 영역에서 굳이 '자국 저널'이 무슨 가치를 지니는지 나는 완벽히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전 세계에서 한 해에 5천편 이상의 논문이 투고되는 저널을 십수년간 유지해 왔다는 그 '으쌰으쌰'만큼은, 그 저널의 랭킹이나 평판과는 별개로 분명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 소연이와 했던 연구를 KSCE에 투고하며 적었던 것인데, 합리화가 아닌가 싶어 삭제했던 것을 오늘 게재 확정이 되어 다시금 적어본다. 참고로 리뷰어의 코멘트는 무척 정확하면서도 터프했는데, 수년간 연마해 온 납작 엎드리는 전법을 통해 겨우 통과되었다.
디씨트라이브 시크릿 게시판에 '면 마스크가 의사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논문에 관한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내용의 논문과 기사였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실험 설계가 다분히 의도적이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논문이다', '기사가 악의적이다' 라는 식의 악플을 게시하였다. 믿음 내지는 개인의 호불호가 진리의 척도가 된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임팩트 팩터가 19에 육박하는 공신력 있는 저널의 피어리뷰 시스템도 검찰 조직의 사주이자 적폐청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정확히는 '믿고' 있던) 상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서른이 넘어 가면서는 이처럼 상식의 일부가 무너지는 순간이 꽤나 뻐근하게 다가온다.
가령 떨어진 음식을 평생 먹고 살아 온 나는, 당연하지만 왠만한 사람의 지적 따위는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미생물을 전공한 기섭이가 그런 행동은 위험하다고 충고 할 때조차 나는 좀처럼 이 습관을 고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지난 40여년에 걸쳐 주워먹기라는 실험을 성실히 수행한 결과 나는 여전히 건강하고 (심지어 미생물을 전공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진 그 친구보다도), 그러니 귀납적으로 괜찮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저 내가 편하고 좋아하는 것이 상식이자 진리이다. 내 상식과 호불호를 뛰어 넘는 명백한 진리를 마주하였을 때 나 역시 그냥 '검찰의 사주일 것이다' 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여하튼 당시에 나는 코로나 관련한 논문들을 전공 논문보다 열심히 챙겨 보았는데, 그 쪽 씬(?)에서는 확실히 같은 날 같은 저널에 출판된 논문조차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꽤 많았다. 이는 연구 목적의 차이일 수도 있고, 그에 따른 실험 설계의 차이일 수도 있고, 근본적으로는 각 연구자에게는 분명히 의도라는 게 존재하니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보통은 이 의도를 '가설'이라고도 부르지만, 내 생각엔 이것이야말로 '믿음'에 가깝다.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진실을 빗겨난 결과들도 피어리뷰를 통과하여 출판되었을 수 있다. 나온지 이틀만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아닌 것 같아요.' 라며 긁적거리는 장면들을 나는 실제로도 목격하였다. 실험 설계가 의도적인가? 누군가의 사주 때문인가?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을까? 뭐 그랬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 방법론 자체에 동료들과 저널이 출판을 동의한 것이라면, 코로나 초창기와 같이 무지한 상태에서는 이러한 '틀린 결과'조차도 사례와 의견으로서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적당한 틀림이 쌓여야만 비로소 진리의 경계를 가늠할 수가 있다.
코로나에 대한 정책은 정교하고 빈틈이 없어야 하지만, 코로나에 대한 연구는 태생적으로 불완전하고 틀릴 수 밖에 없다. 실제 인류의 지식이란 과거의 믿음과 상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통해 진보해 왔다. 모든 혼란은 우리를 보다 완전한 이해로 인도할 것이라는 상호 신뢰야말로 리서치 커뮤니티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나의 상식이나 취향, 혹은 지지하는 정책과 다르다고 해도 검찰의 사주나 적폐청산의 대상이라고 치부하지 않아도 된다.
나와 다른 생각과 가치관의 사람일지라도 결국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와 비슷한 세월을 무탈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 쪽의 대갈통 역시 내 머리통 만큼이나 꽤나 굵직하고 튼실할 것이며, 서로의 다름을 통해 우리는 보다 나은 세계의 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상호신뢰가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면 참 좋지 않을까.
작년 여름에 이탈리아에 학회차(=놀러) 방문하였다.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국제학회였는데 여러모로 많은 걸 느끼고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결심 따위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으므로...
유럽의 역사적인 도시에 방문할 때마다 놀라는 것은, 과거에 지어진 인프라들이 현대적 맥락 안에서 여전히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숙소로 지낸 곳도 600년 정도 된 건물을(이 정도면 꽤나 신식이라는 주인의 너스레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리모델링 한 아파트먼트였는데, 내부야 에어컨도 있고 현대식 화장실도 있지만 어쨌든 건물 자체의 외관은 600년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풍경은 말 그대로 참 [자연]스럽다. 수백년전에 만들어진 낮은 층의 석조 건물에는 인공적인 외장재나 조형물을 찾아볼 수 없다. 자연으로부터 온 재료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외장재의 색감은 수백년에 걸친 '에이징'이 더해져 기가 막히게 톤다운 되어 있다. 그런 파스텔 톤의 무채색 사이에서 눈에 띄는 색조를 담당하는 건 나무나 꽃과 같은 자연 뿐이니, 말 그대로 [자연스럽다]고 밖에 할 수 있는 도시의 풍경이다.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괴상한 골목을 누비는 동안에도(사실은 길을 잃었다),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풍경에 몇 번이고 감탄하였다.
이처럼 옛것을 오랫동안 지키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낭만적 태도에는 당연히 세금이 붙는데, 바로 불편이다.
예를 들면 오래된 트램 노선의 경우 나무로 된 한칸짜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동계나 내부 시스템이 일부 현대화 되었다 해도 어쨌든 오래된 탓에 꽤나 자주 고장이 나는 모양이다. 10일 정도 있는 나 조차도 무려 3번이나 원인 모를 고장을 경험하였으니 말이다. 35도가 넘는 날씨에 땡볕에 가만히 멈춰선, 에어컨도 없는 트램 안에 꼼짝 없이 갇혀있는 것도 굉장한 고역인데, 그러다 갑자기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전부 내려달라고 지시하는 기사님의 손짓을 경험할 때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솟구쳐 오른다(사실은 이 때도 길을 잃었었다).
그러나 무슨 굉장힌 천부인권이라도 침해된 냥 억울해 하는 나와는 달리, 이탈리아 사람들은 (마침 그 세 번의 경우에만 그랬는지 몰라도) 마치 늘상 그래왔다는 듯 퍽이나 쾌활하게도 내렸다. 뭐랄까, 나무로 된 한 칸짜리 1번 트램을 타는 주제에 페라리 같은 성능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트램에서 내려서 몇 명은 '이 참에 이 동네 괜찮은 와인샵에 갈래?'라는 듯 어딘가로 걸어가고(상상입니다), 몇 명은 무슨 일인지 기사님께 물으며 안타까워하고, 심지어 몇몇 오지라퍼들은 기어코 엔진을 같이 돌보기도 한다.
이러한 불편에 대하여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는, 즉 "이 정도 멋을 경험하는 비용으로 이 정도의 피해는 응당 감수하겠습니다"와 같이 합의된 사회적 관용이야말로 도시 전체가 낭만적인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나는 느꼈다. 고작 10일이나 있었던 관광객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물론 모든 사회에서 이러한 낭만을 기대하긴 어렵다. 특히 서울과 같이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들이 산재한 도시에서 무작정 "불편을 감수하자"는 건 사실상 공상에 가깝다. 저층 빌라와 골목 구석구석의 아름다움운 정취들이 지켜지길 바라는 사람들 중에는 막상 신축아파트의 살며 해방촌의 밤풍경을 베란다에서 소비하는 그런 이중적인 사람들도 꽤나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1번 트램 같은 것은 도시유산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서는 막상 엔진이 멈춰 기사가 내리라고 하면 당장 환불해달라고 길길이 날뛸지도 모른다 (나처럼).
다만 요새와 같이 모든 경우에 대하여 불편을 제거하는 방향으로만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은 조금 아쉽다고 해야 할까. 오래된 골목을 정비하고 상하수도 시스템을 개선하는 사업은 환영하지만, 무작정 새로 지은 무색무취 건물에 대충 쑤셔박아 놓은 황학동 풍물시장이란 정말 끔찍하다. 무엇보다 이렇게 한 번 잃어버린 낭만은 도무지 재현이 불가능하다. 억지로 재현한 낭만이란, 레트로니 뉴트로니 하며 엉성하게 재현해 놓은 80년대 복고풍 식당의 메뉴판만큼이나 구리다.
기술의 발전이 일상의 윤택함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사이 낭만과 불편은 도시문화의 깊이와 여가생활의 다채로움에 기여한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 인간 생존에 필요한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요즘이야말로, 조금의 낭만과 불편을 추구해도 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공간이 부족해 난리인 상황에서도 기어코 4-5층짜리의 고즈넉한 적벽돌 건물을 세우는 서울시립대의 캠퍼스가 그래서 나는 참 좋다 (강건너 불구경).
나는 기본적으로 '인적이 드문 곳에 무언가를 꾸준히 기록하는 행위'를 좋아한다. 예전에는 싸이월드 프로필에 '수정' 버튼을 눌러서 글을 썼고, 지금도 아무도 모르는 텀블러 같은 곳에 마치 다잉메시지처럼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연구실 홈페이지에조차 이런 쓰잘데기 없는 글들을 '꽤나 꾸준히' 적고 있다.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이러한 행위를 수십년간 이어온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건대, 이 쪽에는 이 쪽 나름대로의 확실한 효용이 있다.
우선은 불필요한 말실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적지 않으면 결국 사람을 만나 입을 열어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보통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그나마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는 '글'을 이용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그래도 가장 진심에 가까운 무언가를 형체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글이라도 찌끄리고 나면, 입을 열어 마음의 생각을 배설할 욕구가 현격히 줄어들기도 하거니와 혹여나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조금은 정돈된 생각을 말 할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숫자의 독자(?)는 기록의 기능을 완수하는데 있어 무척 필수적이다. 너무 많은 사람은 오히려 곤란하다. 수천명이 보고 있는 곳에 글을 쓴다고 하면 어쨌든 조금은 '척'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는 결국 내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완전히 솔직하게 꺼내어 둘 수 없어 배설의 욕구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찝찝하게 남아버리게 된다. 그렇다고 독자가 아무도 없는 것도 문제이다. 기본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의 욕구를 달래는 용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적이 드문' 이러한 곳은 필수적이다.
더불어 나는 나의 기록물들을 다시 복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90% 정도는 '왜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10% 정도는 '이 때는 이런 시절을 겪고 있었구나' 싶어진다. 대충 살고 있을 때에는 전투력 만땅인 상태의 글을 보며 반성하기도 하고, 잔뜩 경쟁의식이 돋아있을 때에는 현자타임에 쓴 글을 보면 머쓱해하기도 한다. 연구의 성공률(연구의 성공이 뭔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이나 논문의 Acceptance Rate와 비교해 보면, 10%라는 것은 실로 굉장한 스코어이다.
이러한 '인적이 드문 곳에 하는 꾸준한 기록의 행위'에 있어서 한 가지의 룰이 있다면, 탈고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좋은 글쓰기란 기본적으로 간결해야 한다. 그래서 공식적인 글을 쓸 때에는 여러 번의 탈고를 거쳐서 최대한 불필요한 수사를 제거해야 한다 (적어도 저는 그러한데요). 다만 이 쪽에서는, 최대한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야말로 생각의 흐름을 따라, 아무렇게나 타자를 친다. 이렇게 할 때에 비로소 '배설'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나중에 만날 때 슬쩍 알려 주십시오 (10명이 넘는 그 날 홈페이지를 없애겠다).
R&D 카르텔 이야기가 처음 나온게 대략 2023년 6월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쨌든 R&D 예산안 하루를 앞두고 대통령이 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는 말이 대략 시작인 것은 분명하다. 이후 연구의 시급성이나 부처/사업별 성과의 완성도, 다 떠나서 카르텔인지 아닌지, 연구비 집행을 얼마나 잘 했는지, 신규 과제인지, 진행 중 과제인지, 아니면 2년간 준비해서 비로소 예산이 배정된 과제인지, 뭐 이런건 아무 상관 없이 마치 감축해야 할 예산의 총액이라도 정해진 양 모든 연구비를 일괄 20-30%를 삭감한다는 계획안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나왔다.
정부 입장에서는 당장 세금이 모자라니 어디에서라도 살림살이를 줄여야 했을 것이다. 과학기술이니 연구 따위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분들께서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으니 제일 먼저 R&D 예산부터 터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진심으로 각오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기 부처의 예산은 최대한 확보하면서 다른 부처의 예산은 쓸모 없다고 함으로써 정해진 파이를 최대한 획득하려는 욕망이야말로 모든 나라의 예산이 분배되는 기본 원리라고 한다면, R&D 예산을 줄이고자 하는 타 부처의 합심은 일견 자연스럽다.
문제는 나름 자기 부처 예산을 지키는 차원에서라도 연구비 수호에 앞장섰어야 하는 과기부 사람들이다. 본인들의 예산이 깎이는 수치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작 책임의 주체가 되어야 할 장차관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R&D 예산 삭감의 당위성을 증명하는데 주력하였다. 실제 R&D 카르텔이라는 키워드가 각종 언론을 도배하고 20% 삭감 같은 구체적인 수치가 나온지 6개월 만에 제1차관이 처음으로 한 일은 ETRI에 가서 'R&D 카르텔의 실체'를 대표하는 8개 사례를 발표한 것이었다.
이처럼 카르텔의 실존 여부와는 상관 없이, 심지어 예산처조차 왜 깎았는지 기준을 모르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2024년 연구 관련 예산은 실제로 5조 정도 삭감되었다. 금액은 물론이거니와 연구예산 삭감 자체가 33년만이라고 하니 어쩌면 무척이나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카르텔을 없앤다고 하더니만 정작 개인기초연구나 보호연구 같은, 개별 연구자가 독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시원하게 없애 버렸다. 카르텔 성님들 근처에서 담배 심부름도 하기 어려운, 임용 1-3년차 신임 교수들의 호흡기 같았던 <생애첫연구> 과제는 아에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린 모양이다. 석사과정 1명도 고용할 수 없는 연구비로 도대체 무슨 사리사욕을 누린다는 말인지. 그 와중에 국제화를 적극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원래 존재하던 연구과제 이름 앞에 '글로벌'이란 단어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습은, 과거 MB 시절의 WCU를 떠오르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미 협약이 완료된 연구과제 예산도 일괄 10~30%씩 삭감해 버리는 기괴한 공정함(?)이다. 가령 장비구축과제는 1-2차년도에 장비의 가격과 스펙을 알아보고 3-4차년도에 장비를 도입하는데, 하루 아침에 연구비가 30% 삭감되어 정작 장비대금을 지급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박사후연구원 면접까지 다 봤는데 연구비가 삭감되어 계약을 포기하는 국책 연구소들도 부지기수이다. 정부에서는 마치 이러한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 "예산 조정으로 연구 진행이 어려울 시 중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따위의 메일을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냥 모든 PI들에게 발송한다.
연구비 부정집행 적발시 해당 금액의 10배를 환수한다든지, 혹은 죽을 때까지 국가연구과제를 수행하지 못 하게 하는 식의 초강수를 두었다면 오히려 나는 찬성했을 것이다. 연구비 부정집행의 핵심이라고 하는 식대와 회의비 항목을 없애도 된다 (대신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도 없애려나요?). 그러나 실상 세수 확보 외 실제적인 연구환경 개선 따위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이런 귀찮은 일을 감수할 리가 만무하다. 나는 여전히 과제 선발 체계나 평가 방식, 성과 관리 시스템, 연구비 정산 규정, 부정집행 처벌 제도 따위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 했다.
연구비 파이만 줄어들었을 뿐 연구비 나눠먹기나 갈라먹기 카르텔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전무하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가히 생각컨대, 연구비를 막 쓰던 사람들은 줄어든 파이 내에서 여전히 막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127억원의 연구비를 받아 1년간 1,400만원어치 소고기를 먹었다는 사람들은, 88억원의 연구비를 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1,400만원어치의 소고기를 먹을 것이다.
결국 R&D 카르텔의 주범이나 연구비 부정집행의 화신들은 여전히 개같이 산다. 얼마 없는 연구비 아껴가며 꾸역꾸역 성과를 내던 연구자들은 삭감된 연구비로 더욱 꾸역꾸역 살면서 그 와중에 범죄자로서의 자괴감까지 보너스로 느끼게 된다. [구멍난 세수 확보] 외에는 아무런 효용이 없어 보이는 이 개떡같은 정책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브레이크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예산처에서조차 왜 깎았는지 당최 그 기준을 모르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상치 못 한 '재난'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보통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일련의 연구예산 삭감과 함께 제일 먼저 줄어드는 것은 소고기 회식비가 아니라 대학원생을 비롯한 비정규직 연구자들의 인건비이다. 서울대나 카이스트도 힘들겠지만, 지방대학에서 마이너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비빌 언덕조차 없다. 실제 기초학문의 다양성과 균형성을 유지하고 해당분야 연구인력 양성을 위해 국가차원의 보호·육성이 필요한 분야에 지원한다는 <보호연구>의 내년 신규 과제 수는 무려 0건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1) 이러한 취약계층이나 작은 집단의 '생존'을 위해 사용되는 예산은 비효율적이며, (2) 따라서 이를 수거하여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몰아주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정서가, 현재의 정부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이는 현 정부 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부터 이어져 온, 오늘날 이 시대를 관통하는 헤게모니라고 해도 무방할지도. 그리고 그렇다면, 그간 이 사회를 지탱해 온 성과 우월주의에 은연중에 동참해 왔던 나는 지금의 이러한 R&D 예산 삭감의 피해자인 동시에 부역자(?)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내년도 연구비의 32%가 삭감된 이 중대한 시점에, '어떻게 연구비를 복구할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나는 과연 약자들의 생존에 얼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만약 이웃의 생존이라든지 마이너리티의 존재가 지니는 무게와 가치를 잊은 채 그저 세상의 풍조를 따라 성과와 효율, 속도만을 추구했다가는, 그 언젠가 32%의 연구비를 복구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또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약자들의 고혈을 뽑아다 내 곳간을 채운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연구실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인건비가 줄어도 괜찮다는데, 진짜일까요 (아뇨).
내가 아는 오타쿠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는 오타쿠가 아니다는 식으로 자기의 정체를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장식장 6개를 퍼스트 건담 피규어로만 가득 채운 재익이형(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형 중 하나입니다) 정도라면 누가 보아도 어마어마한 건담 매니아라고 할 수 있지만, 정작 "나 정도면 평균 이하다" 라는게 지난 수년간 재익이형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이러한 자기부인의 농도란 곧 오타쿠의 레벨, 이른바 [덕력]과 비례한다. 이제 막 취미의 세계에 입문해버린 초짜들은 자기가 아는 내용이 조금만 나와도 팔장을 걷고 나팔을 부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오타쿠 만렙들은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말을 아끼고 조심한다. 나 같은 사람이 옆에서 "형이 잘 아는 분야 아닌가요?" 라고 물어도 보통은 손사레를 치고 만다. 나는 오타쿠들이 과시를 위하여 자신의 덕력을 뽐내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보통 그것은 피아식별을 위해 사용된다).
그도 그럴 것이 취미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보다 훨씬 더 지독한 진짜배기들을 마주하게 된다. 집에 더 이상 건담을 놓을 수가 없어서 빈 상가에 월세를 주면서까지 건담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뭐 장식장 6개면 양호한데?' 라는 실감이 드는 것이다.
이처럼 겸손이란 나의 부족함(혹은 평범함), 그리고 타인의 대단함(혹은 비범함)에 대한 인지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속으로는 '내가 너보다 낫다'고 여기는 와중에 그저 겸손한 사람들의 말투나 태도를 따라하는 정도로는 필경 자기비하의 늪에 빠지거나 자아에 대한 지나친 몰두로 이어지고 만다. 단순히 '나는 별게 아닙니다' 하기 전에 '나보다 대단한 사람이 존재한다', 나아가 '내 앞에 있는 사람 역시 나만큼 귀하고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인식이야말로 겸손의 정수라고 할 수 있겠다.
신약시대를 대표하는 사도 중 하나인 바울은 매우 과격한 단어들을 동반하면서까지 자신을 천하게 여긴다. 그러나 거기에서 자기비하와 같은 우울한 그늘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자신의 부족함에 도리어 안심하고, 그래서인지 자아에 몰두하며 드는 감정적 소모도 크지 않아 보인다. 전국 각지에서 시도 때도 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교우들에게도 희망을 두고 따뜻하게 대한다. 진짜배기를 만남으로 발생하는 참된 겸손에는 아마도 이러한 미덕이 자연히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때로는 게으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가령 미국에 포닥을 갔을 때 같은 연구실의 야수(Yasutaka Narazaki)나 베이더스(Vedhus Hoskere)같은 천재 동료들의 위대한 연구성과들을 보면서 속으로 '나 하나쯤은 놀아도 되겠구나' 하며 안심하곤 했는데, 이 때에도 '나 하나쯤은 아무 것도 안 해도 되겠구나' 같은 한량의 태도보다는 '나 하나쯤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도 되겠구나' 하는 오타쿠 정신이 조금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해 첫 월요일 오전 11시 43분에 집에서 한가롭게 테츠야의 커피 레시피를 연습하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뭐 나 하나쯤은 놀아도... (한심)
"일반적으로 ‘주부적’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속성 중에서 대다수는 결코 ‘여성적’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즉 여자가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주부적인 속성을 익혀 나가는 게 아니라, 그것은 단지 ‘주부’라는 역할에서 생겨나는 경향,성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나의 주부생활> 중
어렸을 때 읽을 적에는 '그렇구나' 하고 말았는데, 요새와 같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정확히는 소파에 누워서 누군가의 귀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실제로 묘하게 행동 양식과 성향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청소나 요리, 빨래, 분리수거, 냉장고 정리, 뭐 이런 소위 '주부의 일'이라는 걸 하게 되는데, 사실 평소에 전혀 하지 않던 것이라(죄송) "이렇게 해서 집안꼴이라는 게 유지되고 있었구나" 하며 매번 감탄한다. 하루키가 수필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정말 퇴근하고 나면 '오늘은 뭘 먹을까' 같은걸 고민하며 시장에 가서 몇 가지의 반찬거리를 사고, 오는 길에 꽃집에 가서 꽃도 구경하고, 괜히 집에 있는 화분의 위치를 바꾸어 보기도 한다. 심지어 집안이 깨끗할 때 묘하게 기분이 좋고 (이건 당연한건가), 완벽한 청결 상태를 만들었을 때에 후련함 같은 것도 느낀다.
무엇보다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성향 역시 그에 맞추어 조금씩 변해간다. '주부의 일'이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서포트하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안부에 대해 시시각각 궁금해 한다(조금은 과도할 정도로). 그러다 보면 급기야 연락이 없거나 카카오톡을 늦게 확인하는 것, 저녁밥을 같이 먹지 못 하는 것들에 대해 서운해 하는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동거인의 늦은 귀가는 물론이거니와 "나 없이 잘 지내는 일련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 열렬히 지지하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여지껏 수많은 유부남 유부녀를 보면서, "왜 항상 밖에서 늦게까지 놀고 싶어하는건 남자이고 그들의 이른 귀가를 보채는 건 여자일까"에 대해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뾰족한 답을 얻은 적은 없다. 그러나 생각컨대, 그건 아마도 성별보다는 "누가 더 주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인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누가 더 놀고 싶으냐 혹은 누가 귀가를 보채느냐에 대한 문제 뿐 아니라 사회 통념으로 자리잡은 성별에 따른 역할과 성향, 속성과도 가히 무관하지는 않을지도.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하루키 수필의 전문을 읽어보도록.
학계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하는 여성 학자분들은 이러한 '주부적 성향'과는 반대의 속성을 지닌 경우가 많다. 가족과 일이 겹치면 일을 우선시한다든지, 회식 같은게 있으면 거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다든지 말이다. 수직적 구조나 전통/규범에 대해서도 비교적 순응하는 편이다. 이런 것들은 보통 '남성성', 혹은 '군필자'의 대표적인 속성으로 여기곤 하지만, 이 역시 남성이라는 성별 보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경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령 조직의 다양성을 위한 여성교원 선발 따위에 과연 효용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결국 '주부적 성향'은 배제되고 '사회생활에 능숙한 사람'만을 선발하는 현행 조직구성의 철학 아래에서는 생물학적 성별만 다를 뿐 일과 사람을 대하는 성향이나 속성은 유사한 구성원만이 남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게 뭐 그리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아무래도 한 몸처럼 움직이는 조직을 구성하는 데에는 '사회생활에 능숙한 성향'들끼리 모이는 게 편리하다), 여하튼 정말로 다양성을 추구한다면 정신적 측면에서의 '주부적 성향'에 대한 할당제를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새벽 1시가 넘어 귀가해서는 파김치 같은 몰골로도 기어코 가스레인지에 남아있는 기름 찌꺼기를 닦고 있는 혜선씨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실상 내가 '주부의 일'이라는 걸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럴 때 나는 보통 자는 척 한다).
월등하게 잘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눈으로 보고 실감하는 것은 여러모로 굉장히 좋은 자극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가서 자랑스럽게 발표할만한 연구성과를 거두지 못 하더라도 꾸준히 국제학회에는 참여하려고 한다.
EMI에서는 선호군의 와류진동 탐지와 소연씨의 비지도학습 기반의 손상탐지에 관한 연구를 발표해 보려고 한다. EWSHM은 학기말이 겹쳐 어렵겠지만... 9IWSCM과 RASD는 가능하면 참석하여 직접 발표를 해볼까 한다. 성숙한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키지만, 나는 아직은 직접 발표를 하며 훈련을 해야 하는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작 사우스햄튼에 있는 빈티지 옷가게들을 틈나는 대로 찾고 있다. 이거 원...
(이 글은 2023년에 썼지만, 여하튼 제일 자주 봐야 하는 글이라 굳이 2024년에 남겨둔다)
PS. 이 중 EMI와 9IWSCM에 다녀왔다. 그리고 교토에서 열린 APESS에 가서 스펜서 교수님을 비롯, 훌륭한 선생님들과 교제하는 영광의 시간을 가졌다.
EMI/PMC 2024
May 28-31, 2024
Chicago, Illinois
Abstract Submission Opens - Nov 1 2023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Dec 31 2023
Early Registration - Jan 15 2024
Early Bird Registration ends - Feb 29 2024
EWSHM 2024
June 10-13, 2024
Potsdam, Germany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Nov 30 2023
9IWSCM
June 16-18, 2024
ETH Zurich, Switzerland
Registration Open - Feb 1, 2024
RASD 2024
July 1-3, 2024
Southampton, UK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Oct 9,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