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 트랜스 라이프!

라울

정체화를 한 지 5년정도 지났다. 이쯤이면 나의 주변에는 대부분 내 정체성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주위에 남아있게 되어, 종종 일상에서 나 자신이 퀴어라는 점을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삶이 된다. 방학이 되고 어쩌다 보니 포항과 울산, 두 집 살림을 하게 되었는데, 커밍아웃을 했지만 이해하는 정도의 차이, 그리고 커밍아웃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따라 나의 생활은 다시 다이나믹 트랜스라이프로 빠지게 되어버렸다.  

포항에서 나는 실험실 사람들과 1박 2일 바다에 놀러가고, 남자숙소에 배정받고, 형이라는 호칭을 쓰고, 나의 여자친구와의 관계 및 안부를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으며, 이것은 내가 젠더와 관련된 고민들에 둔감해지도록 하였다. 

 하지만 울산에서는 내가 인턴으로 들어갈때 주민번호를 밝히고 들어갔기에 나를 여자로 알고 있는 경우라거나, 커밍을 했어도 ‘○○언니에게 부탁해서~’ 라는 소리를 듣거나, 내가 남자로 패싱1이 되었다면 도움을 주지 않았을 상황에서 도움을 준다거나 (이런 걸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남성들은 ‘그래도 여자니까’라는 말로 포장하려 하더라) 외국인 학생과 함께 토론할 때 she/her이라고 지칭당한다. 1박 이상 함께하는 행사가 있으면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고, 아웃팅을 당할까봐 사람이 적게 다니는 화장실을 찾아다니고,(보통 다른 건물에 가거나 다른 층에 간다) 그러다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괜히 하루 종일 마음 졸이고 있어야 한다. 주변 사람의 “얘 여자인데요” 라는 말에 내가 여태까지 여성으로 인식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하고(하 씨발!), 때론 내가 기억도 못할 만큼 거짓말을 꾸며내야하기도 한다. 집에서는 여전히 나의 개명 전 이름을 부르며, 가족과 함께 밖에 나가면 화장실에 갈 때 엇갈려 가야한다. (예전엔 수술한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입지도 않은 압박조끼를 빨래통에 넣어놓기도 했다) 이런 생활도 어느덧 적응이 되었지만, 울산에서의 나의 삶이 '(트랜스젠더가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어도 될 스트레스'라는 것을 생각하면, 앞의 상황들은 내 트랜스프라이드를 갉아먹기 충분했다.

다시 학기가 시작하고 굳이 나의 정체성을 숨길 필요가 없는 포항에 오면 편해지겠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운이 좋은 편이라서 내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에 부딪치기도 한다. (실험실 사람들과 바다에서 놀고 공동 샤워실에서 씻어야 했을 때 나의 동공이 약 300Hz로 진동했다) 아직까지 군대이야기에서 소외되고, 중⋅고등학교를 숨기기에 급급하고 (나는 여중⋅여고를 나온 남자다) 주민등록번호를 밝혀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나의 성별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성으로 체크되기도하지만, 나는 말할 수 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지금은 나 혼자뿐이었던 5년 전보다 분명 나아졌고, 앞으로도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행자보험에 가입해야한다는 이유로 나의 주민등록번호를 학회에 보내고 왔다. 아직 나의 다이나믹 트랜스라이프! 가 휴면기에 들려면 멀었나 보다.

1 패싱(passing): (자신의 젠더 정체성과는 관계없이) 나의 외적인 요소로 인해 사회적으로 특정 성별로 인식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