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피하기: 커밍아웃을 받았을 때 해서는 안되는 말들

세번째

대부분의  커밍아웃은 소규모를 대상으로 하는 다소 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커밍아웃은 성적지향이나 젠더정체성을 비밀리에 공개하는 개인적인 사건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커밍아웃을 통해 이전에 보이지 않던 사회적 권력 관계가 드러납니다. 커밍아웃을 마주한 사람은 이렇게 드러난 권력 관계와 더불어 개별 성소수자간의 차이 모두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커밍아웃에 적절하게 반응하기 어렵습 니다. 그러나, 커밍아웃에 대응할 때 밟아서는 안되는 지뢰를 골라내는 일은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이 글에서는 커밍아웃에 대한 응답으로 곤란한 대사 중 일부를 소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1. 나는 퀴어-프렌들리하다.

A. “나는 개방적이라서 ...” / “내 친구 중에도 …”

B. 이유: 성소수자에 대한 친화성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비성소수자의 권력입니다. 성소수자는 비성소수자의 특별한 성품을 통해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 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성소수자 중 하나가 당신 앞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방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본인이 성소수자 친화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상태에 안주하지 마세요.


2. 위로하지 마세요. 

A. “괜찮아.” / “이해해.” / “지지합니다.” 

B. 이유: 성소수자는 불행한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이 (아마도) 괜찮듯, 우리도 (아마) 괜찮습니다. 괜찮지 못한 것은 비성소수자가 누리는 권리를 성소수자는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행동에 동참할 때  ‘ 지지’나 ‘배려’등의 단어를 선택하여 시혜적인 자세를 보이지 마세요. 다만,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다소 극적인 감정의 소유자일 경우에는 괜찮다며 등을 토닥여 주셔도 괜찮습니다.


3. 속고만 사셨어요?

A.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 “헷갈리는 것 아니야?”

B. 이유: 비성소수자는 의심 받지 않습니다. 비성소수자가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작위적인 가정들이 규범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모든 사람은 성적/정서적 끌림을 느낄 것, 지정성별과 젠더가 일치할 것, 두 가지 젠더만이 존재할 것, 성적/정서적 끌림이 오직 하나의 젠더를 향할 것, 그리고 성적/정서적 끌림이 다른 젠더를 향할 것. 비성소수자가 의심받지 않는 것처럼 성소수자 역시 의심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규범을 근거로 성소수자를,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지 마세요.


4. 미디어를 맹신하지 마세요.

A. “니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 가보자 갈 때까지" - 커피프린스 1호점

B. 이유: 미디어를 통해 학습한 성소수자의 이미지로 누군가를 판단하려 하지 마세요. 성소수자는 앞서 소개한 규범에서 어긋나는 존재이고, 비성소수자는 오직 그 반대항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미디어가 제공하는 성소수자의 이미지는 많은 경우 비성소수자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희석된 것입니다. 성소수자의 사랑을 젠더를 뛰어넘은 인간과 인간의 사랑으로 해석하는 입장 역시 그러합니다. 비성소수자의 사랑은 그러한 보편적 사랑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지우는 폭력입니다.


이 글은 모든 사안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성소수자 관련 사안을 공부해주세요. 순진한 호의는 눈을 가리기 쉽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좀 더 많은 성소수자가 안전한 커밍아웃을 통해 벽장을 넓혀가기를, 잃었던 권리를 찾는 첫 걸음을 내딛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