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se boys are all hoping to catch what you've already got.

포이벅

드라마 'How I met your mother'에는 고등학생 때 만나 약혼까지 하게 된 커플 릴리와 마셜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한 에피소드에서 마셜이 다른 도시로 가있는 틈을 타서 릴리는 자신의 매력을 확인하기 위해 약혼반지도 빼고 남자들을 유혹하려고 한다. 그러나 넘어오는 남자는 없고 기껏해야 게이 한 명이 옷에 얼룩이 묻었다며 말을 걸 뿐이어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실망한다. 얼마 전, 나는 이보다 더 창피한 일을 저질렀다.

놀림받는 외모, 따돌림당하던 과거, 어눌한 말솜씨, 엉망인 인간관계, 유치하고 비사교적인 성격, 한계가 보이는 학업, 불행한 가정환경 등 나열하자면 공책 한 장을 꽉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열등감이 가득 찬 대학생활을 보냈다.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한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커밍아웃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 성정체성으로 인한 고민보다도 내게는 비밀로 해야 할 다른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LINQ에 연락이 닿게 되어 가입했고 그와 동시에 첫 연애로 캠퍼스 연애를 꿈꾸던 내 기대도 물 건너가 버렸다.

LINQ 사람들과 나는 다른 점이 한가지 있었는데, 바로 20대 중반이 되도록 연애는커녕 첫 경험과 첫 키스조차 못 해봤다는 점이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누군가를 만나고 다니는데 나는 이곳에서조차 호구에 숙맥이라니! 밖에서도 놀림받고 무시받는데, 나와 공통점이 있을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조차도 부끄러워해야하다니, 나는 여태까지 뭘 하고 산 걸까. 나는 왜 여태까지 이런 과거에 놓여 살고 있었던 것인가.

시간이 가도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열등감은 커져만 갔다. 몇 년 동안 연애를 했었느니, 이번에 얼마 만에 했던 섹스는 어땠느니, 여태까지 몇 명과 얼마나 섹스를 했느니, 처음은 언제였느니, 몇 명이나 연애를 해봤다는 등, 친구들이 말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이 매력 없고 하찮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섹스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에게는 없는 자신감이 느껴져 짜증이 났다. 나는 여태까지 숫총각인데 날 놀리는 걸까 하는 자격지심도, 나는 이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도 되는지 조급함마저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에는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너무나 찌질한 것 같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쿨하게 넘기고 시늉했지만 혼자서만 어쩔줄을 몰랐다. 얼마 후 그렇게 갈망하던 첫 관계를 가졌지만 즐거움 대신에 후회가 너무나 크게 남아버렸다. 

그러다 우연히 온라인으로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알콩달콩한 연애를 했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계속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남자친구가 섹스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만나는 상황에서, 어느 때에는 한 달이 넘어가도록 관계를 가지지 않는데 그사이에도 남들이 볼지도 모른다며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하고, 입조심만 시키니 속이 터졌다. 물론 이에 대해 얘기를 꺼내봤지만, 자신은 나만큼 섹스를 원하지 않고 외박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답답했다. 나에게선 성적인 매력이 없어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에 원래 있던 외모의 콤플렉스도 밀어닥쳐 거울이나 사진을 보며 못생기고 나이 들어 보인다며 짜증을 내는 일도 늘어만 갔다. 남자친구가 지하철 앞에 앉았던 사람이 잘생겼었다며 가볍게 던진 농담도, 다른 사람이 외모에 대해 놀리면 돌아서서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데이트가 끝난 후 큰마음을 먹고 남자친구에게 육체적 관계에 대한 내 고민을 진지하게 꺼냈으나 매몰차게도 자신은 내 성욕을 채워주러 만나는 사람이 아니며 못들은 걸로 하고 싶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나도 이렇게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역에서 서로 그만 만나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는 안타까워했지만 나를 바래다주며 즐거웠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헤어지면서 나는 몇 번이나 뒤돌아봤지만, 그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반항심에 온라인으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내 사진을 보고 번개1를 하자며 연락이 오자 나도 매력이 있는 사람일 거라 벼르면서 바로 만나자며 집을 나섰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등신 같은 새끼였다며 욕하다가 내가 정말 바란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섹스를 하고 옮겨가는 그런 연애를 동경해왔다. 그것이 더 당당하고 인기 있어 보여 부러웠다. 하지만 그런 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를 부정하기 위해 나와 다른 이들을 뒤쫓았을 뿐이었다.

다음날 낮 12시에, 나는 바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잘못 생각했었던 거였다고,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 만에 연락이 올 줄은 남자친구도 몰랐겠지.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듣고 며칠간 전전긍긍하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먼저 연락 안 해도 되겠지? 카톡 온 건 아니겠지? 10분마다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3일 후 온 전화에서 그는 아직도 우리의 문제가 걸리지만,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을 했고, 그 순간 나는 을이 되어 다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졌어. 에라이 비겁한 남자야!

"나 자신이 바뀌니 세상과 내 삶도 갑자기 아름다워졌다. 생각을 바꿨을 뿐인데 놀랍게도 날 둘러싼 환경까지 바뀌었다!"라는 결말을 기대했다면 안타깝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전과 마찬가지로 못생기고 나이 들어 보이고, 인간관계, 가정환경, 성격도 난장판이라서 내 불행에 한껏 이바지하고 있다. 지나가 버린 과거도 아까워서 배가 아프고 난 여전히 열등감에 파묻혀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조금은 덜 속이게 되고 한 걸음만 나아갔으니, 아니 그저 몸을 털어 먼지를 조금 털어내는 것에 그쳤을지라도, 이 부끄러운 일들은 헛수고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잔뜩 창피를 당한 릴리는 친구 로빈에게 자신은 남자친구와 만난 지 9년이나 되어서 그저 '그물을 던져서 고기가 잡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라며 하소연한다. 그 말을 들은 로빈은 '여기 있는 여자들이 갖고 싶어 하는걸 넌 이미 가지고 있잖아. (all these girls here tonight are all hoping to catch what you’ve already got)’라며 멋지게 대답해준다. 언젠가 내가 다시 열등감에 짓눌려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될 것 같다면 이렇게 말해야겠다. "All these boys are all hoping to catch what you’ve already got."

1 One-night st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