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기행 - 졸업생 선배들과의 만남

니은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주말 거리의 간판은 하나둘 불을 켜기 시작하며 오가는 객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저기 대로변에는 남자 둘이 다정히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보였다. 사람이 북적이는 거리에는 차림새가 유달리 눈에 띄는 사람도 왕왕 있었다. 종로 낙원상가 일대는 한두 번쯤 와봤었지만, 그날 본 풍경은 익숙한 듯 다른 데가 있었다. 정확히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전과는 달랐다. 오늘은 LinQ 친구들과 함께 졸업생 선배들을 만나는 날이다.

꽤 오래전 일이었다. 온라인 게이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내가 아는 졸업생 선배 한 분을 알아본 것이 시작이었다. 세상에, 그 선배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이후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다가, 포스텍 졸업생 LGBT 모임이 있으니 함께 보자고 얘기가 되어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LinQ 회원 네 명과 졸업생 선배 세 명이 그날 약속 장소에 모였다.

종로 밤거리는 처음이라 선배가 안내해주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는데, 그곳의 풍경은 아주 인상깊었다. 처음 간 곳은 포항의 마 x 소금구이 비슷한 느낌의 가게였다. 저녁 시간이 끝나고 술자리가 시작될 즈음 하나둘, 남자 손님들만 모여들기 시작했다. 선배 말로는 여기가 이쪽1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가게란다. 덧붙여서 가게 이모님과 삼촌(처음에 아저씨라 불렀다가 혼났다)은 여기 오는 손님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었고,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이모님 펄스2도 다녀오신 분이야." 라고 선배가 자랑스레 소개하자 이모님께서는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치시며 "아유, 누가 하도 같이 가보자고 졸라대서 잠깐 들어가 봤어." 하시며 받아치시는 모습이 사뭇 훈훈했다. 혹시 오해하는 독자들이 있을까 봐 부연설명을 하자면, 이모님이나 삼촌 모두 LGBT 는 아니었다. 흔한 고깃집 사장님과 종업원분들을 옆에 두고 그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정말 생소한 일이었다.

그곳에서 우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종로 한복판에서 학과, 학번, 분반, 동아리를 포함해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는 일련의 익숙한 과정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선배들은 LinQ 근황이나 분위기를 많이 궁금해했다. 우리 모임이 나름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신 모양이었다. 과거 분위기로는 이 학교에서 이런 모임이 생기기 절대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역시 포스텍 아니랄까 봐, 서울 쪽 LGBT 주류 문화나 분위기와는 차이가 크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대로 우린 졸업생 모임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서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졸업생 모임의 선배들은 학교 다닐 적에도 서로 친한 사이였던 경우가 많았다. 분반 선후배 사이인데 학교 다닐 적 온라인 게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 서로 알아보고 더욱 친해진 두 분도 있었고, 다른 분들과 준위 활동 등으로 친한 사이였는데 졸업 후에야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고 사람을 만나보기 시작해서 온라인상에서 마주치게 된 분도 있다고 했다. 물론 직접 커밍아웃했다 알게 된 경우도 좀 있다고 했다. 이렇게 알음알음 알게 된 분들이 제법 되자 한 선배가 구심점이 되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모임도 모임이지만 선배들은 30 살 전후의 사회 초년생, 여기에 대해서도 우린 궁금한 것이 많았다. 우선 대기업 직장인이 둘, 벤처 스타트업에서 일하시는 분이 하나. 어렵게 모인 자리인 만큼, 평범한 직장생활 자체보단 게이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봤다. 대기업 다니는 선배 두 분께서는 직장에선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으시는 모양이었다. 직장 동료란 감정적으로 엮이지 않는 사무적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말도 있잖나. 반면에 다른 한 분께서는 회사 주주 지분의 90%에 해당하는 임직원들이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씀하셨다. 부부 동반 모임 같은 게 종종 생겨도, 웬만큼 다 말해 놓아 걱정이 없거나 적당히 둘러대거나 하신단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나 가족은, 평균 혼인 연령이 늦춰지고 있는 작금의 세태도 있고 하여 아직 압박(?)이 강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건 졸업해도 여전히 어려운 모양이다. 자립할 수 있을 때,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부모님께 확신을 드릴 수 있을 때까진 기다려야 한다는 대원칙에 함께 공감한 것이 전부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충분히 먹어서 배도 부르겠다, 그 정도에서 얘기를 마치고 우리는 자리를 정리했다.

2 차는 포장마차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2 차선 도로에 늘어선 포장마차마다 손님이 북적였는데, 나는 그렇게 많은 게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건 처음 보았다. 술에 달큰하게 취한 게이 커플이 서로 스킨십하는 장면마저 보이는 이곳에, 손님을 살갑게 챙겨주시는 포장마차 사장님이나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는 남녀 커플이 공존한다는 건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한 광경이었다. 개중에는 트랜스젠더로 보이는 분도 있었고, 따로 알아보진 못 했지만, 게이 친구 따라 놀러 온 이성애자 분들도 있었을 거다. 사실 포항에서 LinQ 사람들끼리 모일 땐, 카페에 앉아 별 시답잖은 얘기를 나눌 때조차 단어를 가려서 말하거나 목소리를 낮춰본 경험이 있었다. 반면에 이곳에는 이렇게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북적이고 있는데도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종로 3 가 일대는 분명 허름하고 낙후된 곳이지만, 그 자유로움과 홀가분함 때문에 모두 이곳으로 모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리를 옮기면서 선배 한 분과 LinQ 친구 한 명이 일찍 들어가고 새로운 선배 한 분이 합류했다. 그것도 무려 레즈비언 선배! 학교 다닐 적 남학우들 여럿 울렸을 것 같은 매력적인 분이셨다. 자리에 있던 선배 중 한 분은, 그 선배와 재학생 시절 굉장히 친했지만 서로 이쪽임을 알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후 둘이 직접 만나본 게 오늘이 처음이라니,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선배들끼리 신나게 회포를 풀게 되었다. 학부생 시절 학생활동을 진하게 했던 분들이라 그에 대한 추억도 많았고, 서로 돈독한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알게 된 것도 다른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라, 순전히 주변 친구들을 믿고 커밍아웃하다가 서로 알음알음 알게 된 거란다. 같은 게이라도 서로 알아보고 알고 지내기 힘든데 이런 식으로 서로를 알아나가다니 대단하다 싶었다. 그렇게 예전 학교의 이야기, 안면 있던 고학번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 학내 학생활동 및 단체들에 대한 이야기도 귀에 들어왔다. 재학생 시절 짝사랑 이야기는 세대를 초월해 즐길 수 있는 술안주였다. 물론 집에 가서 이불 뻥 차라고 짓궂게 꺼내 든 얘기였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요즘 근황, 각자의 연애 이야기, 후배들에 대한 조언과 격려까지. 차 끊길 시간이 훨씬 지나서까지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술자리는 3 차로 이어졌다.

3 차로 간 술집 역시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소위 '소주바'라고 하는, 바 테이블에 앉아서 한국식 주류와 사장님 특제 안주를 즐길 수 있는 아담하고 오붓한 가게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을 꼽으라면 사장님이 게이라는 것. 물론 이태원에 가면 홍석천 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들이 성업 중이라지만, 그곳과는 달리 이곳은 단골손님들 역시 게이들이라는 게 또 큰 차이점일 거다. 내가 낮에 그곳을 봤더라면, 이런 외진 곳에 폐쇄적인 가게에 오는 손님은 누굴까 궁금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무리가 그 손님이었고, 내부 분위기도 생각보다 왁자했다. 정말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선배는 가게 사장님과 안면이 깊었는지, 사장님께 친히 “학교 후배들이다, 이 친구는 학교 모임 나온 지도 얼마 안 됐고 저 친구는 오늘 종로에 처음 와봤다.” 하고 우리를 소개해주셨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 한 마디 격려(?)와 약간의 관심을 받기에 십상이어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다른 일행과도 몇 마디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내 옆에는 한 남자분과 여자분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남자분은 게이였고 여자분은 그 남자분이 커밍아웃한 친구였다. 여자분은 유강에 살고 부모님은 그곳에서 음식점을 하나 운영하신다고 했다. 세상 참 좁기도 하다.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포항 사람을 만날 줄이야. 서로 반가운 마음에 자기소개도 더 하고 서로 어떤 친구인지도 물어봤었는데, 사실 난 이미 얼큰히 취한 상태여서 자세한 건 기억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또렷이 기억에 남았던 건, 그분이 무심코 던진 질문 한 마디였다. "그럼 탑이세요. 바텀이세요?" 초면인데 그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이야. 크게 내색은 안 했지만, 너무 당연한 듯 자연스레 질문하시니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나는 그 이분법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일단 얼버무렸다. "아 그렇구나… 그럼 얼른 정체성을 찾으시길 바랄게요." 하고 말씀하시는데, 뭐라고 답해드려야 할지. 한숨부터 나오길래 적당히 몇 마디 더 하다가 인사하고 다시 우리 모임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시 정신없이 놀다 보니 어찌어찌 술자리는 파할 때가 되었고, 선배들께 우리가 펴낸 책자를 쥐어 드리며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그날은 술이 깊게 취한 상태로 침대에 누웠다. 가만히 누워서 곱씹어보니 아쉬움, 섭섭함, 답답함, 뭐 그런 감정들이 묻어 나왔다. 내가 그렇게 비정상인 것처럼 말할 필욘 없잖아… 항상 그렇다. "남자는 이래야 해.", "포항공대생들은 이럴 거야.", "게이는 다 그런 거야." 정형화된 틀을 정의해두고는 누군가를 거기에 욱여넣는다. 지긋지긋한 일이다. 그 갑갑한 기분을 이곳 종로에서까지 느끼게 될 줄이야. 그것도, 게이 친구를 두고 게이를 이해한다며 여기까지 찾아온 분한테서. 한 단면을 전부인 양, 표현이나 분류마저 틀린 그 정보를 자랑스럽게 알려줬을 그 게이 분도 참 야속했다. “진리의 케바케3 몰라요?” 라고 따져주고 싶기도 했다.

물론 세상엔 답답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건데 내 바람이 과했던 걸지도 모른다. 여기가 유토피아라도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게 사람 사는 곳이니까 그랬지 싶다. 그래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좋지 아니한가. 모일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고,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모습은 정말로 황홀했다. 내가 웅크리고 앉아서 조심스레 발을 내디뎌보는 사이, 이곳은 이미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 이 사람들이 계속 모일 수 있는 한, 여남은 문제들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당장 안 풀리는 문제는 맘 편히 던져두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내 마음은 그럭저럭 홀가분해졌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탓에 몸은 노곤했다. 오늘 하루는 글로 남기고 싶은 게 많았고, 내일은 내일의 일정이 있었다. 나는 정말 기분 좋게 잠들어버렸다.

1 LGBT끼리 LGBT 집단을 지칭하는 은어. LGBT, 이성애자, 동성애자, 게이 같은 표현은 너무 딱딱하므로 대체해서 쓰기도 하고, 주위를 의식하는 경우에도 이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2 이태원에 있는 유명한 게이 클럽 이름이다.

3 ‘case by case’의 줄임말. (문제 상황에 대한 분석이나 해결 방법 등은) 상황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의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하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