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시헤남입니다.

엔디

1.

이 글을 읽는 당신에 대해서 몇 가지 추측을 해보겠다. 당신은 살아오면서 인생 및 커리어를 설계하는 데에 본인의 젠더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본인의 성적지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이로 인한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당신은 시헤남1이기 때문이다. 즉, 당신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젠더와 성적 지향은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며 장애물로도 작용하지 않기에,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2.

근래 페이스북에선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포스텍페미니즘 해쉬태그 운동이 펼쳐졌다. 포스텍 내의 페미니즘 담론을 형성하고 건설적인 논의를 이어나가기 위하여 시작된 이 운동은 포스텍 학생 개개인의 타임라인을 넘어 ‘포항공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활발한 토론의 장을 형성시킨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페미니즘 논의는 남-녀 성 대결 구도로 흘러갔고, 갑론을박을 펼치는 두 성별 진영 간에 무언가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성혐오발언을 들은 적 있다.” 혹은 “여성에게 언어적, 물리적 (성)폭력을 가하지말”라는 글에서 남학생들은 대체로 “그런 쓰레기같은 남자들이 있다니”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거나 “그것은 남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아이를 낳아도 경력이 단절되지 않아야 한다.”, “동일한 노동에 대해 남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임금을 받아야 한다.”라는 글에는 “남녀의 능력 차이가 임금 격차로 나타난 것일 뿐” 이라거나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들이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챙긴다.”라고 비아냥대는 댓글이 달렸다.

즉,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의 대부분이 “요즘 여성혐오가 어디있냐”, “아주 오래전에는 여성이 차별과 억압을 받았다지만, 지금은 아니잖아?”라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 지점에서 명백히 시스젠더 남성은 젠더위계를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들이 특별히 여성에게 피해 의식이 있거나 나쁜 감정을 가져서가 아니라, 단지 남성으로 살면서 젠더위계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러한 발언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시스젠더 남성들은 젠더위계와 그에 따른 불평등을 느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특권 계층인 것이다.


3.

주변에 나를 ‘게이’로 커밍아웃을 하면 가끔 “괜찮아. 너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데, 단지 그 사람의 성별이 남성일 뿐이잖아.”라는 얘기를 듣곤 한다. 나에게 공감해주려는 의도는 고맙지만, 이 역시 그들이 성적 지향의 특수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지를 드러낸다. 나는 남자친구가 남자라서 끌리는 것이지, 좋아하고 보니 그 사람의 성별이 남성인 것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자신이 이성애자이며 따라서 이성에게만 성적인 끌림을 느낀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성애자인 것이 너무도 당연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으며 스스로를 정체화할 필요가 없는 특권 계층이 된다.

이것이 바로 특권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특권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특권 계층의 삶에서 그러한 문제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백인들은 인종에 대해, 남성은 젠더에 대해, 그리고 이성애자들은 성적 지향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이 사는 것처럼 말이다. 마이클 키멜은 그의 테드 강연에서 백인 남성의 거울 속에는 한 명의 사람이, 백인 여성의 거울 속에는 한 명의 여성이, 흑인 여성의 거울 속에는 한 명의 흑인 여성이 보인다고 설명한다.2 같은 맥락에서, 나의 거울 속에는 한 명의 게이가 보인다.


4.

젠더와 성적 지향 이외에도 수많은 위계와 그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사람에 따라 가시화되거나 가시화되지 않는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인종 문제는 어떤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인종 차별”을 이야기하면 막연히 미국의 백인과 흑인을 떠올린다. 우리나라에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3D 업계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성격 좋기로 유명한 내 동기 친구는 “학벌이 다가 아니다. 요즘도 학벌로 차별하는 사람이 있냐”며 자신이 탈-학벌주의임을 강조하였지만, 실재하는 학벌주의와 그로인한 차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듯 하였다.

모두 다 같은 맥락이다. 위계 질서 안에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감각이 없으며 위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어떤 문제에 무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 계층으로서의 지위를 드러내게 된다. 특권 계층으로 태어났으므로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혜적인 태도를 취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발언하지 말라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단지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고 실재하는 문제를 정확히, 아니 어렴풋이라도 인지하길 바라는 것이다. 차별과 불평등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사각지대가 존재하기도 한다. 나 역시 게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실수도 많이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더욱 노력하는 중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함으로써, 모두가 피부색, 성별, 성적 지향, 장애,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향한 움직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