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고백, 나의 커밍아웃

베리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이상했던 것은 알고 있었다. 단순한 친구 사이 이상이었다는 걸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이미 여러 번 “넌 친구 이상이야.” 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단지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여자친구도 있었던 일반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커밍아웃했던 친구가 있어서 좋은 점은 이런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지면서 내가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게 촉발한 것은 내가 듣고 싶지 않던 이야기. 알고 싶지 않던,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미리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나에게 고백하지 않았음을 후회한다는 이야기.

“기다려도 돼?”

나는 솔직히 말해 몹시 화가 났다. 애인이 있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일 아닌가? 그것도 친한 친구로서? 친구라는 관계를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편해지고 싶으냐는 생각이 들면서 한도 끝도 없이 화가 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런 이야기를 도대체 누구에게 털어놓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걸까? 나는 게이이고 남자친구가 있는데 내 친한 일반 친구가 나에게 고백을 했다고. 기다려도 괜찮은지 물었다면?

내 커밍아웃

나는 언젠가 내 가족에게 커밍아웃할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내가 친구에게 느꼈던 감정을 혹여 가족들이 나에게 느끼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물론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고백하는 것과 일시적인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단지 그 안에서, 내가 자신에 대한 문제니까 소홀히 여기고 낙관해왔던 것을 깨달은 것이 문제였다.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굉장히 이기적이라고 생각했기에, 스스로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너는 네가 말할 비밀에 책임을 져야 해.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해 달라고 요구하는 건 폭력에 불과해. 네 친구가 너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건 네 비밀이 아니라 그들이 보고 싶은 것,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재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어."

그런 생각 속에 조금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듣고 싶어 하지 않았던 진실을 얘기한 그를 더는 맹목적으로 비난할 수 없었으니까.

“넌 친구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하더라도 나를 미워해선 안 돼.”

물론 그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자신에게 그렇게 얘기하고 몰아갔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 가족은 똑같이, "나는 가족이니까 OO 가 이런 말을 하더라도 그를 미워해선 안 돼. 이해해야 해." 라고 자신을 옥죄진 않을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것이 실제 내 생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나는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더는 숨어 살고 싶지도 않거니와 그럴 자신도 없으므로. 그러나 나는 내가 말할 것에 스스로 응당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어떠한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을,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거나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지 말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