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편리한 그들만의 항등식

알감자

“동성애·동성혼 합법화 개헌 절대 반대” <국민일보> 2017. 11. 21. 

“에이즈, ‘치료비 전액 지원’만으로 막을 수 있나?” <크리스천투데이> 2017. 10. 14. 

“동성애자=약자? 동성애=反생명!” <국민일보> 2017. 11. 16. 

최근 성소수자 이슈를 취재한 기독교계 언론들의 기사 제목들입니다.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성소수자”를 검색어로 입력하면 나오는 수 많은 기사 중 최근 대표적인 화젯거리 위주로 3개만 추렸습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 소식은 기독교 신문이 성소수자들보다 더 빠르다’는 우스갯말에 과연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이슈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동성애는 에이즈를 유발하므로 국가적으로 관리 또는 금지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쓰인 기사들입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기사들이니 독자들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들이지만 벌써 눈에 띄는 점이 있네요.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서 소위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정치, 언론, 종교를 위시한 혐오세력들은 (이하 ‘그들’)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공식적 근거로

성소수자 = 동성애자 = 게이 = 항문성교 = 에이즈

라는 그들만의 항등식을 사용합니다. 남성 동성애자(이하 게이)를 성소수자의 전부라고 전제하고, 이들은 모두 무분별한 항문성교를 통해 에이즈를 전파시킨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느슨한 포함관계를 따라가다가 마지막엔 전혀 다른 개념을 가져와 전체 개념을 왜곡하는 논증의 오류를 논리학에서는 분해와 결합의 오류라 부릅니다. 명백히 4개의 등호 중 성립하는 것은 단 한 개도 없습니다.


그들은 절대 성소수자를 성소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첫번째 등호인 [성소수자 = 동성애자]를 봅시다. 성소수자는 시스젠더1-유성애-이성애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죠. 동성애뿐만 아니라 범성애, 양성애, 무성애 그리고 젠더퀴어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인용한 기사에서 보이 듯, 그들은 언제나 차별금지법을 동성애법으로, 퀴어문화축제를 동성애축제로, 대학 내 성소수자 모임을 동성애 동아리라고 부릅니다. 동성애 이외의 성적지향 또는 성별정체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소수자는 동성애자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대로 문제지만 동성애 이외의 성소수자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라면 논지의 흐름상 그 이유는 전체 성소수자를 게이로 한정해 에이즈와 엮기 쉽도록 하려는 목적일 것입니다.

그들이 성소수자를 성소수자라고 부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비교적 새로운 개념어의 어감때문이겠지요. 실제로 그들은 성소수자라는 단어 사용을 보이콧하자는 주장을 종종 합니다.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시스젠더-이성애 이외의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이 ‘비정상’이 아니라 숫자상의 적음, 또는 소외된 비주류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집요하게 성소수자라는 용어 대신 동성애(자)라는 용어를 고집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한참 앞서나가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영어권 국가에서는 소수자(minority)라는 단어마저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성소수자 대신 쉽게 LGBT 또는 LGBTAIQ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저는 동성애자 이외의 성소수자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그들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LGBTAIQ라는 용어가 각 정체성들의 존재를 선명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퀴어도 될 수 없나요?

두번째 등호는 [동성애자 = 게이]. 동성애자 이외의 퀴어뿐 아니라 여성애(레즈비언)의 존재 역시 그들의 동성애 논의에서 종종 배제됩니다. “에이즈 전파의 주 원인은 동성애다.”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선 “대부분의 동성애자는 ‘위험한 섹스’를 통해 HIV에 노출되어있으며, 선량한 이성애자가 동성애의 쾌락에 중독되어 HIV에 감염된다” 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전제에 도달하기 위해선 여성간 성행위를 통한 HIV 감염율이 남,녀 이성애자군보다 현저히 낮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무시해야 합니다. 저는 그들이 이러한 통계적 사실에 대해 무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자신들을 정당화 하는 논거로 항문성교, 에이즈, 성경 등을 언급하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에서 ‘여성’은 존재조차 부정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정말 잘난 똥꼬충이 될 때까지!

그들이 게이 이외의 성소수자는 모조리 무시해가며 [성소수자 = 동성애자 = 게이]까지 힘들게 논의의 범위를 줄이는 것은 바로 세번째 등호 [동성애 = 항문성교]로 넘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소수성애를 논할 때 항문성교는 빠짐없이, 그리고 집요하게 등장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동성애를 항문성교와 동일시하려는 일차적인 이유는 물론 항문의 불결한 이미지 때문일 겁니다. 이 불결함은 동성간의 사랑에는 정서적 유대감과 교감이 없으며 항문을 여성기의 대체물로서 쾌감을 위해 ‘역리대로 쓰는’ 것일 뿐이라는 그들만의 믿음의 근간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계간’, ‘똥꼬충’등 항문성교를 상징하는 비하 표현과 결합되어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주입되면 항문섹스는 결국 게이의 전부로 인식됩니다. 똥꼬로 교미하는 벌레 또는 닭이 된 게이의 표상은 이성애야말로 숭고하고 정신적이고 고결한 사랑이라는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서 소비되고, 이 대조적 도식은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훌륭한 프레임을 형성합니다.

사족을 달자면, 모든 게이가 항문성교를 하는 것은 아니며 항문성교는 게이만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게이를 대상으로 항문성교 경험자의 비율을 조사한 그동안의 여러 연구를 종합해보면 대략 60-80%의 미국 성인 게이 남성이 항문성교를 경험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성애자는 어떨까요? 미 인디애나 대학 Kimberly R. McBride 연구팀의 2010년 연구 결과2에 의하면 이성애자 남성(n=1299)의 51%, 이성애자 여성(n=1919)의 43%가 최소 1회 이상의 항문성교를 경험해보았다고 합니다.


파스퇴르가 울고 갈 21세기판 자연발생설

항문으로든 입으로든 콧구멍으로든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성인간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성행위라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을 권한이 없으며, 누군가 막고 싶다고해서 막아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동의합니다. 심지어 그들도 모두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항문성교 = 에이즈] 라는 또 다른 억지를 만들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를 비틀고 싶은 거겠지요. 통계 자료를 보겠습니다.

2010년 미국의 HIV 신규 감염자를 감염원별로 분류한 그래프입니다.3 에이즈 환자가 아니라 HIV보균자 통계입니다. 그들이 동성애가 에이즈를 전파한다며 지겹도록 들고나오는 바로 그 통계입니다. 63%가 남성간 성교(MSM)에 의해 감염되었고, 이성간 성교로 인한 감염 25% 중 여성(WSM)과 남성(MSW)이 각각 17%, 8% 를 차지하네요. 마약 주사(IDU)로 인한 감염이 8% 나왔고 MSM과 IDU 중복이 3%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여성간 성교(WSW)는 통계치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적다는 것입니다.

MSM, WSM, MSW는 해당하는 지정성별간의 성교를 뜻할 뿐 성적지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양보해서 대체로 일치한다고 가정합시다. MSM은 전체 성관계 중 차지하는 빈도수가 적을 것이라 추측됨에도 63%라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HIV감염에 더 취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MSM을 금지하자는 주장이 타당한 주장일까요? 그전에 성행위를 금지시킨다고 금지가 되긴 될까요? 그렇다면 WSW는 1%도 되지 않을 정도로 HIV로부터 안전하므로 이성간 성교도 금지시키고 오직 여성간의 성교만 허용해야 할까요? 우리는 여성 동성애자의 존재는 그들의 가부장적인 시각에 의해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해야 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HIV’, ‘보균’, ‘감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21세기는 마치 당뇨 환자가 약물과 식이관리를 통해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듯 HIV 보균자라도 적절한 관리를 통해 평생 AIDS 증상을 막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HIV 감염, 보균이라는 실제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을 쓰지 않고 ‘AIDS’에 ‘걸린다’는 표현을 고집합니다. 질병의 원인이 바이러스에 있지 않고 항문섹스에 있기 때문이라는, 따라서 AIDS는 신의 징벌로 받는 고통이라는 시각이 투영된 샤머니즘적 표현입니다. 21세기에 자연발생설이라니 파스퇴르가 무덤에서 뛰쳐나올 일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들은 에이즈 환자를 관리, 치료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의료보험료와 세금이 지불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난잡한 ‘선택’으로 인해 받는 고통을 왜 선량한 사람이 분담해야 하냐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AIDS가 HIV 감염으로 인한 후유증이 아닌 부도덕한 행위의 결과라는 인식이 세련되게 포장된 주장입니다. 손을 씻지 않아 전염병에 감염되어 병원에서 값싸게 치료를 받았다면 손을 씻지 않은 불결한 ‘선택’ 때문에 우리의 보험료가 아깝게 사용된 것일까요? 

만약 HIV 가 이성간 성관계에서 더 전파 위험이 높았다면, 그들은 똑같은 논리를 적용해 이성애를 금지시키자고 주장했을까요? 불행하게도 정말로 이성간 성관계가 압도적 전파원인 질병이 있습니다. 바로 자궁경부암입니다.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 바이러스 (HPV) 에 의한 발병이 85%4이고, 자궁경부암 조직에선 99% 이상 HPV가 검출됩니다.5 자궁경부암은 전세계 여성의 암으로 인한 사망 원인 중 4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2년 전 세계에서 26.6만 명 (2분에 한 명꼴)이 이 병으로 사망했습니다.6 HPV는 외성기간 접촉으로 인해 전파되며 여성 간 직접적인 성기 접촉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이성간 성관계로 인한 감염이 압도적입니다. 당연히 가장 큰 전파원은 안전하지 않은 섹스를 하는 헤테로섹슈얼 남성이지요.7

진심으로 대한민국의 명운과 국민의 건강권을 걱정한다는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당장 에이즈가 아니라 자궁경부암에 관심을 가지고 이성간 삽입 섹스를 반대하며 자궁 경부암으로부터 안전한 동성애를 권장해야 합니다.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결론인가요? 결국 그들이 HIV/AIDS에 대해 이토록 강조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을 진심으로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동성애를 탄압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궁경부암의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예방법은 이성애 금지가 아닌 HPV 백신과 안전한 성관계 그리고 정기적인 검진입니다. 마찬가지로 AIDS의 가장 확실하고 현실적인 예방법은 콘돔 사용과 정기적인 검진입니다. 동성애자를 탄압하고 이성애자로 ‘치료’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성소수자 = 동성애자 = 게이 = 항문섹스 = 에이즈]로 이어지는 너무나 편리한 그들만의 항등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이 항등식 하나만 뜯어보았지만 [성차별 비판 = 메갈 = 남성혐오 = 나치] 라는 또 다른 쌍둥이 항등식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인종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비백인 외국인 = 이주 노동자 = 불법체류자 = 범죄자] 도식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시스젠더-유성애-헤테로섹슈얼 남성의 젠더 권력, 정치와 결탁한 종교 권력, 그리고 인종주의라는 경사면 위에서 그들은 성소수자를 에이즈 전파자로, 여성은 ○○女,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이주노동자를 강력범죄자로 마음껏 일반화하며 조롱하고, 증오하고 핍박합니다. 그러나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 이주노동자 자녀들에 대한 집단 따돌림의 원인을 집단간의 권력 차라는 관점으로 조명하려 하면 선량한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해 역차별 한다며 혐오할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과 언론의 자유라는 그들만의 자유를 앞세웁니다.

차별은 역사적으로 여성, 외국인, 타인종, 장애인, 저소득자, 저학력자, 성소수자 등 다양한 희생자를 대상으로, 제각각 그럴듯한 논리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차별하는 집단과 차별받는 집단의 권력관계와 차별의 근거를 살펴보면 대상만 다를 뿐 위에서 알아본 것과 같이 모두 비슷한 도식 안에 놓여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7년입니다. 차별이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함께해왔다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소수자가 국가 사회를 망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할까요? 인류가 달에 다녀온지 반세기가 지났고, 손안의 컴퓨터로 이 세상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사람이 기계에 부여한 지능이 사람을 이기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저 엉터리 항등식은 왜 아직 그대로일까요?

1 신체적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것

2 Journal of Sex Research 2010, 47, 123–136

3 미국 질병통제 및 예방센터, 2012

4 Dillman, edited by Robert K. Oldham, Robert O. (2009). Principles of cancer biotherapy (5th ed.). Dordrecht: Springer. p. 149

5 Kumar V, Abbas AK, Fausto N, Mitchell RN (2007). Robbins Basic Pathology (8th ed.). Saunders Elsevier. pp. 718–721

6 World Cancer Report 2014. World Health Organization. 2014. Chapter 5.12.

7 충격적이게도 성인 남성의 50%가 HPV에 감염되어있다. Giuliano, A. R. et al.  e Lancet 2011, 277, 932-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