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마

‘어떤’ 사람은 여자도 남자도 아닙니다. 남자에 끌리는지 여자에 끌리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성적 지향은 성적 주체를 정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젠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의 젠더는 남성, 여성 또는 그사이 어딘가 사이에서 유동적으로 변합니다. 아직도 저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주기로 저의 젠더가 흐르는지 알지 못합니다. 장장 한 시간 동안의 단장 후 아우터를 고르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여러 계절이 지나는 긴 시간 주기로도 저의 젠더는 변할 수도 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계속해서 변하고 있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정성별에 따라 여성, 혹은 남성이 되도록 교육받고 이 과정에서 어떤 행동은 젠더 규범에 따라 제한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성에 대해 욕구하거나, 남성의 외모에 대해 평가한다면 젠더 규범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타인의 질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젠더 규범은 남성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왜 성기 외형에 따라 배정받은 젠더 규범으로 모두를 억압하고 있 을까요?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의 지정성별과 자신의 젠더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젠더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혹은 그저 교육받고 훈련받은 것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학습한 것은 아닐까요? 남성이 남성성만을 갖고 모든 행동을 남성성의 규범에 맞추어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여성 또한 여성성만을 가지고 모든 행동을 여성성의 규범에 맞추어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성기 외형에 따라 행동을 제한하는 일은 굉장히 원시적이고 소모적인 일입니다. 왜 우리는 아직도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구하던 원시의 젠더 규범을 따르나요?

신라 시대 때 화랑은 남성성을 드러내기 위해 화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성성의 고조를 드러내는 하이힐은 기원전 그리스에서는 남성성의 상징이었습니다. 현재에도 중국에서는 남성성을 어필하기 위하여 요리를 자랑하기도 하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남성이 치마를 입습니다. 이처럼 여성성과 남성성을 절대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단지 특정 문화나 사회 안에서 임시로 약속될 뿐입니다. 젠더 규범은 개인의 젠더를 표현하기 위한 사회의 약속-일종의 연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카톡 한 번이면 쉽게 다른 사람에게 소식을 알릴 수 있는 시대에, 특정 젠더로 인식되기 위한 노력 혹은 특정 성기나, 젠더 취향을 알리기 위한 노력은 그저 프로필에 자신의 지정성별, 젠더 주체성, 성적 지향을 담은 한 줄을 적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보지, 또는 자지를 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보지 또는 자지에 끌린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이 규정한 남성성 혹은 여성성의 규범에 맞추어 맹목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정 젠더로 자신을 규정하는 사람들의 젠더는 사실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A라는 사람이 규정한 여성과 B라는 사람이 규정한 여성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 있습니 다. 저는 당신의 젠더를 알지 못합니다. 저의 젠더를 물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저의 젠더를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젠더를-남성과 여성으로-쉽게 단정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젠더 스펙트럼을 한데 뭉뚱그린 분류일 뿐입니다. 이제는 과거의-성기외형으로 결정되는 원시의-분류체계를 벗어던질 때가 되지 않았나요? 남성과 여성 말고도 현대에는 젠더 플루이드, 바이 젠더, 안드로진, 트라이 젠더, 에이 젠더, 뉴트로이스, 팬젠더등 모든 스팩트럼을 포함하기 위한 젠더 분류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분류 체계로도 젠더를 전부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젠더-일부의 경우 자신의 젠더 마저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타인의 젠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젠더 규범에 따라야만 젠더를 알 수 있었던 불합리한 과거를 답습해선 안됩니다. 이제는 자신의 젠더를 인정받기 위해, 실존하지 않는 남성성, 여성성을 맹목적으로 연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젠더 규범에서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타인도 자신의 젠더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의 젠더를 표현할 수, 혹은 아예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 표현이 그 사람의 젠더를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다른 사람의 젠더를 함부로 판단할 권리가 없습니다. 단지 당신이 행동하고 싶은대로 행동할 자유와 그것이 자신의 젠더를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뿐입니다. 남이 정해둔 규범에 맞추어 스스로를 제한하지 마세요. 어떤 특정한 젠더를 가졌다는 이유 또는 지정 성별에 따른 젠더 규범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소외해서는 안됩니다. 젠더 이분법과 시스젠더 중심주의를 저항합시다. 당신의 지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PS. 이 글을 읽고도 맨 얼굴에 스카쟌을 입고 바이크를 타는 여자나 진한 화장 후에 치마를 입고 힐을 신은 남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의심스럽다면, 숨을 2분간 참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