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이분법적 공간을 헤메는 트랜스젠더

한희(초청 기고)

기계공학과 04학번으로 졸업 후 건설회사, 로스쿨을 거쳐 현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변호사이자 성소수자활동가로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로스쿨을 다니던 시절 주변에 트랜스젠더인 것을 알리면서 조금씩 스스로를 드러내었고 현재도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을 하면서 성별이분법이 가져오는 구조적 억압을 드러내고 깨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를 고민중입니다.

미국의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슈를 보며

최근 미국에서 성소수자와 관련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이다. 2015년 연방 대법원의 동성결혼 판결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이후, 성소수자 혐오 세력들의 주된 공격 지점이 이 문제로 옮겨간 듯하다. 처음에 주로 몇몇 고등학교에서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지정성별에 따른 화장실 사용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이 이슈는, 휴스턴 주의 차별금지 조례가 주민 결의로 철회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결국에는 얼마 전 노스캐롤라이나 주가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화장실을 사용하게 하는 법안을 제정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다른 주 정부들의 비난, 기업들의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대한 투자 철회 압박 등 지속해서 이슈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을 지켜보며 MTF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그리고 트랜스젠더 인권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복잡한 생각들이 든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혐오세력들의 주된 공격 지점은 ‘항문성교’, ‘에이즈’지만 언젠가는 이러한 이슈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남/녀로 구분된 일상의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폭력이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도 크다. 다만 이 글은 이에 대한 현재의 진단과 대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제로 기고를 부탁받고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 역시 대학생활 동안 그러한 공간 구분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숙사는 이제 그만

졸업한지도 오래 되어서 이제는 어느 정도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솔직히 내가 즐거운 학부시절을 보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애매하지만 아무튼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이미 내가 주변의 일반적인 남자애들과는 다른 생각과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당시 내가 선택한 전공이 당시 2년 연속 여학생이 0명인 것으로 악명(?)이 있었던 기계공학과라는 것. 흔히 MTF트랜스젠더의 경험담 속에는 남자친구들보다 여자친구들이 훨씬 많았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절대적인 비율이 차이나는 상황 속에서 그런 경험담은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러한 친구들과의 관계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기숙사에서의 생활이었다. 지정 성별에 따라 당연하게도 남자 기숙사에 배정 받았을 때, 처음에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이 시간이 갈수록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름 첫 방돌이 선배를 좋은 분을 만나서 자주 치킨도 얻어먹고는 했지만, 남자와 방을 같이 써야 하는 점이나 복도에서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남자애들을 마주치는 일들, 샤워를 할 때도 은근히 신경 쓰게 만드는 환경들은 점차적으로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공익근무요원으로 훈련소를 갔을 때 차라리 해방감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자기숙사에서의 지긋지긋했던 경험의 결과 졸업하면 무조건 자취를 하리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졸업 후 바로 서울로 취직을 하면서 나는 자취를 시작했고 현재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간 후에도 기숙사는 절대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여자 기숙사에서의 일주일

그러던 내가 최근에 기숙사에서 일주일간 생활을 할 일이 생겼다. 약간의 설명을 하자면 나는 몇 년 전 지금의 학교에서 커밍아웃을 했고 현재는 여학생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다만 현재 수술을 하지도 성별정정을 하지도 않은 상태이기에 아직도 법적으로는 남성이다. 그렇기에 지난 겨울방학 단기 인턴을 하게 되었는데 첫 일주일간 합숙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이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결국 담당자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했고 다행히 친구랑 같은 방을 배정 받아서 여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작 일주일에 불과했지만 앞에 크게 ‘남자교육생 출입금지’라 적힌 문을 지나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는 경험은 많은 것들을 느끼게 했다. 사실 여자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마냥 즐겁거나 하지는 않았다. 막상 가기 전에는 혹시나 샤워시설이 공용이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었고, 간 뒤에는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같은 방을 쓰는 친구와 담당자뿐이었기에, 혹시라도 다른 여자 교육생들이 알게 되면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가급적 방 밖에 돌아다니거나 하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여/남으로 나누어진 공간이 있는 한 나는 어느 쪽에서든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역시 자취가 정답이라는 마음을 한층 더 굳게 가졌다.


트랜스젠더로서 살아가기, 공간을 포기하기

기숙사, 찜질방, 목욕탕, 수영장, 헬스장, 화장실 등등, 남/녀로 구분된 공간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리고 내가 트랜스젠더로서 커밍아웃을 하고 살아가야겠다 결심하면서 한 일들은 이러한 공간을 하나씩 포기해 나가는 것이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며 찜질방에서 묵는 것을 즐기던 나는 벌써 몇 년째 찜질방이나 대중목욕탕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여름에 수영장 등에 놀러갈 생각도 진즉에 접었다. 화장실은 내 경우는 현재 여자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지만 이전에는 여러모로 난감했던 경험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인턴 경험을 통해 나는 확정적으로 기숙사 생활에 대한 미련도 버렸다. 사실 만일 내가 고3때 나에 대해서 정체화를 마쳤었다면 나는 아마 여기가 아닌 다른 학교에 진학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분법적 공간과 트랜스젠더의 갈등은 결코 개인의 사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트랜스젠더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 성별정체성에 따른 공간 사용, 또는 성별구분 없는 공간사용 등이 대안으로 나오고는 있지만 항상 성폭행 우려 등과 같은 반론이 터져 나오면서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아마도 법적 성별정정, 신분증 상의 성별표기 등과 더불어 이러한 공간의 문제는 트랜스젠더의 이슈로서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고 계속해서 해답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말한바와 같이 이 글은 그에 대한 무언가 결론을 제시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단지 혹시나 당시의 나와 같이 기숙사 생활에 힘들어 하는 트랜스젠더 친구가 있다면, 조금 앞서서 그런 고민을 한, 그리고 지금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 내 글을 보고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위안 내지는 공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