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의 편지

스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역 복무 중인 군인입니다. 부득이 군종(軍種)이나 계급을 밝히지 않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목과 달리 일단 이병은 아닙니다ㅋ) 이 지면을 빌어 제가 그동안 군 생활을 하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편지 형식으로 가볍게 적어보려고 합니다. 군대에 오고 나서 어휘력과 문장력이 많이 줄었는데, 다소 서툰 글이라도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저는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아마 군대라는 공간 자체가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제가 훈련 중에 앞에 앉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데, 

“군대에 게이가 있으면 어떨까?” 

“남자 6명 중에 게이가 한명 있으면 여자 5명에 남자 한명 있는 거랑 마찬가지 아닌가?” 

“그럼 너는 여자 5명 있으면 식스썸(sixsome?)할 수 있냐” 

“당연하지” (둘이서 하이파이브) 

뭐 이런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게이한테는 군대 오는 게 이득이라느니, 직업군인 중에는 게이가 많을 거라느니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비교해서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자연히 위축되기 마련이고, 연애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은 순전히 잠재적인 것이지 아무한테나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게이도 눈 있어!” 식의 냉소적인 논리로 대응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제 맞선임이 연예인 뺨칠 정도로 잘생긴 사람이어서...ㅎ) 그저 저는 커밍아웃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병역을 이행하기 위해 행동 하나하나에 굉장히 조심하며 생활하고 있다고만 적겠습니다. 미국에서는 얼마 전까지 DADT(don't ask don't tell)이라고 해서 군 생활을 하려 면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이... 아 이러다가 저번처럼 재미없는 설명글이 될 거 같아 관두겠습니다. (부대에서도 종종 설명충이라고 욕을 먹곤 합니다ㅋㅋ)

여기 와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앞서 제시한 두 사례도 그렇지만 뜻밖에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게이’나 ‘트랜스젠더’ 이런 개념들에 익숙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지에 의한 무조건적인 혐오는 줄어든 것 같아 긍정적이지만, 간접적으로만 접하다 보니 이상하거나 신비로운 것으로 여기는 오해가 생기는 것은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한쪽 귀에만 귀걸이를 끼면 게이라든가, 오른쪽은 어떻고 왼쪽은 어떻다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는 한두 번 들은 게 아닙니다.

입대 전에 흔하게 들은 얘기 중에 군대 가면 비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야 제가 알 방법이 없지만, 그동안 생활하면서는 그 비슷하기라도 한 일도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전입하기 전에 후임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진다거나 자기 신체 부위를 만지게 하다가 찔려서 날아간 사람이 있었다고는 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웃팅을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군대라는 환경에서 벌어지는 그러한 일들은 성소수자들과는 상관없는 일이 대부분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은 넓고 **은 많을 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소수자에게 있어 군대의 가장 큰 단점은 외로움입니다. 같이 근무를 하다 보면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연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화에 끼지 못하거나 거짓말을 하게 되고 오해를 받고 소외감을 느끼기 쉽습니 다. 고민이나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저는 전역할 때 까지 아무한테도 커밍아웃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요새는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은 사람이 간혹 있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전화로도 누가 들을까 조심스럽습니다. 개인 공간이 없으니 일기도 편지도 쉽지 않습니다. 드라마 보다가 “어 저 남자 잘생겼네.” 이런 시답잖은 말이라도 나눌 사람이 정말 아쉽습니다.

구체적인 군 생활 얘기 없이 일반적인 이야기를 성소수자라는 주제로 풀어내려다 보니 그다지 밝은 글은 못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사람들과 재밌게 복무하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군인 포스테키안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는,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것일 겁니다. 이 글 읽으며 제가 누군지 짐작하실 분들도 다들 너무 보고 싶고, 학교도 학생들도 많이 그립습니다. 제가 복학하는 날까지 모두 건강하시고, 즐겁고 따듯한 학교 가꿔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