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가 좋아하는 권택이형네 놀러갔다.
신림9동 고시촌 옥탑방에서 10여년을 지낸 형은(이 중 8년을 나와 같이 살았다) 이제 금천구 시흥4동 현대시장 부근에 산다. 사는 곳은 바뀌었지만 주변의 풍경은 무척이나 비슷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에 가는 길에는 작은 시장이 있고, 거기에는 모든 안주가 만원을 넘지 않는 허름한 소주방이나 족히 50년은 되었을 법한 정육점, 두부와 간장을 동시에 파는 반찬가게 따위가 있다. 누가 가는지는 모르지만 수십년 째 망하지 않는 보세 옷가게와 상가 2층에 있는 교회도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그야말로 질서 없이 빼곡히 매우고 있는 연립주택 중 한 곳에 권택이형이 산다.
연립주택(혹은 빌라) 단지에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옆집과 다양한 것을 공유한다. 가령 소리나 냄새 말이다. 저녁 시간이 되면 골목 전체가 다양한 형태의 찌개 냄새로 가득하고, 소리로 따지자면 어린 아이들의 씻기 싫다는 소리부터 유럽 축구 중계, 심지어는 아프리카TV 방송이나 인터넷 강의 소리도 들린다. 그러한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파트 단지에서는 흔히 문제가 되는 층간소음이나 담배 냄새 이슈가 오히려 빌라촌에서는 덜한 느낌도 든다. 아무리 깔끔한 사람이라도 보령 머드 축제 같은 곳에서는 옷이 더러워졌다고 불평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려나.
여하튼 그 날, 형네 집에 가는 길에도 한 아이가 부모님께 혼나는 현장이 골목에 실시간으로 생중계 되고 있었다. 정확한 사유를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왜 하고 싶은 건 다 못 하게 하느냐"였다. 아이가 들었던 예시들 중 생각나는 건 초콜렛 먹기, 친구네 놀러가기, 침대에 눕기, 양치 안 하기, 쇼츠 감상, 그리고 학원 안 가기 정도였다. 정말로 이 항목들을 하나 하나 읊으며 왜 내가 하고 싶은건 전부 다 못 하게 하느냐며 절규하는데, 뭐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꽤 귀엽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하고 싶은 것"에 대하여 부모님의 지지를 받아본 적은 거의 없다 (하지 말라는 것들일수록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지만). 성숙하지 못 한 사람의 어설픈 욕망을 무작정 들어줬다간 세상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적절한 제한과 통제라는 것은 나쁘긴 커녕 오히려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령 절규하는 아이에게 초콜렛을 먹고 친구네 놀러가 침대에 누워 양치를 하지 않고 쇼츠를 감상하다가 학원에 가지 않는 삶을 날마다 허락해 주는 것은 아이에 대한 지지보다는 아동학대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욕망의 제한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하고 싶은걸 제한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걸 학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일들을 먼저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고 해야할까. 실제 우리 주변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에 도달한 사람보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안정적인 행복에 도달한 케이스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러한 수많은 성공담들이 만들어 낸 "검증된 길"의 존재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느끼는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즐거움과는 비할 수 없는 실재성을 지닌다.
연립주택의 절규 키드도 언젠가 초콜렛을 먹고 양치를 하지 않을 때 발생할 문제들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그토록 하기 싫었던 양치를 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이 때에 "사람이 되었다", "철이 들었다", "어른스러워졌다"라고 한다. 결국 한 사람의 사회화 내지 성숙이라는 것은 곧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얼마나 갖추었는지와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날마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결국 나이를 먹을수록 하고 싶은 일들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 중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고 일정 수준의 사회적 성숙을 달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 생겨난 "하고 싶다"는 욕망이란, 마치 무인도에서 겨우 피워낸 불씨와 같이 소중히 다룰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왠만한 욕망 따위 단숨에 꺼뜨려 버리는 강력한 방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기어코 살아남아 존재를 과시할 정도의 욕망이라면, 그건 정말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영혼의 순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이러한 욕망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겐 하찮은 일일 수 있다. 가령 "뉴욕에 생긴 콘반에 가 보고 싶다" 라고 해보자. 지금 당장 대출이자 갚느라 정신 없는 놈이 서울에서 만원짜리 두 장이면 먹을 수 있는 돈카츠를 먹겠다고 무슨 뉴욕까지 가겠다는 것이냐. 우리의 방재 시스템은 이처럼 곧바로 작동하여 욕망의 불씨를 꺼뜨리려 할 것이다. 보통의 욕망이었다면 이러한 삼엄한 방재 시스템 앞에서 잠깐도 견지디 못 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야 말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난 수십년간 담금질해 온 사회적 성숙의 메커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합리적으로 욕망을 잠재워야 할 다양한 이유를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뉴욕에 생긴 콘반에 가 보고 싶다"라는 욕망이 마음 안에 존재하고 있다면, 최소한 그렇게까지 살아남은 욕망만큼은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욕망을 구현하는 것이 효율의 관점에서 완전히 멍청한 선택일지언정, 하고 싶은 일들을 거세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효용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방재 시스템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해도 생각보다 큰 문제는 없다"는 경험의 축적이다. 해야 하는 일이 제시하는 대로에서 아주 잠깐 벗어나더라도, 약간의 불안함만을 이겨낸다면 우리의 인생은 그리 크게 망가지지 않는다는 실감 말이다. 이것이 내집마련에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오늘날 수많은 사회적 성숙을 달성한 이들이 결코 할 수 없는, 바로 "하고 싶은 것을 해버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비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 혹은 "내가 생각할 때 옳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란 가장 결정적인 순간 우리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데 정말 필요하다.
한 때 토목과 학생의 90%가 공기업 취업을 희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공기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1) 시공사나 설계사와 같은 다른 사기업에 비해 비교적 적게 일할 수 있고, (2) 비슷한 업무강도를 지닌 공무원에 비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 이는 모든 인류의 궁극적 목표와도 같으니 당시의 어마어마한 공기업의 인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절 토목 분야 공기업들이란 그야말로 온 사회를 충격과 절망에 빠뜨리는 수많은 사회 비리의 주범과도 같았다. 셀프채용, 부동산 투기, 철근 누락, 부정 수당... 단어만 나열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해지는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거의 매번 토목 공기업이 존재하였다. 그러니까 토목공학과는 곧 잠재적 사회적 범죄자를 양성하는 국가공인 전문 범죄자 사관학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적게 일 하고 많이 번다"는 공기업 인기 포인트와 달리, 실제 공기업의 근본은 이윤이 남지 않는 공공의 일을 하는 데 있다. 공공성을 위해 사기업이라면 결코 유지할 수 없는 낮은 요금과 수익을 유지하는 것이 공기업의 핵심인 것이다. 이러한 목적이 존재하기에 공기업의 구성원이 핵심 정보를 빼돌려 땅투기를 한다는 것은 특히나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게 일 하고 많이 번다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비리의 발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에 불법을 저지르는 것보다 적게 일 하고 많이 버는 건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공기업에서 범죄와 비리를 저지르던 수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적게 일 하고 많이 버는 공기업 정신에 누구보다 충실한 존재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공기업 입사와 동시에 국민의 세금을 슈킹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눈 앞에는 "해야 할 일(각종 비리)"들을 통해 안정적 행복을 달성할 수 있는 명백한 대로가 존재하고 있다. 모두가 그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그 길을 벗어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위험한 선택이다. 어려서부터 담금질해 온 방재 시스템은 빠르게 공기업 정신을 탑재한 뒤 마치 불필요한 욕망을 제거하듯 마음 속에 피어나는 양심의 씨앗들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그렇게 그들은 결국 "남들 다 하는 일"들을 하나씩 수행하며 적게 일 하고 많이 버는 대로를 걸어가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때에, 만약 "방재 시스템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해도 생각보다 큰 문제는 없다"는 실감이 존재한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마음 속 양심이 만들어 내는 불씨를 잘 보관하였다면, 그리고 하고 싶은 것(혹은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해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존재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사소한 비리에는 나약할지언정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만큼은 인간에의 존엄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야근수당 8,000원 정도는 몇 번 타먹었을지언정, 국민의 분노를 자아낼만한 선택의 순간만큼은 "공공을 위해 낮은 수익을 유지한다"는 공기업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지 않았을까.
따라서 나는 누군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것이 시민사회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 수준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 보라고 권한다. 그 덕에 취업의 시간이 늦춰질 수도 있고, 그 행위가 주는 유익이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참 적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았으나 인생이 그닥 좆되지 않는 경험"이란, 특히나 효율과 속도가 제일의 가치가 되어버린 지금의 시대에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실감을 준다고 나는 믿는다. 이 나이 먹고도 하고 싶은건, 정말 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뉴욕에 있는 콘반은 비행기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습니다 (방재 시스템 완승).
2023년 11월, 구조신뢰성(Structural Reliability)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지구인 대표 다섯명을 선발한다고 해보자. 학문이라는 게 스포츠와 같이 줄 세우기가 가능할 리는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누가 뽑든간에 필경 송준호 교수님은 마치 NBA의 스테판 커리나 르브론 제임스와 같이 가장 먼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이처럼 학문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인격적으로도 예수의 재림이라는 소리를 들으시는 송준호 교수님의 지도학생의 박사논문 심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쩌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런걸 하게 되었는지는 심사 4시간 전인 지금도 도무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요새 젊은 학생들이 이렇게 연구를 잘 하고 실력이 뛰어납니다. 그러니까 눈치껏 자리에서 물러나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그런 뜻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도 언젠가 박사학위 논문심사라는 걸 했었다. 대략 5월쯤이었나, 확실한 것은 오후 3시에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오후 2시까지 전혀 씻지 못 한 상태로 35동 지하 1층에서 유찬이가 사 놓은 라면을 끓여 먹으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대략 40시간 동안 깨어 있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발표 직전까지(실은 아직도)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오후 2시 30분, '지금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아니면 발표가 끝나고 뛰어내릴까?' 를 고민하다가 그래도 존경하는 교수님들 마지막으로 얼굴은 보고 가야지 하며 노트북을 설치하러 올라가는 중에 이해성 교수님을 만났다. 학생들의 복장이나 외관에 대해 누구보다 자유분방하신 교수님이셨지만, 대번에 "너 오늘도 이 꼴로 발표할거야?!" 라며 대노하셨다. 이틀 밤을 꼬박 새었으나 얼마나 꼬라지가 개떡 같았을까 싶겠지만, 놀랍게도 나름대로 발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마 오르치발의 보트넥 티셔츠에 빈티지 오피서 치노 바지, 레드윙 9196을 신고 있었는데...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아닙니다. 밤을 새서 옷도 못 갈아입고 못 씻어가지고요."라고 대답하고서는, 2층에 있는 연구실에 내려가 준용이가 입고 온 가다마이를 급하게 빌려 입었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다가 급하게 수도에서 후다닥 머리도 감고 핸드 드라이어에 머리를 말리고서는 '뭐 이 정도면 괜찮은데?'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을 보면, 당시에는 뭔가 외관이나 옷차림에 대한 사회적 감각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던 것 같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치룬 논문심사 결과는 당연히 최악,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렸다. 문자 그대로 머리(=헤어스타일에) 대해서도 혼났으니, 당시에는 도무지 졸업 같은건 무리일거라고 확신했으나 (철환이가 "이참에 다 접고 주식투자나 같이 해 보실래요?" 같은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을 들을걸) 놀랍게도 1달 뒤 종심 때는 다들 뭔가 포기한 듯 "앞으로 잘 해 인마" 라는 정도의 의견 뿐이었다. 박사학위라는 것이 뭐랄까 감투상같은 느낌으로 수여되었고, 속으로는 "정말 이래도 괜찮은건가요?"라는 마음까지도 들었다.
나중에 미국에 가 보니 박사 심사 혹은 디펜스라는 과정은 훨씬 더 엄격하고, 그만큼 심사결과가 나오는 순간은 퍽이나 감동적이었다. 디펜스 날짜를 잡았다는 건 그간의 엄밀한 검증 과정을 어느 정도 통과하였다는 말이므로, 보통 디펜스 당일의 풍경은 평가나 심사보다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가족들이 전부 와서 단체사진을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동문수학한 친구들이 우르르 와서 축하해 주는 광경을 나는 무척이나 많이 목격하였다. 무엇보다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 감히 Ph.D.라는 호칭을 성씨 앞에 사용할 수 있구나' 라는 게, 당시 참관하면서 들었던 마음이었다.
반대로, 감투상처럼 박사학위를 받은 나의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정말 이래도 괜찮은건가요?" 라는 실감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무슨 전문가로서의 마인드 같은게 도무지 심겨질 공간이 없다. 그다지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몇 가지의 우연한 기회들로 굴러가기 시작한 눈덩이가 잔뜩 부풀려져서는, 이제는 남도 나도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괜한 겸손이 아닌 정말 솔직한 심정이다. 한 때는 다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고 있으리라는 정신승리도 해 보았는데, 구조신뢰성 지구인 대표 명단을 생각해 보면 전부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여하튼 심사를 4시간 앞둔 지금, 35동 지하 1층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김민규 학생의 논문을 3번째 읽고 있는데 도무지 꼬투리 잡을 게 없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있는 김에 뭐라도 적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니, 만약 개소리 분야에서 지구인 대표를 뽑는다면 나도 리저브 자리 하나 정도는 차지할 수 있을텐데.
이 나이 먹고도 아직도 만남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썩 괜찮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가령 사회에서 거의 패륜아 같은, 혹은 전혀 통용되지 않은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뭐 굳이 싸움과 갈등이 벌어지기 전에 자연히 헤어졌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각자 살아온 삶의 풍경에서는 어쨌든 어느 정도의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아닐까. 뭐 전부는 아니겠지만요.
다만 그렇게 상식이 통하는 A와 B라고 해서, 삶의 방식이나 습관이 같을리는 없다. 취향이 유사할지언정 삶의 디테일은 분명히 다를 수 밖에 없다.
가령 A는 휴지를 바깥쪽으로 걸고, 설거지는 저녁에 한 번 하고, 샤워를 아침과 저녁에 하고, 화장실을 건식으로 쓰고, 전면주차를 하고, 아침은 거르고, 수건은 한 번 쓰면 말려서 빨래통에 넣고, 분리수거는 3일에 한 번씩 하면서 어쨌든 좋은 사람으로 인정 받고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사람들과 잘 지내왔다.
그러나 B는 휴지를 안쪽으로 걸고, 설거지는 무조건 먹자마자 하고, 샤워는 저녁에만 하고, 화장실은 습식으로 쓰고, 주차는 후면주차로 하고, 아침을 꼭 챙겨먹고, 수건은 하나를 2-3일 정도 쓰고, 분리수거는 매일 저녁마다 하면서도 동시에 좋은 사람으로 인정 받고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사람들과 잘 지내왔다.
따라서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란 바로 [그 두 가지의 대립하는 삶의 방식나 습관이 수십년간 정상적으로 기능해 온 방식이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의 습관에 대한 지적은 도무지 먹힐 수가 없다. 왜냐면 둘 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수십년간 자기의 영역에서는 [괜찮은 사람]으로서 형성해 온 삶의 방식을, 고작 '내 마음에 안 들어서'나 '나랑 달라서'라는 이유 따위로 하루 아침에 고치라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폭력이거니와, 그렇게 바뀌길 기대하는 건 거의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참 이런 저런 지적들을 많이 한다. 심지어 파워포인트의 폰트나 디자인조차도. 내 쪽의 지적이 분명 맞다고 볼 수 있지만, 각자의 방식을 따라 나름의 연구를 잘 하고 있을수도 있는데, 그저 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혹은 내 스타일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지적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부끄러울 때가 종종 있다.
항상 차분하고 오래 참으시기로 유명한 지도교수님은 매사에 즉흥적이고 대충 수습하던 나를 지도하시는 8년간 대략 4-5번 정도나 불러서 짧게 혼내시고 마셨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인내력이 아니었나 실로 감탄하게 된다. 만약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를 지도했다면 어디 기둥에 묶어놓고 10분에 한 번씩 뺨싸대기를 후려갈겼을 것이다.
남들의 인정이나 칭찬을 갈구하는 편은 아닌데, 종종 혜선이에게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 때에는 꽤나 속상하다. 무슨 차이일까.
아마도 나는 생판 모르는, 다시는 볼 일 없는, 혹은 실체가 불분명한 [사람들의 시선]이나 [세간의 평가], 혹은 [사회적 인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잘못된 오해나 비난에 휩싸일 때면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쁘겠지만, 잠깐 생각해 보아도 그런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쉐도우 복싱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처럼 가닿지 않는 존재들의 비난이 실상 내 삶에 미치는 물리적인 영향이란 생각보다 미비한 경우가 많다.
이것은 세간의 칭찬 역시 마찬가지이다. 잠깐 기분은 좋을지 모른다. 뭔가 굉장한 사람이 되었다는 충만한 마음까지도 든다. 그러나 이 역시 비난과 같은 속성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이러한 감정은 금새 휘발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비난이든 칭찬이든 그 평가의 속성이나 경향성과는 별개로, 기본적으로 실물을 알지 못 하는 막연한 존재들의 시선이나 인정 따위는 나에게 아무런 실감을 주지 못 하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실체가 분명한,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존재들의 지지와 인정은 꽤나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의 지지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이다. 동시에 내가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동의하는 사람들의 무시나 비난이라면, 정말 큰 아픔을 준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뭔가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사인이라고도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단순히 기분이 좋고 나쁘고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기말의 강의평가를 볼 때면 항상 큰 아픔을 느끼곤 한다.
한국구조물진단유지관리공학회의 2023년 가을 학술발표회에 참석하였다.
진단이나 유지관리에 큰 재능도 없고, 학회장에 가면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많지 않은게 아니라 거의 없다), 누군가 학회에 대한 노고를 치하하며 연구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무도 나에게 오라고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쨌든 2020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 학술발표회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초대받지 않은 결혼식이라도 축하해 주고 싶은 경우에는 그냥 가곤 한다 (최악).
학술발표회는 [양양 쏠비치]에서 진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런 근사한 곳에서 행사를 개최해야 한다는 것을 십분 이해한다. 여하튼 보통 가고 싶어하는 도시, 거기에 온 가족이 편히 머물 수 있는 리조트 스타일이어야지만 많은 사람들이 출장을 낼 명분과 욕구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 가는 입장에서는, 큰 거실에 방 2개가 딸려있고 식기세트와 인덕션까지 겸비된 숙소가 지나치게 크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공무원 출장비 기준도 훌쩍 초과하여 도무지 묵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보통 학회장 인근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가곤 한다. 가령 강원도라고 하면 해변에 인접하여 서퍼들이 합숙(?)하는 곳에서 지낸 적도 있었고, 좀 더 작은 (쇠락해가는) 도시에서는 벙커베드가 잔뜩 있는 도미토리에서 혼자 묵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매우 을씨년스럽고 좋다). 이번에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골랐다가 이른바 [게스트 하우스 파티]를 하는 곳에 묵게 되었는데, 발표자료를 수정하면서 1층에서 벌어지는 왁자지껄한 청춘남녀의 소음을 듣는 게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올해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정기총회] 같은, 여지껏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행사에 참여하였다. 예결산 내역을 보니 학회는 아주 건실해 보였고 연구과제 수주비는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다는데, 거기에는 [서울역 자이아파트 정밀검사] 같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사건들이 큰 역할을 한 모양이다. 미국에 있을 때 "지진이 나면 UC 버클리에서는 커튼을 치고 샴페인을 딴다"는 농담을 들었는데, 유지관리공학회 같은 곳이 갈수록 번창하는 것을 마냥 좋아할수는 없는 노릇일지도 모르겠다.
새벽에 시간을 내여 [동일식당]에 다녀왔는데 참 맛있었다. 여전히 강원도에는 서울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존재한다.
월등하게 잘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눈으로 보고 실감하는 것은 여러모로 굉장히 좋은 자극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가서 자랑스럽게 발표할만한 연구성과를 거두지 못 하더라도 꾸준히 국제학회에는 참여하려고 한다.
EMI에서는 선호군의 와류진동 탐지와 소연씨의 비지도학습 기반의 손상탐지에 관한 연구를 발표해 보려고 한다. EWSHM은 학기말이 겹쳐 어렵겠지만... 9IWSCM과 RASD는 가능하면 참석하여 직접 발표를 해볼까 한다. 성숙한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키지만, 나는 아직은 직접 발표를 하며 훈련을 해야 하는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작 사우스햄튼에 있는 빈티지 옷가게들을 틈나는 대로 찾고 있다. 이거 원...
EMI/PMC 2024
May 28-31, 2024
Chicago, Illinois
Abstract Submission Opens - Nov 1 2023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Dec 31 2023
Early Registration - Jan 15 2024
Early Bird Registration ends - Feb 29 2024
EWSHM 2024
June 10-13, 2024
Potsdam, Germany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Nov 30 2023
9IWSCM
June 16-18, 2024
ETH Zurich, Switzerland
Registration Open - Feb 1, 2024
RASD 2024
July 1-3, 2024
Southampton, UK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Oct 9, 2023
기술이란 무엇일까.
여러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최소한 돈이 되는 기술이라는 관점에서는 [남들이 하지 못 하는 것을 하는 역량]이 바로 기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아무도 못 하는 것을 해내는 기술을 갖추는 건 어렵다만서도, 뭐 [남들보다 조금만 더 잘] 해도, 혹은 [남들보다 조금 더 수월하게] 해도 밥벌이로서의 기술로서는 충분한 것 같다.
나에게 교육자나 연구자로서 기술이라 할만한 것이 있는가 하면, 슬프게도 그렇지는 않다. 겸손을 가장한 자기비하가 아니다. 박사학위를 받는 순간에 '잠깐만요, 이런 상태로 졸업이라고요?'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사실 나는 여지껏 나만의 무기라 할 것을 개발하지 못 했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연구란 보통의 공대생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MATLAB의 예제 몇 개만 해 보면 정말이지 금새 따라할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요새 학회에 가서 학생들의 발표를 듣다보면, 정말로 나 정도는 쉽게 대체할만한 십수명의 석박사 학생들을 반나절이면 찾을 수 있다. [나는 저 친구들이 하는 걸 못 하지만, 저 친구들은 내가 할 줄 아는걸 더 잘 할 수 있다]는 실감이 들 때에 제일 먼저 드는 정서란 역시 미안함이다. 뭐랄까, 주차장소를 찾느라 방황하는 차들로 가득한 토요일 밤 7시 강남 신세계 지하주차장에 입장하였는데, 마침 내 앞에 빈자리가 나서 손쉽게 주차해 버린 뒤의 느낌이다.
나라고 해서 무책임하게 손가락만 빨고 있는건 아니고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그러나 요새와 같이 모든 기술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시절에 [남들이 아무도 못 하는 기술]을 갖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각 분야의 선구자들은 워낙에 잘 하니 예외로 두더라도, 남들이 하는 거라면 일단 다 해내고야 마는 경쟁적인 이 쪽 동네의 특성상 [남들이 못 하는 것]이란게 거의 없다. 나같은 사람도 인공지능 어쩌구나 컴퓨터 비전 저쩌구를 흉내내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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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는 동안에도 나에게는 교수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의식 같은게 없었다. 교수는 세진이 같은 천재들이나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보다 사실 애초에 어떤 직업이 목표인 적은 정말로 없었다. [이런 페이스로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교수라는 직업이 꽤 좋겠구나] 정도의 마음이 든 것도 잘해야 대학교에 원서를 쓴 이후였다.
다만 [쓸모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꽤나 강했다. 이는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구체적인 목표가 되었고 미국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의 거의 유일한 목표였다. 최소한 이 곳에 있는 동안에는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보자.
내 생각에 쓸모란 두 가지의 역량을 요구한다.
쉬운 예로 칼을 두고 이야기 하자면, 일단은 잘 들어야 한다. 즉 도구 본연의 기능이 어느 정도는 탁월해야 한다. 요리용 칼이라면 야채를 썰 때에 진물이 나지 않도록 예리하게 다듬어져 있어야 할 것이고, 가령 횟감을 써는 칼은 적당한 길이도 갖추어야 한다. 만약 가격도 적당하고, 모양도 예쁘고, 사용에 어려움도 없지만 막상 종이 하나도 겨우 써는 칼이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쓸모 있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에 이 칼은 쓰고 싶을 때 편리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무척이나 예리한 칼이지만 자루당 수십만원이라면 아무 때나 편하게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칼솜씨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손잡이도 큼지막하고 사용하는 데 어느 정도는 안전한 칼이라야 한다. 가격도 적당하고 안전하고 손잡이도 편리하지만 매번 사용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겨우 겨우 빌려야 하는 칼이라면 마찬가지로 쓸모가 있다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즉 쓸모란 기능성과 사용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에만 달성 가능하다. 그리고 이 포인트에서 나는, 사용이 편리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와서 기술적으로 탁월함을 갖추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었고(이건 정말이다), 동시에 세상에는 잘 드는 칼이 너무나 많은 반면 막상 아무 때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칼이 거의 없다는 인식도 한 몫 하였다. 과장을 조금 하자면, 아주 예리하여 무엇이라도 썰어버릴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손잡이조차 주어지지 않는 칼을 나는 참으로 많이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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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일환으로 누군가의 사소한 부탁이라도 절대 거절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 덕에 실제로 약 2년간의 미국 생활 중 나는 수많은 하지 않아도 되거나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을, 생각보다 [즐겁게] 했다. 박사과정 학생이 하는 현장 실험에 따라가서 이틀간 센서를 붙이기도 하고(보통 이런건 학부생들에게 돈을 주고 시킨다), 학기마다 하는 초등학교 봉사활동에도 매번 참석하여 엉성한 영어로 본토의 아이들을 당황시켰다. 한인 유학생들의 정착도우미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운전면허도 없는 주제에 지원, 덕분에 혜선이가 참 많은 고생을 하기도 했다 (죄송).
그 중에 제일은 당시에 다니던 한인교회에서 토요일 새벽예배 반주를 한 일이었다. 한참 반주로 봉사하시던 누나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나에게 후임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당장 악보도 제대로 보지 못 하는 나에게 왜 이런 부탁을 하는지 의야해서, "여기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이 4-5명은 되는데 왜 굳이 저에게?" 라고 물어보았지만, 아무래도 전공자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의 부담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가령 그들은 전문 피아니스트로라는 직업을 걸고 하는 것이니 잘 쳐야 할 것이고 (그들에게 기본은 '잘 치는 것'이다), 그러면 한 두 곡이라고 해도 어쨌든 전날 연습을 해야한다. 실제로 내 전에 하던 반주자분께서는 초견에도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 해도 꼭 목요일에라도 악보를 받아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그들에게 피아노 연주는 곧 생업이고, 따라서 연주에 할애하는 시간은 곧 돈이라고 할 수 있다. 부탁하는 입장에서도 그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는 프로에게 당당히 [봉사]를 요구하기란 여간 민망한 일일수 있다.
반대로 나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평범한 중학생 수준보다도 못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실 잘 칠 이유도 (또한 잘 칠 가능성도) 없다. 나에게 요구되는 기본은 그저 자전거 타고 오다가 논두렁에 빠져 뒤지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의 기대치가 한껏 낮아진 상황에서는 어떤 기브 앤 테이크의 정서 대신 유연한 관계가 형성된다. 예를 들어 당일에 찬양을 바꾸어도 괜찮고 (어차피 똑같이 못 친다), 성도들 역시 연주 중에 벌어지는 참담한 실수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기능적인 효용을 거의 기대하지 않는 이러한 기묘한 관계란 궁극적으로는 사람 자체에 대한 쓸모, 혹은 개개인이 지난 영혼의 존엄을 실감하게 한다...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어쨌든 거기에는 서로의 조건이나 신분, 관계로부터 오는 이득과 손해를 전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체계와 시스템 따위가 없어도(아니 없어야만) 유쾌하게 지속되고 자유분방하게 생장하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모임]이 자리할 토양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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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삶의 교훈을 깨우치게 되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기술]이랄 것이 전무한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절대 하지 못 하는 것이 존재하는데, 바로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합당한 보상이 존재하지 않는, 혹은 여러 의미에서 나에게는 오히려 손해가 되는 일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남들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임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꾸어 생각하면, 이러한 자본의 시대에 돈이 되지 않고 나에게 손해가 되는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는 역량이야말로 어찌보면 굉장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나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십수명은 넘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가장 먼저 새벽예배 반주를 부탁한 것은, 내 쪽의 쓸모의 총량이 가장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양파 하나도 겨우 써는 무딘 날을 가지고 있지만, 대신 큼직한 손잡이에 아무때나 쓰기에도 좋고 혹여나 기스가 나도 걱정이 없는 칼이었던 것이다.
특별한 연구적 기술이 없음에도 (여러번 얘기하니까 뭔가 슬프다) 생각보다 한가하진 않다. 묘할 정도로 일이라는 것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최근 주변의 동료분께서는 [버는 돈에 비해 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는 냉정한 진단을 해 주기도 했다. 이는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돈도 안 되고 무척 귀찮고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것들을 하는데 이렇게 즐거워 하고 있다니, 이 쪽 동네의 건전한 커리어 패스를 두고 보면 무언가 확실히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혹은 상대방이 진심으로 고마워 하는 그 감각이란, 그 어떤 금전적 보상보다도 좋은 동기가 된다. 이제와서 훌륭한 교수나 대학자는 어렵겠지만,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쓸모있는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실력에 비해 과분한 직장에 있어서 맹세코 단 한 순간도 이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쫒겨나는 것도 이직이라고 한다면 이 쪽은 숙명이라고 할만큼 매 순간 염두해 두고 있다), 여하튼 이 쪽 아카데미아라는 곳에서도 이직이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사실상 사양산업에 접어든 대학교에서는 교수님들의 수평이동, 그리고 그에 따른 연구소와 사기업을 포함한 연쇄적인 이직이 생각보다 꽤나 활발(?)하다. 상대적으로 경직성이 강한 토목 분야도 이러하니 CS 같이 이직이 워낙에 자연스러운 분야는 더 할 것이다.
모든 요소가 완벽한 직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는 없다, 아니 존재하지만 거기서 날 뽑아줄 리는 없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여하튼 그렇기 때문에 이직에 대한 제 1원칙은, 현 직장에 아주 [구체적인 불만]이나 [결핍의 요소]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직이라는 수고를 감당한 뒤에는 최소한 구체적인 불만 하나 정도는 분명하게 해소가 되어야 하고, 어떠한 결핍은 충분하게 채워져야 한다.
현 직장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만 월급이 불만이라면 당연히 돈을 더 주는 회사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이 때, 돈을 더 준다고 하는 곳에는 아마 지금보다 일이 좀 더 많을 수도 있고, 직장 상사가 무척이나 맞지 않을 수도, 회사의 복지가 좀 더 후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거기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아닐수도 있지만). 이러한 불확실성을 고려하였을 때, 최소한 이직을 통해 월급만큼은 충분히 해결되어야 아다리가 맞는다.
만약 뚜렷한 불만이나 결핍이 없는데 단순히 다른 회사가 [막연히 좋아 보여서] 이직을 시도다면, 생각보다 뻐근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 직장에서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던 편의와 유익이 잔뜩 상실되어 버린다거나, 막연하게나마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막상 뚜렷하게 느껴지는 실감은 없다든지 말이다. 특히 이직이 약간은 [배신]과 같이 취급되는 이 쪽 동네에서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그래서 이직의 앞에서는 [나는 인생에서 어떠한 가치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정직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돈일수도, 명예일수도, 자유일수도, 학교의 지원일수도, 근무 환경일수도, 좋은 동료일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에서의 불만 혹은 결핍을 해소하고, 그로 인해 나머지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서의 손해를 감수하는, 그런게 이직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실의 학생들에게 종종 유학이나 서울대 박사과정에 도전해 보는건 어떠냐고 물어보지만, 생각보다 시큰둥하다. 현재 연구실에 특별히 좋은 건 없지만 그나마 뚜렷한 불만이나 결핍은 없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그럴리가).
일견 낮은 자존감과 겸손함은 비슷해 보일 수 있다. "나는 별거 아니다"라는 식의 자기비하를 겸손과 동치로 두기 쉬운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래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는 데에 정말로 특화되어 있었다. 칭찬 앞에서 "감사합니다"라고 낼름 받아먹는 사람은 정말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부끄러워 하거나 머쓱해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리고 "감사함니다" 대신 듣게 되는 말은, "아유 저는 별 거 아닙니다." 혹은 "남들도 다 잘 하는 거에요" 정도의, 겸손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말들이다.
이 때 자기비하와 겸손을 가르는 핵심요소란 [타인의 훌륭함을 순순히 인정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우선은 내 앞에 대면하고 있는 사람이 꽤나 귀한 사람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낮추더라도 막상 내 앞에 대면하는 사람을 마찬가지의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여러모로 겸손으로서는 실격이라고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낮은 자존감은 겸손을 흉내내는 데는 용이하나 진정한 겸손에 이르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본인 스스로가 별볼일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데 능숙한 낮은 자존감의 사람들이 막상 주변의 성공을 흔쾌히 기뻐하지 못 하는 경우를 꽤 자주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손쉽게 비하하는 동시에 타인의 성취 역시 별거 아닌 것으로 여긴다. 운빨이니 인맥이니 하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1) 자신이 별볼일 없으면서, (2) 그래도 그런 내가 남보다는 나은, 이런 골치 아픈 유니버스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결국 [타인 역시 별볼일 없어야 한다]는 명제가 성립해야만 한다. 자기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그런 본인보다도 타인을 낮게 여긴다면, 도대체 타인을 얼마나 한심한 존재로 여겨야 한다는 말인가. 이처럼 타인을 쉽게 인정하지 못 하는 사람에게 낮은 자존감이란 필경 겸손에 이르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물론 가끔은 워낙에 낮은 자존감 덕에 주변 사람들을 [지금의 나]보다는 좋은 사람이라 인정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원체 아래에 두었기 때문에, 나보다 낫다고 하는 타인의 위치 역시 그닥 높지는 않다. 요컨대 낮은 자존감은 타인의 귀함을 시원하게 인정하는데 여러모로 좋지 않다. 자기 자신에게도 장점을 발견하지 못 한 사람이 타인의 귀함을 디깅하기란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당연하지만 시작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내가 꽤 괜찮은 인간이다]라는 사실을 뻔뻔하게 인정하는 지점이 때로는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여유야말로 남들의 훌륭함을 마음껏 추앙하는 에너지가 된다.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있는 몇 개 되지 않은 좋은 점을 발견해 본 구력을 통해 주변의 실은 그저 그런 사람들에게서도 귀하고 훌륭한 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겸손에 이르기엔 아득하기만 하지만, 그저 남의 잘됨을 순수하게 축하해 줄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도 또 없을 것이다.
강원도에 워크샵이 있어 잠시 들렀다.
숙소 앞에는 골프장이 있었다.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면 새벽 7시부터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모두가 이 동네에 사는 것은 아닐텐데, 새벽 댓바람부터 정말이지 완벽한 복장을 갖추고 골프에 열중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무엇보다도 그 근면함에 대하여 순수하게 경탄하게 된다.
그리하여 골프를 전혀 치지 않는 나로서는 난생 처음으로 아마추어의 골프라는 것을 꽤나 진지하게 감상하였는데,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지루하였다.
무엇보다 경기의 수준이 꽤나 심각하였다. 단 하나의 샷도 제대로 날아가는 법이 없었고, 게임의 절반 이상은 각자의 공을 찾는데 할애되고 있는 것 같았다. 수라의 현장을 지나 겨우 그린에 도착한다 해도 최소 3-4회의 퍼팅은 기본이다. 나는 정말로 30분이 넘도록 퍼팅이 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지 못 했다. 그저 공이 홀에 가까이라도 가면 서로 격려와 환희의 박수를 치며 라운드가 끝나는 식이다.
남의 취미를 두고 감히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대체 뭐가 재미있을까?" 라는 순수한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내 우려(?)와는 다르게, 골프를 치는 그 분들은 정말 너무나도 즐거워 보였다. 뭔가에 몰두하는 사람들 중에 저렇게까지 즐거워하는 사람을 나는 최근 몇달간 정말로 보지 못 하였다. 날도 덥고 습하기까지 한 데 넣으면 넣어서, 못 넣으면 못 넣어서, 잘 치면 잘 쳐서, 못 치면 못 쳐서 연신 박장대소 한다. 대충 아무 개소리나 해도 웃음이 터지는 고등학교 야자 시간의 한 순간보다도 즐거움에 대한 역치가 한껏 낮아져 있는 느낌이었다.
수백미터 멀리에 떨어진 작은 구멍에 공을 넣기 위해 몸에도 맞지 않는 막대기를 수백회 가량 휘두르는 저 행위가 정말로 재미있을까. 뭐 내 눈엔 무료해 보이지만, 사실 해 보지도 않은 사람은 아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수영을 책이나 유튜브로만 배우고 물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주제에 수영에 대해 논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 그 행위 안에 직접 들어가지 않은 이상]에는 결코 그 행위가 주는 즐거움이나 경험을 가늠할 수 없다.
영화 감상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현실과 동떨어진 일련의 시퀀스를 2시간 동안 멍하게 보며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한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팝콘까지 먹고 있다면 더욱) 그러나 막상 감상자 스스로는 스크린과 나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정서적 경험을 하고 있음을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반면에 게임의 경우 마찬가지로 모니터 앞에 몇시간을 죽 때리고 있는 건 비슷하지만, 영화와 달리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해라"는 말이 곧바로 튀어나온다. 게임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그 안에서 겪게 되는 감정의 정도란 어떤 의미에선 영화 이상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내적인 경험이란 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학교에 있으면 정말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에 가면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한다. 이런 저런 사례들을 이야기 해 주지만, 호텔에서 골프장을 훔쳐보는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은 대학원에 가 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인턴이라도 해 보라고 하면, 뒤이어 "인턴은 어떤가요"를 물어본다. 아무리 그래도 인턴 정도는 직접 해 봐도 되지 않을까. 정보 취득이 용이해진 만큼 경험을 통해 배우는 역량은 점점 퇴보해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보 과잉의 시대인만큼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사전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진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나고 보면 [무작정 시도해 버리는 쪽]이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으로 도리어 효율적인 경우가 분명히 존재한다. 호텔방에서 "골프란 재미있을까" 를 고민할 시간에, 일단 채를 들고 한 두번 휘둘러 보는 쪽이 훨씬 정확하다.
물론 대학원이란 골프와 다르게 구멍이 어딨는지도 모르는데(보통은 없다) 공을 넣겠다고 막대기를 휘두르는 행위와도 같다. 좀 더 신중히 알아보고 가는게 좋다. 진심입니다.
자의는 당연히 아니고, 얼떨결에 롯데리아의 채식버거를 먹어 보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워낙에 기대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콩고기라면 사료와 맛이 비슷하다는 세간의 평가를 고려하자면 더욱이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말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사료를 먹어본걸까). 자발적으로 채식버거를 주문해서 먹을 정도의 마음은 없지만, 혹여나 누군가 실수로 주문하여 버려지기 직전이라면 "내가 먹을게" 하고 자원할 정도의 용의가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괜찮다]라는 건 [콩고기 치고] 괜찮다는 것이다. 만약 일반적인 버거라고 한다면 여러가지 면에서 수준 미달이다. 콩고기 특유의 위화감을 롯데리아 특유의 강력하고 자극적인 소스로 잘 감추었지만, 그렇다고 고기의 느낌까지 나지는 않는다 (당연하잖아). 그렇게 두고 보면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상, 아무리 그럴싸하게 흉내낸다고 해도 육식주의자가 느끼는 어떠한 즐거움은 거세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한동안은 고기를 흉내내려는 시도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 했다. 채식주의를 선언하였다면, 더 이상 고기 따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쪽이 오히려 쿨하지 않을까. 왜 굳이 억지로 콩과 두부로 고기를 흉내내고, 음식으로서 도무지 실격인 것들을 먹으며 "괜찮은데?" 식의 거짓 연극까지 해야하는 것일까. 채식주의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육식의 즐거움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양가적인 태도에서 나는 항상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곤 하였다.
다만 요새에는 어떤 마이너리티로서의 채식주의자들이 다수자인 육식맨들의 행복을 유사하게나마 즐기고자 하는 마음도 일견 이해가 된다. 환경을 생각하여 텀블러를 사용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라고 해도 집에서 설거지 할 때는 조금 귀찮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생분해 되는 텀블러나 친환경 물티슈 같은 제품들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을 위선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롯데리아의 채식버거는, 육식맨들의 경험칙의 50% 정도는 되니 더 이상 거짓 연극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리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소스로 뒤범벅을 해서 콩고기인 줄 모르게 하더라도, 언젠가 70%를 상회하는 궁극의 콩고기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채식주의자는 결코 육식의 즐거움을 온전하게 누릴 수 없다. 이것은 냉정하면서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편] 혹은 [손해]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참된 채식주의는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육식주의자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다수 집단과는 다른 나만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였다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현재 꽤나 보수적인 집단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집단의 일부가 되기 위해 보통의 직장인들이 입는 꽤 얌전한 옷도 입었으나, 생각보다 다수 집단에 소속되어 누리는 안전함의 효용이 나에게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남다른 외관이라고 해봤자 상대방에게 약간의 정서적 불편은 줄지언정 물리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입사 1년이 지날 무렵 머리를 밀고 수염을 길렀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나의 수염 때문에 질병에 걸리거나 재산을 잃었다는 사람을 보지는 못 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떠한 형태의 편견은 항상 따라 다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비교적 열린 마인드의 분들조차도 처음 만났을 때 "수염 참 멋있어요" 라든지, "저는 머리 민 것도 예쁘다고 생각해요" 같은 격려의(?) 말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먼저 꺼내시곤 한다. 그들의 선제적 용납에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쨌든 이러한 [다수 집단과의 다름] 주는 부정적인 정서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아무리 쿨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레즈미가 양 팔에 가득한 사람이 악수를 건내온다면 일단 조금 주춤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옹졸하고 편협한가. 뭐 그럴수도 있다. 옆에서 그런 친구를 보면 "그러지 말라"고 조언해 줄지도 모른다. 다만 삭발의 당사자로서는, 그들을 함부로 비난하기에 조금 멋쩍다는 것이다. 삭발을 하고 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쓴 주제에 정장에 넥타이까지 갖춰 입은 사람들이 받는 대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아니 기대는 자유이지만,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서 다수집단을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꼴리는대로 살기로 결심하였다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세요" 라고 칭얼대기 이전에 내가 먼저 삭발과 수염을 어색해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좀 더 쿨하다.
취향이나 지향을 기준으로 서로를 차별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특히나 그것이 선천적인 경우에는 더욱이 그렇다. 그러나 설사 이 경우라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드는 거부감까지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척 해서는, 뭔가 어색하기도 하거니와 지속가능하지 않다. 장애인들을 무작정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며 어떠한 농담과 조크도 금지한 채 무작정 친절을 베푸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더 큰 불편과 위화감을 조성하는 경우를 나는 정말 많이 보았다. 애써 자극적인 소스로 감추어 놓고, "와 정말 고기같다"라는 식의 거짓 연극이 어떠한 경우에는 서로를 향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세상의 룰을 떠나 자의를 따라 좆대로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 좆대로 사는 삶이 주는 즐거움]과, [마이너리로서 겪게 될 다양한 불편]의 크기를 적절히 비교해 보아야 한다. [육류가 주는 즐거움]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거나, [채식주의자로서의 자뻑]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는 지속 가능할리 만무하다. 이득과 손해를 적절히 계산해 보고, 그 이득의 실체를 분명하게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ㅈ대로 사는게 너무 좋아서 한다면 생각보다 외부의 편견이나 대우에는 초연해 지게 된다. 세금은 언제라도 내기 싫지만, 어쨌든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른 이야기인데 만약 내가 채식주의자라면 다른 것보다 생선이 참 먹고 싶을 것 같다. 광어회를 흉내낸 비건 요리는 못 본 것 같다. 콩으로 만든 광어회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인생의 풋내기 주제에 감히 할 말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다섯가지 종류의 수고가 존재한다.
1. 수고를 하고 티 내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알아주는 경우. 여러모로 인생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축복이다.
2. 수고를 하고 티 내지 않았더니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경우. 잠깐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서운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래에 나오는 다른 예시들을 보면, 그래도 이 정도면 2위에는 들 수 있다는 것에 쉬이 동의할 것이다.
3. 수고를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 한 경우. 어떤 의미에서는 2위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다. 수고도 하지 않았고 욕도 먹지 않았다. 2위의 경우 수고를 하고 욕도(칭찬도) 먹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수고를 하지 않은 쪽이 나은 것 같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게 습관이 되어서는 필경 4위의 일을 겪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3위에 랭크하였다.
4. 수고를 하지 않았는데 들킨 경우. 이때부터는 어쨌든 욕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면전에 대고 비난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분명히 뺀질댄다는 평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한 비난이나 악평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최소한 [수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의 이득은 보았으므로 4위에 랭크하였다. 5위는 정말이지 아무런 이득도 없다.
5. 수고를 하고 티를 내는 경우. 1위에서 5위에 해당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본 결과 이것이 최악이다. 한 두번이면 귀엽다고 생각하여 맘껏 칭찬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매번 수고한 티를 낸다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묘한 심술이 날 수 밖에 없다. 결국 수고에 대한 인정을 받지 못 하게 되고, 심하게는 욕조차 들을 수 있다. 수고도 하고, 인정도 못 받고, 심지어 종종 평판까지 나빠진다면, 세상에 이보다 속상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혹여나 수고를 해야 할 상황이나 기회가 생기거든, 가능한 수고를 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그 때에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를 권한다. 혹여나 수고를 하지 않았더라면, 들키지 않기를 기도하되 언젠가 누군가에게 욕을 먹거나 뒷통수를 맞더라도 "올 게 왔구나" 생각해야 할 것이다.
대학교에 햇수로 3년 정도 있어보니, 이 곳은 정말이지 수많은 사람들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를 통해 돌아가는 것 같다.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탓일까, 꽤나 좋은 성과를 내어도 도무지 칭찬 같은걸 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자연히 생겨나는 속상한 마음들이 결국 2번 수고를 3번으로, 혹은 5번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무엇보다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수고하는 사람들을 발견하였을 때 극렬히 칭찬해 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그러니까 칭찬이 고파서 써 봤다 (구질구질).
강구조학회 참석을 위해 여수에 왔다.
기초연구실에서 주관하는 세션이 있어서 주제와 전혀 동떨어진 연구 결과를 하나 발표하고, 또 신진 연구자들을 소개하는 세션에 감사하게 초청을 받아서 선호씨와 그간 해 온 유해진동 식별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였다. 둘 다 강구조와는 별로 상관이 없어서 아무도 귀담아 듣는 것 같진 않았다.
강구조학회는 오늘날 인공지능의 광풍과는 완전히 무관한 듯 보였다. 주제불문 일단 딥러닝 어쩌구를 적용하는 것이 모든 학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클리셰라면, 여기 강구조학회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주제들-강구조 연결부의 최적설계, 각형강관의 전단 성능 검토를 위한 실물 가력실험, 강재 생산성 향상, 복합 구조물의 내진성능과 같이 머리가 아득해지는 내용들- 이 메인이다. 여전히 근본을 지키는 성님들의 곤조에 감탄하고, 또 그 앞에서 딥러닝이니 어쩌니 하고 떠들어 댄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모두의 무관심속에 발표를 마친 후 숙소에 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선배 교수님들을 만나 얼떨결에 뒷풀이 현장이라는 곳에 끌려갔다. 여수에 십수회 방문하는 동안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한일관]이란 식당에 가 보니 학생일 때는 전혀 알 수 없는, 학회를 준비하고 고생한 사람들이 전부 모여 회포를 푸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런 고생을 하지 않은 내가 감히 낄 자리는 아닌 것 같았는데.
거기에는 각계 각층의 선배님들이 우르르 모여서 당신들 옛 이야기들을 하고 계셨다. 마치 한국 강구조 공학의 역사실록을 듣는 것 같아 정말 진심으로 재미있었다. 물론 어르신들 특유의 과격한 음주 스타일이나 7080 호프집에서의 열창 메들리 앞에서는 대학교 때 신입생 시절이 떠올라 곤란하기도 하였으나, 선배 한 분이 조용히 뒷문으로 도망칠 구녕을 안내해 주신 덕에 무사히 먼저 도망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신입생환영회에서도 창문 밖으로 가방을 던지고 몰래 도망쳤었다 (사회부적응자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새벽 1시쯤 들어와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음날 아침 세션을 들으러 8시 40분 쯤에 학회장에 갔는데, 대략 새벽 3-4시까지는 족히 술을 자시셨을 어르신들께서 완벽하게 정장을 갖추어 입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이미 학회장에 나와 계셨다. 얼굴을 보자마자 '어제는 인사도 없이 어딜 갔냐' 며 잠깐 타박을 하시다가도, 또 세션이 시작하니 철천지 원수마냥 날카롭고 매서운 의견을 주고 받는 모습이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어르신들이 중요시 하는 [우리가남이가] 식의 크루 문화에 잘 어울리지는 못 하지만(일단 어르신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말 없이 중간에 도망친 것부터 완전히 실격), 그래도 종종 인사라도 드리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나 역시 완벽한 아저씨가 된 모양, 부디 7080 노래방에서 노래만 시키지 말아주세요...
다른 이야기지만 여수는 여행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지하철은 없지만 버스가 꽤 잘 되어 있어 여기저기 오가기에도 좋고(이번에는 여수랑이라는 공유자전거를 이용했다), 항구나 케이블카 같이 비교적 예쁘고 멋진 즐길거리가 존재한다. 낮은 산이 있어 산보하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전국구로 보아도 썩 괜찮은 향토 음식점과 소주방들이 있다.
이번에는 현수형이 올려준 봉산동에 있는 전집에 가 보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형은 어쩜 그렇게 맛있는 식당을 잘 찾을까.
오늘은 이훈 연구원의 석사 최종 심사가 있었다. 고작 석사 졸업 정도로 무슨 호들갑이냐 싶겠지만...
요새 한국에서 석사학위라는 것은 아무래도 감투상이나 개근상처럼 받는 경향이 있지만(누구 얘기냐면 제 얘깁니다), 그럼에도 어떤 교수님들은 석사과정 중에도 무척이나 좋은 연구 역량을 길러주는 것 같다. 가령 송준호 교수님이나 심성한 교수님 연구실의 석사과정 학생들이 학회에서 하는 발표를 볼 떄면 정말 놀랄 때가 많다. 정말로 나보다도 훨씬 훌륭해서 (이게 뭐 대단한 칭찬은 아니지만), 저들보다 일찍 태어난 이유만으로 취업이라도 할 수 있었음에 안도하게 된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이훈 연구원이 3년 전엔가 처음 연구실에 들어오고 싶다고 했을 때, 사실은 그런 이유로 다른 연구실을 권했었다. 나는 여타 훌륭한 교수님들만큼의 지도역량도 없거니와 하물며 그 때는 월급 30만원 줄 돈도 없었다. 연구실에는 책상도 없었고 고물 데스크탑 한 대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그래서 다른 훌륭한 교수님들의 성함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이 어떤 면에서는 자기의 모자람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면에는 교육자로서 응당 지어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담인데 나는 어려서부터 통장에 50만원 이상의 돈이 쌓이는 순간 기묘한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나는 일정한 목돈이 쌓이면 부모님에게 보내거나, 혹은 돈이 필요하다는 곳에 몽땅 던져버리곤 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의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에는 그저 [목돈을 가치있게 쓸 역량이 없어서] 회피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돈을 건전하고 유익하게 소비하는 법을 전혀 알지 못 하였고(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저 청지기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3년 전의 이훈 연구원은 굳이 컴퓨터 책상 하나 없는 이 연구실에 오겠다고 했다. 여전히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만만해 보여서일까), 어쨌든 학교에서 운영하는 비교과 프로그램을 학업장려금 30만원인가를 겨우 만들어 주고서는, 매일 불러다가 같이 머리를 싸매고 연구 비슷한 것을 흉내내었다. 체계적인 지도나 교육 따위는 하지 못 하였기 때문에 이훈 연구원이 무엇을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르친 게 없으므로 대부분은 스스로 습득하였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러한 시간을 통해 교육자로서 지어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 차근히 훈련 받을 수 있었다. 지도를 핑계로 내가 도리어 아주 큰 지도를 받은 셈이다.
언젠가 승훈이 덕에 고기교회에 계신 안홍규 목사님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지금보다도 유난히 뜨거웠던 승훈이는 목사님께 "어떻게 사람들을 모으고 연대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었느냐" 같은 질문을 하였는데, 목사님은 멋쩍게 웃으시며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냐. 그냥 내 발 아래라도 조금 바꾸면 다행이지."라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난다. 가르치며 배우는, 교육이란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군가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안내자인 본인이 먼저 바른 길이 어디인지를 알고 그 길을 앞장서야 한다. 교육자 역시 남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대로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학생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다.
한심한 지도에도 불구하고 이훈 연구원은 나보다 200배 우수한 연구결과와 함께 (이게 뭐 대단한 칭찬은 아니지만) 감투상이나 개근상이 아닌 꽤나 떳떳한 석사학위를 받게 되는 것 같다. 존경하는 임성순 교수님께서 명예교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심사위원으로 와 주셔서 무척 감사하고 좋았다. 교수님의 매섭고도 날카로운 질문과 지적은 사실 전부 나를 향해 있었는데(가령 "논문 제목이 이게 뭡니까"라고 하셨는데, 실은 제목은 내가 지었다), 이훈 연구원이 다 자기 잘못인 냥 뒤집어 써 주어 무척이나 민망했다.
박사까지 하면 좋겠지만... (철면피)
올 2월이었나, 동경의 항공권 가격이 너무 비싸서 일본여행 대신 tokyo-state-of-mind 로 서울을 여행하였다 (네?).
나름 그간 여기 저기서 쌓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그래도 현 시점 서울에서 가장 근사한 서점과 옷가게, 전시장과 까페, 일본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식당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이 정도 리스트라면 동경의 100% 수준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즐거움과 만족감은 누릴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말이다. 지옥의 구두쇠이지만, 돈도 잔뜩 쓰려고 마음의 준비 역시 단단히 했었다.
그러나, 뭐 솔직한 말로,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서울을 가지고 동경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당연하잖아).
단순히 음식의 수준이나 공간의 완성도, 물건의 품질이 동경에 비해 모자라서만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동경의 가장 좋았던 수준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족히 80% 이상의 수준은 되었다. 특히 자리를 옮긴 [포스트 포에틱스]는 정말 너무 좋았고,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의 옷은 그래도 아사다 마오 앞의 김연아 정도는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20%의 차이가 꽤나 결정적이었을 수도 모른다. 80점까지 오르는 건 금새지만, 그 이후 20점을 채우는 것은 무척이나 사소한 디테일에서 오기 때문이다. 가령 간판 앞 다운등의 밝기, 냅킨의 두께, 스웨터가 개어진 형태, 문의 무게감, 그릇의 온도, 코트랙의 사이즈, 의자의 높이 같은 것인데, 이런 '20%의 디테일'이 소소한 즐거움과 만족감에 있어서는 무척 중요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서울이 그 모든 디테일까지 완벽히 갖추었다고 해도, 혹은 언젠가 동경이 이러한 디테일에서조차 아무런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 한다 해도, 서울은 결코 동경을(사실 어느 도시도) 대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나는 지난 서울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행의 목적이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좋은 공간을 경험하고 근사한 음식을 먹고 멋진 물건의 품질을 소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익숙한 곳으로부터 떠나 완전히 다른 내가(어떤 의미에서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내가) 되는, 그렇게 익숙함 덕에 억제되어 온 여러가지의 욕구를 잠시나마 해방해 보는, 이것이 바로 여행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저기에 온갖 '익숙함'들이 난무하는 서울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서 '여행객'의 마인드를 갖추려 해도 좀처럼 소심해 질 수 밖에 없다. 기어코 사회 전반을 흐르는 정서 앞에 꿈뻑 죽어버리는 것이다.
일례로 좋아하는 브랜드의 매장에서 무려 60% 세일을 해서 40만원인 무자비한 다운 파카가 있었는데, 가령 빔즈(Beams)였다면 대번에 샀을지도 모른다. 사실 양양만 되었어도 '에라 모르겠다' 라며 샀을지도, 그러나 신당동에서는 아무리 해도 무리다. 감히 마복림 할머님의 구역에서 잠바떼기 하나에 40만원을 쓸 수는 없다.
흔히 파리나 동경에 짧은 여행을 다녀와서 잔뜩 뽕에 취해버린 사람들을 두고 "여행지에 돈 쓰러 가니 그렇지. 거기 살아봐라 재밌나."라고들 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지출이나 소비에만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지출에 관대해지는 그 조건-제약으로부터의 해방- 이야말로 그 뽕의 핵심요소인 것이다.
반대로, 일상에서도 이러한 여러 제약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는 것이 삶의 만족도 차원에서는 썩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익숙함의 무더기 사이에서 기어코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해내고, 날카롭게 목을 조여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이 악물고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 낼 수 있다면, 흑석동에서도 다이칸야마-state-of-mind를 경험할 지도 모른다.
낯선 동네의 근사한 까페에 가면 묘하게 논문이 잘 써지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전혀 다르다).
오늘은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지 딱 9년이 지난 날이다. 당시에 사고를 당한 단원고의 학생들은 이제 벌써 20대 후반이 되었다.
내 친구 승훈이를 포함해 일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한 썩 구체적인 일들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게까지 근사하지는 못 하기에 다만 이러한 사건이 있었음을 틈나는 대로 기억하기를 결심했었다. 그리고 나아가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데 힘을 보태기로 마음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일상의 분주함(=돈 버는 일)에 치어 지내다 보면, 안전사회 구축을 위한 구체적 행동강령 따위는 커녕 기억하는 것조차도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남들 앞에서 뽐내기 위한 온갖 잡정보와 지식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다 보니, 상대적으로 세월호 사건과 같이 무언가 터부시 되고 아젠다에서 뒷전이 되어버린 것을 담아둘 기억의 공간 따위는 도무지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까지 지정된 성수대교 위령비라는 것이 서울숲 근처에 있다. 그러나 그렇게 서울숲 방문자가 많음에도 그 근처에 위령비 같은게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실제로 당도한 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걸어서 갈 수가 없다. 성수대교 북단에서 강변북로에 진입하는 중 작은 표지판을 따라 어마어마한 순발력을 발휘해서 들어가야 하니, 누구라도 그저 스쳐 지날 수 밖에 없다.
당연하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유가족이 희망하는 수준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걸어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강변북로 램프가 생기면서 위령비에 가는 도보가 사실상 끊어져 버렸다. 고속성장과 개발사회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을 추모하는 공간이, 아이러니하게도 다시금 찾아온 도시의 성장과 개발에 의해 단절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2023년의 우리는 그 때에 비해 퍽이나 무뎌져 버린 것 같다. 광주의 아파트가 무너지고 분당의 교량이 무너져도 더 이상 예전처럼 놀랍지만은 않은 것이다.
지난주 목포를 다녀오는 길에 걸려있던 현수막 덕분에 올해는 다행히도 4월이 왔음을 짐짓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내가 세월호를 정말 마음 깊이 기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쉬이 장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에는, 꽁꽁 감추어 진 성수대교 위령비를 향해 출근길 강변북로 램프에서 갑자기 핸들을 돌릴 정도의 상당한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그런데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외부로 보자면, 여전히 마음이 상한 자들이 존재한다는 엄중한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부로 보자면, 나 역시 효율과 돈이 생명과 인간보다 앞서는 초고속 개발중심사회 이룩에 일조한 공범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는 최소한 내가 딛고 있는 공간이나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내가 부대끼는 이웃과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에 가장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 모든 세상의 아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지척에 있는 마음이 아픈 자들을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기억은 이처럼 개발과 성장논리에 반하는 비효율적인 일들을 지속할 수 있는 중요한 원료가 되어준다.
지난 9년을 돌아보면, 대한민국에는 세월호 사건에 비견할 만큼 크고 작은 재난과 참사가 계속해서 벌어져 왔던 것 같다. 그러니까 결코 잊지 않겠다거나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있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이란 일견 무력해 보인다. 게다가 이러한 사건을 가지고 정치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게 [세월호]라는 단어는 최초의 빛을 잃어버린 것도 같다. 지겹다는 말도 이해가 되고, 더 이상 그만 이용하라는 말에도 공감이 간다. 위로의 탈을 쓰고 오히려 유가족을 누구보다 속상하게 하는 존재들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기에 더욱 더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누군가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이냐]고 한다면, 정치인이 아닌 한 명의 사회인의 입장에서는 [다시는 이러한 일이 우리의 주변에서 되풀이되지 않을 때까지]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모자란 실력에도 어쩌다 보니 세네명의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여기 연구실에는 세월호의 모습이 있지는 않은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연구실적을 채우기 위해 학생들을 부품처럼 다루고 있지는 않은지, 그간의 악습과 관례에 따라 학생들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당연한 듯 박탈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 나의 권위를 이용하여 학생들의 인격을 위축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애석하게도 이러한 질문에 지금의 나는 단호하게 [아닙니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최소한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마음이 아픈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내가 그러한 사건의 공범임을, 최소한 1년에 한번이라도 잠시 멈추어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성수대교 위령비는 그래도 토목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보길 감히 권한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지방 도시에 방문한 김에, 마침 동네의 이름을 달고 있는 대학 교수님께 안부차 인사라도 드리려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어 저 서울인데요"라고 하시길래 "아, 서울에 볼 일 있으셨어요?" 하니, 그런게 아니라 원래 잠실에서 살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수님께서는 잠실로부터 KTX로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지방 소도시까지, 자동차와 KTX를 이용해서 매일같이 출퇴근을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어코 서울에서 지내신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서울에 살기 위한 열정이란 굉장하구나, 하고 잠시 생각해 보니, 뭐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라는 직업은 2-3일 정도에 수업을 몰아둘 수 있고 학생들 지도 역시 1주일에 한 번 씩 하는 랩미팅으로 쉬이 대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쇠락하는 지방 소도시의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고군분투 하는 것보다는 하루 4-5시간의 출퇴근이 어쩌면 훨씬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지방에 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좋은 직장이 없어서]라고 하지만(나도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막상 해당 소도시에서 가장 유력한 직업 중 하나인 대학 교수조차도 이렇게 서울에 살고자 하는걸 보면 생각보다 좋은 직장만으로 지방을 활성화 시키는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야기인데 지방 캠퍼스 타운은 그야말로 군부대가 떠난 위수지역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혹은 도시가 되고 싶었던 동네)는 하루 단위로 소멸되어 가고 있는데 좀처럼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무엇보다 좌우여야를 막론하고 입법권한을 가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지방대와 위수지역(?)의 소멸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최근에 조선시대를 다룬 책을 읽던 중, 어려서부터 경구처럼 듣던 문구인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무척이나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서울 혹은 범 수도권으로 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욕망이라는 것은, 특별히 21세기의 나태하고 워라밸 따지는 젊은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 꽤나 오랜 세월에 걸쳐 끈허지지 않은 인간의 본능 혹은 의지와도 같은 것이다.
"집값이 비싸고, 사는게 개같고, 뭐 이래저래 아이를 낳지 않는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제일 취약한 지방부터 멸망한다. 멸망한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서울로 온다. 전국의 집값은 폭락하지만 서울의 집값은 더욱 오른다. 집값은 비싸고, 사는개 개같고, 아이를 낳지 못 한다. 그렇다고 집값을 떨어뜨리면 경제는 ㅈ망한다."
뭐 이런 논리적인 근거와 분석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사실 그냥 지방이나 인구의 소멸을 과연 정책 몇 가지로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궁금증도 든다. 아이를 낳는 것은 기본적으로 [본능]이나 [욕망]에 의거하는데, 그깟 정책이니 뭐니 하는 것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기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국가에서 얼만큼의 지원금을 주면 교수님은 잠실의 집을 처분하고 고2 아들과 중3 딸을 데리고 지방으로 가서 정착하실까. 수십억을 주면 옮길지도 모르지만, 아마 지방에 가더라도 그 수십억의 상당 부분은 서울을 오가는 비행기나 KTX 비용으로 쓰일 것이다. 아니 애초에 국가의 지원과 별개로 지금 당장 잠실의 집을 팔아 직장 근처로 가면 현찰 십수억과 하루 4-5시간의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아마도 그럴 것 같진 않다.
한동안 재난 관련된 연구에서는 [레질리언스] 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대략 [회복 탄력성] 정도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사회 시스템이 재난이나 재해를 얼마나 잘 수용할 수 있는지, 즉 재난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얼마나 빠르게 사회 시스템이 원상복구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역량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완전한 방재가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있다. 내진성능을 향상시킬 수는 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지진 발생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구의 소멸이란 어쩌면 아무리 인위적으로 개입해서 막으려 해도 도무지 어찌 해 볼 수 없는, 마치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2023년 대한민국에 벌어지는 하나의 자연적 재해 혹은 재난의 범주에 속한다면, 또 뭐 조금은 불편하고 어색하겠지만 그 안에서 적절한 평형의 상태를 찾는 것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가령 노동력이 부족한 만큼 그간의 노동집약적인 일들이 자동화 된다든가, 줄어든 내수만큼 굳게 닫혀있던 여러 시장이 글로벌 단위로 개방된다든가, 소아과가 줄어드는 만큼 요양병원이 늘어난다든가. 이런건 아무 정책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이다. 게다가 인구의 소멸은 우리한테나 심각한 일일 뿐 그 외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입장에서는 [비로소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물론 장기적이고 혁명적인 인구정책을 통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한 나라들이 있다고 하니 이런 푸념은 방구석 ㅈ문가의 개소리일 가능성이 농후하겠습니다.
작년 12월 초, 서울역에서 숭례문으로 가는 1차선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노란불이 되어 정차하였는데 차선을 변경하며 뒤따르던 차가 미처 나를 보지 못 해 들이받았다. 다행히도 쿨한 아저씨께서는 순순히 100% 과실을 인정해 주셨다.
한 20분 정도 후에 상대쪽 보험사에서 와서 이런 저런 정보를 적어갔다. 자주 다니는 정비소가 있냐고 물어보더니, 협력업체 공업소를 연결해 준다고 했다. 렌트카도 무료고 픽업도 해 준다는 식의 말에 별 생각 없이 알겠다고 하고 집에 왔는데,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조금 찾아보니 협력업체 카센터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후기가 엄청나게 많았다.
보통 인터넷 후기란 좋은 경험보다는 속상한 경험을 한 쪽이 남긴다. 그리하여 온라인에 있는 평점이나 여론은 안 좋은 쪽으로 편향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이놈의 '보험사 협력업체 카센터'에 대한 의견들이란 꽤 심각할 정도였다. 정말이지 단 한 명도 좋다는 사람이 없고 일베부터 클리앙까지 좌우 커뮤니티가 대통합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쪽으로 무척이나 둔감한 지인조차 '그렇게 귀찮으면 그냥 돈으로 받는 게 어때?' 라고까지 하였다.
만약 보험사 협력업체라는 곳이 아주 우수하고 정직한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보험사나 정비소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손님을 유치해서 좋고, 사고 당사자 역시 수고를 들이지 않고 좋은 곳을 소개 받을 수 있어서 좋다. 업장에서는 손님을 유치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차 수리에 쓰게 되어 수리의 품질은 더욱 좋아지고, 손님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져 더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뭐 잠시만 생각해도 이는 아주 좋은 선순환이 될 것이다
이처럼 신뢰라는 것은 무슨 형이상학적 이상향이 아닌, 사회 전반의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주고 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아주 현실적인 필수재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거의 모든 영역에서 공급자나 전문가에 대한 신뢰는 무너져 있는 것 같다. 말 그대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카센터도, 보험설계사도, 택시기사도, 핸드폰 판매원도, 의사도, 판사도, 교수도, 대통령까지 보통은 사기꾼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까 신뢰가 무너진 모든 영역에서 소비자들은 소위 전문가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을 이겨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 방편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인터넷 세계이다. '보험사 협력업체 좋나요 보배드림' 같은 것들을 검색하고, 관련된 유튜브 영상들을 체크한다. 일개 소비자들이 프랑스 와인의 생산자와 밭떼기는 물론이요 샴페인의 도매가와 업장 공급가를 줄줄 외우고, 휴대폰을 사는 사람들은 기종별/통신사별/약정별 시세표를 들고 전국 각지의 '성지'와 모스부호를 나누는 것은 그만큼 공급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있다는 방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얼핏 이러한 준 전문가들은 소위 '사기꾼'에 준하는 전문가의 안티태제로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인터넷의 정보야 말로 당최 진위를 판단하기 힘든 거짓부렁으로 한껏 과잉되어 있다. 당장 보험사 협력업체가 별로라는 각종 후기 역시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협력업체에 선정되지 못 한 경쟁업체가 흘린 거짓 정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와 협력업체의 수리실력 중 굳이 한 쪽을 신뢰하자면 오히려 후자가 믿음직스러운 것이다 (후일담이지만 실제 보험사를 통해 연락이 온 정비소는 전농동에서 가장 크고 괜찮은 공업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커서 오로지 인터넷의 정보만을 신뢰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준전문가에서 비로소 '좆문가'의 영역에 도달한다. "내부에 충치가 있으니 신경치료를 해야 합니다." 라는 진료를 듣는 순간 "신경치료 여부는 하루만에 알 수 없는데? 게다가 앞니 정도면 그냥 써도 괜찮은데?" 라는, 어젯밤 보았던 유튜브의 <과잉진료 대처 멘트>들이 떠오른다면, 축하합니다 당신도 비로소 치과 치료계의 좆문가가 된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런 대화를 매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의사라는 것도 꽤나 힘든 직업인 것이다.
이 쯤 되면 도무지 믿을 수 있는 게 없다. 전문가도, 웹에 떠다는 정보도, 이를 성경처럼 퍼 나르는 좆문가들도 말이다. 모든 영역에서 신뢰가 무너졌다는 건 이런 뜻이다.
제일 먼저는 전문가들이 전문가 답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요새는 치과에서 '양심 진료'를 캐치프라이즈로 하는 병원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눈탱이의 메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도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곳이 썩 존재한다. 일전에 엔진 경고등 문제로 방문한 카센터의 분 역시 인터넷의 무시무시한 후기와는 달리 무척 정직했다(번동 스피드메이트점입니다). 물론 여전히 폰팔이와 용팔이들은 호구를 찾느라 여념이 없지만, 이 사람들까지도 전부 전문가로 칭하기엔 무리가 있으니... 이렇게 한 두번의 좋은 경험을 하고 나면, 오히려 인터넷의 좆문가들이야말로 얼마나 위험한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그만큼이나 대 불신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정보의 큐레이터'이다. 좋은 정보를 찾아주고 나쁜 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사람 말이다. 협찬으로 중무장한 인스타그램 푸디들이 늘어날수록, 오래된 몇몇 '노포' 블로그의 가치는 더욱 귀해져 간다. 은선 누나는 항상 서울에 오면 나에게 식당을 물어본다. 내가 아는 곳이래봤자 네이버에 'ㅇㅇㅇ 맛집'을 치면 상위 20개에는 꼭 걸릴법한 곳이라 굳이 왜 물어보나 싶지만, 누나 입장에서는 20개 중에서 아저씨의 입맛을 가지고 인당 4-5만원이 넘지 않는 식당 4-5개를 골라줄 필터가 필요한 것이다.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쌓여진 무의미한 데이터에서 좋은 정보를 발견해내고 그것을 곧 이해하기 좋은 형태의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우리는 논문 작성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연구비 수주나 승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도 같지만, 근본적으로 좋은 논문을 쓰는 행위가 연구자의 의무인 것은 아마도 그것이 정보의 큐레이팅과 닿아있어서는 아닐까 생각한다.
PS: 당연하지만 장위동 카센터에 대한 큐레이터는 없었고, 7시간 동안의 디깅 끝에 [한독자동차정비]라는 곳에 방문하였는데 꽤 괜찮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학교의 행정 관련된 회의에 종종 참여하게 된다.
각자의 다른 의견을 모아 보다 나은 결정을 도출해내는 것을 회의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인생을 살면서 그러한 회의를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6명 이상이 모이는 회의라 하면, 보통 (1) 소수의 사람들이 사전에 결정한 사항을 통보하고 (2) 몇몇 사람들의 불평을 들으며 시간을 떼우다가 (3) 모든 참가자들의 묵시적 동의를 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멀리서 보았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몇몇 정책들이라 해도 나름 공식적인 절차와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이러한 회의란 마치 돈세탁과 같아서, 소수의 결정에 대해 공동체의 당위를 부여하는 일련의 세탁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2)번 단계에서 단순한 불평을 넘어 열렬하게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의견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양해와 협조를 바랍니다." 같은 말만을 되풀이 하는 고장난 라디오 앞에선 그러한 저항조차도 결국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한] 세탁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물론 수십명이 모인 회의에서조차 모두의 의견이 모아질 때까지 말싸움을 한다면, 가령 고장난 문짝 하나 고치는데도 2년이 소요될 것이다. 여럿의 수요를 전부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며 집단지성이라고 딱히 더 나은 답을 주지 않는 경우가 더욱 많다. 특히나 실리와 효율, 속도의 관점에서는 소수의 의견을 바탕으로 빠른 결정을 하는 쪽이 훨씬 좋다.
다만 하나의 집단의 명운이 아닌 한 명의 인간의 입장에서는 뭐랄까. 이러한 [세탁형 회의]에 대한 경험이 쌓이다가 어느 날 실제로 회의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사람 10명이 존재하는 세계에는 10개의 각기 다른 맥락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복잡다단한 세상사의 디테일들을 무시하고 무작정 통일된 의견, 묵시적 동의, 모 아니면 도를 재촉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문짝 하나를 고치는데 2년간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무리를 하나 정도는 삶의 지척에 두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멤버가 가족일수도, 어린 시절 동네 친구일수도, 회사 동료일수도 있다. 주제는 정치, 주식, 점심메뉴, 쟤 예쁘냐 안 예쁘냐일수도 있다. 여하튼, [세탁형 회의]의 반대쪽에는 통일되지 않은 각자의 다름에서 나름의 평형상태를 찾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 글은 회의 중에 작성했다. 수라의 현장에서 제일 한심한 쪽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 여름에는 혜선이와 유럽에 다녀왔다.
못 갔던 신혼여행을 1년만에 간다는 핑계였지만 어쨌든 시간이 갈 수록 더 이상 외국에 여행을 가는 것이 어려워질 것 같아 기어코 무리를 해 본 것이다. "바쁜 일정 다 생각하면 아무데도 못 간다"는 마음으로 3개월 전 무작정 표를 끊고 보니 실제 10일 남짓한 여행기간 동안에 아주 중요한 회의가 8개나 잡혔다. 그리고 8개 회의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으나 모든 연구와 행정은 아무 문제 없이 잘 굴러가는 걸 보면 역시 나 하나쯤 없어도 세상에는 아무 일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정확히는 없는 쪽이 낫다).
2년 전 미국에서의 취업에 실패하고 한국에 돌아와 어영부영 지내다 오랜만에 외국을 방문해 보니, 아, 이래저래 외국이란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단순히 인프라나 도시의 풍경, 삶의 질 같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런 면을 생각한다면 한국이 더 나을 것이다. 한국은 경쟁이 심하고 집값이 비싸고 남의 눈치를 보고 어쩌구 이야기를 하지만, 외국에서도 관광객 신분으로 돈 펑펑 쓰니 여유를 만끽한 것이지 돈 벌고 사는 사회의 구성원에게는 역시나 유사한 경쟁과 스트레스가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외국이 좋다고 하는 이유라면, 바로 [마이너리티가 되어보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프랑스 파리의 김선중이라는 사람을 굳이 설명하자면, 말도 못 하고 길도 모르고 돈도 못 세고 돈도 못 벌고 키도 작고 눈도 작고 배가 나오고 가장 못 생긴 사람. 내면과 외면 모든 영역에 걸친 완벽한 마이너리티의 표본이라 해도 무방한데, 이것은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던 것과는 보다 깊은 층위의 마이너리티였다. 거기서는 그나마 직업이라도 있었다면, 이제는 간단한 까페의 메뉴판 하나 못 읽어 영어 메뉴판을 구걸해야 하는 신분이라니.
그래서일까, 유럽 여행을 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식이 늦게 나오는 인종차별, 언어가 짧아 일어나는 의사소통에서의 인종차별, 어떠한 웃음이나 제스쳐로 인한 인종차별 등등. 나는 동남아나 중국에 간 사람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 했다. 또한 이러한 인종차별에 대한 이벤트는 파리 중앙역의 버거킹보다는 소위 으리으리한 식당이나 매장에 좀 더 어울린다. 아무래도 인종차별의 정서라는 것은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는 곳'에 마이너리티로 존재할 때에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 이른바 백화점의 명품 매장이나 초기 스트릿 편집 매장의 '스캔' 일화와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경험 중 몇 가지는(어쩌면 대부분이) 실제로 못 배운 유럽인들의 인종차별이었을 것이다. 다만 실제 인종차별이었냐는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마이너리티의 처지에서는 어찌됐건 사소한 풍경 하나라도 좀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평범한 인사나 익살스러운 장난, 행인과의 부딛힘에서도 저 놈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누군가의 빠른 걸음에서도 소매치기를 염려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다수에 속하지 못 하면서 자연스래 생존의 본능이 잔뜩 돋아난 입장에서의 당연한 반응이리라.
그리고, 그토록 좋다던 유럽을 등지고 소위 지긋지긋하다는 한국에 도착해 출국장을 통과하는 순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떠한 편안한 마음을 너머 일종의 해방(?)의 정서까지도 경험하게 된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는 일련의 행위에서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지나 주문의 순서 따위를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혹여나 발생하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두고도 인종차별이라는 식의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안락함이 결국 한 사회의 다수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기안한다면, 반대로 마이너리티로서 느끼는 불편의 크기란 다수 집단에 속해 내가 누려온 유익의 정도와 비례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사회의 다수 집단에 속한 것이 범죄라는 것도 아니고 죽창을 들자는 말도 아니다. 마이너리티가 무조건 옳고 그러니 그들의 의견(혹은 불평)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처럼 짧게나마 다수와 소수에 대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사이, 이 사회에서 소위 마이너리티라는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과 반응이 어쩌면 그들의 맥락 안에서는 되려 자연스러운 생존본능의 발화일 수 있음을 짐작해 보게 되는 것이다.
저는 이러한 것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그리고 여행을 통해 경험해야 할 하나의 "유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무래도 깨시민 PC 소리를 들을까봐 몰래 여기에 적어봅니다.
PS: 연구실에는 나를 포함해 여성 1명 남성 3명인데 매번 김치찌개나 돈가스, 제육을 먹으러 간다. 이런 것이야말로 마이너리티에 대한 다수집단의 횡포가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용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자라는 말이 여간 거슬릴 수 있다. 인간을 도구화 한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러니까 누군가를 통제하고, 그들의 가치를 매기고, 적절한 보상과 징벌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쉬운 말로 어른이 되면, 각자가 속한 세계에서 작게나마 통치의 권력을 가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입사 3년차인 나는 여전히 소속 기관의 말단 노동자이지만, 동시에 나라의 세금을 뽀려다가 학생들의 인건비를 책정하고 그에 따른 댓가로 한학기 혹은 주단위의 해야 할 일을 정해주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로 따지면 어디 이민족의 한 부락에서 벌어지는, 천하삼국의 통일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 할 작은 소동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 작은 세상에서만큼은 꽤나 강력한 통치의 권한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권한이 그저 대기업의 임원, 중소기업의 사장, 혹은 대학의 교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셋만 모여도 그 사이의 완벽한 하이라키가 구축되는 이 사회의 특성상, 우리는 어느 순간에는 결국 형식상이든 내용상이든 누군가의 상위 직급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용자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인권의 사각지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대학원에 장기간 노출되어 있었던 나는 '사용자'로부터 받아야 할 대우에 대해 굉장히 둔감한 편이다. 대학원을 같이 다닌 동기들은 인건비를 몇달간 받지 못 한 일들을 마치 훈장처럼 늘어놓고, 누가 더 하찮은 취급을 받았는지를 경쟁하기도 한다. 다른 말이지만 여전히 나는 나에 대한 무례함, 불합리함, 경멸에 대해 무딜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무례함이란 마치 내 옆에 두고 간 화살과 같아서, 굳이 붙잡고 배를 쑤시기 보다는 못 본척 지나가는 편이 좋지 않나요?
이러한 나 자신에 대한 관대함이 사회에 그닥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요새는 뭐 크게 득이 되는 것 같지도 않지만). 다만 이러한 태도가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버리면 조금은 문제가 된다. 그러니까 타인이 겪게 되는 무례함이나 불합리함에 대해서도 '뭐 그냥 참을만 하지 않나요?' 라고 해서는 여간 곤란하다는 것이다. 나의 불합리에는 무심한 반면, 내가 주변에 미치게 되는 무례함에는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특히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어른, 즉 사용자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도 사용자/어른의 반대쪽에 있는 존재들은 아무래도 자기들이 받는 대우가 합리적인지 불합리한지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생들과 인건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는 그냥 50만원만 주셔도 괜찮습니다.' 같은 말을 듣기도 하는데, 학생 때 내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말은 일정 부분 진심일 수도 있다. 뭐 사정이 이러하니 좀 이해해 달라고 할만한 명분도 나에게는 존재한다.
그러나 곰곰히 돌이켜 보면, 그 옛날 인건비를 몇 달간 받지 못 한 것은 필경 불합리한 것이었다. 상사의 잔심부름을 하거나 라이드를 제공하는 것은 명백한 사용자의 권한남용이자 근로자의 권리 침해였다. 우리끼리는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에피소드일지 몰라도, 그렇다고 타인에게 되물림 되어야 할 누군가는 지켜야 할 고유의 풍습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쉬이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가령 대학원은 돈 벌러 오는 곳이 아니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의견에 나는 일부 동감한다 (BGM: 이런 소리는 돈 내고 들어야 해~). 지금의 정보를 전부 가지고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인건비가 없으면 없는대로 나름의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을 것이다. 거창한 이유는 없고, 기본적으로 낭만이란 비효율과 불합리로부터 출발되기 때문에...
다만 사용자가 된 지금에는, 어찌 되었든 상대방이 미처 인지하지 못 하는 그들의 권리를 챙겨줄 의무가 생겨버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인건비를 50만원 받는 것은 노동법에 위반될 뿐 아니라 숭고한 연구 노동의 가치에 반하는 금액임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사용자의 마땅한 책임인 것이다. 심지어 상대방이 그 고마움을 당장은 모른다 하더라도, 그 시절을 마찬가지로 통과한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뉴스를 보면 온갖 통치자들의 포악한 횡포를 목격하게 된다. 인간을 도구화하고, 타인을 그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며, 돈에 관한 효율과 속도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일련의 사건들 사이에서 우리는 인간사회 전반에 대한 절망을 경험한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개개인의 타락일 뿐 사회 전반의 타락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물며 정치인 다수의 타락이라고 해도 이는 정치인 집단의 타락일 뿐, 사회 전체의 타락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회의 타락이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저들과 비슷한 '포악한 횡포'를 부리고 있으면서도 이를 전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못 하는 상태이다. 젊은 날 그토록 싫어하던 짓들을 막상 사용자가 되어서는 그대로 되풀이 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인지조차 못 하는 상태 말이다. 이는 거칠게 얘기하자면 그토록 손가락질 하고 있는 뉴스 속 유명인(?)들과 넓은 의미의 공범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저 멀리 손에 닿지 않는 거시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마치 남의 일인냥 욕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만, 막상 내가 밟고 있는 작은 통치의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어려서부터 생각해 온 좋은 삶을 선택해 내기란 도무지 요원하기만 하다. 나이야 누구나 먹는다지만, 참된 의미의 좋은 어른이 되기란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2023년 연구원들의 인건비를 편성하며 들었던 생각,,, 그냥 한 100만원만 주고 싶은데 그래선 안 되겠지요?
환경파괴나 그로 인한 재난에 가장 치명적인 건 아무래도 사회의 약자들이다, 라고 할만한 정확한 통계나 데이터는 없지만... 아마도 그렇겠죠?
그러나 막상 환경보호나 기후정의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있는건 아무래도 '그나마 살만한' 사람들이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거나 친환경적인 제품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더 많은 재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집도 없이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살아가는 흑인들이 12개에 0.6불짜리 계란을 사 먹는다고 그들을 환경오염과 동물 학대의 주범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 하는 몇 가지의 실천이란 비교적 먼 미래의 기후정의를 위한 일이다(요새를 보면 아주 먼 미래까진 아닌 것 같지만). 지금 당장 지구에 존재하는 기름을 전부 퍼다가 플라스틱과 비닐로 만들어 땅에 묻는다 해도, 어쩌면 우리 세대까지는 그냥 여름철 조금의 더위만 참으면 될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환경보호란 지금의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1) 미래를 살아갈 (2) 타문화/타계층을 위한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죽기 전까지 우리의 낭비가 초래할 영향도 실천이 가져올 성과도 확인하지 못한채 '어쩌면 ㅈ도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며 뒤질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행위와 대상 사이의 거리감이 누군가에게는 무기력이 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이 일을 지속케 하는 동기가 된다. 단순히 이타심의 정도 차이라기보단 성과와 무관한 일에 더 흥미를 느끼는 그런게 아닐까. 내 입장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썼더니 6개월만에 우리 동네의 평균온도가 1도 가량 떨어졌다면, 이건 역시 나름대로 조금은 무서울 것 같다.
다른 이야기지만 친환경이니 동물복지니 하는 것들이 스노비즘과 마케팅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는 지적도 꽤나 일리가 있어 보인다. 부자들의 도덕적 우월감만을 채워줄 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을 하면 당장 지구가 좋아집니다!' 라는 식의 메세지에는 일단 경계심이 생긴다. '어떤 변화가 생길진 모르지만, 그래도 이 정도를 해 볼까요?' 가 좀 더 좋다.
사실 호들갑을 떨면 묘하게 심술이 난다는 말이다 (침착맨식 세상살이).
"아티스트가 오만명이 있다고 치면 장르 또한 오만개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평론가들)은 ‘개념’을 수렴하고 닫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개념’을 발산하고 여는 사람들이다."
비즐라와의 인터뷰에서 무드슐라(Mood Schula)와 진보(Jinbo)가 했던 말이다.
싱가폴 국립대학교에 다니는 친한 형이 사회과학 쪽의 논문을 쓰자고 하여, 틈이 날 때마다 관련된 논문들을 읽는다. 솔직한 말로는 [영국 왕립연구소에 따르면 뚱뚱하다고 일찍 죽는 건 아니다.], [탈모일수록 온화한 편] 같은 수준의 연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꽤나 짜임새 있고 무척이나 수준이 높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잘은 모르지만 사회과학 쪽의 연구는 보통 이렇게 진행되는 것 같다. 대략 80명에서 많게는 200명 정도 되는 어떤 집단 구성원들의 설문조사를 수행한다. 그들의 답변은 1부터 5까지의 점수와 연결되어 있다(전혀 아니다 부터 매우 그렇다 같은). 그렇게 이들의 의견들은 수치화 되고, 어떠한 복잡한 모형을 통과하여 집단을 대표하는 유의미한 숫자가 되어 연구자의 가설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세상의 문제를 진단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집단화하고 계층화할 수 밖에 없다. 나이, 성별, 직장, 소득, 뭐가 됐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든 수치화한다. 수십명의 제각기 다른 의견들을 모아 전체 집단을 대표하는 하나의 숫자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뭐 이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제각기 다른 개인성을 수렴하여 어떻게든 복잡한 사회현상을 설명해야만 하는 '그 분'들의 당연한 역할이고 임무이다.
학자가 '그 분'들이라면, 우리는 굳이 따지면 사회현상 안에서 각기 다름을 발산하는 '아티스트'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가 오만개인 것처럼 생각도 오만개이고, 따라서 우리는 한 두 개의 숫자와 점으로 표현되기에는 꽤나 다른 사람들이다. 가령 나는 뚱뚱하지만 누구보다 빨리 죽을 예정이고, 탈모이지만 성격이 더럽다. 이 세상에는 세월호와 천안함을 동시에 추모하는 사람들도 있고, 노동자의 권익에 관심이 많지만 친북단체를 혐오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토록 복잡한 서로를 단편적으로 유형화/집단화하기란 여간 곤란한 일이다.
그럼에도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서조차 상대를 집단화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고, 대신 성별이나 나이, 학력, 고향, 거주지, 재산 등을 토대로 적절한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어 내는 쪽이 훨씬 빠르고 간편하다. 마치 의사결정 트리와 같이, 몇 가지의 사회적 맥락을 통과하고 나면 [개딸], [클베], [페미], [강남좌파], [이대남] 등의 카테고리가 정해진다. 게다가 실제로 경험해 보면 이 쪽이 아주 틀리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 '관상'이 'MBTI'보다 정확하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을 집단의 틀로부터 분리하여 사람 그 자체로 대하는 태도가 좋다. 집단의 타이틀 대신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사회적 맥락이 아닌 자기의 중심에 판단의 기준을 두고, 수 차례의 만남과 별 볼 일 없는 대화를 통해 기어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들 말이다. 뭐 그리 대단하고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니고, 역시 여러가지 면에서 '비효율적인' 방식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와 가수명, 평론가들의 점수를 따라 검증된 레코드만 사는 것도 좋지만, 아무거나 쑤셔대는 쪽도 꽤나 재미있는 것처럼.
혐오와 배제로 가득한 인터넷 세계와 달리, 실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퍽 따뜻하다. 학교 앞 식당에서 만나는 조선족 어머님들은 당연하지만 살인마가 아니고, 연구실의 이대남들이 전부 여성을 혐오하는 것 같진 않고, 학회에 참여하는 여대생들이 전부 한남충의 재기만을 바란다고는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다. 집단으로 보면 그들은 한국사회의 뇌관과 같은 존재들이지만, 그러한 [평론가들의 개념]을 한 꺼풀만 넘어서 보면, 그들은 괴물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식탁을 마주하고 삶을 나눌 수 있는 피가 통하는 인간들임을 나는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까 수염이 나고 대머리에 모자를 쓰고 한 겨울에도 샌달을 신고 오래된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여러모로 궁색하다.
연구를 드럽게도 못 하는 주제에 매년 한국연구재단에 제안서를 낸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분량 제한이 5페이지라는 점이 참 좋다. 시덥잖은 산업동향 분석이나 정부 정책과의 부합성 같은 걸 넣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일만 적고, 꼭 필요한 다이어그램 몇 개만 적어도 5페이지는 금방 찬다.
물론 5페이지 안에 명료하게 할 말을 딱 적는게 도무지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나는 말들을 전부 적으려 하면 도무지 분량 제한을 맞출 수가 없다. 이 쪽 세계의 클리셰와도 같은 상투적인 형용사나 과장스러운 수사를(i.e., '우수한 기술을 통한...', '국민 삶의 질 증진을 위한...') 전부 걷어내야 한다. [유지관리 사업 현황]과 같은 영혼 없는 막대 그래프 역시 들어올 자리는 없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덜어내기'의 싸움이다. 5페이지 내에 있는 모든 단어들을 수차례에 걸쳐 전수조사 하는 것이다. 이 금싸라기 같은 땅에 또아리를 틀고 있어도 될만한 문장인지, 허황된 소설을 계획이랍시고 적어두진 않았는지, 상투적인 기대효과들을 칸 채우기 식으로 적은 것은 아닌지. 그렇게 하나씩 지우다 보면, 막상 5페이지가 휑해지는 걸 경험하게 된다. 제안서라는 것을 진실하고도 꼭 필요한 말로만 채우는 것이 얼마나 아득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특히 그림 그리는 일은 정말 중요하고 또 어렵다. 거의 한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는 모식도 같은 것을 그릴 때면, '야 너 하나 때문에 지금 몇 개의 단어가 썰려 나갔는지 아냐' 같은 마음이 든다. 최소 수십여 문장이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담고 있어야 한다 생각하면, 어찌 되었든 꽤나 공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조직도나 체계도 따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퍽 체감한다.
스펜서 교수님은 논문을 봐 주실 때마다 '이 연구를 중학생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하라'고 지도해 주셨다. 이해성 교수님 역시 '니 연구를 한 장으로 설명해 봐라'라는 질문을 참 많이 하셨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5페이지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이란, 여러모로 빌 에반스식의 간결함과 지성을 단련하는 데 아주 좋은 훈련이 된다.
이렇게 말하면 제안서에 통달한 사람 같지만, 실은 3번 내서 겨우 1번 되었다. 명료하게 말 하기란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막상 이 글만 봐도...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2020년 여름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우리 동네(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의 영웅과 같은 분을 만나 토요일 낮을 맞이하여 포항의 길거리를 산책한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가장 바쁘고 긴박한, 일분 일초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되는 꽤나 긴박한 시절이었다. 그런 와중에 생의 어느 한 곳과도 닿지 않은 생경한 공간에서 인터넷으로만 알던 유명인과 마냥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이것은 마치 야밤에 정신 없이 택시를 타고 내렸더니 그토록 동경하던 중세시대 문인 모임에 와 있던 우디 앨런 영화 속의 장면만큼이나 현실로부터 한참이나 유리된 순간이었다.
바쁜 와중에 무언가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한가로움을 즐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런데, 과연 이토록 유명하고, 정말로 만나자는 사람이 산처럼 쌓인 분에게는 이 시간이 어떤 기분일까. 나처럼 영양가 없는 사람과 보내는 공휴일의 점심이란 잘해야 시간을 때운다거나,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순간의 잘못된 약속이 빚어낸 어쩔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결국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혹시 저 때문에 억지로 걷는 것이면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같은 말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그러나 그 분은 손사래를 치며 아주 단호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전 이제 싫어하는 일은 안 해요."
그때야 '와 멋지군요' 하고 말았지만, 이후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수많은 순간에서 이 말을 곱씹게 된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는 미묘하게 결이 다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뭔가 신나고 근사한 분위기라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꽤나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느낌이랄까. 좋아하는 걸 한다고 하면 보통은 지지해 주지만(물론 별로 거슬리지 않을 경우에 한하지만), 뭔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훨씬 더 많은 의문과 저항이 뒤따라온다. 그러니까 보통은 '왜?'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애물이란 개인의 힘으로 쉽사리 이겨내기가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허들은 역시나 돈이다(정확히는 어떠한 '이득'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은 그토록 싫어하는 일을 기어코 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 꼴리는 대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 시발점이 되는 것이 바로 돈이다. 즉 싫어하는 일을 함으로써 느끼는 불쾌감과 그 대신 얻게 되는 이득을 본능적으로 비교하고, 대충 괜찮다 싶으면 이후에 그럴듯한 변명을 만들어 불쾌감을 다스리는 데에 선수가 되어가는 것이다.
왜 싫은지를 설명하는 귀찮음 역시 꽤나 큰 저항이다. 2년 전 나는 6년정도 된 아이폰5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바꾸라고 종용했었다. '최신 핸드폰에 관심도 없고, 무엇보다 아이폰5가 가벼워서 좋더라구요.' 같은 변명을 매번 하였지만 뭔가 괜히 궁색하단 말이지. 이 경우 조금 진지하게 왜 무언가를 하지 않는지 설명하다 보면, 보통 분위기가 싸해지기도 한다.
같은 맥락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실망 혹은 그들의 감정을 동반한 설득이야말로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데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뭐 그리 대단한 결심이라고 저들이 저렇게까지 원하는 걸 안 하고 있나' 같은 자조라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무지막지하게 싫어하는 일이랄 게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그건 사실 나름의 사정을 통해 싫어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근육이 생긴 거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러한 취향과 철학에의 무뎌짐을 두고 우리는 보통 철이 들었다거나 성숙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린아이들이 양치가 그토록 싫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양치한다거나 뭐 그런 의미일 수도 있고, 결코 영수증을 돌려쓰지 않던 학생이 회식비 처리를 위한 그럴듯한 회의록을 무감각하게 찍어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절대 롱패딩을 입지 않겠다던 사람이 한파 앞에 무릎을 꿇는 것도, 결코 머리를 기르지 않겠다던 사람이 살롱 스타일의 파마까지 하게 되는 것도.
그렇게 몇 번씩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의외로 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던 것도 해 보니 할 만 하구나. 또한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도 알게 될 것이다. 뭐 그런 경험칙들이 쌓이면서 내 안에 있던 왜곡된 기준과 관념들이 교정 될 수도 있겠고, 그 힘을 통해 비로소 하기 싫었던 무언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운이 좋다면 '이런건 정말 다시는 해선 안 되겠구나'라던가 '이건 안 해도 되는 일이 맞았구나' 를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생각보다 이득이 크지 않았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영혼이 더욱 피폐해져서 일 수도 있다.
뭐 그런 저런 의미에서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인 것이다.
대학교의 직원이 된 후 지난 2년간 느꼈던 몇 차례의 불쾌함을 돌아보며, 지금의 나는 무엇을 싫어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며 예민하거나 특별한 취향들이 조금이나마 무뎌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극도로 싫어하는 건 고구마 무스 정도?), 사소한 불쾌함들 사이로 내가 여전히 무엇을 싫어하는지가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보았다. 그 중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 동인은 무엇일까. 면도 하라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지만 몇 차례의 탈락 덕에 면접날 수염을 깨끗하게 밀었다. 면허를 따는 것도, 한국식 결혼식을 하는 것도 정말 싫었지만 기어코 해내어 지금은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이 중 몇 가지는 막상 해 보니 오히려 꽤 유익했지만, 그 중 몇 가지는 정말 내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싫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시간이 나면 좀 더 써보자.
오히려 누군가는 정해진 규칙 안에 있을 때에 더 큰 안정감을 느끼고 좋은 성과들을 거두었을 수도 있으니 사실 감히 무엇이 좋은 삶이라 말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고, 그러한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격려해 줄 수 있다면 참 근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완전한 자유 같은 것이 세상에 존재할 리는 없지만, 그런 건 아주 잠깐이나마 상상만 해도 참 좋은 것 같다.
여담이지만 합격과 동시에 나는 수염을 길렀고, 지금은 머리도 밀고 모자도 쓴다. 뭔가 한심하다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이 영상은 빌 에반스(Bill Evans)가 핀란드의 유명 음악인 일카 쿠시스토(Ilka Cuisto)의 헬싱키 집에 초대되었을 때의 모습을 담고 있다. 20대의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Eddie Gomez)가 트리오에 합류하게 된 사연, 약물을 끊고 어찌 보면 다시금 총명한 상태가 된 빌의 빈틈 없는 연주, 중간 중간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썩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이에 얽힌 자세한 얘기는 인터넷에 치면 줄줄 나오니 참고를 바랍니다.
연주 사이의 짧은 대화에서도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인데, 빌 에반스의 연주는 왠지 모르게 지성적이다 (연주가 지성적이란 표현은 굉장히 반지성적이지만). 과연 무엇이 그의 음악에서 지적인 풍모를 풍기게 하는가, 라고 하면 역시 와꾸가 한 몫 한다. 사실 저런 얼굴과 목소리라면 '되'와 '돼'를 구분하지 못 해도, 2x2를 6이라고 대답해도 분명히 지적으로 보일 것이다.
빌 에반스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간결한 연주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불필요하고 과한 요소, 혹은 뻔한 장식들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그의 연주는 그래서인지 참으로 명료하다. 그렇다고 빌 에반스의 연주가 허전하냐고 하면 당연히 그렇진 않다. 항상 꼭 필요한 만큼의 노트만이 담겨져 있는 그의 연주에서는 문자 그대로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과한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이것이야말로 지성을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인 것이고, 따라서 지성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닌 끝없는 훈련과 성찰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소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빌 에반스의 간결하고도 충만한 연주에서 그의 음악에 대한 세심한 성찰이나 지성의 깊이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논문을 쓸 때면 무의미한 문장을 기계적으로 남발할 때가 있다. 인트로의 첫 문단이나(사실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무언가 형식적으로 써버린다), 혹은 별볼일 없는 결과를 부풀리려고 할 때면 꼭 클리셰 같은 문장으로 범벅을 만들어 버린다. 한참 지나고 다시 읽을 때면 무의미한 문장 사이로 얕은 고민의 흔적과 무지함이 줄줄 새어나와 참 민망해지곤 한다. 반대로 요새는 불필요한 표현을 최대한 덜어내려고 하는데, 막상 필요한 설명까지도 전부 빼 먹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써버리고 마니, 지성인이 되기란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여튼 '꼭 필요한 만큼'의 노트로 꾸며진 에밀리(Emily) 연주, 그리고 50년 전이라곤 믿기 힘들만큼 '꼭 필요한 만큼'의 요소들로만 구성된 북유럽의 모던한 풍경이 무척 잘 어울리는, 인생에 마가 뜰 때마다 주기적으로 감상하는 제가 참 좋아하는 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