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혐오로 가릴 수 있다면

베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한창 내 정체성과 씨름하는 상태였다. 남자인 내가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일이 없었으므로 내 정체성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지내야 했다. 처음에는 가족 외의 사람과 같이 방을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집에서 나와 또래 친구와 방을 같이 쓴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학교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어서 매일 아침 아침체조로 시작해 자정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따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면 외출은 금지였다.

학교에 있는 동안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계속 보고하고 감시받아야 했다. 계속되는 갑갑한 학교생활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은 자정에 야자가 끝나고 기숙사에 가서 한 시 반에 불을 끄기 전까지였다. 그 시간이 고등학생 시절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었고, 매일 밤 잠들기 전까지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놀곤 했다.

그냥 그대로였다면 행복한 시간이었겠지만,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매일 한창인 남자들과 같은 방에서 어울려 놀다 보니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짝사랑했던 아이는 키가 크고 늘씬하면서 피부가 까무잡잡하였다. 같은 반이 된 그 친구를 처음 봤을 때는 인상도 사납고 신경질적인 이미지라 전형적인 나쁜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해지고 나니 생각보다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또한, 보기 좋게 까무잡잡한 피부색과 함께 섹시한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

몇 번 같이 얘기하는 동안 왠지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단 친해지고 싶다는 심산으로 자주 말을 걸고 방에 놀러 가면서 실제로 굉장히 친해지게 되었다. 이런 예감은 상당히 자기실현적이어서 그 후로도 여러 번 같은 일을 반복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애초에 그런 마음을 갖지 않도록 거리를 두었겠지만, 당시엔 내 감정을 억누르거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때에는 내 나름대로 자제했는데도 지금 회상해보면 거의 드러내놓고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그때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낮았고, 친구 간에도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곤 했기 때문에 의심받을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친구와 친해지고 나서는 스스럼없이 애정 표현을 하곤 했다. 서로 뒤에서 끌어안거나 같이 침대에 누워 자는 일도 많았다. 같이 있는 동안은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수십 배나 되는 긴 시간 동안 극도의 우울감 속에 빠져들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란 사실을 분명 알고 있으면서 애써 외면하고 있는 날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 애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알면 날 얼마나 역겹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해 '내가 게이인 것을 알면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나 있을까?' 같은 생각으로 확장해 나갔다.

밤이 되면 종종 그 친구를 좋아하는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몰래 울곤 했다. 짝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던 상태였던 나는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작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포기해야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연민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가 뒤섞인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댔다.

나는 그 친구를 사랑하는 동시에 혐오하자고 생각했다. 억지로 사랑하는 감정을 지울 수는 없으니 그에 상응하는 혐오로 상쇄시키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단점을 낱낱이 찾아내어 그를 혐오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행동 하나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관찰하고 나쁜 점을 찾거나 부여하려 애썼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를 찾아내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사랑의 감정이 사라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은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 그가 굉장히 차갑고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을 때, 일순간 내 사랑을 보답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실망은 다시 증오가 되었고, 그 후 사랑하는 마음은 점차 사라지고 내 안엔 혐오만이 남게 되었다.

사랑이 혐오로 가려지기만을 바라왔었다. 그러나 막상 내 안에 혐오만이 남았을 때, 나 홀로 쓰레기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사랑이 혐오로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임을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혐오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혐오하는 일이 되었다.

누군가는 짝사랑을 가장 순수하고 이타적인 사랑이라 칭했다는데, 왜 나는 가장 불순하고 이기적인 사랑을 했던 것인지.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데도, 왜 그때의 나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길을 선택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