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상담할 때 나는 모든 학생들에게 어떻게 토목과에 오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묻는데 당연하지만 99%는 점수 맞춰서 왔다.
딱히 하고 싶은 것 없이 점수 최대치에 맞춰 전공을 결정하고, 4년간 이게 뭘 위해 하는건지 알 수 없는 전공을 배우고, 뭐 재밌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죽을듯이 싫지는 않아서 떠밀리듯 졸업을 한다. 그런데 심지어 그렇게 정한 전공을 평생의 직업으로 살아가다니.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적성에 대해 탐색하고, 그 동기를 따라 전공을 정하고, 평생의 직업을 선택하는 방식에 비하면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점수 맞춰 얼떨결에 정한 전공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버리는 한국의 랜덤박스 같은 경향이,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꽤나 낭만적인 것도 같다. 뭐랄까. 마치 무작정 버스터미널에 가서 '지금 바로 출발하는 걸로 주쇼'하고서는 목적지도 알지 못하는 버스에 올라타고 그렇게 도착한 곳에 심지어 평생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조금 다른가).
분명한 목표와 꿈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무래도 가장 멋지고 근사하지만, 이조차도 뭔가 경쟁 시스템의 마사지를 받고 나면 괴랄한 형태로 변해버린다. 가령 멘토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게 딱히 없는 젊은이들이 뭔가 '좋지 않은 상태'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경우를 실제로 꽤나 자주 보게 된다. 가슴이 떨리는 일을 발견하는 일조차도 공포와 걱정이 동기가 되어선 곤란하지 않을까.
한 편 점수에 맞춰 토목과에 들어가면서 '졸업하면 목수가 되는거겠지' 하고 생각하던, 토목을 생각할 때 단 한 번도 가슴이 떨린 적도 없었던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멋지고 근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나쁜 상태도 아닌 것 같다. 그 때 버스 터미널에 5분만 늦게 도착했어도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하여 지금과 다른 분야를 직업으로 삼고 있었겠지만, 그 역시 딱히 나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닌가?).
여하튼 혹시 토목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두근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길 권합니다.
다큐멘터리 <공대에 미친 중국>와 <의대에 미친 한국>이 화제다. 라기엔 이미 조금 뒷북이지만...
한국의 청년들이 딱히 사람을 살리는게 좋아서 의사를 꿈꾸는게 아닌 것처럼, 중국의 청년들 역시 첨단기술의 선두에 서는 것에 보람을 느껴서 공대에 가는건 아닐 것이다. 두 민족은 각자의 환경에서 여하튼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다큐멘터리를 하나의 제목을 묶는다면 <돈에 미친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꿈이 과학자였던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안정적 직장이나 수익 때문에 그런 꿈을 가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워낙에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는 시절인지라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따라 진로를 결정했던 것이다. 과학자가 멋있어 보여서, 혹은 과학 시간에 실험하는게 재밌어서, 수학 문제 푸는걸 남보다 조금 잘 해서... 뭐 그런 사소한 감각 때문에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공대를 부흥시킨다는 것이 의사의 소득을 줄이고 이공계의 투자를 확대한다는 관점보다는, 결론적으로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따라 진로를 정할 수 있는, 자기 내면의 사소한 감각을 따라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방향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말은 무척이나 공허한 말처럼 들린다. 특히나 '돈이 없으면 뒤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가득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돈이 없고 소유가 부족하면 불행할 수 있다는 실감을 느끼고, 그렇게 생존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도구를 찾다 보면, 돈을 찾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생존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꿈이니 적성이니 하는 것은 돈에 비해 얼마나 미약한가.
따라서 공대를 부흥시킨다는 건, 혹은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따를 수 있는 토양을 만든다는 건, 결론적으로 '사소한 감각을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그래도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신뢰의 형성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러한 신뢰가 결여된 상태에서 억지로 공대를 부흥시켜봤자, 그것은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 결국 돈이 되지 않는 어떠한 분야가 공대 대신 소외될 뿐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 역시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했을 때... 주저하게 된다. 고민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들이 입을 모아 별로라고 하는 <오징어 게임 3>을 큰 용기를 내어 봤다.
별볼일 없는 영화나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들을 보면, 어렸을 땐 도대체 저 사람들은 뭐하러 저런 쓰레기들을 계속해서 생산하는 것인가 하는 고약한 마음을 먹곤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작자들이라면 어쨌든 개쩌는 영화나 음악 많이 보고 듣고 할텐데, 뭔가 그러한 수작과 자기들의 별볼일 없는 작품과의 객관적인 비교가 전혀 되지 않는 것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러한 힐난을 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내 사정도 그리 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보다 연구 훨씬 더 잘 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고, 내가 하는 연구의 수준이 그 분들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는 것을 나조차도 익히 알지만, 어쨌든 그냥 뭐 밥벌이처럼 연구를 하고 논문 비슷한 걸 쓰고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별볼일 없는 영화나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싶어지는 것이다.
특히 항상 실력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나로서는,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동혁이 성님에게 굉장한 감정이입이 된다. 물론 현재의 내 연구역량을 감히 동혁이 성님의 영화력이랑 비교하는 건 무척이나 무례한 일이지만...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평균을 웃돌거나 가끔은 상회하는 작품을 만들던 중, 갑자기 외국 리서치 그룹과 함께 한 연구의 결과가 꽤나 좋았다. 그런데 그냥 단순히 NCS 정도에 게재된 수준이 아니다. 각종 언론에 도배되고, 필즈니 튜링이니 노벨상이니 뭐 그런 시상식을 휩쓸고, 최고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실력이 모자라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실력에 비해 주변의 평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좋은 상황. 애써 태연한 척 대가들과 어깨동무 하고 있는 와중에도, 최소한 본인은 안다. 아 이거 개후루꾼데, 저런 대가 성님들처럼 치밀한 고민과 디자인을 통해 나온게 아닌데, 다시 이런거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하는데... 하는 그런 불길한 마음이 스멀스멀 들 수 밖에 없다. 동혁이 성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위를 출발한 눈덩이는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맹렬하게 질주할 뿐이다.
결국 본인은 늘 그랬듯 본인의 최선을 다해,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는 수준의 역량을 가지고, 평균을 웃도는 수준의 연구를 수행한다. 일전의 전 세계를 뒤흔든 후루꾸가 없었다면 오히려 적당히 좋은 논문에 게재가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구 열심히 하네요' 같은 칭찬도 듣고, 그렇게 또 다음 논문을 준비할 수 있는 적당한 온기와 동력을 얻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평가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잠시 잠깐 어깨동무 하고 지내던 대가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는, 여러모로 미달이다.
물론 한 번 정도는 봐 줄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미달이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비로소 모두는 맨 처음의 연구가 단순한 후루꾸임을 알게 되고, 그전까지 지나치게 좋은 평가를 하던 사람들은, 이제는 또 지나치게 가혹한 비난을 한다. 돈다발을 찾아 들고 어슬렁거리던 회사들, 어깨동무 하던 대가들은 어딘가로 사라진 지 오래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발 디딜틈 없던 놀이동산은 하루 아침에 황량한 묘지가 되어버린다.
잘은 모르지만 동혁이 성님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무척이나 억울할 것이다. 그냥 자기는 늘상 하던 대로 하고 싶은 것들을 자기의 역량에 따라 했을 뿐인데, 갑자기 전 세계의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대가와 같은 위치로 치켜 세워지더니만, 마찬가지로 또 늘상 하던 대로 하고 싶은 것들을 자신의 역량에 따라 했을 뿐인데, 동시에 전 세계의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무간 지옥으로 끌려 내려가는 것이다.
이를 두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유명인이 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자기를 둘러싼 호의와 악의의 총량을 양방향으로, 그것도 비약적으로 확대시키는 일이다"고 이야기 했는데, 특히 실력에 비해 지나치게 좋은 평가를 받는 유명인 혹은 창작자의 삶이란 하루키의 말보다도 훨씬 더 고독하고 쓸쓸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비난이 때로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아, 가끔은 괜시리 서글퍼 질 때가 있다. 물론 현재의 내 연구역량을 감히 동혁이 성님의 영화력이랑 비교하는 건 무척이나 무례한 일이지만... (2트)
지난 5년간 논문을 몇 편이나 적었나 세어보니 한 18편 정도를 낸 것 같다.
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연구실에는 1년에 대략 20-30편 정도의 논문을 낸다고 한다. 그에 비교하면 나의 생산력은 그 분들의 20% 정도, 내가 속한 이 지식공동체가 만약 일반 사기업과 같은 완전한 성과연동제로 운영되었다면 내 연봉은 잘 해야 2천만원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서울시 이하 관계자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학원 때는 논문 쓰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지 않았다. 박사과정 당시 나는 지금보다 더욱 한가한 사람이었는데 (나의 대학원 생활은, 국방부에서 근무태만의 이유로 재입대 명령을 내릴까봐 도무지 자세히 적을 수가 없다), 그렇게 1년에 끽해야 1편 정도의 논문을 겨우 쓰는 중에도 연구실 내에서는 꽤 논문을 열심히 쓰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도 다른 학교에서는 학생인데도 1년에 두자리수의 논문을 쓰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줄비했다고 하는데, 어쩐지 그런 분들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 했다.
논문의 양이 많다고 훌륭한 연구자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왕창 써 보는 시기를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 대략 3-4개 정도의 논문을 동시에 작성하고, 투고하고, 수정하고, 디펜스하고, 또 그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새로운 논문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과연 피로와 고통을 느끼는지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다. 결국 아카데미아란 그것을 업으로 삼으며 삯을 받는 사람이니까.
동시에 한 번 정도는, 엄청난 공을 들여 정금과 같은 논문을 써 볼 필요도 있다. 논문이 될만한 결과가 나왔다고 거기에서 멈추어 서서 곧바로 본문을 작성하지 않고, 도리어 몇 편으로 쪼개어 낼 수 있는 수많은 결과들을 모아 하나의 관이나 담론이 될만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통섭에의 경험이 없으면, 결코 전공 분야에 있어서 깊이와 두께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어떻게 이렇게 확신하냐면, 내가 그런 경험이 없어서 얕은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인데, 앞에서 말한 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연구실에서는, 엄청난 공을 들인 정금과 같은 논문을 왕창 쓴다. 도대체 그런 연구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주 가끔씩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 같은 아찔한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언젠가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똥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10명이 넘을 때가 오면 홈페이지를 삭제하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지난 5년간 얼추 6명 정도가 이 지옥의 똥글을 꽤나 꾸준히 읽고 있음을 확인했다. 무슨 말이냐면, 이렇게 한심한 글을 적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볼성사나운 꼴을 더 이상 잠자코 보기 힘드신 분들은 4인의 증인만 더 찾아주길 바랍니다
꽤 많은 교수님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봤으나 이렇게 단 하나의 영양가 없는 글을, 이토록 꾸준히, 그것도 연구실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은 (당연하지만) 없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나 생각해보면 (1) 나는 영양가 있는 글을 쓸 줄 모르고, (2) 꾸준히 한가하고, (3) 가장 중요한 건데, 이 홈페이지는 다른 유명 연구실과 달리 방문객이 거의 없다. 하루 방문객 2만명이 넘는 홈페이지에 이런 똥글이 주구장창 올라오고 있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다.
유명한 교수가 되어 연구실에 들어오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런 유명세 덕에 이런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뭐 지금의 이름 없는 신세가 오히려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단순히 똥글을 쓸 수 있냐 없냐만은 아니고, 결국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혹은 선택에의 근력과도 관계가 있다.
작년을 끝으로 다시는 방문하지 못 하리라 생각한 EMI에 올해도 참여하였다.
1. 선호군은 늘 연습 때보다 실전에서 발표를 더 능숙하게 한다. 질의 응답에서는 조금 버벅거렸지만, 못 알아 들었을 때 제 멋대로 대답하기보다는 못 알아 들었다고 정확히 알리는 것은 참 좋았다. 그나저나 역학에 아주 정통한 연구가 아니라 참가자들의 큰 관심은 끌지 못 한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내가 볼 땐 꽤 괜찮은 연구 같았는데... 바람이나 모니터링, 혹은 AI 관련 학회에서 발표를 하면 좀 더 좋으려나 싶다.
2. 석사 졸업생 박소연양이 Structural Health Monitoring and Control 커미티에서 주관하는 학생 경진대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 작년과의 차이는 송준호 교수님의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정도 같아서, 이래저래 조금 머쓱해진다. 연구실을 떠나 큰 물에 입성하여 관악산 안경잽이 천재들 사이에서도 어떻게 꿀리지 않고 어떻게 잘 버티고 있는 듯 하다. 거기 권영준군이 정말 똑똑하던데...
3. 미국에 공부하러 간 도연이나 웅희는, 뭔가 내가 이렇게 평가하기도 머쓱할만큼 꽤나 굉장한 연구자가 되어 있었다. 그들의 성장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음에도 왠지 모르게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손흥민이 골을 넣었을 때와 같은 기분). 언젠가 둘 중 하나가 나중에 서울대 교수로 온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둘 다 아마도 미국에서 쭉 머물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그들은 똑똑한 놈들이기 때문에...
4. 세진이 발표가 끝난 뒤 세션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쪼르르 따라와서 여러 질문을 했다. 그게 길어져 한 20-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데, 역시 또 손흥민 골 넣었을 때의 기분이... '옆에 저 아저씨는 뭐야?' 라는 표정으로 노려볼 때마다 모른척 다른데 보느라 혼났다.
5. 세진이는 발표자료에 수식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론적인 내용이 전혀 없는건 아니다. 복잡한 수식을 동원해서 설명해야만 하는걸 그림 몇 장과 간단한 순서도로 적당히 퉁치는 것이 세진이의 장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덕에 아마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진이가 뭘 했는지 이해하고, 또 그림 몇 장과 화살표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그렇게 토론을 하게 되는 것 같다.
6. 기석이는 올해도 와서 굉장한 발표를 했다. 예전에 기석이는 내가 아는 모든 한국인 중에서 영어를 제일 잘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한국인이 아니라 기석이는 내가 아는 모든 인터네셔널 중에서도 영어를 제일 잘 하는 것 같다. 사실 느낌상으로는 미국인보다도 기석이가 영어 잘 하는 것 같은데, 기석이가 그건 절대 아니라고 해서 겨우 주접을 참고 있다.
새삼 철마다 굉장한 사람들과 연구실 생활을 함께 했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금년에도 역시 발표 한 번 하지 않은 나는 대체... (0점)
지금은 존재도 희미해 진 서울대학교 32동에는 전설의 교량설계핵심기술연구단 사무실이 있었다.
거기에는 70-80년대 미국 토목학회(American Society of Civil Engineers, ASCE)에서 나온 논문이나 그 복사본, 혹은 80-90년대 IABSE나 IABMAS의 프로시딩이 책장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마도 연구년 다녀오신 교수님들이 가져오신 게 아니라 추측하는 그 논문들은, 문자 그대로 '종이가 해질 때까지' 수많은 선배들에 의해 읽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새는 누구도 읽지 않는 프로시딩 북에 빼곡하게 남겨진 밑줄과 메모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시절 문헌조사의 최대 미션이란 '어떻게 논문을 구하느냐'였다. 해외의 논문을 구하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일오더가 가능한 시점이 되었을 때에도 그 무시무시한 가격을 생각하면 아무거나 쉽게 주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일단 저명한 출판사에서 나온, 좋은 대학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작성한 논문을 주문하고 기다린다. 그렇게 도착한 논문이 마음에 들면 다행이지만, 예상과 다른 내용이거나 수준이 낮아도 별 수 없다. 일단 읽는다 (라고 나는 상상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내가 석사과정을 시작한 2010년에는 상황이 전혀 달라져 있었다. '어떻게 논문을 구하느냐'는 이미 해결된 지 오래였고, 오히려 봐야 할 논문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였다. 2010년 기준 구글 스칼라에 "Structural Health Monitoring"을 치면 약 1만 7천개 정도의 논문이 나온다. 이 시점부터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가 최대의 미션이다. 당시의 학생들은 석사와 박사를 지나며, 수많은 논문 속에서 금과옥조를 발견하는 각자 '나름의 방법'들을 연마해야 했다.
그리고 2025년에는 어떠한가. 이제 구글 스칼라에 "Structural Health Monitorning"을 검색하면 30만개의 논문이 나온다. 그러나 논문을 찾는것도, 30만개 중 읽을만한 논문을 고르는 것도, 심지어 그렇게 고르는 논문을 읽어주는 것도 최대의 미션은 아니다. 이 모든걸 AI가 전부 대신 해 주기 때문이다.
가령 Perplexity, Elicit을 통해 일단 문헌을 찾는다. 그리고 ResarchRabbbit이나 ConnectedPapers로 연관된 논문들도 찾아낸다. 그렇게 찾은 논문들을 Claude나 ChatGPT에 올려놓고 프로젝트를 만들어 이런 저런걸 묻는다. 질의응답을 읽는 것조차 귀찮으면 NotebookLM에 올려서 팟캐스트를 만들어 듣는다. 그리고 입력 데이터가 멀쩡하고 프롬프트가 괜찮다면, 논문을 찾고 분류하고 정리하여 문제를 정의하는 일련의 퍼포먼스는나같은 범부의 수준과 깊이를 아득히 초월한다.
이처럼 이전 세대의 질문들은 대부분 해결된(것처럼 보이는) 2025년 학생들에게는 어떤 것이 문헌조사의 최대의 미션일까. 잘은 모르지만 '이 정보가 믿을만하냐'가 아닐까 생각한다.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래밍 수업을 한 지 3년 정도가 지났는데, 지난 1년 사이 학생들의 실습이나 과제 퍼포먼스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수업 퀄리티가 좋아져서도 아니고, 코딩 조기교육 때문도 아니다. ChatGPT 덕분이다. 철환이나 진욱이, 혹은 윤화형이 만든 코드를 왼쪽 모니터에 펼쳐놓고 온갖 숙제들을 겨우겨우 해결했던 사람으로서 딱히 그러한 경향—하드코딩 대신 적절한 컷앤페이스트로 기능을 수행하려는 방식—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문제는, ChatGPT가 준 코드란, 당연하지만 종종(실은 꽤 자주) 틀릴 때가 있다는 것이다. ChatGPT가 준 코드를 그대로 복사해서 실행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는 ChatGPT가 멍청해서라기 보다는 학생들이 ChatGPT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 하거나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못 해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학생들은 그 지점에서 코드를 디버깅하는 것이 아니라 '잘 안 맞는데?'라고 ChatGPT에게 다시 프롬프트를 던진다.
이처럼 요새 학생들에게 코딩이란 코드 내의 버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ChatGPT한테 한 질문에 어떤 부분이 잘못된거지?'를 반추하는 과정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풍경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나같은 사람이 알턱은 없으나, 어쨌든 지금의 코딩이란 우리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이야기인데 그래서 아주대학교의 김태용 교수님은 파이썬 코딩을 손으로 쓰게 한다고 한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논문을 읽는 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면, 문헌조사(혹은 연구)와 1학년 프로그래밍 예제와의 차이는 '정답지'의 유무이다. AI의 산출물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할 기준이 외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정보가 믿을만하냐'가 최대의 미션이라는 것은 그러한 의미이다.
실제로 종종 문헌조사랍시고 아무 영혼이 없는 뻔한 이야기들이 잔뜩 나열된 것을 들고올 때가 있다. 그런 경우 필시 **컴퓨터 비전(Comptuer Vision)** 같은, ChatGPT 특유의 강조 문구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 그럴듯한 전문용어들의 나열이, 실상 문헌조사의 관점—관련 연구의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거기에 존재하는 빈 공간을 찾아내어, 조금이나마 학문 공동체의 지식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문제를 정의하는 것— 에서는 쓰레기에 가깝다는 것을 아직은 알지 못 하는 것이다.
물론 교량설계핵심기술단의 해질대로 해진 ASCE 논문과 NotebookLM이 주는 팟캐스트 음성 중 어느 게 더 연구에 도움이 되는지 나는 감히 알지 못 한다. 가령 태평양을 건너온 $140짜리 논문 하나를 두고 행간의 의미를 이해할 때까지 영어사전을 뒤지는 경험이란 분명 오늘날 학생들에게는 결여된 중요한 체험이지만, 동시에 그렇게 몇 편의 논문에만 의지해서는 지식 공동체의 SOTA 혹은 최신화된 담론을 따라갈 수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다만 둘 사이의 적절한 밸런스가 필요하다면, 감히 이야기하건대, 소위 말하는 노가다에 가까운 논문 검색, 혹은 무식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며 논문의 방법론을 내 손으로 구현해보는 올드스쿨의 경험을 그래도 한번쯤은(실은 어느 정도의 두께를 가지고)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비효율에서만 배울 수 있는 몇 가지의 기술(?), 그리고 거기에서 자라나는 고유한 감각이 곧 오늘날 문헌조사의 최대 미션을 해결하는데 꽤나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전산구조공학회에서 만난 수학과 교수님께 딥러닝 네트워크를 최적화하는 어떤 체계적인 방법론 같은게 혹시 있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그 때에 '그런 왕도는 없다. 다만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베이지안 최적화보다 그냥 랜덤 서치나 그리드 서치를 하는게 더 정확할 때가 많다'고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이유까지 여쭤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베이지안 최적화를 비롯한 알고리즘이 이끌고 간 그곳에는 맥락이나 의미 같은 것이 부재해서는 아닐까 추측해본다.
실제로 베이지안 최적화를 통해 얻어낸 최적 초변수에 대해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면, 결국 노가다를 해야 한다. 두꺼운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각각의 초변수가 네트워크의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그리드 서치 등을 통해 정량화하고, 그러한 경향과 베이지안 최적화의 결과가 잘 맞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좋은 의미를 지니는 값이 이러한 특성을 띄는데, 알고리즘이 우릴 안내한 곳이 이 근처니 괜찮겠지요' 정도... 아닌가? (사실 전혀 모른다)
마찬가지로, '이 AI 기반 툴이 준 정보가 믿을만하냐'를 알기 위해서는, 그래도 한 번은 스스로 AI를 대신하여 몸을 움직이고 시간을 써서 수많은 문헌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코딩을 할 줄 아는 사람과 스스로는 한 줄도 써 내려갈 수 없는 사람 중 누가 더 ChatGPT를 잘 활용할까를 생각해보면 자명하다. AI의 정보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려면, 먼저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논문의 문장과 씨름하며 좋은 문헌이 주는 정보가 무엇인지를 경험해야 한다. 동시에 나쁜 문헌 역시 충분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감각에 기반할 때에 AI의 산출물에서 금과옥조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좋고 나쁨'에 대한 감각을 두고 직관이라고 한다.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을 모두 아우르는 시간의 두께를 통해서만 생겨난다고 하는 이 직관이야말로,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이 시대의 전문가가 지녀야 할 최후의 덕목이 아닌가 싶다. 혹자는 직관조차도 근시일내에 구현 가능해질거라고는 하지만 (정말인가요?).
실은 학생들과는 전혀 상관 없이, 그냥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지구력이 무척이나 약해진 것 같아 반성하는 마음으로 적어봤다. 사실 이런걸 작성할 시간에 보면 되는데...
송준호 교수님 연구실에 유학(?)간 박소연 연구원이 오랜만에 학교에 방문했다.
소연양이 관악산 유학길에 오르기 전, 함께 작성하던 논문이 하나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가령 이석원의 새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일기를 주기적으로 체크한다든지) 한참동안 보지 못 하다가 최근에서야 파일을 열어봤더니 뭔가 여러모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참고로 누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게 그래프를 그려달라고 했냐면, 당연하지만 나다. 지구상에 있는 교수란 놈들이 변덕만 부리지 않아도 세상은 1% 정도는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하여 전농동을 떠난지 무려 46일이나 지난 사람에게, 이제 와서 1달 전에 보내준 논문의 그림을 전부 다시 그려 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하고야 말았는데, 고맙게도 소연양이 하루 시간을 내어 학교에 와 주었다. 대학원에도 노동조합 같은게 있으면 나는 이미 금속노조를 통해 전국적 수배령이 내려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선호가 '소연씨도 왔는데 같이 식사 하실래요?' 라고 예의상 물어보았다. 얼마 전 20대와 절대 교류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각오가 있었으나... 여튼 소연양과 이렇게 밥 먹는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어(라는 핑계를 대며) 학교 앞에서 제육볶음을 먹었다. 마지막 식사랍시고 제육볶음을 먹었으니, 아마 이것이 정말 마지막 식사가 될 것 같다.
덕분에 관악산 구조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이런 저런 이야기도 듣고(아직도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같은 야만적인 행사가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송준호 교수님과 함께 새롭게 하는 연구 이야기도 듣고(대부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과거 일면식도 없는 신준섭 학생에게 대뜸 헤드락을 걸었던 적이 있는데 혹여나 길에서 다시 준섭씨를 만나면 곤죽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도 듣고... 여러모로 유익하고 또 즐거운 시간이었다. 준섭군 미안합니다.
나의 대학원 생활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요새의 박사과정 학생들처럼 엄청나게 생산적이지도 않았고, 뭔가 하나의 이론이나 현상에 대해 깊게 이해하지도 못 했지만, 그럼에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참 즐거웠다. 무엇이 즐거웠냐고 하면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그러나 루틴하게 돌아가던 하루 하루가 정말 즐거웠고 그 어떤 것도 자발적으로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감각만큼은 꽤나 선명하다. 그 덕에 이렇게 아직도 학교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식사도, 대학원 생활도, 내가 즐거웠던걸 보면 나머지 사람들은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20대와 절대 교류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시금 새겨본다.
아무리 세상에 수상하기소로니, 나 같은 사람의 조언을 듣겠다는 한가한 사람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적 특성상 아주 가끔씩은 조언이라는 것을 해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놓일때가 있다. 그들이 정말 조언이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위계질서에 따라 마치 내가 당신의 조언이 필요하다는 액션을 취해야만 하는 상황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나의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평범했으며 뭐 하나 모난 것이 없었다. 화목한 가족에서 자라며 별다를 것 없는 마계인천의 국공립 초중고를 나왔다. 운 좋게 들어간 대학교를 지나 순전히 남들을 따라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도 그 흔한 용역과제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 30대가 될 때까지 사회생활의 ㅅ조차 해 본 적이 없다. 포닥이나 임용 준비를 하며 취업에 대한 고민을 조금 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 난이도란 오늘날 20대가 처한 취업시장과는 비할 바 없이 소프트했다.
하물며 교수가 되는 방법이라도 잘 알고 있으면 좋겠지만, 이조차도 쑥스럽지만 '운' 외에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약 20년 전 운 좋게 들어간 대학교의 간판 때문은 아닌가 싶어 항상 무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제 막 40살이 된 주제에 인생에 대한 굉장한 통찰이 있을리도 만무하고, 하물며 돈을 많이 버는 법이나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는 테크트리도 전혀 알지 못 한다. 낡은 M-65 피쉬테일 파카가 몇년도에 생산되었는지 정도는 그래도 얼추 잘 알지만, 이런 지식으로 무슨 인생에 대해 조언하기란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조언이라는 걸 하다보면, 필시 나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흡사 자기계발서에 쓰여진 아무 의미 없는 개똥같은 말들을 늘어놓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무 영양가 없는 말들을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최대한 경청하는 척 하는 모습을 마주할때면... 정말이지 아득해진다.
조언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면 꼭 마음에 새기는 것이 있다. 나는 눈 앞에 있는 친구보다 눈 앞에 있는 친구의 사정을 알지 못 한다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 하는 주제에 이래라 저래라 충고할 수는 없다. 상황을 제일 잘 아는 본인이 아마도 가장 좋은 해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꼭 무언가 말해야 한다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평범했으며 뭐 하나 모난 것이 없었던 일화를 몇 개 나누는 것이 전부, 그 이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라고 하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진단학회에서 이제 막 학위를 마친 총명한 박사님께 술김에 10여분간 아무 의미 없는 개똥같은 말들을 늘어놓고 난 뒤 방에 올라와 깊은 반성을 하며 이 글을 적어본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깊게 사과드립니다.
돈에 관심 없다는 놈들이 오히려 돈벌이에 미쳐있는 경우를 참으로 많이 보게 된다.
스스로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읊조리는 순간이 종종 존재한다. 정말 중요한 면접을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듯 말이다. 높은 곳에서 레펠 강하를 하기 전,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직전에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마을버스에 타면서, 컵라면 봉지를 뜯으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할 수 있다' 라며 마음을 다잡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취업준비를 하느라 고생하는 친구에게는 '할 수 있다' 라 격려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편의점에 담배 사러 가는 친구에게 '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경우는 중학생 말고는 없다.
이처럼 '할 수 있다'라고 스스로 다짐하거나 되뇌이는 경우는, 보통 무척이나 하기 어려운 일에 도전할 때이다. 무척 쉬운 일을 하는 경우라면 굳이 '할 수 있다'고 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무지하게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 내고 싶으니까, '할 수 있다'라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할 수 있다는 선언 자체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방증이다.
돈에 관심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정말 관심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굳이 '관심 없다'라고 말 할 관심조차 없다. 그러니까 돈이 무지하게 관심이 많지만, 또 돈이 엄청나게 신경 쓰이지만, 남들처럼 돈도 많이 벌고 싶지만, 그러한 욕망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것은 왠지 짜치니까, 혹은 도무지 돈에 신경 안 쓰기가 어려워서, '돈에는 별로 관심 없어' 라며 애써 시치미를 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역시 관심 없다는 선언 자체가 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다.
교수님들 중에는 돈에 초연한 사람들이 많다. 돈 이야기 하는 것 자체를 상스럽게 여기는 경향도 종종 느낀다. 지나친 순수에의 추구가 마냥 좋은 것 같지는 않다.
20대의 어느날, 언젠가 내가 40살이 된다면 잊지 말고 마음에 새겨야겠다 다짐한 교훈이 있다.
"세상 어느 20대도 40대와 함께 놀고 싶어하지 않는다"
30대까지는 혹시 모른다. 그러니까 20대 30대랑은 놀고 싶어할 수 있고, 동시에 30대라면 40대와 놀고 싶어할 수 있다. 그런데 여하튼, 40대는 양쪽 모두 어렵다는 것이, 20대 시절 내가 느낀 감각이었다.
가혹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20대였던 그 때를 떠올려 보자. 각자의 필살기 패션으로 중무장하고 클럽NB에 갈 때는 물론이거니와, 골방에서 앱솔루트 보드카를 세계 최고의 명주라 착각하며 인간과 예술에 대해 새벽까지 논하던 때에도, 하물며 교회 모임에서 무작위로 짝을 지어 삶을 나눌 때조차, 그 상대가 40대이길 바란 20대는 없다.
물론 시시한 동년배들에게 지친 20대라면 조금 얘기가 다르다. 인격의 도량에 이끌려, 취향의 깊에이 반하여, 40대를 스승님처럼 모시며 교제하기를 즐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명명백백한 아저씨. 유행하는 밈을 보아도 '이게 웃겨?' 라며 심통 낼 준비가 되어있는, '아 저 아저씨만 아니었으면' 하고 겁에 질려하던, 너무나 분명한 40대의 스테레오 타입 그 자체이다.
따라서 향후 10년간 이 교훈을 목숨과 같이 마음판에 새기고 살며, '나 정도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개똥같은 망상에 빠지지 않고, 그저 예의상 하는 몇가지 말들에 혹하지 않고, 그렇게 20대들의 자리를 기웃거리지 않는다면, 나에게 그보다 더 보람찬 40대는 없을 것이다.
아주 가끔씩 학생들이 감언이설로 회식을 같이 하자고 해서 가곤 한다. 그리고 잔뜩 신이 난 내가 혼자 말을 하고 있으면 다들 마지 못해 웃어주는데, 그 낌새를가 이상하여 말을 멈추는 순간 느끼는 일순간의 정적은, 언제 느껴도 섬뜩하다. 그 때마다 이 교훈을 마음에 새긴다...
1. 공식적으로 겨울 방학이 끝났다. 여름방학에 비하면 확실히 조금 빠르다고 느껴진다. 기간 자체는 여름방학과 같지만 겨울의 경우 12월 말의 1-2주 정도는 말 그대로 완전히 놀아버리고 또 설날 연휴까지 하면 적어도 2-3주를 공히 놀아버려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2. '재미있는 시간일수록 빠르게 지나간다'는 시간-재미 상대성 이론에 비추어 보면(당연하지만 그런 이론은 없다), 그만큼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 본다. 사실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시간-나이 특수 상대성 이론 때문일지도 모르고(이 쪽은 꽤 신빙성이 있다).
3. 이삭이가 공주대 교수가 되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예전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이삭이에게 '그런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데 누가 널 교수 시켜주겠냐' 같은 어처구니 없는 악담을 했었는데, 내 한심한 안목과 저렴한 말투를 비웃듯 보란듯이 교수가 되었다. 축하라도 하려다가, 이제 와서 그 때의 악담을 무마하려는 수작처럼 보일까 차마 하지는 못 했는데, 이삭이는 여러모로 좋은 교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이미 좋은 교수인가. 날이 갈수록 악담에는 능숙하고 덕담에는 미련해진다. 큰일이다.
4. '겨울방학이 되면 학기 중에 쓰지 못 한 논문을 좀 써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쓰지 못 했다. 논문을 잘 쓰는 분들을 보면 학기나 방학을 구분하지 않고 잘 쓴다. 그러고 보면 방학 하기만 하면 논문 좀 써야지 하는 건, 뭐랄까, 날이 풀리면 운동을 하겠다, 이거까지만 피고 진짜 금연한다, 오늘까지만 마신다, 새해에는 운동해야지 같은 결심과도 같다. 이러한 '어느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에 해야지' 라는 식의 결심은 늘 실패로 끝나는 느낌이다. 보통 결심을 달성해내는 사람들은 생각이 드는 그 순간 시작한다.
5. 그말인 즉슨 지금 당장 논문을 써야 하는데, 정작 논문은 안 쓰고 홈페이지에 이런 것이나 쓰고 있다. 3월이 되면 쓴다 (라고 말하는 오늘은 3월의 첫 날이다).
6. 세진이 덕분에 그나마 논문을 한 편 쓰게 되었다. 작년에 세진이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수행한 프로젝트 보고서를 읽어 보았는데, 내가 보기엔 꽤 대단했다. 막상 세진이가 심드렁하게 '이런게 뭐 논문이 되겠어요?' 라고 하길래 내용도 잘 모르는 내가 마음대로 논문 초안을 써서 보냈더니, 2주만에 거의 완벽한 논문으로 만들어 왔다. 뭔가 고기와 포도주, 당근과 샐러리를 아무렇게나 냄비에 넣고 불을 켠 뒤 30분 뒤에 열어보니 근사한 비프 부르기뇽이 되어 나온 기분. 윤리적으로 내 이름은 빼야 하지 않을까 싶다.
7. 하꼬방 같은 연구실에도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소연양과 태현군은 각각 서울대학교 박사 및 석사과정으로 떠났고, DL에 근무하던 훈이가 다시 박사를 하러 왔다. 3학년 윤수군이 학부 인턴을 하러 왔다.
8. 중소기업에 우수한 인력이 대기업으로 떠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을 잡는 것 대신 모든 프로세스를 매뉴얼화 하는 것이 좀 더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이런걸 5인 이하의 사업장인 여기 연구실에도 적용하고 싶은데, 본인이 연구한 내용을 매뉴얼로 만드는 것도, 동시에 그렇게 누군가 작성한 매뉴얼을 따라 연구를 수행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기 않다.
9. 아직은 경험이 일천한 연구실인지라 어떤 세대를 관통하는 레거시가 없는 탓이 제일 크겠지만, 동시에 연구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에도 그런 것 같다. 결국 '각자의 문제를 정의하고, 그걸 각자의 방법으로 풀어보는 것'이 연구의 본질이므로, 남들이 풀어놓은 방법을 참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그걸 그대로 따라해서는 사실상 연구로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10. '삼성전자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쓸데없는 회의와 보고가 많아서' 라는 뉴스를 봤다. 정말 그 이유 때문만일까도 싶지만, 일단 학생들에게 퇴근 전에 오늘 뭐 했고 내일 뭐 할지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찔리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 아무런 지도도 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생활하기를 바라며, 그렇게 '딸깍' 보고를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적고 보니 참으로 소소한 근황이다. 그나저나 소연이가 석사 졸업 프로토콜을 매뉴얼로 만들었다고 한다. 매년 졸업하는 석사 학생들이 그 매뉴얼을 조금씩 업데이트 해 주면 그래도 조금은 쓸만하지 않을까. 가령 '박카스 같은건 아무도 마시지 않았다' 같은 쓸쓸한 정보들...
기울 보(補)와 직분 직(職)이 만난 이 단어의 뜻은, '돕는 직분'이라고 한다. 이렇게 풀어쓰면 보직이란 굉장히 숭고한 것 같지만, 대학교 내에서 보직이라 함은 소위 말하는 학장, 부학장, 처장, 부처장, 센터장, 부센터장, 관장, 소장... 이른바 여러 조직들의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합니다).
학생 시절에는 왜 교수님들께서 굳이 보직 같은걸 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행정에 시간을 쓰다 보면 자연히 연구나 교육은 뒷전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력이라는 게 그리도 좋은가 하는 심각한 착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막상 학교에 와서 경험해 보니 보직은 사실상 동원에 가까운 부탁을 받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직을 하기 싫어 조용히 숨어 다니는 분은 많아도, 권력에 눈이 멀어 보직을 탐하는 사람을 적어도 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 하였다.
당연히 임용과 동시에 보직을 맡기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 연구나 교육이 안정기에 접어든 사람들을 '4-5년 아무것도 안 하고 연구에만 전념했으니 이제 슬슬 봉사 좀 하셔야지요'라며 차출한다. 아마도 조금은 과장이 섞인 일화이겠지만, 어떤 분께서는 연구년 중 보직 요청을 받아 단칼에 거절하였는데 막상 연구년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와 보니 이미 차년도 보직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던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득이하게' 맡게 되는 보직 부탁을 나 역시 작년 말부터 조금씩 받기 시작하였다. 논문의 숫자와 질을 보았을 때 연구를 잘 해서 눈에 띄었을리는 없고, 강의평가 점수를 미루어 보아 교육을 잘 해서라고는 더욱이 볼 수 없다. 한 번도 빠짐없이 매달 정산서류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행정에 능통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아마도 주말까지 출근해서는 한가롭게 연구실에서 유튜브나 보고 있는 것을 누군가 알아챈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하지만... 나는 모든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일단은 유튜브 볼 시간이 부족하다(사실이다). 게다가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2025년 1학기 시간표를 짜고, 산학협력단 직원분들의 눈물 겨운 협조 끝에 2025년이 되어서야 2024년 연구비를 정산하는 내가 감히 누굴 도울 수 있겠는가. 까마득한 선배 교수님들의 진심 어린 부탁을 세 번이나 거절한 것도 내가 누굴 도울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분명한 귀납적 인식 덕분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모든 보직자들이 그렇듯, 나 역시 결국 '부득이하게' 보직 하나를 맡게 되었다.
일단은 똑같은 부탁을 네 번째 받다보면 그것이 어떠한 부탁이든간에 '아 이것은 세금과도 같은 것이구나' 하는 체념에 준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행정에 대한 경험이나 이해도나 모든 면에서 나보다 곱절은 뛰어난 교수님들이 족히 80명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네 번이나 부탁할 정도라면, 아마도 잘 하는 사람보다 한가한 사람이 필요한 자리일지도 모른다. 유튜브 볼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보직이란 결국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인데, 실상 공공기관의 행정이란 관행과 규정에 따라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의 가치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보직자라는 사람들을 세워두는 이유란 무엇보다 책임질 사람이 필요한 것일테지만(이렇게 써놓고 보니 뭔가 도살장이나 단두대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어 뭔가 우울해진다), 그보다는 욕망과 욕망의 충돌을 예민하게 다뤄야 하는 상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얼토당토 않은 욕망이야 어렵지 않다. 문제는 합리적인 욕망들이 충돌할 때이다. 관행이 생겨난 역사를 살펴야 하고, 규정 사이의 행간과 해석의 여지를 헤아려야 한다. 무엇보다 숫자와 서류 너머에 있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만나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고 함께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보직자란 안토니오 도미니스가 말 한 바와 같이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 사랑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면 네번째에도 단호히 거절을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시립대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아니요).
올해도 몇몇 국제학회에 가려고 한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 한 채로 새벽녘에 일어나 인적이 드문 학회장 근처를 한가하게 산책하는 재미로 학회에 가는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식 공동체의 첨단에 있는 사람의 실물을 영접하고 나면 분명히 마음에 남는 무언가가 있다.
선호군이 EMI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 초록을 제출하였다. 서울대로 가는 소연양 역시 EMI에서 발표를 할 계획인데, 아마도 내년부터는 송준호 교수님의 본격적인 지도가 시작될 예정인지라 작년보다는 더 좋은 발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VACES는 꼭 가고 싶었으나 EMI와 너무 붙어 있어서 가기 힘들 것 같고, EACWE는 방학 중이기도 하여 김호경 교수님과 같이 갈 것으로 예상된다.
EMI/PMC 2024
May 27-30, 2025
Anahemi, California
Abstract Submission Opens - Oct 15, 2024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Dec 20, 2024
Early Registration Opens - Feb 2, 2025
Early Bird Registration Deadline - Feb 28, 2025
EVACES 2025
Jul 2-4, 2025
Porto, Portugal
Abstract Submission Opens - May 1, 2024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Oct 12, 2024
Paper Submission Deadline - Feb 1, 2025
Early Bird Registration Deadline - Apr 1, 2025
EACWE 2025
Jun 16-19, 2025
Trondheim, Norway
Abstract Submission Deadline - Nov 15, 2024
Early Bird Registration Deadline - Mar 15,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